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딱한 대한항공 경영진 [金亨錫 시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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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딱한 대한항공 경영진 [金亨錫 시론]
  • 김형석 논설위원
  • 승인 2023.02.26 16: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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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U의 기업결합 심사 앞둔 시점에서
마일리지 변경 방안 내놔 논란 자초”
“소비자들의 국적기 외면 심화될까 우려”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 김형석 논설위원)

대한항공이 애초 4월 1일부터 시행하려 했던 마일리지 제도 변경을 전면 재검토하기로 했다. 사진은 지난 22일 인천국제공항 제2여객터미널에 대한항공 여객기가 세워진 모습. ⓒ 연합뉴스
대한항공이 애초 4월 1일부터 시행하려 했던 마일리지 제도 변경을 전면 재검토하기로 했다. 사진은 지난 22일 인천국제공항 제2여객터미널에 대한항공 여객기가 세워진 모습. ⓒ 연합뉴스

대한항공이 마일리지 개편안을 내놓았다가 비판이 잇따르자 시행을 미루겠다고 발표했다. 유럽연합과 경쟁국들의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기업결합에 대한 2단계 심사를 앞둔 시점이다. 유럽연합은 앞으로 125일간에 걸쳐 결합에 따른 다양한 사안에 대해 검토, 조율해보고 기업결합이 합당한 지 여부를 결론 낸다. 독과점 해소 방안 등이 주요 심사 대상이 될 텐데 이번 마일리지 소동에 따른 정부와 국민들의 부정적 여론은 작든 크든 당연히 좋지 않은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다.

마일리지 개편이 잘못된 이유

내용과 발표 시점이 모두 잘 못 됐을 뿐만 아니라 신중하지도 못했다.

2019년 개편안을 발표했으나 시행을 미루다가 국제선 승객이 늘어나기 시작하자 4월에 시행하겠다고 발표했다. 내용은 단거리 항공권은 마일리지 공제율이 낮아지고 장거리 항공권은 공제율이 크게 높아지는 것으로 요약된다. 단거리 여행할 때는 마일리지를 쓰는 대신 저가항공사를 많이 이용하고 장거리 항공권에 주로 마일리지를 사용하는 승객들로서는 불리할 수밖에 없는 개편안이다.

대한항공과 일부 주변 업체 등을 제외하고는 모든 소비자의 비난이 봇물이 터지듯 할 수밖에 없었다. 심지어 주무 당국인 국토교통부 원희룡 장관까지 나서서 “코로나 때 고용 유지 지원금과 국책 금융으로 생존하고 감사의 프로모션은 못 할망정 국민 불만을 사는 방안을 내놨다”라며 ‘빛 좋은 개살구’ 등의 표현으로 강하게 질책했다. 원 장관의 말이 아니더라도, 대한항공만큼 정부와 국민의 덕을 크게 보고 많은 희생 위에 큰 기업도 드문 게 사실이다.

현재의 대한항공 마일리지 제도에 대해서도 고객들의 불만이 지속돼왔던 상태다. 대한항공은 아메리칸항공 등이 80년대 초반부터 소비자 적립 프로그램을 시작하자 뒤따라 지난 1984년 상용 고객 우대 제도(FTBC)라는 마일리지 제도를 도입했고 이어 1995년에 현재의 ‘스카이패스’로 이름을 바꿨다.

항공사들이 충성 고객 확보를 위해 도입한 제도지만 국적기로서의 위치가 확고했던 대한항공으로서는 파격적인 마일리지 제도 제공에 소홀할 수밖에, 소비자들로서는 불만일 수밖에 없었다. 마일리지 쌓기가 어렵고 제휴 적립처도 적었을 뿐만 아니라 신용카드 사용을 통한 마일리지 적립도 소비자 입장에서는 미흡했다.

국토교통부의 지적처럼 마일리지로 탑승하는 것조차 매우 어려운 현실에서 개편안을 항공사 편의에 초점을 두었으니 소비자들로서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게 당연하다. 더욱이 그걸 EU의 기업결합 심사를 앞둔 시점에서 내놨으니 화를 자초한 셈이었다.

EU의 기업결합 심사

대한항공의 아시아나 인수 건은 국내 문제의 경우 다 해결됐다. 그러나 항공업의 특성상 합병을 위해서는 국제선에서 이해관계가 얽힌 주요 14개국 승인을 얻어야 한다. 지금까지 10개국 승인은 받았고 현재 영국, 미국, EU, 일본의 동의가 미결인 상태다.

EU 집행위의 2단계 심사를 위해 대한항공은 독과점 해소 방안을 포함한 수정안을 다시 제출해야 한다. 현재 운항 중인 슬롯(공항 이착륙 횟수) 일부를 반납해야 하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 현재 EU가 2단계 심사 기한을 7월 5일로 잡고 있어서 다른 3개국이 승인한다고 해도 대한항공의 올 상반기 합병 마무리 계획은 지연될 가능성이 높다.

이번에 불거진 마일리지 소동은 당연히 부정적 영향을 미칠 테다.

대한항공은 증자를 통해 합병을 위한 재원 확보와 재무구조 개선을 추진해왔고, 작년에 대한항공이 진에어 지분을 인수함으로써 지배 구조를 개선했다. 대한항공의 주요 주주는 한진 칼, 국민연금공단, 산업은행 및 대한항공 우리사주 등이다. 한진 칼의 주요 주주는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 등과 델타항공, 호반건설, 산업은행 등이다.

조 회장 일가가 안정적 경영을 위한 지분을 확보했다고는 하나 경영진이 이번 같은 에러를 계속 낼 경우 우호 지분이 언제 반대 세력으로 돌아설지도 모른다. 기업결합이 난항을 겪을 경우 저가항공사(LCC)를 비롯한 제3세력의 국제선 시장 진출이 장거리 노선에까지 본격화할 수도 있다. 

실제로 몇 년 전에 '땅콩 회항' 소동으로 여론의 도마 위에 올랐을 때 각종 공제회 등이 대한항공이나 아시아나항공처럼  FSC(Full Service Carrier)로 등록할 준비에 들어갔던 것으로 알려지기도 했다. 

다시 세계적인 경기 활황 등 여건이 급속히 변화하면 재벌그룹 등의 제3민항 진출이 가시화될 가능성도 있다. 가능성이 높지 않다지만 만일 그럴 경우가 생긴다면 대한항공은 그야말로 소탐대실(小貪大失)하는 결과를 맞게 된다. 그러니 대한항공 경영진이 참 딱하다는 얘기다.   

저가항공사 약진과 대형항공사 위상

지난해에 국내 8개 저가항공사(LCC)들의 국제선 여객 점유율이 대형 항공사(대한항공·아시아나)를 제쳤다. 단거리 해외여행 급증과 함께 성장한 LCC는 2010년대에 두 대형 항공사의 국내선 여객 점유율을 넘어선 데 이어 국제선에서도 앞서게 됐다.

주로 일본을 비롯한 단거리 승객들을 많이 유치한 데 따른 것이지만 언제 또 장거리 승객들도 저가항공사들이 발 빠르게 모셔갈지 모른다.

최근 제주행 항공 수요가 늘어나고 국제선 항공 수요가 늘어나자 항공사들이 국내선에 운항시키던 항공기들을 국제선으로 빼내 갔다. 항공기 공급이 제주항공 수요에 못 맞추고 항공권값이 급등하자 일부 저가항공사들이 제주 노선의 운항 편수를 늘려 승객을 소화하고 있다. 대형 항공사들로서는 하기 힘든 임시 대응능력이다. 그런 능력은 급변하는 세계 항공시장에서도 큰 강점으로 작용할 수 있다.

대한항공으로서는 일련의 상황을 종합, 파격적인 대고객 서비스 향상 대책을 내놔야 할 때다. 국적기인 대한항공에 대한 국민들의 믿음과 의존도가 아직은 남아있다. 그 점을 고려, 거대 재벌의 제3민항의 출현을 막기 위해서라도 파격적인 서비스 향상대책을 세우는 게 긴요한 시점이다. 거듭 지적하지만, 이런 상황에서 마일리지 개편으로 작은 이익이나 취하려 하는 건 제대로 된 경영전략이 못 된다.

창업세대의 겸손, 서비스 정신

3세대까지 내려온 한진그룹의 경영진이 창업 세대의 정신을 본받았으면 한다.

고 조중훈 회장은 말단 공무원에게까지 90도 각도로 허리 굽혀 인사하며 소소한 민원을 하고 다녔던 것으로 유명했다. 서부역에 있었던 구 교통부(국토교통부 전신) 청사에 자주 모습을 드러냈던 그의 겸손함과 열심이 독점 폐해 논란에도 꾸준히 대한항공을 키울 수 있던 원동력의 하나로 꼽힌다.

조중건 부회장은 ‘왕 뽀이’를 자처하며 기내에서 직접 승객에 대한 서비스에 나서기도 했다. 그는 PATA(태평양지역관광협회) 총회에 참석, 항공사 대리점들과 관광업 종사자들에게 열심히 세일즈 활동을 벌이기도 했다. 1979년 서울에서 열렸던 PATA 총회에서 조 부회장이 외국 참석자들을 ‘들었다 놨다’ 하며 대한항공의 인상을 깊게 심어줬던 일화는 여태껏 관광업계 원로들 간에도 얘깃거리가 되고 있다. 

다른 재벌그룹 창업세대와 마찬가지로 한진그룹 창업세대 역시 공격 경영을 하는 가운데에서도 겸손함을 잃지 않고 대고객 서비스 정신으로 철저히 무장됐었다. 

세계 항공업계에서 대한항공 직원들에 대한 평가는 괜찮은 편인 것으로 전해진다. 직원들의 자질과 자세는 여전히 좋은 평점을 받는다는 것. 

경영진의 각성 여부가 관건이다. 

김형석(金亨錫)은…

연합뉴스 지방1부, 사회부, 경제부, 주간부, 산업부, 전국부, 뉴미디어실 기자를 지냈다. 생활경제부장, 산업부장, 논설위원, 전략사업본부장 등을 역임했다. 

정년퇴직 후 경력으로 △2007년 말 창간한 신설 언론사 아주일보(현 아주경제)편집총괄 전무 △광고대행사 KGT 회장 △물류회사 물류혁명 수석고문 △시설안전공단 사외이사 △한국방송광고진흥공사(코바코) 사외이사 △ 중앙언론사 전·현직 경제분야 논설위원 모임 ‘시장경제포럼’ 창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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