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살리려다 초가삼간 다 태운다 [기자수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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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 살리려다 초가삼간 다 태운다 [기자수첩]
  • 박근홍 기자
  • 승인 2023.02.07 17: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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尹정부, 체질 개선 앞세워 대마불사 꾀해
중소 구성원들 무너지면 무슨 의미가 있나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 박근홍 기자]

윤석열 정부가 위기에 빠진 국내 건설산업에 활력을 불어넣기 위해 다양한 정책들을 지속적으로 내놓고 있다. 부동산 관련 규제 완화, 대출 문턱 낮추기로 주택 시장 경착륙 우려를 해소하려 들었고, 민간택지 분양가 상한제 적용 지역을 대거 해제함으로써 신축 아파트 분양가 상승·유지를 유도해 건설사 마진을 보장해 줬다. 또한 PF(프로젝트 파이낸싱) 대출 리스크로 유동성 확보에 애를 먹고 있는 업체들에겐 금융권, HUG주택도시보증공사 등을 통해 직간접적으로 공적자금을 지원했다. 혈세를 들여 미분양 주택을 매입하겠다는 계획을 제시하기도 했다. '부동산 공화국'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우리나라 내수 시장 내 부동산 비중이 높은 만큼, 건설사가 무너지면 은행·증권사가 흔들려 국가경제 전반에 큰 충격을 줄 가능성이 있다는 측면에서 건설산업에 대한 정책적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건설산업 구성원들이 작금의 위기를 기회로 삼을 수 있게끔 발판도 마련해 주고 있다. 지난해 하반기께 본격 시행된 '1사 1필지 제도'부터 최근 건설노동조합 불법행위에 대한 강도 높은 단속까지, 건설업계에 깊게 뿌리를 내린 관행과 악습들을 향해 철퇴를 내리고 있는 것이다. 단기적 지원책뿐만 아니라 구조적 체질 개선 작업까지 병행해 미래 건설산업 재도약의 청사진을 그려주고 있는 셈이다. 문제는 지금 윤석열 정부에서 그리고 있는 체질 개선 설계도면에 '편향적'이라고 느껴질 만한 부분들이 많다는 것이다. 

1사 1필지 제도는 중소·중견건설사들의 '벌떼 입찰'을 막기 위해 도입됐다. 다수의 페이퍼 컴퍼니를 동원해 택지 입찰에 나서 '편법적'으로 낙찰률을 높이는 행위를 불공정하다고 본 것이다. 하지만 이 같은 벌떼 입찰이 가능하도록 관련 규정을 만든 국토교통부, LH한국토지주택공사 등에 대한 책망은 없었고, 비판 여론은 '불법적 행위'를 저지르지 않은 중소·중견건설업체에게 쏠렸다. 결과적으로 중소·중견건설사들은 욕은 욕대로 먹고, 사업을 추진할 땅도 확보하기 어렵게 됐다. 대형 건설사에 비해 상대적으로 입찰 경쟁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 부분에 대한 고민 없이 세상에 나온 1사 1필지 제도로 인해 앞으로 수익성이 높은 택지는 대기업에게 돌아갈 공산이 크다. 중소·중견기업들은 일감 부족에 허덕일 판이다.

지난 6일 정부와 여당인 국민의힘간 당정협의를 거쳐 발표된 '화물운송산업 정상화 방안'도 대기업 편향적이라는 지적을 받고 있다. 해당 방안은 화물운송산업의 체질 개선이 주요 골자로, 최근 노동계가 확대·유지를 요구한 안전운임제를 아예 폐지하고 표준운임제를 도입하는 게 주된 내용이다. 안전운임제는 과로, 과속, 과적 등을 방지하고 교통안전을 확보하기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운임을 화물자동차 안전운임위원회에서 매년 결정하고 공표하는 제도로, 화물차 노동자 입장에선 일종의 최저임금제다. 표준운임제가 시행되면 기존 안전운임제 하에서 이뤄졌던 화주의 운수사에 대한 안전운임 지급 계약 의무가 사라지고, 운수사와 차주간 운임계약만 강제된다. 대기업인 화주, 중소기업인 운수사가 공동분담하던 안전운임이 이젠 중소기업인 운수사가 독박을 쓰는 표준운임으로 바뀌는 것이다.

고용노동부가 주도하고 있는 '중대재해처벌법'(중대재해처벌등에관한법률) 개선 작업 역시 친기업적으로 읽힐 여지가 상당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정부가 제시한 중대재해 감축 로드맵의 핵심은 규제·처벌 중심에서 경영계의 자율적 노력 중심으로 전환하자는 것이다. 아울러 작업중지권 완화 등 기업들이 줄기차게 요구해온 안전보건 관련 규제 완화 사항들이 담겼다. 로드맵이 제시한 방향성대로 중대재해법이 개편된다면 법 시행을 전후로 기업들이 추진한 안전보건 관련 투자들이 퇴보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경기 침체 가운데 수익성을 확보하고자 돈이 되지 않는 안전보건 관련 인적·물적자원의 감축을 도모할 수도 있다. 

결국 건설산업에 한정하자면, 대기업집단 소속 건설사들은 1사 1필지 제도를 통해 좋은 일감을 보다 수월하게 확보할 수 있게 됐고, 화물운송산업 정상화 방안으로 운송비를 아끼게 돼 원자재 가격 인상분을 상쇄 가능하게 됐으며, 중대재해처벌법 개편 시에는 안전관리비 등 비용 절감으로 운전자본을 관리함으로써 수익성을 방어할 수 있게 된다. 여기에 국토부가 추진 중인 건설노조 불법행위 단속이 본격화되면 인건비도 대폭 아끼게 될 전망이다. 반면, 중소·중견건설사들은 먹거리 확보에 애를 먹게 되고, 중소기업 운송사들의 비용 부담은 확대될 것이며, 본사와 현장 노동자들의 생계와 안전은 위태로운 형국에 놓일 공산이 크다.

IMF 외환위기 당시보다 최악의 경제 상황이라고 한다. 정부가 '대마불사'를 꾀하는 건 당연한 일이라고 본다. 대기업 의존도가 높은 우리나라 경제구조상 규모가 큰 업체가 무너지면 국민경제 전반에 치명적인 피해를 야기할 것이다. 여러 정책들을 발표하면서 내세운 체질 개선이라는 명분도 합리적이다. 작금의 위기를 체질 개선의 계기로 삼아야 글로벌 경기가 반등할 때 재도약을 노릴 수 있다. PF 대출 리스크로 인해 금융권에 큰 충격을 줄 가능성이 높고, 곳곳에 불법·편법적 관행과 악습이 만연한 건설산업은 더욱 그렇다.

다만, 적절한 균형점을 찾았으면 한다. 모든 구성원들이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다. 급격히 오른 물가로 직원들 월급 걱정, 식구들 끼니 걱정을 한다. 급격히 높아진 이자율로 회사 운영자금 빌릴 걱정, 내 집 주택담보대출 원리금 낼 걱정을 한다. 특히 중소·중견기업, 노동자 등 힘이 없는 중소 구성원들의 우려가 깊다. 대마불사 논리로 대기업 살리기에 집중하는 건 좋은데, 이 과정에서 중소 구성원들이 벼랑 밑으로 떨어지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산업 생태계가 엉망이 돼 체질 개선이 아니라 체질 개악이 될 수 있다. 사회적 갈등도 확산될 것이다. 대기업 살리려다 초가삼간 다 태우는 격이다. 정부는 현재 그리고 있는 청사진에서 편향적으로 여겨질 만한 부분을 고쳐 균형감을 제고할 필요가 있다. 선택지에는 대마불사만 있는 게 아니라 상생도 있다.

담당업무 : 건설·부동산을 중심으로 산업계 전반을 담당합니다
좌우명 : 隨緣無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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