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성도 대신해주는 세상…학교폭력에도 반성문 대필 흐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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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성도 대신해주는 세상…학교폭력에도 반성문 대필 흐름
  • 유채리 기자
  • 승인 2023.03.14 17:3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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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폭위 가지 않거나 처벌 낮추려고 반성문 대필 제출
대필 업체, 법 전문성 강조·의뢰인 맞춤형 작성 홍보
가해학생은 파일 받아 자필 작성…대필 판별 어려워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유채리 기자]

기존 음주운전이나 성범죄, 살인 등에서 피고인 등이 감형을 받기 위해 제출하던 ‘가짜 반성문’이 학교폭력이 증가하며 학교로까지 확산되고 있다. ⓒ 시사오늘 김유종
음주운전이나 성범죄, 살인 등에서 피고인 등이 감형을 받기 위해 제출하던 ‘가짜 반성문’이 학교로까지 확산되고 있다. 이는 학교 폭력이 증가하면서 감형을 받으려는 수요 역시 늘어난 영향으로 보인다. ⓒ시사오늘 김유종

최근 학교폭력이 증가하고 처벌 기준이 강화되며 반성문 대필 시장이 형성되고 있다. 주로 살인이나 성범죄 등에서 성행하던 감형 전략이 학교폭력에도 확대된 것이다.

14일 <시사오늘>이 이른바 반성문 대필을 전문적으로 하는 업체 관계자들과 접촉해 취재한 결과를 종합하면 학교폭력 가해 학생·학부모를 대상으로도 영업 활동이 전개되고 있다.

반성문 대필 시장이 학교까지 뻗어나간 데는 학교폭력이 증가하며 감형을 받으려는 수요 역시 많아졌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교육부가 발표한 ‘2022년 1차 학교폭력 실태조사’ 자료에 따르면 피해응답률은 2017년 1차 0.9%, 2018년 1차 1.3%, 2019년 1차 1.6%로 지속적으로 증가했다. 이어 2020년 코로나 19 영향에 따라 0.9%로 급감했으나 점차 등교가 정상화되며 2021년 1차 1.1%, 2022년 1.7%로 다시 증가세를 보였다.

학교폭력의 경우, 가해자 역시 청소년이라는 점에서 처벌 수위가 낮은 편이고 학교장 선에서 사안을 마무리하는 자체해결제 등 재판까지 가지 않고 조치를 취할 수 있는 제도들이 마련돼 있다. 이 과정에서 반성을 하고 있는 지가 사안 처리의 중요한 기준으로 작용한다.

그 중 하나가 반성문이다. 대필 업체들이 학교로까지 손을 뻗은 이유이다. 이들은 학부모 등을 대상으로 반성문 효과를 강조하며, 대필을 장려했다.

실제로 A대필 업체에 동생이 학교폭력 가해자라 반성문 대필을 알아보고 있다고 문의하자 관계자는 “반성문은 한, 두 번이 아니라 여러 차례 계속 제출하는 게 효과적”이라며 동생의 나이와 혼자서 한 건지, 친구들이랑 함께 했는지 등을 물어봤다. 

B업체 관계자도 “작년에 (가해 학생) 어머니가 (대필을) 신청했다. 피해학생 어머니가 굉장히 화가 나 학폭위까지 열릴 뻔 했다. 그 (가해) 학생은 사과문이랑 반성문을 30차례 정도 내서 잘 해결됐다”며 여러 번 제출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반성문은 학교폭력 사안이 형사재판으로 이어지는 경우에도 감형 요소가 된다. 대법원 양형위원회 폭력범죄 양형기준을 살펴보면 감경요소에 ‘진지한 반성’이 포함돼있다. 가해학생 조치를 결정하는 기준에도 ‘반성 정도’가 고려대상으로 포함돼 있다.

또 다른 업체 관계자는 형사 재판에서도 효과가 있는지 묻자 “각 사건마다 판결 내릴 수 있는 양형기준이 있다. 계속해서 반성하고 뉘우치는 걸 보여주는 게 좋다”고 말했다.

반성문 대필 업체들도 이러한 점을 공략해 메인 홈페이지에 학교폭력 관련 반성문 정보나 후기 등을 게재해 놨다.

학교폭력 반성문 대필도 팀을 이뤄 전문적으로 이뤄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대필 의뢰를 문의한 업체들은 사건별로 팀이 분류돼 담당 작가들이 작성하고 있다고 알려줬다.

전문성을 강조하기도 했다. 법조기자 경력을 내세우거나 법무법인에서 반성문이나 탄원서 등을 작성하며 교육을 받아왔다는 걸 알리는 식이다. 구체적인 작성 팁을 알려주며 ‘필수 요소’가 포함된 맞춤형 반성문을 작성한다며 홍보도 했다.

이처럼 가해학생이 성찰하고 잘못한 부분을 바꿀 수 있도록 기회를 주는 반성문 제출이 하나의 산업으로 변질된 것이다. 이로 인해 참회 대신 기계적·형식적 반성이 만연해질 가능성이 있다.

더욱 문제는 이러한 반성문이 대필인지 파악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대필자가 반성문 내용을 작성해 의뢰자에게 보내주면 가해학생이 A4용지에 손글씨로 쓰기 때문이다.

이러한 ‘가짜 반성문 감형’을 방지하기 위해 지난해 2월 더불어민주당 송기헌 의원이 형법 개정안과 형사소송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해당 법률안은 법관이 양형을 참작할 때, 피해자 의견 진술을 듣도록 하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다. 하지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지난해 11월 검토가 한 번 이뤄진 후, 별다른 진척은 없는 상태다.

또 해당 법안이 통과된다고 하더라도 형사재판상에서 이뤄지는 것이기에 학교장자체해결단계나 학교폭력심의위원회 단계에서 ‘가짜 반성문’을 제출해도 반성문의 효력을 줄이거나 무력화하기는 어렵다.

최근 교육부는 국회교육위원회에 ‘학교폭력 근절대책 추진방향’ 업무보고를 제출했다. 해당 업무보고에는 학생부 기재 보존 기간을 연장하고 조치사항을 대입 전형에 반영하는 방안을 검토하는 등의 내용이 담겨있다.

기존보다 처벌 수준이 강화된다고 볼 수 있는데 이를 무마하기 위해 반성문 대필이 더욱 성행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또 반성문 ‘제출’에만 신경 써 진정한 사과나 반성의 모습은 사라지는 ‘주객전도’ 현상이 생겨날 수 있어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

학교폭력 전문 변호사인 노윤호 법률사무소 사월 대표는 “반성문 제출에만 초점을 맞추는 경우가 있다. 가해 학생과 가해학생 학부모에게 진정으로 피해 학생에게 사과하고 용서를 구하는 게 좋다고 말하고 싶다”고 밝혔다.

담당업무 : 경제부 기자입니다. (보험·저축은행 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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