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동력 잃게 하는 대통령의 말 [기자수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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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동력 잃게 하는 대통령의 말 [기자수첩]
  • 박근홍 기자
  • 승인 2023.02.22 11:5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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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설현장 폭력행위, 굳이 '건폭'이라 지칭할 필요 있었나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 박근홍 기자]

윤석열 대통령의 '언변'이 또다시 도마 위에 올랐다. 윤 대통령은 지난 21일 용산 대통령실에서 열린 국무회의 자리에서 "아직도 건설현장에서는 강성 기득권 노조가 금품 요구, 채용 강요, 공사 방해와 같은 불법행위를 공공연하게 자행하고 있다. 건설현장의 갈취, 폭력 등 조직적 불법행위에 대해 검찰, 경찰, 국토교통부, 고용노동부가 협력해 강력하게 단속하라"며 "임기 내 건설현장의 갈취·폭력 행위는 반드시 뿌리를 뽑겠다"고 말했다.

계층과 이념 문제를 잠시 내려놓고 윤 대통령의 발언을 평가하자면 지극히 상식적이다. 조합원 채용 요구, 월례비(설사 임금 성격이라는 판례가 존재하더라도) 강요, 전국 단위 노조 위원장들의 조합비 횡령, 일부 조합원들의 폭력 행위 등은 분명 존재해 왔고, 반드시 개선해야 할 불법적 관행이다. 행정부 수반으로서 응당 할 말을 했다. 계층과 이념 문제를 감안하고 평가해도 정부여당 입장에선 지극히 합리적인 발언이다. 국민의힘은 전당대회 일정에 돌입하며 본격 차기 총선 준비 태세에 들어간 상태고, 이에 앞서 윤 대통령은 올해 신년사에서 노동개혁을 최우선 과제로 삼았다. 반대 진영으로 평가되는 노조 때리기로 지지층 결집, 정부여당 지지율 유지·확대, 이를 통한 국정동력 확보, 그리고 총선 승리와 강한 개혁 드라이브, '보수여당의 선명성'이 느껴지는 밑그림이다.

문제는 대통령의 입이다. 전날 국무회의 직후 김은혜 홍보수석은 "'건폭'이 완전히 근절될 때까지 엄정하게 단속해 건설현장에서의 법치를 확고히 세우라고 윤 대통령이 당부했다"고 전했다. 

지극히 비(非)상식적이다. 계층과 이념 문제를 잠시 내려놓고 건폭이라는 표현을 바라보면 자연스럽게 '조폭'(조직폭력배)이라는 말이 떠오른다. 대통령실에선 '건설현장 폭력행위'를 축약한 것으로, 문제의 심각성을 강조하기 위해 만든 용어라고 설명하지만 국민들 대부분은 '건설폭력배'라 지칭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윤 대통령은 노조에 '폭력조직'이라는 프레임을 씌운 셈이 됐고, 선량한 대다수 조합원들을 순식간에 '폭력배'로 몰아붙인 셈이 됐다.

지극히 비합리적이기도 하다. 정부여당이 그리고 있는 밑그림이 엉망이 될 가능성이 생겼기 때문이다. 더불어민주당과 정의당, 노동계, 그리고 그들을 지지하는 시민단체까지 건폭으로 대동단결하게 됐다. 국민들 사이에선 '갈라치기'를 꾀하고자 건폭이라는 폭력적인 용어를 사용한 게 아니냐는 의혹까지 제기되고 있다. 노조 때리기로 누리려던 국정동력 확보 효과가 반감될 수밖에 없어 보이는 형국이다. 굳이 건폭이라 지칭할 필요가 있었는지 참으로 안타깝다. 그보다는 '노조 불법행위를 강력히 단속하되, 선량한 조합원들이 피해를 보지 않도록 만전을 기하라'는 식으로 마무리했다면 좋았을 것을.

대통령으로 당선된 자가 자신의 정치적 철학을 펼쳐 더 나은 나라, 지속가능한 사회 발전을 도모하는 건 당연한 일이고, 대통령으로서의 의무다. 하지만 자신의 철학만 고집해선 안 된다. 대통령은 국민의 대표기관으로서 다양한 주장과 의견을 경청·수렴함으로서 정책 실현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불거질 갈등과 분열을 최소화해야 한다. 화합과 통합이야말로 대통령의 최우선 의무이며, 대통령이 갖고 있는 모든 권한은 화합과 통합이라는 목표 아래 집행돼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나라는 혼란에 빠지고, 정권은 국정운영 동력을 상실해 레임덕 기로에 서게 된다.

현재 정부여당은 자신들의 정치적 철학을 정책으로 실현하는 과정에서 번번이 대통령의 입으로 사회적 갈등과 분열을 극대화시키고 있다. 외치에선 '바이든·날리면', '아랍에미리트(UAE)의 적은 이란'으로, 내치에선 이번 '건폭'으로 각종 논란을 낳고 있다. 정부여당이 그리고 있는 밑그림에 색칠까지 하고 싶다면 반드시 대통령의 언변을 관리해야 할 것이다. 곧 본격 개막할 총선 정국에서 '명예 당대표'가 실언이라도 한다면 정말 큰일이지 않은가.

담당업무 : 건설·부동산을 중심으로 산업계 전반을 담당합니다
좌우명 : 隨緣無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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