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체포 특권’, 민주화 이후 정치인 ‘방패막’ 돼 [김자영의 정치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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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체포 특권’, 민주화 이후 정치인 ‘방패막’ 돼 [김자영의 정치여행]
  • 김자영 기자
  • 승인 2023.03.03 19:1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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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노웅래 체포동의안 표결에 설왕설래…방탄 vs 정치검찰
헌법 제44조 ‘국회의원은 회기 중 국회 동의 없이 체포·구금 안돼’
故 유성환 “국시는 반공 아니라 통일이어야 한다” 발언으로 체포
군부서 입법부 보호한 불체포 특권…정치인 방패막이 악용돼, 취지 무색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 김자영 기자]

ⓒ 시사오늘 (그래픽 = 김유종 기자)
<시사오늘>은 국회의원 불체포 특권의 취지와 과거 故유성환 전 의원이 독재 정권 하에 ‘통일 국시’ 발언으로 구속된 사례에 대해 살펴봤습니다. ⓒ 시사오늘 (그래픽 = 김유종 기자)

지난달 27일, 국회 본회의 표결에 부쳐진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체포동의안이 부결됐습니다. 이로써 이 대표는 판사 앞에 서지 않게 됐습니다. 이른바 국회의원 ‘불체포 특권’에 따른 결과입니다.

이 대표 체포동의안 투표 결과 재석 297명 중 찬성 139명, 반대 138명, 기권 9명, 무효 11명으로 나타났습니다. 가결을 위해선 과반 이상의 찬성이 필요합니다. 

일반인들이라면 법원의 영장실질심사를 바로 받아야했겠지만, 국회의원의 경우엔 국회 동의를 거쳐야 합니다. 줄곧 논란이 되온 ‘불체포 특권’ 때문이죠.  지난해 12월 28일 뇌물수수·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국회 본회의에 상정된 노웅래 더불어민주당 의원 체포동의안도 이 때문에 부결됐었습니다. 

헌법 제44조에 따르면 국회의원은 회기 중 국회 동의 없이 체포 또는 구금되지 않는다고 명시돼 있습니다. 1948년 제헌 헌법에서부터 규정된 내용입니다. 

국회법 제26조에 따르면 체포동의 요청 절차는 판사가 체포동의 요구서를 정부에 제출하고, 정부가 이를 수리 후 국회에 동의를 요청하면 본회의 보고, 표결 순으로 진행됩니다. 

해당 조항의 본 의도는 행정·입법·사법의 삼권분립 원칙하에 의회의 권한을 존중하는 데 있었습니다. 하지만 어느 시점부턴 불체포 특권이 국민의 정치 불신을 일으키는 요인으로도 작용하고 있습니다. 비리·부정을 저지른 의원의 구속을 막는 방패로써 이 특권을 악용하는 사례가 생겨서죠.  

이번 표결의 대상이 된 이 대표도 지난 대선에서 불체포특권 폐지를 공약으로 내세웠으며, 지난해 9월 29일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선 “국회특권 내려놓기도 미루지 않겠다. 면책특권 뒤에 숨어 거짓을 선동할 수 없도록 하겠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불체포 특권 폐지는 민주화 이후부터 계속 이야기돼 왔습니다. 1998년 한나라당 소속이었던 이신행 의원이 기아 비자금 사건으로 구속됐을 때, 한나라당은 이를 막기 위해 임시 국회를 네 차례 소집합니다. 이때부터 ‘방탄 국회’라는 단어가 등장합니다. 1999년엔 한나라당이 불법 대선자금 모금 사건에 연루된 서상목 의원의 체포 동의안을 처리하지 않기 위해 임시국회를 5번 소집합니다. 2003년 비리 의혹에 휩싸였던 여야 의원 7명의 체포 동의안이 전원 부결되는 일도 있었습니다.  

‘불의한 권력 행사’를 막기 위해서가 아닌 같은 당 의원을 ’비리’로부터 보호하기 위해서 불체포 특권이 정략적으로 악용된 겁니다. 언론은 그때마다 국민들의 정치 환멸감을 가중했다는 진단을 내놨습니다. 

과거 박정희·전두환으로 이어지는 군부 정권에선 권력이 부당하게 행사되는 사례가 적지 않았기에, 불체포 특권이 필요한 측면이 있었습니다. 대표적인 사건으로 곧이어 살펴볼 故 유성환 전 의원의 ‘통일 국시’ 발언 사건이 있습니다.

故유성환 전 의원은 1986년 10월 14일 국회 대정부 질문에서 이같이 말합니다. 

“총리, 우리나라의 국시가 반공입니까? 반공을 국시로 해두고 올림픽 때 동구 공산권이 참가하겠습니까? 반공을 국시로 해두고 있는 것이 과연 국익에 합당하겠습니까? 나는 반공 정책은 오히려 더 발전시켜야 된다고 보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이 나라의 국시는 반공이 아니라 통일이어야 합니다. 적어도 분단국에 있어서의 통일 또는 민족이라는 용어는 이데올로기로까지 승화돼야 합니다.”

‘국시’는 사전상 ‘국민의 지지도가 높은 국가 이념이나 국가 정책의 기본 방침’을 뜻합니다. ‘이 나라 국시는 반공이 아니라 통일이어야 한다’는 발언이 논란을 일으켰습니다. 

1986년은 전두환이 12대 대통령으로 취임한지 6년차였으며, 민주화 세력을 이끌던 김영삼·김대중이 합해 만든 신민당이 제1야당을 차지한 12대 국회가 열렸던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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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6년 10월 17일 자 <경향신문> 기사. (사진 위) 최영철 당시 국회부의장이 1986년 10월 16일 밤 국회 본회의에서 유성환 의원 체포동의안이 가결됐음을 선포하는 모습. (사진 아래) 신민당 유성환 의원이 1986년 10월 17일 새벽 구속이 집행돼 연행되고 있는 모습. ⓒ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캡처본

검찰은 해당 발언을 담은 원고를 사전에 외부로 배포한 것은 면책특권을 받을 수 없다는 논리로 신민당 소속 유 전 의원을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속합니다. ‘국시를 통일로 해야한다’고 말했다는 이유만으로 검찰이 구속을 요청할 정도로 엄혹한 시기였던 것이죠. 

당시 국회 본회의에 재적의원 275명 중 민정당 소속 의원 146명과 무소속 의원 1명, 총 147명 의원이 참석한 가운데 ‘신민당 유성환 의원 체포동의안’이 가결됩니다. 국회는 경호권을 발동해 경찰력으로 신민당 등 야당 의원 접근을 차단하기도 했습니다. 

이번 사태는 정가는 물론 일반인들 간에까지 숱한 논쟁과 화제를 불러일으켰습니다. 보도된 유 의원의 문제 발언 내용과 관련, 신문사에도 ‘반공이 국시가 아니라고 한 말이 뭐가 나쁘냐’ 등의 전화가 많이 걸려 왔습니다. 

- 1986년 10월 17일 자 <조선일보> ‘어이없는 반공 파동…여도 야도 미숙했다’

유 전 의원은 9개월간 감옥살이를 합니다. 민주화 이후인 1992년이 돼서야 면책 특권 취지가 인정돼 공소 기각이 확정됩니다. 

국회 의안정보 시스템이 따르면 역대 국회에 제출된 체포동의안 64건 중 가결된 사례는 16건입니다. 이 중 1987년 개헌 이후에는 9건이 가결됐습니다.

독재 정권, 군부 정권으로부터 입법부를 보호하는 역할을 했던 불체포 특권의 취지가 정치인들의 방패막이로 사용되며 무색해지는 형국입니다. 故유성환 전 의원은 통일 국시 발언 이후 1987년 8월 국회 본회의장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잠시 살기 위해서 영원히 죽는 길을 결코 택하지 않을 것이며 잠시 죽더라도 영원히 사는 정치와 삶을 가질 것입니다. 그것은 한 정치인이 살아서 하는 정치는 물론 죽어서도 계속된다는 정치일 것입니다.”

특권만 이어받는 정치인이 아닌 민주화를 이룩한 선배들의 뜻을 이어받는 정치인이 많아져야 하지 않을까요.

여야 간 대립이 날로 심화하는 상황입니다. 정치권에서 왜 저런 선택을 했을까 의문이 든 적 한 번쯤 있을겁니다. 이들의 선택은 과거 정치 경험으로부터 얻어진 학습효과 아닐까요. ‘김자영의 뒷담화’는 현 정치 상황을 75년간의 대한민국 현대 정치사를 비춰 해석해봤습니다. <시사오늘>은 11번째 주제로 국회의원 불체포 특권에 대해 살펴봤습니다. <편집자주>

담당업무 : 정치부 기자입니다.
좌우명 : 생각대신 행동으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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