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와 전원생활 사이 [일상스케치(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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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와 전원생활 사이 [일상스케치(74)]
  • 정명화 자유기고가
  • 승인 2023.03.12 13:3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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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원주택, 자연 친화적 삶의 명암
도시인들의 로망에서 애물단지로?
고 연령대 다수 다시 도시로 돌아가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 정명화 자유기고가)

자연으로의 회귀는 현대인의 오랜 숙원이다. 도시의 삶은 다소 삭막하고 건조하기 때문이다. 주변은 온통 회색으로  콘크리트 구조물 안에서  정신없이 하루를 보낸다. 바쁘게 돌아가는 일상과 치열한 경쟁에 쫓기다 보니, 사람들의 정과 따뜻함을 느끼며 지내는 생활은 요원하기 짝이 없다.

이에 사람들은 복잡한 도시생활에 염증을 느끼며 자연스레 가까운 산이나 바다를 찾곤 한다. 고즈넉한 자연 풍경과 마주하면서 지친 심신을 정화시키고 새로운 활기를 되찾는다. 특히 도시생활에 찌든 직장인들은 은퇴 전후와 나이 먹고 난 후 전원생활을 최고의 로망으로 꼽는다.

현대인들은 왜 그토록 자연을 갈망할까?

미국 하버드대 생물학과 교수인 '에드워드 윌슨'에 따르면 인간의 육체와 정신은 자연에 맞도록 설정되어 있다고 한다. 인간은 수백만 년을 자연 속에서 수렵 채집 생활을 하며 살아왔고, 자연에서의 생존에 유리하도록 진화되었다. 그러나 200년 전, 산업혁명을 거치며 수많은 사람들이 도시에 모여 살기 시작했다.

이렇게 녹지는 줄고 좁은 지역에 콘크리트로 된 높은 건물이 생기기 시작하며 현대인들의 녹색 갈증이 분출되었다. 그러니 자연 다양한 스트레스를 겪을 수밖에 없다. 즉 유전자에 각인되어 있는 녹색 갈증을 해소하기 위해 인간은 그렇게 자연으로 돌아가고 싶어 한다는 논리다.

그렇다면 과연 도시에서 은퇴한 후 지방, 특히 한적한 전원에 들어가 산다는 게 권장할 만한 일일까? 우선 섬세한 계획과 사전 답사, 적응 과정이 필요하다. 섣불리 도시생활을 청산하고 귀촌이나 귀농을 했다간 후회와 낭패를 당할지 모른다. 편리한 도시생활의 다양한 장치와 익숙한 이웃, 친구, 교회 등을 뒤로하고 낯설고 물선 타지의 자연으로 돌아간다는 것은 무모한 도전일 수 있다.

TV 프로그램을 보면 때로 산골이나 한적한 농촌에서 사는 부부가 등장하는데, 자연 친화적이면서 행복한 그들의 삶을 엿볼 수 있다. 하지만 인생 후반부를 부부가 함께해야 할 주거공간을 선택하는 데 있어 “나는 은퇴하면 한적한 곳에서 살 거야.”라고 말한다면?

전원주택 단지. ⓒ연합뉴스
전원주택 단지. ⓒ연합뉴스

전원 세컨드 하우스의 명암

은퇴 후 인적이 드문 시골로 내려가 집을 짓고 살아가는 건 일상. 자녀들도 다 장성하자 더는 도시에 살 이유가 없어졌다. 좋아하는 자연과 흙을 밟으며 피톤치드 공기와 냄새, 새 바람 등 자연의 소리를 들으면서 살고 싶은 건 대다수 바람이다.

한 지인은 남편이 대학 교수직 은퇴 이후 흙을 만지며 살고 싶다는 희망에 따라 강원도 지역에 세컨드 하우스를 마련했다. 경기도 아파트 단지에서 2시간 정도 소요되는 공기 맑고 전원 풍경이 멋진 곳이었다.

시골 생활을 공유하고 있는 필자로선 처음엔 집을 짓거나 사지 말고 일단 작은 텃밭이 딸린 집을 세를 얻어서 전원생활의 워밍업 기간을 가져보기를 권했다.

그런데 셋집이 마땅치 않기도 해서 아담하고 쾌적한 전원주택을 구입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농업을 위한 기초 교육도 받고 은퇴하자마자 그곳으로 가서 첫해부터 제법 너른 마당에 작물과 화초를 열심히 심고 가꾸며 전원생활을 즐겼다. 직접 찾아 현장을 보니 경험이 없던 부부에게 첫해 작업량으로 선 상당해 대단하다고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하지만 이주한 지 3년 차를 지나면서 그 생활을 정리할지도 모른다는 얘기를 들었다. 세컨드 하우스를 팔아야 할 것 같다는 거였다. 도시로의 회기, 꽤 빠른 결정이었다.

일단 구조적으로 겨울엔 아파트보다 너무 춥고 인근에 상권, 의료시설도 부족한데다 체력의 한계를 느낀 것 같았다. 처음 해 본 너른 텃밭 가꾸기가 시간이 지나면서 버겁게 다가온 곳이다. 조금 이른 나이에 시작했다면 모를까 70세에 접어들면서 늦은 감이 있었다. 일찍이 과거부터 농촌 생활을 경험해왔던 것도 아니고 로망과 이상만으로 직면한 현실은 어려움이 많았다.

동네 모임, 교회, 헬스장 같은 커뮤니티나 쇼핑, 도서관, 수영장 같은 도시문화를 포기하고 단절된, 자연과의 소통이 주된 삶은 다양한 문제점과 직면할 수밖에 없다. 또한 기존 주변 이웃들과 소소한 마찰, 관계의 어려움도 만만치 않은 것이다.

속칭 텃세에 스트레스를 받을 수도 있다. 일상 프로그램이 여전하고 안정된 상황에서 어느 날 갑자기 낯선 곳으로 떠나 새로운 생활을 영위하는 데는 갖가지 난관이 도사리고 있는 것이다.

전원주택 풍경. ⓒ연합뉴스
전원주택 풍경. ⓒ연합뉴스

전원, 1년 내내 살기 어려워

보다 이른 50대에 건강상 요양을 위해 인적이 드문 산촌으로 귀농을 한 친구 부부는 차라리 일찍 정착이 가능했다. 다른 대안이 없었기에 그 지역 사회의 일원으로 우여곡절을 겪으면서도 어쩔 수 없이 견뎌냈다. 그 친구의 귀농 정착기도 책 한 권 감으로 드라마틱 했다.

이렇게 전원생활이 늘 행복한 것만은 아니다. 도시에서 볼 수 없던 시골에서 자생하는 벌레와의 전쟁, 여름에는 풀과의 전쟁, 장마로 물길이 불어날 일을 걱정해야 하기도 한다.

JTBC ‘손 없는 날’(연출 김민석 박근형/작가 노진영)은 낯선 곳으로의 새로운 출발을 꿈꾸는 시민들이 이사를 결심하기까지의 인생 스토리를 담는 프로그램이다.

2월 28일 방송된 13회는 ‘리틀 포레스트’ 편으로, 시부모와 시간을 함께 하기 위해 도시 생활을 청산하고 전남 영암으로 귀농해 가업을 잇는 며느리와 가족의 아름다운 이주 스토리가 담겼다.

이에 진행자인 신동엽과 한가인은 의뢰인을 만나기 전, 귀농에 대한 솔직한 생각을 털어놨다. 신동엽은 “느긋하게 보내는 걸 너무 좋아한다. 그래서 여기저기 물어봤는데 여행처럼 가면 좋지만 귀농해서 1년 내내 살면 힘들다고 하더라"라며 솔직한 심경을 밝혔다.

현실적으로 정확하게 맞는 말이다. 오랜 도시생활을 해온 경우에 1년 내내 전원에서 살기는 정말 힘들다. 물론 봄부터 가을까지는 자연의 움이 트고 꽃과 수목이 자라나는 걸 보느라 행복감을 느낀다. 이에 반해 잡초를 메고 관리하느라 치러야 할 대가도 크다.

월세로 전원생활 체험부터

모든 게 그렇듯 전원생활 역시 다양한 장단점이 있다. 전원주택을 짓든지 구입해서 자연과 공생하며 재미있게 사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짓자마자 이러 저런 사정이 생겨 서둘러 처분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그중엔 지역사회와의 갈등 등으로 전원의 꿈은 사라지고 전원주택이 애물단지가 되는 경우도 있다.

후회 없는 선택을 위해선 전원생활의 장단점을 미리 맛보고 결정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귀농/귀촌의 결행에 앞서 월세살이를 해보는 것이다. 적당한 지역을 고른 뒤 그곳에 나와있는 월세 물건(농가주택이나 전원주택)에 몸만 들어가 생활해 보는 거다.

전원주택은 여러 장점에도 불구하고 막상 살아보면 잔손이 많이 간다. 아파트야 문제가 생기면 관리사무소 전화 한 통으로 대부분 해결되지만, 전원주택은 상하수도나 배관, 보일러, 전기 등등 모든 걸 내가 해결해야 하는 시스템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손봐야 할 곳도 많아지고 유지/관리/보수에 드는 비용 또한 만만치 않다.

봄부터 한 여름엔 집 주변의 풀과의 전쟁으로 지치기도 한다. 전원생활 시작하자마자 유지관리하느라 재미는커녕 일거리만 잔뜩 짊어지는 형국에 놓이게 된다.

그런데 임차 전원생활만 해봐도 도회지 편의점이나 마트에서 쉽게 살 수 있는 생필품을 멀리 가야만 살 수 있다는 사실 등 소소한 애로사항들이 바로바로 경험으로 체득된다.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다는 점에서 시도해 볼 만하다.

전원생활은 결코 공짜가 아니다

이 모든 대가를 치르더라도 좋은 점은 자연을 피부 가까이에서 직접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창문만 열어도 자연의 향기가 싱그럽게 코끝을 스친다. 아파트 살 때는 외출 시 기온 변화에 따라 계절이 바뀌는구나 했지만, 전원에선 나무에 움트는 싹으로 봄을 느끼고, 떨어지는 낙엽으로 한 해가 저물어감을 절절히 느낀다.

비가 오면 지붕 위에 후드득 떨어지는 빗소리로 금세 감지하지만 아파트에 살면 기후변화의 이런 감상이 어렵다. 시야에 온통 창밖의 싱그러운 녹음이 보이니 심신이 안정되는 것은 큰 장점이다.

이에 반해 자연과 가까워지는 대신 번화가와 떨어져 있다 보니 차량을 이용해서 움직이는 게 필수다. 대중교통 이용이 쉽지 않아 번번이 운전해야 하니 몸도 피곤하고 스트레스가 만만치 않다.

게다가 정전이 되거나, 어느 기기가 고장 나 기술자를 부르게 되면 시내에서 기본 출장비만 몇 만 원이고 때에 따라서 부르는 것이 값이다. 한밤중에 전문가 수준이 해결할 수 있는 정전이라도 나면 그야말로 난감하다. 멋진 경치도 하루 이틀이다. 그러므로 처음부터 욕심내지 말고 밭은 약 5~10평 이내로 그냥 소일할 정도만으로 하는 것이 제일 좋다. 10평 이상은 노동이다.

전원생활과 노년기 주거 환경

전원생활의 첫번째는 노동력을 갖춰야 한다는 것이다. 은퇴 후 혼자 살거나 노부부끼리만 사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이들은 대개 하루 시간의 80%를 집에서 보낸다. 만약 좀 더 고령화되어 근력이 떨어지고 인지 기능이 감소하면 자기 집에 살면서도 불편감을 느낀다.

이에 고령사회 유럽과 일본에서는 행복한 노년을 위해서 50~60대부터 안락한 집을 만들어가길 권한다.

필자 역시 건강할 때는 시골 생활이 주는 즐거움과 이점이 많았다. 봄이면 피어나는 꽃 풀 한 포기에 열광했다.

그런데 암 발병 후 투병생활하며 병원에 가는 일이 잦아지고 체력이 받쳐주지 못하니 점점 시골생활이 어려워져가고 있다. 어쩌면 친구처럼 영혼의 소통자였던 자연을 내려놓아야 할지도 모르겠다. 전원생활은 건강이 최우선 자격 조건인 것이다.

무엇보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첫 번째 고려해야 할 사항은 병원은 반드시 집에 가까이, 앰뷸런스가 20분 이내에 도착할 수 있는 거리에 있어야 된다. 대학병원을 쉽게 다닐 수 있는 시내 가까운 곳을 적극 권장한다. 위에 열거한 갖가지 장단점에도 불구하고 전원주택에서 살고 싶다면, 젊을수록 좋으니 일찍 시작하길 권하고 싶다.

정명화는…

1958년 경남 하동에서 출생해 경남 진주여자중학교, 서울 정신여자고등학교를 졸업했다. 연세대 문과대 문헌정보학과 학사, 고려대 대학원 심리학 임상심리전공 석사를 취득했다. 이후 자유기고가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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