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 얽힌 토건비리…30년 전 ‘수서 사건’ 데자뷰? [옛날신문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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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권 얽힌 토건비리…30년 전 ‘수서 사건’ 데자뷰? [옛날신문 보기]
  • 김자영 기자
  • 승인 2023.03.07 20:1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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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서지구 택지 특혜 분양 사건…한보 정태수 회장 연루된 정경유착 부패
정태수, 청와대 비서관·여야 국회의원 로비…주택조합 만들어 시에 민원
4년뒤 노태우 비자금 수사로 정태수에게 100억여 원 뇌물 받은 사실 밝혀져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 김자영 기자]

ⓒ 시사오늘 (그래픽 = 김유종 기자)
정치권이 얽힌 부동산 스캔들은 끊이지 않고 있다. <시사오늘>은 대형 권력형 비리로 기록된 ‘수서 사건’이 밝혀지기까지 일련의 상황을 7일 살펴봤다. ⓒ 시사오늘 (그래픽 = 김유종 기자)

1991년 2월, 6공화국 희대 비리로 기록된 ‘수서지구 택지 특혜 분양 사건.’

‘수서 비리’는 정태수 한보그룹 회장이 수서 택지 특별공급을 받기 위해 청와대와 국회, 행정기관을 상대로 적극적으로 로비를 벌이고, 노태우 전 대통령이 정 회장으로부터 150억여 원의 뇌물을 받은 사실이 밝혀져 파문을 일으킨 사건이다.

사건이 터지고 정태수 한보그룹 회장과 장병조 청와대 비서관을 비롯한 몇몇 여야 국회의원, 건설부 국토계획국장 등에게 징역이 구형됐으나 모두 노태우 정부 말기에 사면됐다. 

정권이 7차례 바뀐 지금도 정치권이 얽힌 부동산 스캔들은 끊이지 않고 있다. 지난 대선 때부터 1년 넘게 이어져 오고 있는 대장동 개발 사업 수사는 현재 진행 중이지만 사건과 함께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이름이 같이 오르내리는 일이 잦다. <시사오늘>은 대형 권력형 비리로 기록된 ‘수서 사건’이 밝혀지기까지 일련의 상황을 7일 살펴봤다. 

 

노태우 ‘주택 200만호’ 공약…강남 마지막 노른자위 수서 개발
서울시 공영개발 방침 확고했으나 고건 시장 경질되며 변화
1990년 불가했던 ‘주택조합 특별분양‘…1991년에 ‘가능’해져


1987년 대선을 앞두고 민정당의 노태우 후보는 공약으로 ‘주택 200만 호 공급’을 내걸었다. 그 일환으로 1기 신도시 건설 등 부동산 관련 정책을 추진한다. 1989년 3월, 강남 수서지구, 대치지구, 서초구 우면지구 등이 택지개발예정지구로 고시됐다. 

건설부는 23일 서울의 수서·대치·우면 등 3개 지구 55만 평을 택지개발 예정지구로 지정고시했다. 이번에 지정된 3개 지구에는 인구 8만 명을 수용할 수 있는 2만 호의 주택이 들어서며, 사업시행자인 서울시는 이 가운데 일부를 영구임대주택으로 지을 계획이다. 

- 1989년 3월 24일 자 <한겨레> ‘택지 예정지 3곳 고시 서울 수서지구 등 55만 평’

당시 수서 지구는 강남에 남은 마지막 노른자위 아파트 단지로 불렸다. 서울시는 본래 수서 일대를 전면 공영 개발한다는 방침을 밝혔다. 

하지만 1991년 1월 21일, 서울시가 ‘특별분양을 하지 않던’ 기존 방침을 져버리고 지구의 민간 주택조합 소유 토지 3만5500평을 이들 조합에 특별 분양한다. 1월 30일에는 수서지구 고도 제한 완화를 감행한다. 

이 사이 서울시장도 바뀌었다. 고건 서울시장이 재직할(1988.12~1990.12) 당시만 해도 공영개발로 조성된 택지를 특정 주택조합에 공급하는 것은 형평에 어긋나고, 일부 이해관계자들의 반발 가능성이 있다는 등 이유로 주택조합의 택지 특별공급 요구가 거부됐다. 서울시 측은 4번에 걸쳐 특별분양 불가를 통보한 것으로 전해졌다. 고건은 후에 회고록에서 정태수 회장이 찾아와 돈을 건넸으나 거절한 사실을 밝히기도 했다.

하지만 1990년 12월 27일 고건이 경질되고 박세직이 서울시장으로 취임한다. 박 시장 취임 20여 일 만에 무주택자 배급용 택지가 특별 분양되는 것으로 결정됐다. 

서울시가 수서택지 개발지구내의 주택조합에 택지를 특별공급해줄 수 없다고 발표했던 계획을 바꿔 이를 허가할 움직임이다. 

12일 서울시에 따르면 국회 건설위는 11일 서울시 부시장 등을 참석시킨 가운데 수서 지구 내 26개 연합 주택조합이 제기한 청원을 심의한 결과 ‘택지를 공급해주라’는 쪽으로 결론을 내렸다는 것.

이같은 건설위의 결정은 ‘사업 시행자인 서울시장이 조합원들의 주택 마련 기회 상실 등 특별한 사유를 감안, 공급신청을 해올 경우 이를 승인해줄 수 있다’는 건설부의 입장을 받아들인 것이다. 

서울시는 이에 따라 “관련 법규상 근거가 없다”는 이유로 “택지 공급을 해줄 수 없다는 당초 방침의 변경이 불가피하다”며 해당조합원 3360가구가 국민주택규모(25.7평 이하)의 주택을 건립할 수 있는 택지 약3만5500평을 특별공급해줄 것을 적극 검토하고 있다. 

그러나 서울시의 이같은 방침 선회가 최종 결정될 경우, 사업 지구 내의 다른 토지 소유자 및 세입자, 무허가 비닐하우스 거주민들의 특별공급 요구도 줄을 이을 것으로 보여 심각한 민원 폭주가 예상된다.

이와 함께 택지의 계획적인 개발과 함께 부동산 투기 및 개발 이익의 사유화를 막기 위해 도입된 택지의 공영개발 정책이 근본적으로 흔들린다는 지적을 면치 못할 것으로 보인다. 

1990년 12월 13일 자 <조선일보> ‘수서 택지 개발지구 조합주택 허가할 듯’

수서지구에서 일반 분양하는 민간아파트는 6400여 세대로 이가운데 전용면적 18~25평의 국민주택 규모 이하는 4400여 가구인데 이들 주택조합 3360가구에 택지를 특혜 공급해줄 경우 채권 입찰 없이 사실상 분양해주는 결과가 돼 300만 원 청약예금 가입자들에게 분양될 몫은 애초의 4분의 1에 지나지 않는 1000여 가구에 그쳐 이들의 거센 반발이 불가피한 실정이다. 

- 1990년 12월 14일 자 <한겨레> ‘수서·일원 5만 평 특혜 말썽’

 

한보, 1988년부터 수서지구 일대 녹지 사들여
정부기관 포함된 직장연합 주택조합도 모집해
‘수서 의혹’ 파문 일자 ‘꼬리자르기’ 식 수사진행


이런 방침 변화 배경에는 한보그룹의 로비와 청와대를 비롯한 정관계의 압력이 있었다

한보는 1988년 4월부터 1989년 3월 수서지구가 택지개발 예정지구로 지정되기까지 한보철강·한보주택 등 한보그룹 임원 명의로 수서 지구 일대 자연녹지를 사들였다.

수서지구가 택지개발지구로 지정되며 공영개발 방침이 결정됐음에도, 한보주택은 주택조합원을 꾸준히 모집하고 3360명 조합원이 있는 26개 주택조합에 명의를 이전했다. 26개 직장연합 주택조합에는 경제기획원, 농림수산부, 서울지방국세청 등 정부 기관을 비롯해 금융연수원, 산업은행 등 금융기관도 포함돼 있었다.

1991년 2월 5일 자 한겨레 ‘수서특혜 청와대 개입 의혹 커’ ⓒ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캡처본
1991년 2월 5일 자 <한겨레> ‘수서특혜 청와대 개입 의혹 커’ 기사. ⓒ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캡처본

수서 비리 의혹이 확산자 1991년 2월 5일, 노태우 당시 대통령은 감사원에 ‘특별감사’를 지시한다. 2월 7일엔 검찰이 감사원 감사와 별도로 수서 특혜 의혹 관련 수사에 착수한다. 2월 13일 정태수 회장이 검찰 조사를 받았으며 연루된 정치권 관계자도 소환 조사를 받았다. 서울시장이었던 박세직과 부시장 윤백영도 경질됐다. 

수서 지구 택지 특별 공급 사건으로 구속기소 된 피고인 9명에게 징역 10년부터 징역 3년까지가 각각 구형됐다. 

대검중앙수사부 정홍원 검사는 24일 서울형사지법대법정에서 서울지법 합의30부 심리로 열린 수서 사건 결심 공판에서 이원배(59·신민당), 이태섭(52·민자당) 등 두 국회의원과 장병조 전 청와대 비서관(53) 등 3명의 피고인에게 징역 10년을, 오용운(65·민자당 의원)·김동주 피고인(47)에게는 징역 5년을, 김태식 피고인(52·신민당 의원)에게는 징역 4년을 각각 구형했다. 

검찰은 또 정태수 한보그룹회장이규황 전 건설부 국토계획국장에게는 징역 4년을, 고신석 연합주택조합간사에게는 징역 3년을 구형했다. 

- 1991년 6월 25일 자 <동아일보> ‘이원배·이태섭·장병조 징역 10년 구형’

위 기사에서 언급된 이들은 모두 노태우 정부 말기에 사면된다. 정태수 한보 회장은 IMF를 맞으며 위기를 겪었으나, 연루된 국회의원 중 다수는 후에 정치활동을 이어갔다.

김영삼 정부 3년 차인 1995년 10월, 노태우 전 대통령의 비자금 파문이 일었다. 당시 그의 비자금으로 추정되는 액수는 무려 4000억 원에 이르렀다. 검찰이 이를 수사하는 과정에서 노태우와 정태수의 관계가 다시 재조명됐다. 

노태우 전 대통령 비자금 사건 수사 결과 상무대·수서·한양사건 등 6공 대형 의혹 사건들과 관련, 모두 노 씨가 직거래를 통해 특혜를 제공했던 사실이 밝혀짐으로써 ‘소문이 사실’이었음이 드러났다. 

이 사건들은 6공 당시 의혹이 제기됐을 때 검찰이 1~3차례 수사에 나섰다가 모두 ‘무혐의 종결’ 처분을 내렸던 것들로 과거 검찰 수사가 편의적으로 이뤄졌음을 나타내고 있다. (중략) 

검찰은 한보 그룹 정태수 총 회장이 90년 11월 서울 수서택지 개발지구 내 일부를 한보가 특별 분양받은 대가로 노 씨에게 100억 원을 건네준 사실을 밝혀냈다. 

91년 이 사건을 수사했던 검찰은 당시 청와대 장병조 문화체육담당 비서관이 특혜분양을 주도했다고 발표한 바 있다. 당시에도 일개 비서관이 여야 정치인과 서울시 등 관계기관에 엄청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겠느냐는 의문이 끊임없이 제기됐으나 흐지부지돼 버렸다. 

- 1995년 12월 7일 자 <경향신문> 3대 의혹 노 씨 관련 사실로 

정태수는 금융실명제가 실시된 이후 노태우 비자금 600억여 원에 대한 실명 전환을 해주기도 했다. 

수서 비리는 긴 시간에 걸쳐 그 배후가 천천히 밝혀졌다. 사건 발생 직후의 수사는 꼬리 자르기 식이었고, 소문으로 나돌던 의혹 다수가 후에 사실인 것으로 드러났다. 

담당업무 : 정치부 기자입니다.
좌우명 : 생각대신 행동으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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