尹정부 노동개혁 향방, ‘근로자대표제’가 가른다 [시사텔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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尹정부 노동개혁 향방, ‘근로자대표제’가 가른다 [시사텔링]
  • 박근홍 기자
  • 승인 2023.03.07 19: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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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오늘·시사ON·시사온= 박근홍 기자]

윤석열 대통령표 노동개혁의 밑그림이 살짝 공개됐습니다. 지난 6일 고용노동부는 '근로시간제도 개편 방안'을 발표했습니다. 주된 내용은 △주 52시간 근무제를 유연화해 '휴식 보장 주 69시간' 또는 '주 64시간'으로 연장근로시간 총량관리 △'연장ㆍ야간ㆍ휴일근로시간 적립 후 휴가 사용' 가능한 근로시간저축계좌제를 도입 등입니다. 윤석열 정부가 내세운 명분은 노동자 삶의 질 제고입니다. 근로시간 선택권을 확대해 노동자 건강권을 보호하고, 휴가 활성화를 통해 휴식권을 보장하며, 유연근로제를 확산시켜 노동자 선택권·건강권·휴식권의 보편적 보장을 꾀하겠다는 겁니다.

경영계와 노동계의 반응은 극명하게 엇갈리고 있는데요. 개편안 발표 직후 한국경영자총협회는 입장문을 내고 "경제 발목을 잡은 낡은 법 제도를 개선하는 노동개혁의 출발점"이라고 호평했습니다. 반면, 민주노총은 논평을 통해 "5일 연속 아침 9시에 출근해 밤 12까지 일을 시켜도 합법이 되는 것"이라며, 한국노총은 "시대착오적 초장시간 압축노동 조장법"이라고 맹비난했습니다. 월급을 받고 있거나 곧 월급쟁이가 될 사람들이 대부분인 국민들의 여론은 노동계 입장에 가깝게 형성된 눈치입니다. 정부가 '장시간 노동 합법화'를 꾀하는 것으로 여기고 있는 것이죠.

그런데 말입니다. 논점이 좀 잘못 설정된 것 같습니다. 근로기준법 등 노동법은 어디까지나 최소한의 가이드라인에 불과합니다. 노동법에서 규정한 내용보다 노동자들에게 유리한 단체협약과 취업규칙이 있다면 그것이, 단협과 취업규칙보다 노동자들에게 유리한 근로계약이 있다면 그것이 우선이 됩니다. 이를 '유리조건 우선의 원칙'이라고 하는데요. 때문에 아무리 정부에서 주 52시간을 주 69시간으로 변경하려고 한들, 사용자와 노동자간 합의가 이뤄지지 않는다면 절대 불가합니다. 논점이 잘못됐다고 언급한 이유입니다. 근로시간제도가 개편되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건 근로시간에 대한 사용자와 노동자간 합의 절차와 방법이라는 생각입니다.

이 부분과 관련해 윤석열 정부가 제시한 카드는 '근로자대표제 정비'입니다. 근로기준법상 근로시간 등 주요 근로조건을 결정하려면 반드시 사용자와 근로자대표가 서면합의를 해야 합니다. 근로자대표는 사업장에 근로자 과반수로 조직된 노동조합이 있는 있는 경우에는 그 노조를 대표하는 자를, 과반노조가 없는 경우엔 근로자의 과반수를 대표하는 자(통상 노사협의회 근로자위원)를 뜻합니다. 그러나 현행법에는 근로자대표 선출 절차와 방법, 활동, 지위 등에 관한 규정이 없는 실정입니다. 사용자에게 유리하고 노동자에게 불리한 방향으로 근로시간이 정해질 가능성이 높은 것이죠.

이에 노동부는 앞선 개편안을 공개하면서 근로자대표 선출 절차 등을 법적으로 명시하겠고 공언했습니다. 과반노조가 있으면 해당 노조 위원장이, 과반노조가 없으면 노사협의회 근로자위원이 근로자대표를 맡게 하고, 노사협의회 근로자위원도 없다면 직원들의 직접·비밀·무기명 투표로 근로자대표를 선출하게끔 제도화하겠다는 건데요. 사업주와 노동자가 서로 대등한 관계에서 근로시간에 대해 합의를 보도록 하기 위한 취지입니다. 이는 그간 노동계가 줄기차게 요구했던 사항이기도 합니다.

문제는 정부가 제시한 방향대로 근로자대표제 정비가 이뤄지더라도 근로자대표의 대표성과 독립성이 보장되기 어려운 현실이라는 데에 있습니다. 국내 기업 가운데 과반노조가 존재하는 사업장은 극히 드뭅니다. 노조의 영향력이 강하다는 건설업계조차도, 10대 건설사 중 유일하게 과반노조가 있는 건설사는 대우건설뿐입니다. 그렇다면 대부분 사업장에선 노사협의회 근로자위원이 근로자대표가 되거나, 근로자대표를 선출하는 광경이 펼쳐질 텐데요.

우리나라에서 노사협의회 근로자위원의 대표성·독립성은 항상 의심을 받아 왔습니다. 근로자참여법(근로복지기본법, 근참법) 시행령에서 근로자위원을 직원들의 직접·비밀·무기명 투표로 선출하도록 하고 있지만, '사업 특성상 부득이하다고 인정되는 경우 선거인단을 통해 선출'이라는 규정을 악용하는 사례가 많기 때문입니다. 또한 직접·비밀·무기명 투표를 진행한다고 해도 사측에 공개된 자리에서 기명 투표가 진행되도록 하거나, 애초에 사측에서 점찍은 '어용 직원'이 입후보하는 등 사용자의 선거 개입 행위가 속출했습니다. 실제로 한때 무노조 원칙을 고수했던 국내 굴지의 재벌 대기업인 S그룹은 '근로자위원 후보군 관리·육성 계획', '근로자위원 비노조 신념화·조직관리 중요성 특별교육 계획' 등을 수립하는 등 '우호인력'의 출마를 유도했다는 내부 문건이 세상에 나와 논란의 중심에 선 바 있습니다.

근로자대표를 아예 직원들이 직접·비밀·무기명 투표로 새롭게 선출하더라도 이와 같은 현실이 과연 달라질까요. 희망사항이라고 봅니다. 과반노조도 없고, 노사협의회도 없다는 건 노사관계에 있어 사용자의 입김이 크게 작용하는 사업장이라는 의미입니다. 사측 입맛에 맞는 사람이 근로자대표 후보로 출마하고, 노동자들은 어쩔 수 없이 여기에 순응해 그를 추대하는 방식으로 투표가 진행될 여지가 상당해 보입니다. 더욱이 요즘처럼 먹고살기 힘들고, 일자리를 찾기 어려운 시기에 감히 어느 직원이 사측에 반하는 행위를 할 수 있을까요. 직원들이 원하는 자가 근로자대표로 선출돼도 문제입니다. 사측의 포섭과 압박 시도가 있을 테니까요. 하지만 노동부는 이번에 근로제대표제 정비를 예고하면서 사용자의 개입, 방해, 회유, 포섭, 압력 등 불법적 행위에 대한 처벌과 관련해 아무런 입장도 내놓지 않았습니다.

때문에 노동계에선 윤석열 정부에게 근로시간제도 개편 외에 또 다른 목적이 있을 것이란 주장도 나옵니다. 이번 개편안 추진을 통해 노사협의회, 근로자대표에 '법적' 대표성을 부여하고, 노사 협상 테이블에 노조 대신 그들을 앉히기 위한 포석을 둔 게 아니냐는 겁니다. 지난 연말부터 정부의 '노조 때리기' 강도가 높아지고 있다는 점이 이 같은 주장의 근거로 제시되고 있고요. 이 같은 주장이 사실이라면, 이는 과도하게 편향된 친기업적 행보로 볼 수 있습니다. 재계에서도 비슷한 시도를 한 적이 있습니다. 앞서 거론한 S그룹이 작성한 노사전략 문건엔 '비노조 유지를 위해 노사협의회를 전략적으로 육성·활용해야 한다. 노사협의회가 대표성이 있어야 노조 설립을 저지할 수 있는 명분과 논리적 근거를 확보할 수 있고, 노조 설립 시 (노사협의회를) 대항마로 활용할 수 있다'는 식의 내용이 담겼었죠.

윤석열표 노동개혁의 방향성은 이번에 근로자대표제 정비 작업이 어떻게 마무리되느냐에 따라 크게 갈릴 것 같습니다. 독자 여러분들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담당업무 : 건설·부동산을 중심으로 산업계 전반을 담당합니다
좌우명 : 隨緣無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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