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주류 반란, YS-DJ도 막지 못했다 [김자영의 정치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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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주류 반란, YS-DJ도 막지 못했다 [김자영의 정치여행] 
  • 김자영 기자
  • 승인 2023.02.03 19: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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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경원 불출마 후 지지율 상승한 安…친윤에 ‘반윤’ 비판받아
2014년 한나라당 전대, 비주류 대표 ‘김무성’ 당선…비박 역습
1985년 부의장 파동…‘이용희’ 내정했으나 ‘조연하’ 반발해 당선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 김자영 기자]

ⓒ 시사오늘(그래픽 = 김유종 기자)
<시사오늘>은 비주류의 반란 사례로 과거 2014년 한나라당 전당대회와 1985년 조연하 국회부의장 파동을 들어 살펴봤습니다. ⓒ 시사오늘(그래픽 = 김유종 기자)

국민의힘 전당대회 후보 등록 마감이 다가왔습니다. 유력 당권주자였던 나경원·유승민 전 의원은 불출마를 선언했습니다. 당대표 선거는 안철수·김기현 두 의원의 양강 구도로 굳어지는 듯했으나, 이준석계로 알려진 천하람 변호사의 합류로 또 다른 변화 조짐도 보이고 있습니다. 

이번 3·8 전당대회에서 가장 많이 언급되는 단어 중 하나가 ‘윤심’(尹心)입니다. ‘윤석열 대통령의 의중이 어느 후보에게 실려있느냐’가 많은 이들의 주목을 받으면서 소위 ‘친윤계’로 알려진 이들의 행보도 논란이 되고 있습니다.

지난해 12월만 해도 여론은 지금과 달랐습니다. 나경원·유승민·안철수·윤상현·조경태·권성동 등 여러 인사들이 후보로 거론될 때, 김기현 의원의 지지율은 한 자릿수대에 그쳤습니다. 

하지만 김 의원이 윤석열 대통령과 용산에서 독대를 가진 사실이 전해지며 ‘윤심(尹心)은 김기현에게 있다’는 이야기가 퍼지기 시작했습니다. 

장제원 의원과 김 의원의 회동 사실과 함께 ‘김장연대’(김기현·장제원 연대)설도 불이 불었습니다. 김 의원의 지지율도 두 자릿수대로 올라가기 시작합니다. 

김 의원은 ‘대통령과 눈빛만 봐도 뜻이 통하는 사람, 당이 돼야 한다’며 자신이 당대표 적임자임을 주장했습니다.

장 의원이 지난달 동두천에서 열린 김성원 의원 의정보고회에서 “대통령과 일체화한 대표를 뽑아서 우리 당을 완벽하게 윤석열과 함께 가는 당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 사람이 여기 온 것 같은데 누구냐”고 묻고 ‘김기현’이라는 청중의 답이 돌아오자 “잘 아신다”고 말하는 일도 있었습니다.

반면 윤심이 없는 것으로 여겨지는 곳에선 가차없었습니다. 지난달 나경원 전 의원이 대통령실과의 갈등, 친윤계의 공격 끝에 불출마를 선언하는 모습이 보여졌습니다. 

시작은 저출산 대책을 둘러싼 나경원과 대통령실의 갈등이었지만, 윤 대통령의 나 전 의원 기후변화대사 및 저출산고령사회위 부위원장직 해임, 장제원 의원의 ‘반윤 우두머리’ 공격, 국민의힘 초선 의원 50명의 ‘나경원 비판’ 연판장으로 이어지자 나 전 의원은 “솔로몬 재판의 진짜 엄마 심정으로 불출마 결정했다”며 물러났습니다. 

나경원 사태를 거치고 친윤계가 지지하는 김기현 후보가 유리한 고지를 선점했냐 하면, 그렇지 않았습니다. 나 전 의원 표심이 안철수 후보에게로 향하는 모습이 보였기 때문입니다. 김기현 후보의 상승세는 꺾였습니다. 

친윤계는 안 의원을 겨냥해 공세를 폈습니다. 국민의힘 이철규 의원은 ‘가짜 윤심팔이’, ‘스스로 반윤 행태’ 등 단어를 써서 안 의원을 비판했습니다. 박수영 의원은 과거 안철수 의원의 인수위원장 시절을 인사 문제로 윤 대통령과 이견이 있었다는 이야기를 꺼내며 “아주 서운해하셨다”는 말을 하기도 했습니다. 

곧이어 대통령실은 안철수 후보 캠프 선대위원장인 김영우 전 의원을 대통령 직속 국민통합위원회 위원에서 해촉했습니다. 제2의 나경원 사태가 연상된다는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김찍장’(김기현 찍으면 장제원이 사무총장)이라는 말이 나돌자, 장 의원은 차기 당 지도부에서 어떠한 임명직 당직도 맡지 않겠다고 선언했습니다.

국민의힘은 이준석 전 대표 징계 사건, ‘당원 투표 100%’ 룰 개정으로 ‘유승민 배제’, 그리고 보수 정당에 약 20년간 몸담아온 나경원 전 의원 불출마 등을 거치며 설왕설래가 있었는데요. 

일련의 일들은 전당대회가 당 주류가 바라는 대로 흘러가도록 돕는 작용을 할까요. 아니면 되려 역풍을 맞아 친윤계 비토 여론만 키우게 될까요. 맞고 틀리고를 떠나 과거에도 ‘비주류의 반란’은 항상 있어왔습니다. <시사오늘>은 그 예로 2014년 한나라당 전당대회와 1985년 조연하 국회부의장 파동을 살펴봤습니다. 

2014년 한나라당 전당대회…’비박계’ 역습
朴, ‘서청원’ 지원했지만 非朴 ‘김무성’ 당선

김무성은 17대 대선에서 박근혜 캠프에서 활동한 친박계였습니다. 하지만 2009년 세종시 수정안 논의를 두고 박근혜와 갈등을 겪으며 멀어집니다. 2012년 총선을 앞두고 박근혜 당시 비대위원장이 이끄는 새누리당 공천에서 배제되는 일도 있었습니다.

반면 서청원은 2008년 한나라당이 친이계와 친박계로 나뉘어 싸울 때 공천학살을 당하자, 친박연대를 창당해 대표를 맡는 등 ‘친박’ 외길을 걸었습니다.  

이런 배경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 집권 2년 차인 2014년 한나라당 전당대회가 치러졌습니다. 김무성은 ‘비박계 대표주자’로, 서청원은 ‘친박계 맏형’으로 불리며 두 사람의 2파전 양상을 띠었습니다. 

두 사람은 전당대회 기간 내내 맞붙었습니다. 서청원은 ‘의리의 서청원’을 내세우며 자신이 ‘친박’의 길만을 걸어왔다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김무성은 ‘과거 대 미래’ 프레임으로 서청원은 ‘과거 세력’이고 자신은 당의 미래를 위한 적임자임을 주장했습니다. 

서청원은 김무성을 겨냥해 “신뢰가 없으면 소통이 어렵기 때문에 신뢰할 수 있는 당대표가 돼야 한다”, “대표 자리를 대권으로 가는 디딤돌로 이용하려는 후보가 있다면 당을 분열시키고 청와대와의 갈등을 불러일으킬 것이다. 그러면서 김무성 후보에게 대권 욕심이 없다고 분명하게 선언해달라”고 말하는 등 ‘대권 포기’를 요구했습니다. 

당시 박근혜 전 대통령과 주류였던 친박계는 서청원을 당대표로 지원했지만, 결과적으로 김무성 5만2706표(29.6%)를 얻어 당선됩니다. 2위인 서청원(3만8293표, 21.5%)과 8.1% 차이가 났습니다. 당 주류인 ‘친박계’가 비주류인 ‘비박계’에게 당권을 내준 것입니다. 

비박계였던 김태호·이인제 당시 의원도 각각 2만5330표(14.2%), 2만782표(11.6%)를 얻어 최고위원이 됩니다. ‘비주류의 반란’이라고 볼 수 있는 결과였습니다. 

1985년 10월 ‘조연하 국회부의장 파동’
신민당 ’이용희’ 밀었으나…비주류 표심 달랐다

‘조연하 국회부의장 파동’은 동교동계와 당 지도부가 국회부의장으로 이용희를 내정한 것에 반기를 들고 조연하가 독자 출마해 당선된 사건을 말합니다. 

1985년 많은 이들의 예상을 깨고 신민당 바람이 불었습니다. 창당 25일 만에 치른 선거에서 김영삼과 김대중이 힘을 합한 신민당이 제1야당으로 올라섰습니다. 국회부의장 파동의 주인공인 전남 순천 출신의 조연하는 이때 신한민주당 소속으로 서울 구로에서 당선됐습니다. 

김녹영은 1985년 5월 12대 국회의 부의장이 됐으나,  2개월만에 지병으로 숨을 거둡니다. 공석이 된 국회 부의장 자리로 조연하 내정설이 유력했습니다. 하지만 김대중의 동교동계가 이용희를 내세우기로 결정합니다. 조연하는 반발하고 독자 출마합니다.

1985년 10월 28일 본 회의에서 실시된 부의장 선거 결과 1차 투표에서  이용희 92표, 조연하 68표로 이용희가 앞섰으나, 재적 과반수인 138표 이상 득표자가 없어 2차 투표를 진행했는데요. 조연하가 2차 투표에서 재적과반수보다 1표 많은 139표를 얻어 이용희(90표)를 누르고 당선됩니다. 

조연하가 신민당 내 비주류 표심과 여당인 민정계의 표심을 얻어온 것이죠. 김영삼과 김대중이라는 강한 구심점이 있었던 신민당이지만 당의 결정에 불만을 갖고 있던 비주류의 마음을 돌리지 못했습니다. 선거 결과는 신민당과 민정당의 갈등은 물론 신민당 내 내분도 키웠습니다. 당시 상황이 기사에 나와 있습니다. 

조 의원은 자신이 공천에 관여한 의원, 민한당 입당자 중 소외감을 느끼는 의원 등 신민당 의원 60명 정도를 중심으로 1차 투표 지지표를 확보한 후 민정당의 호남 출신 의원, 60세 이상 노장 의원, 국민당, 민한당 의원을 중심으로 2차 투표의 지지표를 엮었다고. 

이 측근은 결과적으로 신민당에서 최소 57표의 이탈표를 받아냈고 민정당에서 60표, 국민당에서 12~15표, 민한당에서 3표가 왔다고 분석했는데, 비주류의 한 중진은 “이민우 총재나 양김 씨가 조 의원의 솜씨를 너무 무시하고 당내 단속은 소홀히 한 채 민정당 지도부의 말만 믿은 게 화근이었다”고 분석.

- 1985년 10월 30일 자 <경향신문> ‘“집안 단속 소홀하고 민정당 지도부만 믿은 게 화근”’

이번 결과가 빚어진 데는 아무래도 야당이 스스로 정치적 허점을 보인 것이 주요 원인이라고 아니할 수 없다. 

첫째, 신민당은 당권적 색채가 보다 엷은 부의장 후보 인선마저 끝내 계보정치의 틀을 벗어나지 못함으로써 당내 비주류의 반발을 샀다고 볼 수 있다. 

두번째는 신민당이 당초부터 하자를 지적받을 소지가 있는 인물을 지명했다가 선출에 임박, 당내 정리도 안된 상태에서 다시 후보를 교체하는 등 특정 계보의 전횡적 인상을 짙게 풍김으로써 역시 당내외 반발을 산 것이다. 

- 1985년 10월 29일 자 <동아일보> ‘파란 정국 (1) 여야 동시 분열의 불길한 신호’

제왕적 총재 시스템이라고 불리던 때에도 반란은 있었습니다. 주류가 지원한다고 당선을 확실시할 수 없는 이유입니다. 3·8 전당대회를 30여일 앞둔 현재 친윤, 비윤, 반윤 등 주류와 비주류를 가르는 듯한 언어들은 끊이지 않고 나오고 있습니다. 

지금의 전당대회는 과거 조직 동원 등이 난무하던 체육관 선거와 달라졌습니다. 국민의힘 당원은 2030대 세대 유입 등을 거쳐 약 80만 명대로 늘어난 만큼, 표심 향방 예측도 더욱 불투명해진 상태입니다. 이번 전당대회는 주류와 비주류 중 누구의 바람대로 이뤄질까요.

여야간 대립이 날로 심화되는 상황입니다. 정치권에서 왜 저런 선택을 했을까 의문이 든 적 한 번쯤 있을겁니다. 이들의 선택은 과거 정치 경험으로부터 얻어진 학습효과 아닐까요. ‘김자영의 정치여행’은 현 정치 상황을 75년 간의 대한민국 현대 정치사를 비춰 해석해봤습니다. <시사오늘>은 7번째 주제로 ‘비주류의 반란’을 살펴봤습니다. 다음주 금요일 찾아뵙겠습니다. <편집자주>

담당업무 : 정치부 기자입니다.
좌우명 : 생각대신 행동으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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