‘간첩 천국’서 공안정국 타령? [金亨錫 시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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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첩 천국’서 공안정국 타령? [金亨錫 시론]
  • 김형석 논설위원
  • 승인 2023.02.05 17:1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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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간첩망 실체 드러나…종북세력 더 무섭다”
“공안정국이 뭔지도 모르는 사람들”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 김형석 논설위원)

8개월간 도피 끝에 태국에서 붙잡힌 김성태 전 쌍방울그룹 회장이 지난달 17일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입국하고 있다. ⓒ 연합뉴스
8개월간 도피 끝에 태국에서 붙잡힌 김성태 전 쌍방울그룹 회장이 지난달 17일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입국하고 있다. ⓒ 연합뉴스

지금 우리에게 닥친 가장 급하고 심각한 문제는 무엇일까? 각자 위치나 시각에 따라 국가의 현안을 보는 우선순위가 달라질 거다. 그래서 언론사들도 중요하게 다루는 사안이 조금씩 차이 날 수밖에 없다. 요즘은 난방비 급등을 비롯한 민생 문제, 무역수지 적자, 이재명 민주당 대표에 대한 검찰 조사, 국민의힘 당 대표 선출을 둘러싼 잡음, 그리고 북한 간첩단 문제 등이 주요 이슈로 다뤄지고 있는 중이다. 

필자는 모든 것에 앞서 간첩단을 포함한 ‘북한 리스크’를 가장 심각한 문제로 꼽고 있다. 우리의 생존과 직결되는 문제의 위험 수위가 턱밑까지 차올라왔다고 보기 때문이다. 공안정국(公安政局) 조성용이라며 ‘별것 아닌 일’로 치부해버리려는 일부의 지적을 존중, 간첩단 수사 상황 중 최소한의 ‘팩트’만을 추려봤다.  

북한의 남한 침투 실태 

최근 불거진 일련의 사태들을 한 꺼풀만 벗기고 들어가 봐도 지난 몇 년 사이에 북한의 공작이 주변에 얼마나 침투해있는지 알 수 있다. 

김성태 전 쌍방울 회장이 2019년 북한 측에 총 800만 달러를 전달했다고 검찰에서 진술했다. 500만 달러는 북한 내에서의 사업권을 따내기 위해, 300만 달러는 이재명 당시 경기지사의 방북 추진을 위해 줬다고 한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 측이 부인하니 돈의 명목을 따지는 일은 뒤로 미루자. 

그런 거액이 불법으로 북한에 흘러들어갔다는 사실 자체가 우리를 놀라게 한다. 어떻게 일개 민간기업이 정부 승인 없이 대북 사업을 한다며 불법 송금을 할 수 있었나. 그리고 대다수 국민들은 이제까지 그 사실을 까맣게 모르고 있었을 수 있을까. 

김 전 회장은 2019년 7월 필리핀 마닐라에서 경기도와 대북교류 단체인 아태평화교류협회(아태협)가 공동 개최한 ‘아시아·태평양의 평화·번영을 위한 국제 대회’에서 북한 대남공작기관인 국가안전보위부(현 국가보위성) 소속 리호남을 만났다고 한다. 

언제부터 일개 기업과 아태협같은 단체의 관계자가 북한의 대남공작기관원과 공공연히 만남을 가질 수 있었을까. 우리 일반인들은 모르고 있었지만 전 정부 하에서는 공공연히 북한과의 만남이 이뤄졌다는 얘기일까. 이 건(件) 하나만으로도 대북관계에 대한 우리의 의문은 끝없이 이어지게 돼있다. 

정주영의 소몰이 방북 때와 비교하는 우는 범하지 말기를! 정주영은 정부 승인 하에 전 국민과 전 세계의 박수를 받으며 당당하게 소떼를 몰고 북으로 갔었다. 

대북 지원 단체인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우리민족)’은 북한의 미사일 도발이 빈발하던 2021년에 김일성이 만들었다는 사향가와 꽃 파는 처녀 등을 연주하는 콘서트를 열었다. 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 때에는 평양 여행학교 사업을 벌였다. 북한은 그해 8차례에 걸쳐 미사일을 쏘아댔다. 우리를 위협하는 미사일이 날아다니는 가운데 북 찬양가를 불렀다는 얘기다. 

이쯤 되면 한반도가 북한 주도 하의 통일국가가 된 거나 다름없는 모습이다. 미사일이 날아다니는데 바로 우리 동네에서 김일성 노래가 연주됐단다. 

북한의 위협 사례, 차고 넘친다

전국에 조직화된 간첩망, 그리고 노조 등을 대상으로 포섭에 나선 간첩들의 암약상에 대해서는 더 이상 언급하지 않는 게 낫겠다. 자꾸 언급하면 자칫 우리들의 위기의식만 무뎌질 수 있을 테니까. 북한이 수시로 쏘아 올리는 미사일에 관해서도 언급을 삼가는 게 좋겠다.  
그러나 미사일의 목표가 어디인지에 대해서는 다시 한번 분명히 하자. 

자살행위가 될 미국 본토를 향해 미사일을 쏠 생각을 할 리는 없다. 김정은이 아무리 미련해도 실익이 하나도 없는 일본에 미사일을 쏠 리도 없고 중국이나 러시아는 더더욱이 아니다. 쓸데없이 설명이 길어졌는데, ‘위대한 김 씨 왕조의 완결’을 위한 최후의 한 방이 바로 남쪽을 향한 핵미사일이다. 물론 그것도 자기들이 망하는 길이 될 테지만. ‘북한 리스크’를 깨닫는 데에는 이런 일부 사례 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공안정국(公安政局)

박지원 전 국가정보원장은 “윤석열 정권 8개월 동안 간첩이 나온 게 아니라 그전부터 쭉 이어온 것”이라고 주장했다. 문재인 정부부터 이어져 온 수사의 성과란 취지다. 박 전 원장은 “그런 (간첩단) 접선은 해외에서 이뤄지기 때문에 내가 국정원장 할 때도 계속 보고받았다”라고 했다.  

박 전 원장이 북한의 대남 간첩활동이 지난 몇 년 간 계속돼왔다는 것을 인정한 것이다. 다만 어떤 이유에서건 이제까지 국민들에게 알리지 않고 간첩활동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우지 않았다는 얘기가 된다. 

북한 간첩단이 2016년께부터 창원 전주 제주 등 전국 곳곳에서 암약했다는 최근의 보도는 전 국정원장도 분명하게 확인해 준 셈이다. 현 정부가 공안정국으로 몰아가려고 없는 일을 만들어 발표하는 게 아니라는 걸 박지원 전 원장이 확인해 준 거다. 

현 정부의 조작이라며 국정원과 언론사 기자들을 공수처에 고발하겠다고 나선 진보 진영과 일부 시민단체들이 매우 민망하게 됐다. 

그래도 여전히 간첩단 사건 수사를 두고 공안정국 운운하는 사람들은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무뇌증(無腦症) 환자라서 생각을 아예 못 하는 건지, 아니면 일단 정부에 반대해야 하기 때문에 그런 건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그런데 그 사람들은 정작 공안정국이란 게 어떤 건지 제대로 알기나 하는 걸까?  

흔히 공안정국을 노태우 정부 때 보수체제로의 회귀를 위한 강압정치를 의미하는 것으로 이해들 한다. 그러나 공안정국의 실체는 박정희 정권 때부터 반공주의 정서를 확대하며 수시로 조성돼왔다. 

60대 이상 세대는 공안정국에 대해 공포심을 갖고 있을 정도다. 중앙정보부(국정원 전신), 보안사령부(기무사 전신) 산하 분실이 전국 곳곳에 포진하며 이른바 거동수상자를 마구잡이로 끌고 가 구타와 고문을 일삼았다. 속칭 남산으로 일컬어지는 중앙정보부는 그야말로 공포의 대상이어서 ‘남산에서 오란다’ 하면 기자든 정치인이든 심지어 일반 회사원까지도 벌벌 떨던 기관이었다.

거리에는 온통 간첩 신고하라는 표어 투성이었고 심지어 학교 안에도 그런 표어가 붙여졌다. 예를 들면 이런 것들이다.

‘간첩은 표시 없다 너도나도 살펴보자’ ‘때려잡자 김일성 무찌르자 공산당’

억울한 사람들이 많았었고 월북자 가족들은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을 겪어야 했다. 그런데 2023년의 대한민국 정부가 저런 시대로 회귀하려 한다고? 그건… 여의도 ‘큰 집’ 사람들이 자신들의 과오를 회개하는 것만큼이나 불가능한 일이다. 

‘공안정국’보다 더 한 일도 마다하지 말아야

최근 어느 신문은 간첩 기사를 보도하며 제목을 “나라가 넘어갈 뻔했다”라고 뽑았다. 일부에서 과장이 심했다고 하지만 필자는 제대로 뽑은 제목이라고 생각했다. 자유시민들은 이제 종북(從北) 세력, 친북 세력이 간첩보다도 더 무서워졌다고들 한다. 필자는 역시 전혀 과장 없는 반응이라고 받아들인다. 6.25 전쟁, 베트남 패망의 역사를 통해 내부 첩자들의 암약상을 배웠기 때문이다. 

국가의 방첩 기능이 최근 몇 년 사이에 매우 약화되거나 수사 결과 발표도 유야무야되었음을 최근에야 확인했다. 오히려 친첩(親諜)기능이 강화됐다고 할 정도다. 좌파는 앞뒤 안 가리고 눈앞의 이익에만 몰두했고 우파는 무능했으며 국민은 무심했다. 

그러나 이렇게 암만 떠들어봐야 해이해진 안보의식을 정상화하기는 힘들지 않을까 싶다. ‘우리 안의 수많은 좌파’들은 ‘빨치산 감동 스토리’만 읽은 외눈박이 독자들이다. 그들에게 동작동 현충원에 잠들어있는 수많은 젊은 혼들의 사연을 들려주려 해도 이미 너무 늦었다. 이제는 간첩, 친북, 종북세력을 가려내 합당한 처벌을 가하는 일부터 해야 할 때다.  

민중 봉기의 불을 지필 시기만을 노리고 있는 남파 간첩들과 내부 첩자들을 전문적으로 골라내야 할 국가정보원이 내년부터 그 기능을 빼앗긴단다. 남북 대치 상황에 놓인 이 나라 돌아가는 꼴이 말이 아니다. ‘보트피플’이 먼 나라 얘기같이 들리지만도 않는 이유다. 윤석열 대통령이 젤렌스키 대통령만큼 결기가 있을까? 무엇보다도 막강한 러시아에 맞서는 우크라 국민들만큼 한국 국민들이 똘똘 뭉쳐져 있을까? 현재의 답은 “아니올시다!”다. 

거듭 말하지만 한동안 잠적했던 초록 동색(草綠同色)의  간첩들과 종북 세력들이 얼마 전부터 준동(蠢動) 하기 시작했다 (본지 1월 15일 자 ‘정부, 간첩단 사건 전모 빨리 밝혀야’ 참조).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1년 시점을 맞아 중앙일보가 우크라이나·폴란드 접경 지역의 피란 현장으로 특파원을 보냈다. 엊그제 특파원이 전한 그 전쟁의 소식 중 가장 우울한 건 그 전쟁이 언제 끝날지 모르는 장기전으로 치닫고 있다는 거다. 양측 사상자가 20만 명을 넘었고 피란민이 1000만 명을 넘었단다. ‘신냉전의 어두운 그림자’라고 기자는 언급했다. 

먼 나라의 일이라고 흘려버려도 될까? 생존이 걸린 일이 닥쳤을 땐 좌고우면하는 게 아니다.  방첩 당국은 서둘러 국민을 안심시킬 조치를 취해야 한다. 요즘 불안해하는 사람들이 부쩍 많아졌다. 

김형석(金亨錫) 논설위원은…

연합뉴스 지방1부, 사회부, 경제부, 주간부, 산업부, 전국부, 뉴미디어실 기자를 지냈다. 생활경제부장, 산업부장, 논설위원, 전략사업본부장 등을 역임했다. 

정년퇴직 후 경력으로 △2007년 말 창간한 신설 언론사 아주일보(현 아주경제) 편집총괄 전무 △광고대행사 KGT 회장 △물류회사 물류혁명 수석고문 △시설안전공단 사외이사 △한국방송광고진흥공사(코바코) 사외이사 △중앙언론사 전·현직 경제분야 논설위원 모임 ‘시장경제포럼’ 창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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