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공화국에서 부동산 제국으로 [기자수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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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 공화국에서 부동산 제국으로 [기자수첩]
  • 박근홍 기자
  • 승인 2023.03.06 21: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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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오늘·시사ON·시사온= 박근홍 기자]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군사독재세력은 경제 발전이라는 구호를 앞세워 대대적인 국토 개발에 나섰다. 전국 방방곡곡에 도로와 다리를 놓고, 한강을 매립해 아파트와 빌딩을 세웠다. 군부독재가 종식되고 민주정부가 수립된 이후에도 상황은 같았다. 경제위기 극복이라는 명분 하에 부동산 규제를 완화했고, 그린벨트를 해제해 주택을 지었다. 이 과정에서 정치인과 고위공직자, 기업인들은 그들만의 리그를 구성해 천문학적인 부를 축적했다. 투자자 또는 투기세력이라 불리는 사람들도 짭짤한 콩고물을 챙겼다. 그리고 언젠가부터 '부동산 공화국', '아파트 공화국'이라는 말이 널리 쓰이기 시작했다.

부동산 공화국은 근로소득보다 부동산 불로소득 규모가 더 크고, 그 불로소득이 나라경제 전반을 떠받치고 있음을 뜻하는 표현이다. 또한 이에 따른 경제적 불평등을 겨냥한 말이기도 하다. 위정자와 자본가들은 권력, 돈, 내부정보를 활용해 부동산을 사들이고, 이를 팔아 번 돈으로 또 부동산을 사들이면서 손쉽게 이익을 챙기는 반면, 일반 국민들은 평생 일해도 내 집 하나 온전히 마련하기 힘든 현실을, 노동 가치가 저하돼 지속가능한 사회 발전을 이루기 어려운 실정을 꼬집는 것이다. 누구나 부동산 공화국이 문제라는 걸 알고 있었지만, 어느 누구도 이를 혁파할 순 없었다. 수출은 제조, 내수는 부동산이라는 구조가 고착화됐기 때문이다. 국내 전체 가계자산 중 70~80%가 부동산이다. 잘못 건드렸다간 '공화국' 자체가 붕괴될 판인 셈이다.

그게 겁이 나서 그런지 요즘엔 아예 '부동산 제국'화를 시도하는 듯하다. 윤석열 정부와 금융당국은 6일 '회사채·단기금융시장 및 부동산 PF 리스크 점검회의'를 열고 다음달부터 'PF(프로젝트 파이낸싱) 대주단 협약'을 가동해 부동산 PF 리스크를 해소하기 위해 다양한 정책을 펼치기로 했다고 밝혔다. 주된 내용은 △정상 사업장 장기대출 전환과 브릿지론→본PF 전환 지원 △사업성 우려 사업장 금융 지원 등 정상화 계획 추진 △부실 사업장 매각·청산 후 새 사업주체 확보 유도 △정책금융공급 규모 확대 등이다. 사업성이 높은 사업장에 장기대출 상품을 제공해 차환 리스크를 없애주고, 사업성이 떨어지는 사업장에는 직간접적으로 자금을 조달해주거나 시행사·시공사를 교체할 수 있게 해 정상화로 가는 발판을 마련해주겠다는 것이다. 명분은 집값 연착륙을 통한 경제 충격 완화, 금융권으로의 PF 리스크 전이 사전 차단 등이다.

민심은 좋지 않다. 가뜩이나 물가가 올라 먹고살기 힘든 국민들이 많은데, 왜 혈세를 들여 건설사만 챙기느냐는 것이다. 표면적으론 그렇다. 사업성이 떨어지는 현장에 공적자금을 지원해주는 건 분명 자본주의 시장경제체제에 맞지 않다. 더욱이 시행사, 시공사 등 개발주체들이 분양가를 낮추는 등 미분양 우려를 해소하기 위한 자구 노력을 이행하지도 않는 상황이다. 공급자에게 유리하게 기울어진 운동장을 더 기울게 하는 정부의 불공정한 시장간섭이라고 해석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윤석열 정부의 '둔촌주공 구하기'에 이은 '건설사 구하기' 행보라는 비난 여론이 형성될 수밖에 없어 보인다.

하지만 정부의 속내는 단순 건설사 구하기도, 집값 연착륙이나 PF 리스크 전이 차단도 아닌 것처럼 여겨진다. 현재 정부는 물가 안정을 위해 유동성 관리에 집중하고 있다. 주택금융공사, 주택도시보증공사 등을 통해 정부가 자금을 지원하고, 보증을 서주는 데에는 정책적으로 명확한 한계가 있다. 민간의 도움이 필요하다. 때문에 PF 대주단 협약을 준비한 것이다. 이전과 달리 은행, 증권사, 보험사, 저축은행사 등 외에 MG새마을금고, NH농협, 신협 등 상호금융까지 참여자를 확대한 것도 민간 참여를 극대화하기 위한 포석이다. 금융사들은 내심 쾌재를 부르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정부가 자신들의 편을 들어준 셈이라는 이유에서다.

최근 금융권과 건설업계간에는 샅바 싸움이 치열했다. 알짜 PF만 골라 고금리 장사를 하려는 금융사와 높은 이자율로는 자금을 차입하지 않겠다는 건설사의 힘겨루기였다. 얼마 전 사업성이 떨어진다며 대우건설이 울산 사업장을 포기한 것도, 최근 반도건설과 HL디앤아이한라(구 한라건설)가 각각 KB증권, 한국투자증권이 제안한 투자협약을 거절한 것도 모두 그 일환이라는 후문이다. 반대로 윤석열 정부가 모범 사례로 제시했던 롯데건설-메리츠증권의 투자협약상 이자율은 수수료 포함 13% 가량에 달해 과도한 금리 장사가 아니냐는 비판이 일각서 나온 바 있다. 이 가운데 정부가 '부동산 PF 부실 선제적 대응'이라는 명분으로 사업장 재구조화, 사업 추진주체 변경 간편화 등을 언급하며 금융권에 힘을 준 것이다.

정부가 금융권에 유리한 정책 방향성을 제시한 건 거시경제 흐름이 심상치 않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최근 국내 채권시장에선 외국인 이탈 현상이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지난해 12월 27억3000만 달러의 외국의 채권 자금이 빠졌고, 올해 1월에는 역대 최대 수준인 52억9000만 달러가 순유출됐다. 한국은행은 외국인들이 차익실현을 위해 일시적으로 투자 포트폴리오를 조정한 것이라는 설명을 내놨으나, 관련 업계에선 한미 기준금리 역전과 원-달러 환율 상승세에 따라 외국인들이 국내 시장에서 나가고 있는 것이라는 분석이 주를 이룬다. 이 같은 현상은 당분간 지속될 공산이 커 보인다. 미국 연준(Fed, 연방준비제도)은 추가 금리 인상을 예고 중인데, 한은은 지난달 기준금리를 동결해서다. 

이를 상쇄하려면 국내 기관투자자들이 버텨줘야 하지만, 아무리 관치금융이라 한들 국공채 하락 가능성이 짙은 가운데 금융사들이 채권시장에 자금을 공급하기란 쉽지 않다. 당근을 제시해야 하는데, 그 당근 중 하나가 쏠쏠하게 이자수익을 챙길 수 있는 PF 대주단 협약으로 보인다. 정부 주도 하에 금융사들은 PF 사업장 쇼핑에 나서서 질 좋은 상품을 골라서 구매하고, 두 자릿수 금리라는 경품 혜택까지 누린다. 대신 채권 시장에서 방파제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실제로 지난 1월 금융감독원은 보험업계 CEO 간담회 자리에서 '유동성을 공급하는 기관투자자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이행해달라'고 강조했고, 이전까지 계속 채권을 팔던 보험사들은 간담회 이후 채권 순매수로 돌아선 바 있다. 건설사들은 다소 울며 겨자 먹기 식이긴 하지만 자금을 마련하고, 금융 부담은 분양가나 유상옵션 등을 통해 수요자들에게 전가한다. 국민들에게 리스크 해소 부담을 지우고, 정부는 손 안 대고 코를 푸는 격이다.

더 큰 문제는 이 과정에서 우리 경제의 부동산 의존도가 보다 높아질 여지가 상당하다는 데에 있다. 정부, 금융권, 기업, 가계의 부동산 관련 직간접적 자산 비중이 단기적으로 확대될 것이고, 가구의 주거 관련 비용 부담이 늘어날 것이다. 더욱이 원자재 가격 상승, 미국발(發) 고금리, 고환율 등 대외적 리스크는 여전히 불투명한 상황에서 말이다. PF 시장 이슈로 원자탄급이 된 부동산 시한폭탄이 수소탄급으로 커지는 것이다. 부동산 PF 리스크의 전이 차단 또는 분산이 아니라, 리스크를 집약·고도화해 부동산 폭탄 돌리기 행렬의 가장 끝에 선 국민들에게 넘기는 게 아닌지 의구심이 든다. 부동산 공화국을 유지하기 어려워 부동산 제국의 길로 가는 형국이나 다름이 없어 보인다.

복합적 경제 위기 상황 속에서 부동산 시장 연착륙, PF 리스크 해소를 위한 정책을 계획대로 추진하는 게 불가피하다면 그렇게 하되, 우리 경제의 부동산 의존도를 낮추는 작업을 병행하는 방식으로 전략을 일부 수정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다. 제국주의의 말로는 늘 가장 낮은 위치에 있는 국민들에게 불행과 비극을 안겼다. 그 불행과 비극을 분산시키기 위한 고민이 필요한 때다.

담당업무 : 건설·부동산을 중심으로 산업계 전반을 담당합니다
좌우명 : 隨緣無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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