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을 이기는 겨울은 없다 [일상스케치(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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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을 이기는 겨울은 없다 [일상스케치(71)]
  • 정명화 자유기고가
  • 승인 2023.02.12 12: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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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의 끝자락 봄소식 전하는 야생화들
지친 영혼에 생기와 희망의 등불 비추다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 정명화 자유기고가)

올겨울은 유독 깊고 차다. 바람은 여전히 매섭고 공기는 서늘하지만 절기는 어김없이 찾아온다. 겨울이 깊을수록 봄도 머지않았다.

입춘이 지나니 그토록 기세등등 서슬 시퍼렀던 동장군이 떠날 채비를 서두른다. 도통 물러날 기세를 보이지 않고 버티더니 짐을 꾸려 나가는 뒷자락이 보인다.

이솝 우화의 겨울 나그네. 그의 외투를 벗긴 건 차가운 바람이 아니라 따스한 햇볕이었듯, 빛을 당할 어둠이 없듯, 초라한 모양새로 겨울은 꽁무니를 빼고 달아나는 것이다. 참 반갑고 다행인 일인고. 정령 봄을 이기는 겨울은 없으니….

희망의 상징 설강화(雪降花)

설강화가 산등성이 눈 속에 피어 있다. 설강화의 꽃말은 '희망'으로, 추운 겨울을 보란 듯 이겨내고 승리의 콧노래를 부르고 있다. ⓒ연합뉴스
설강화가 산등성이 눈 속에 피어 있다. 설강화의 꽃말은 '희망'으로, 추운 겨울을 보란 듯 이겨내고 승리의 콧노래를 부르고 있다. ⓒ연합뉴스

이제 곧 훈풍이 불려나 보다. 얼었던 땅을 헤집고 봄꽃들이 조용히 존재감을 드러낸다. 켜켜이 쌓인 겨울 사이로 설강화가 수줍게 피어올라 봄이 가까왔음을 알린다.

메마르고 굳어있던 언 대지를 뚫고 가녀린 생명이 소담스럽게 꽃망울을 터뜨리니, 절로 감탄과 자연에의 경애심(敬愛心)이 느껴진다.

설강화는 하늘에서 내리는 눈처럼 소복이 피어난다 해서 이름 붙혀진 꽃으로 '희망'이라는 꽃말을 지니고 있다.

복 많이 받고 장수하라는 복수초

봄의 전령사 복수초가 눈 속에 노란 꽃망울을 활짝 터트렸다. 복수초는 눈 속에서 피는 꽃이라 하여 '설연화', '얼음새꽃' 이라고도 부른다. ⓒ연합뉴스
봄의 전령사 복수초가 눈 속에 노란 꽃망울을 활짝 터트렸다. 복수초는 눈 속에서 피는 꽃이라 하여 '설연화', '얼음새꽃' 이라고도 부른다. ⓒ연합뉴스

추위를 견디고 나온 설강화에 이어 노란 꽃망울 터뜨린 복수초. ‘복(福) 많이 받고 장수(壽) 하라’는 뜻이 담겨있다. 그래서 우리 민족이 특히 반기며 아끼는 봄꽃이다.

게다가 우리나라는 물론 일본과 중국에서도 그렇게 부른다. 특히 일본에서는 새해가 되면 복수초를 선물하는 풍습이 남아 있다.

미나리아재비과에 속하며, 가지복수초, 가지복소초, 눈색이꽃, 복풀이라고도 하고 또 지방에 따라 얼음새꽃, 원단화라고도 한다. 눈 속에 피는 연꽃 같다고 해서 ‘설연’이라는 이름도 있다. 꽃말은 ‘영원한 행복’이다.

연분홍 진달래꽃이 수줍게 길손을 맞이한다. ⓒ연합뉴스
연분홍 진달래꽃이 수줍게 길손을 맞이한다. ⓒ연합뉴스

산너머 남촌에는 누가 살길래

이렇게 앙징맞고 어여쁜 화초들을 보니 겨우내 닫힌 마음이 열리며 생기가 돋는다. '산 너머 남촌에는 누가 살길래 해마다 봄바람이 남으로 오나...' 하며 절로 노래를 흥얼거리게 된다.

산너머 남촌에는

김동환 시

산 너머 남촌에는 누가 살길래

해마다 봄바람이 남으로 오네

꽃 피는 사월이면 진달래 향기

밀 익는 오월이면 보리 내음새

어느 것 한 가진들 실어 안 오리

남촌서 남풍 불 제 나는 좋데나

산 너머 남촌에는 누가 살길래

저 하늘 저 빛깔이 저리 고울까

금잔디 넓은 벌엔 호랑나비 떼

버들밭 실개천엔 종달새 노래

어느 것 한 가진들 들려 안 오리

남촌서 남풍 불 제 나는 좋데나

산 너머 남촌에는 배나무 있고

배나무 꽃 아래엔 누가 섰다기

그리운 생각에 영​(嶺)에 오르니

구름에 가리어 아니 보이네

끊였다 이어 오는 가느단 노래는

바람을 타고서 고이 들리네

이 시는 한국 최초의 서사시 ‘국경의 밤’으로 유명한 납북시인 파인(巴人) 김동환 선생의 작품이다.

남촌은 어떤 지명(地名)이라기보다는 시인이 그리워하는 이상향이다. 마음속 깊숙이 ‘남촌’이라는 이상향을 행복의 터전으로 설정해 놓고, 그 미지의 세계에서 기대하는 모든 희망을 상징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즉 이상 세계에 대한 동경과 그리움이 메인 테마다. 그리고 희망에의 강한 의지를 담아 서정적이고 낭만적으로 표현했다.

그의 시처럼 남도 끝자락에선 곧 봄 향기를 풍기며 산수유와 매화 등 온갖 봄꽃 세상이 될 것이다. 봄처녀 가슴 설레게 꽃물결로 산야를 뒤덮으며 천하를 호령하는 모습이 눈에 선하다.

산수유나무에 걸터앉은 딱새.  ⓒ연합뉴스
산수유나무에 걸터앉은 딱새. ⓒ연합뉴스

우리네 영혼에도 봄날이

겨울은 우리를 가두어 놓는다. 인생도 계절과 같아서 겨울이 지나야 봄이 온다. 이제 메마른 겨울 끝자락에서 곧 만나게 될 봄이 오면 앙상한 가지에도 새싹이 돋아나듯 영혼의 봄날, 희망찬 내일이 도래하지 않을까.

시인 이상화의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처럼 거창한 시국 담론을 읊지 않더라도, 겨울에 빼앗긴 삭막한 우리들 마음에 봄이 곧 달려들게 되길 바라게 된다.  희망이란 행복한 소식을 안고 말이다. 그러면 무표정한 얼굴에도 봄날처럼 해사한 미소가 내려앉으리라. 새처럼 일상을 여유롭게 관조하면서.

봄은 이처럼 새생명의 부활이니 우리 삶에 달콤한 봄기운이 스며들어 환호를 부르게 되면 좋겠다. 무엇보다 반목하고 갈등하는 작금의 세상, 두텁게 드리운 갈등과 불신을 거둬내기 위해 따스한 배려와 화해의 힘이 온천하에 작동하길. 수채화처럼 맑고 고운 봄이 얼어붙은 이 땅을 녹이는 것처럼, 미움을 이기는 것은 용서다. 봄을 이기는 겨울은 없다.

정명화는…

1958년 경남 하동에서 출생해 경남 진주여자중학교, 서울 정신여자고등학교를 졸업했다. 연세대 문과대 문헌정보학과 학사, 고려대 대학원 심리학 임상심리전공 석사를 취득했다. 이후 자유기고가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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