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 과점 체제, 왜 시작이 됐을까요? [고수현의 금융속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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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 과점 체제, 왜 시작이 됐을까요? [고수현의 금융속풀이]
  • 고수현 기자
  • 승인 2023.02.23 16: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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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F 사태로 부실은행 대거 정리…정부 주도 ‘구조조정’
외국계 은행 불모지 인식…당국 규제에 한국 철수 선택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고수현 기자]

윤석열 대통령이 은행 과점 체제의 폐해를 지적하며 개선을 주문하고 나선 가운데 금융권 내부에서는 볼멘 소리가 나온다. IMF 후 정부 주도로 부실은행 통폐합, 구조조정 등을 통해 은행 수가 급격하게 줄어들고 이에 따라 은행 대형화가 이뤄졌기 때문이다. ⓒ시사오늘 이근

윤석열 대통령이 4대 시중은행 과점(寡占) 체제의 폐해를 지적하며 금융당국에 경쟁 시스템 마련을 주문한 것을 두고 은행권에서는 볼멘 소리가 나오고 있습니다. 과거 정부가 지금의 과점 체제를 만들었으면서 그 책임을 은행에 떠넘기고 있다는 것이죠. 왜 이 같은 불만이 나오고 있는 것인지, 지금부터 살펴보겠습니다.

현재 우리나라의 은행은 크게 △시중은행 △특수은행 △지방은행 △인터넷전문은행 등으로 나뉘죠, 시중은행은 전국에 영업망을 갖춘 상업은행으로 흔히 우리가 말하는 4대 시중은행(KB국민은행, 신한은행, 하나은행, 우리은행), 범위를 넓히면 NH농협은행을 포함한 5대 시중은행이 여기에 해당합니다. 특수은행은 KDB산업은행과 IBK기업은행 등 국책은행과 일반은행 성격이 강한 NH농협은행, Sh수협은행 등을 가리킵니다. 지방은행은 지역에 거점을 둔 은행으로, 부산은행, 경남은행, 대구은행, 전북은행, 광주은행 등이 있죠. 은행 중 가장 역사가 짧은 인터넷은행은 케이뱅크, 카카오뱅크, 토스뱅크가 있습니다.

이처럼 지금도 수많은 은행이 존재하고 있지만, 여수신 시장에서 5대 시중은행이 차지하는 비중을 고려하면 윤 대통령이 말한 과점 체제는 딱히 틀린 표현도 아닙니다.

시중은행과 이외 은행 비중은 사실 비교 자체가 되지 않습니다. 시중은행의 총자산과 여수신 규모는 지방은행과 인터넷전문은행을 압도하죠. 수익 면에서도 비교대상이 될 수 없습니다.

현재로선 지방은행과 인터넷은행 간 경쟁구도가 형성됐을 뿐, 4대 시중은행은 자신들만의 리그를 구축하고 있죠. 리딩뱅크 자리를 걸고 경쟁하는 KB국민은행과 신한은행, 시중은행 3위 자리를 유지하는 하나은행과 이 자리를 노리는 우리은행처럼 말입니다. 이들 4대 시중은행이 대출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70~80% 수준으로 알려져있죠.

자, 그럼 4대 시중은행은 어떻게 지금의 과점 체제를 구축하게 됐는 지 살펴볼 차례입니다.

가장 큰 이유는 외환위기, 즉 IMF 사태입니다. 한국 경제 위기의 정점을 찍은 IMF 사태는 금융사라고 해도 피할 수 없었습니다. 부실은행이 늘어나자 정부는 대규모 금융사 도산 사태를 막기 위해 구조조정과 통폐합을 단행했죠. 1997년 말 26곳이었던 은행이 IMF 후 절반 이상 사라졌으니 그 여파가 어마어마했죠. 수많은 부실은행이 정리되고 살아남은 곳 중 몸집이 큰 일부 은행은 지금의 시중은행으로 자리잡았습니다.

정리하자면 외환위기로 촉발된 경제위기에 대응해 은행의 대형화는 피할 수 없는 선택이었고, DJ 정부가 이를 실행하면서 3~4곳의 대형은행 체제로 재편된 것이죠.

과점의 또 다른 이유로는 금융당국의 ‘관치’와 ‘규제’가 꼽힙니다. 금융당국의 이 같은 행태가 외국계 은행의 한국 진출을 막아 경쟁을 저해하고 있다는 것이죠. 실제로 우리나라에서 온전한 형태로 영업을 하는 외국계 은행은 SC제일은행이 유일하다고 할 수 있죠.

앞서 미국계 은행인 씨티은행이 소비자금융 부문에서 손을 떼기기 했기 때문이죠. 기업금융만 남기고 소비자금융(가계 대출 등)은 한국에서의 철수를 선택한 것입니다. 수익성 악화가 주된 요인으로 꼽히지만, 금융권에서는 규제 중심의 금융당국 정책 스탠스와 관치(官治)도 철수 결정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보고 있죠.

심지어 서울에 지점 하나만을 뒀던 외국계 은행마저도 한국에서 철수를 하면서 외국계 은행 불모지라는 인식이 자리잡게 됐죠.

한국에서 철수하는 외국계 은행은 늘어나는데, 새로 진출하는 은행은 없고, 결과적으로 국내 시중은행 간 경쟁만 이뤄지고 있으니 이 같은 지적이 나올 수 밖에 없는 셈이죠.

이처럼 현재의 과점 체제는 과거 정부의 정책 결과물입니다. IMF라는 이름의 험난한 파도를 극복하기 위한 은행 대형화가 지금은 과점이라는 이유로 비난을 받고 있죠. 이걸 지금의 정부가 뜯어고치겠다고 말하고 있는 셈이죠. 

‘그땐 맞고 지금은 틀리다’라는 말이 떠오르죠? 은행권이 과점 폐해 지적을 불편해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마치 시중은행이 여수신 시장을 과점 체제로 만들어 막대한 이자이익을 누리고 있다는 시선이 불편하다는 것입니다.

과점 체제의 폐해가 있으면 응당 개선할 필요가 있지만 기존 시중은행을 ‘악당’ 취급은 하지 말아달라는 하소연이기도 하죠.

담당업무 : 경제부 기자입니다. (은행·카드 담당)
좌우명 : 기자가 똑똑해지면 사회는 더욱 풍요로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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