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本을 보는 눈 [이병도의 時代架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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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本을 보는 눈 [이병도의 時代架橋]
  • 이병도 주필
  • 승인 2023.03.11 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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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다 큰 그릇으로 최초 포용…日자세 관건
강제징용 해법…정부 주도로 개선 실마리
사과와 배상 등 역대 대통령들 요구에서 탈피
尹 정권, 文 정권 5년 최악 한일관계 극복 의지
제조업 분야에서 한국, 일본 압도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이병도 주필)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해 11월 캄보디아 프놈펜 한 호텔에서 열린 한일 정상회담에서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와 악수하며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연합뉴스

한일 관계 새 시대는 열리나. 변화는 어떻게 구체화돼 나갈 것인가. 최대 현안인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 배상 해법을 둘러싼 양국 협의가 사실상 마무리 단계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의 양국 관계 발전, 공존과 번영을 향한 강력한 의지가 천명된 후여서 귀추가 주목된다.

양국 관계는 과거의 상처, 냉엄한 현실, 그리고 동반자적 미래가 명암(明暗)을 함께하며 실타래 처럼 크게 뒤엉켜 있다. 이제는 풀어야 한다. 원칙적으로 한국의 윤석열 대통령이 먼저 물꼬는 텄다.

윤 대통령의 대일 인식은 위기 극복과 자유 번영의 파트너로서 양국 관계에 임하겠다는 것이다. 강제동원 문제를 반드시 해결, 그 다음 수순으로 일본의 부품 수출 규제, 불안정한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지소미아) 등 양국 현안을 포괄적으로 풀어 나가는 ‘그랜드바겐’을 이뤄 내겠다는 의지의 표현이기도 하다. 다음은 일본이 대답할 차례다.

현실적으로 최대 현안은 강제징용 배상문제다. 2018년 일본 피고기업(일본제철·미쓰비시중공업)의 배상 책임을 확정한 한국 대법원 판결 이후 한일관계의 최대 갈등 요인이 됐던 강제징용 배상 문제가 분수령에 접어들었다.

시대적 전환기, 강제징용 배상문제는 서로가 더욱 진실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한일 양국 정부의 의중은 일단 나왔다. 지난 6일 1시간 차이를 두고 한국인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 배상 방안과 그에 호응하는 의지를 잇달아 발표했다.

우리 정부의 발표 골자는 2018년 대법원 확정판결을 받은 원고 등 피해자들에 대한 배상금을 행정안전부 산하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이 대신 지급한다는 것이다. 재원은 포스코 등 16개가량의 국내 청구권자금 수혜 기업의 자발적 기부를 통해 추진된다. 이로써 판결 이후 양국 간 최대 현안으로 부상했던 강제동원 피해 배상 문제가 적어도 양국 정부 간에는 해결의 실마리를 찾게 됐다고 볼 수 있다.  

日 자세 아직 미진

이에 대해 하야시 요시마사 일본 외무상은 “한·일을 건전한 관계로 되돌리는 것으로 평가한다”며 반성과 사죄의 뜻을 담은 1998년 한·일 공동선언 등 역대 내각의 입장을 계승한다는 원칙적 입장을 밝혔다. 한국에 대한 반도체 소재 수출규제도 해제할 것으로 알려졌다. 4년여를 끌어온 강제 동원 문제가 일단락되면 양국 관계도 차츰 정상 궤도를 되찾을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일본의 자세는 아직은 좀 더 지켜봐야 한다. 일본 정부의 진정한 사과와 피고 기업들의 적극적인 기금 참여 등 보다 성의 있는 조치가 있어야 피해자와 우리 국민들을 납득시킬 수 있을 것이다. 민족적 관점은 여전히 살아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역시 실질이다. 이번 해법은 미흡한 점이 있는것이 사실이다. 일본 피고 기업들의 직접 배상을 전제하지 않는 등의 문제가 도사린다. 우리 정부의 입장은 현실을 감안한 ‘고육책’으로 볼 수 있다. 한사코 직접 변제를 거부한 일본 정부에 더 이상 매달리지 않고, 우리 정부 주도로 관계 개선 실마리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크다.

실용주의 관점 중요

이제 한국 정부가 전향적 해법을 제시한 만큼 일본 정부도 발전적인 후속 조치를 내놓아야 한다. ‘이미 끝난 문제’라는 입장을 고수한다면 일본 국내의 반발에 함몰돼 미래를 외면하는 무책임한 정부임을 자임하는 형국이 될 것이다.

조속한 실질적 결론을 내려야 한다. 강제징용 피해자 대부분은 이제 90세 이상 고령으로 잇달아 생을 마감하고 있다. 그외 양국간에는 다른 중대 현안도 많다. 2018년 이후 한일 관계 경색에 따른 경제적 피해는 물론이고 북한 핵과 중국 위협, 급변하는 세계 정세 속에 한·미·일 간 전략적 공조도 시급하다.

윤석열 대통령은 일련의 대일관계 결정과 관련, “미래 지향적인 한일 관계로 나아가기 위한 결단”이라고 강조했다. 양국 소통에는  좀 더 낮은 자세가 필요하다. 미래를 지향하는 진실된 ‘협력 파트너’가 돼야 한다. 우리 정부는 2015년 ‘위안부 합의’ 당시 안이한 자세로 대처하다가 역풍을 맞았던 사례를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겉으로 포장된 큰 명분 보다는, 윤 정부가 처음 내걸었던 실용주의적 관점이 더욱 중요함을 다시한번 상기시킨다.

긍정적 자세 최초의 메시지

그렇다면 현 정부의 일본을 보는 눈은 어떤 것이며, 역대 정부와 얼마나 다른지, 주목치 않을 수 없다. 그 방향을 상세히 다시 점검해 본다.

지난 3월1일 윤석열 대통령의 기념사는 역대 대통령들과 달랐다. 양국관계를 긍정적 자세로 일관한 최초의 메시지였다. 윤 대통령은 일본을 협력 상대로 인식하며 앞으로 한일 관계를 개선하겠다는 뜻을 선명히 못박았다.

윤 대통령은 기념사를 통해 "일본은 과거의 군국주의 침략자에서 우리와 보편적 가치를 공유하고 안보와 경제 그리고 글로벌 어젠다(의제)에서 협력하는 협력 파트너로 변했다"고 말했다. "복합 위기와 안보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한미일 3자 협력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해졌다"고도 했다.

윤 대통령의 '선언'은 1차적으로 한일관계를 정상화시키려는 외교기조가 반영된 것이고, 2차적으로는 과거사에 대한 올바른 정리는 이제 일본에 맡기고 '글로벌 G10'으로 진입하는 대한민국이 일본을 보다 큰 그릇으로 포용하고 협력하는 ‘도약된 국가’가 됐음을 분명히 밝힌 의미가 내재돼 있다.

역대 대통령들과 비교하면 획기적 변화

윤 대통령의 올해 기념사는 종래의 3·1절, 8·15 광복절의 그것과는 다른 분명한 특징이 있었다. 우선, 일제강점기 36년간 한반도를 침략한 일본에 대해 반성이나 사죄를 요구하지 않았다. 그 다음, 일본을 명확하게 연대와 협력의 파트너로 규정했다. 이와 함께, 전례 없이 짧은 1300여자였다는 점이다. 하지만 기념사가 짧다고 해서 거기에 담긴 내재적 의미는 그리 간단하지 않다.

우리 국민에겐 다시는 힘이 없어 외세에 국권을 침탈당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일본에 대해서는 과거사를 털어내고 미래를 열어가자는 메시지를 던진 것이다. 보수·진보를 막론하고 역대 이전 대통령들과 비교하면 획기적인 변화다.

역대 대통령들은 첫 3·1절 기념사에서 미래지향적 한일관계를 강조하면서도 그 전제조건으로 일본의 태도 변화를 촉구하는 구절을 많이 담았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역사의 진실을 결코 외면해선 안된다"고 했고, 박근혜 전 대통령은 "가해자와 피해자라는 역사적 입장은 천 년이 흘러도 변할 수 없는 것" 등 강경 발언을 쏟아냈다. 특히 직전 문재인 전 대통령은 2018년 첫 3·1절 기념사에서 유관순 열사를 비롯한 국내외 독립운동을 설명하고 ‘반인륜적 인권범죄’ 등을 언급했다. 일본 정부 차원의 사과와 배상 등 진정성 있는 조치가 한일관계 개선의 전제라는 인식이 깔려있었던 것이다.

자극할 이유 없다는 외교적 판단

특히 문재인 정권의 첫 3·1절 기념사가 독도나 위안부 문제에 대해 일본의 반성을 요구하고 통렬히 비판한 것에 비해 윤 대통령의 기념사는 대조를 이룬다. 문 정권 5년간 반일을 정치적 자산으로 삼은 결과가 사상 최악의 한일 관계였다.

한편, 김대중-오부치 선언은 1998년 당시 김대중 대통령과 오부치 게이조 일본 총리가 발표한 '21세기 새로운 한-일 파트너십 공동선언'이었다. 여기에는 일본의 '식민 통치에 대한 통절한 반성과 사죄'가 합의문에 명기됐다. 그러나 이번 윤 대통령의 3·1절 기념사에선 일절 거론되지 않았다.

한마디로, 윤 대통령의 대일 메시지는 현재도 진행 중인 과거사 현안에 대한 구체적 언급 없이 미래에 방점을 찍었다는 점에서 이례적이다.

예컨대 최대 이슈인 강제징용 해법을 재론하지도, 일본의 양보를 촉구하지도 않았다. 국장급·차관급·장관급 협의를 계속 진행해 온것으로 미뤄, 일본을 자극할 이유가 없다는 외교적 판단이 작용한 것으로 분석된다.

미래지향적 관계 일본은 명심해야

유의해야 할 점은 상존한다. 우리 대통령의 첫 3·1절 메시지는 정권이 추구하는 대일 외교의 방향타로 여겨진다. 윤 대통령이 일본과의 연대를 강조한 것에는 북한의 핵 위협 앞에서 한미일 3국의 안보 공조가 절실하다는 현실이 감안된 것으로 볼 수도 있다. 또한, 막바지에 이른 것으로 알려진 강제징용 피해배상 협상도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우리 정부는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을 통해 피해배상금을 지급하되 일본 기업이 자발적으로 기금 조성에 참여하는 방안을 타협안으로 제시한 상태다. 그러나 일본 측은 피고 기업이 기금 조성에 참여하는 것은 한국 대법원의 배상책임 인정 판결을 수용하는 것이라며 거부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공은 일본에 넘어간 모양새가 됐다.

양국이 절충안을 모색 중이라는 관측이 나오지만, 그 결론은 징용 피해자 유족은 물론 우리 국민 다수가 용인할 수 있는 진정성 있는 대안이어야 한다. 이것이 담보되지 않는다면 윤 대통령이 '자유'를 고리로 추구하는 미래지향적 한일관계는 요원해질 수밖에 없다는 점을 일본은 명심해야 한다.

강제동원 해결, 일본의 결단에 달려

이제 한국도 선진국이다. 여러 분야에서 일본을 넘어섰다. 구매력 기준 1인당 GDP는 2020년에 이미 한국(4만3319달러)이 일본(4만1775달러)보다 높아졌다. 반도체·스마트폰 등의 IT 산업이나 조선·배터리·석유화학 등의 제조업 분야에서 한국은 일본을 압도하고 있다.

글로벌 경제 위기와 북핵 위협, 중국의 팽창에 직면한 현실에서 한일관계는 더욱 중요하다. 관계 정상화와 경제·안보 협력은 당면 과제다. 하지만 강제동원, 위안부 등 일제 강점사와 일본과 안보 협력에 대한 우리 국민들의 거부감은 여전히 크다. 1965년 한일 국교 정상화로 양국 과거사는 ‘완결됐다’는 해석도 많지만, 당사자인 우리 국민은 이를 전혀 수용하지 않는 정서다.

제국주의 일본이 저지른 가해의 역사는 깊다. 결코 잊어서도, 덮어서도 안 된다. 그렇다고 해서 과거에 매몰돼 관성적으로 일본을 때리는 것은 국가 이익을 해치고 전략적 선택지를 스스로 제약하는 일이 될것이다. 한국은 지금 과거로 논쟁하는 나라의 수준을 넘어섰다.

윤 대통령이 내민 손을 일본은 주목하기 바란다. 막바지에 온 강제동원 해결 협의는 일본의 결단에 달려 있다. 한미를 중심축으로 한미일, 한일 연대와 협력은 윤 대통령 언급처럼 “세계사의 흐름”이자 미래와 번영을 위한 토대임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5월 히로시마 G7회담 주목

남은 시간은 많지 않다. 5월 히로시마에서 열리는 G7회담에 일본이 윤 대통령을 초대할 것인지가 외교가의 관심사다. 두 나라는 그 전에 징용근로자 문제를 매듭지어야 한다. 그 후속으로 정상들이 또 만나야 한다. 2024년 총선이 다가올수록 한국은 정치적 외풍과 반일 여론에 휘둘릴 가능성이 높다. 굴욕외교 논란 속에서도 정상화에 최선을 다한 한국 정부의 노력에 일본의 ‘결자해지’ 화답을 촉구한다.

양국간 과제는 많다. 일본 열도를 넘나드는 북한 미사일과 핵 위협, 미·중 패권 다툼으로 인한 글로벌 진영 간 대립 심화, 부품·소재와 첨단 산업 공급망 문제 등 양국이 공조해야 할 시급한 과제들이 첩첩이 쌓여 있다. 외교에선 어느 일방의 완승은 있기 어렵다. 피해국이 이 정도 성의를 보였는데도 가해국이 조금의 정치적 부담도 지지 않겠다는 것은 도리가 아니다. 기시다 총리의 정치력 발휘를 기다려 본다.

군국주의 부활을 경계할 수는 있다. 그러나 과거 역사에 파묻혀 무조건 일본을 배척하는 것도 우리에게 득이 되지 않는다. 중국이나 일본이나 21세기 신제국주의의 기도는 힘의 균형을 통해 막을 수 있다. 우리는 현시점에서 오직 국익을 위해, 미래를 위해 양국 관계를 설정하면 된다.

일본의 진정성이 관건

현안은 실로 중요하다. 강제징용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일본의 수출 규제 해제와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정상화 등에도 차질이 불가피하다. 양국이 노골화하는 북한의 핵 위협과 북중러 등 전체주의 체제 결속에 맞서려면 양국 관계를 협력 파트너로 끌어올려야 한다.

여론조사 결과는 계속 나온다. 미래를 주도할 한·일의 청년(MZ)세대는 오히려 과거에서 벗어나 상대 국가에 대한 긍정적인 이미지를 키워가고 있다는 소식이다. 이럴 때일수록 양국 정치인들은 과거 관성이나 정치적 이해에서 탈피해 공존과 번영의 미래를 열어갈 큰 방향을 제시해야 한다.

윤 대통령의 이번 3·1절 기념사는 한일관계 대전환의 기점이 될 만하다. 그러나 관계에는 상대가 있다. 우선 당면한 징용공 문제에 대해 일본 정부도 의미있는 양보를 해야 한다. 이제 일본이 화답할 차례다.
양국 정상 간에는 전화통화나 이르면 이달 내 윤석열 대통령의 방일을 통한 정상회담 개최 등 관계 정상화 행보를 속도감 있게 펼칠 가능성이 있다.

이번 윤 대통령의 선언은 정치적 부담을 감수하고서 빠른 양국관계 회복을 위해 한국 정부가 결단을 내린 셈이 된다. 앞으로 중요한 것은 일본도 진정성 있게 다가와야 한다는 점이다. 그렇지 않다면 ‘합의’는 했지만 결국 ‘해결’은 되지 않는다. 과거 실패가 반복될 수밖에 없다. 이를 막기 위해선 일본의 적극적인 자세가 더욱 필요하다. 피해배상 세부 해법 마련과 이행 과정에서 과거사를 극복하기 위한 실질적 노력을 기울이는 길밖에 없다.

 

이병도는…

부산고·서강대 신문방송학과를 졸업, 1979년 동양통신 정치부 기자로 출발한 후, 연합뉴스 정치·경제·외신부 기자·차장, YTN 차장, 평화방송(PBC) 정경부장, 가톨릭 출판사 편집주간을 지냈다. 연합뉴스 재직 중에는 한국기자협회 부회장으로 일했고, '홍콩 유령바이어 사기사건' 보도로 특종상을 수상했다. 일본 FOREIGN PRESS CENTER 초청으로 자민당을 연구하였고, 남북회담 취재차 평양을 방문하였다. 저서로는 <6공해제(解題)>, <YS 대권전쟁>, <최후의 승자>, <영원한 승부사>, <대한민국 60년>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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