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VB 반면교사…부동산發 보험·증권사 리스크 대비해야 [기자수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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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VB 반면교사…부동산發 보험·증권사 리스크 대비해야 [기자수첩]
  • 박근홍 기자
  • 승인 2023.03.14 1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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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오늘·시사ON·시사온= 박근홍 기자]

윤석열 정부가 미국 실리콘 밸리 은행(Silicon Valley Bank, SVB) 파산 사태에 따른 국내 금융시장 충격에 대해 '제한적'이라는 판단을 일단 내렸다.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14일 비상거시경제금융회의에서 "우리 금융시장은 전반적으로 안정을 유지하는 모습이다. 현재까지는 국내 금융시장 영향이 제한적인 양상"이라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국내 은행 등 주요 금융기관과 4대 공적연금, 한국투자공사 등 관련 은행들에 대한 익스포저(위험노출액) 규모도 상대적으로 크지 않은 걸로 파악돼 현 단계에서 직접적 영향은 제한적일 것"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높은 경각심을 갖고 상황을 예의주시하겠다"고 덧붙였지만 일종의 낙관론을 제시한 것으로 읽힌다.

정부와 금융당국이 낙관론의 근거로 내세운 건 △국내 금융사 건전성·유동성 양호 △SVB와 다른 영업·자산부채 구조 등이다. 금융감독원 측은 "국내 금융회사는 은행과 비은행 모두 자산부채 구조가 SVB와 다르고, 일시적 충격을 견딜 수 있는 상당한 능력을 보유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또한 전문가들 사이에선 오히려 우리나라 경제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 가능성이 있다는 말도 나온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의 금리 인상폭이 축소될 여지가 생겼다는 이유에서다. 실제로 글로벌 투자은행들은 SVB 파산 사태로 연준이 베이비스텝(0.25%p 금리 인상)을 밟을 수밖에 없게 됐다는 분석을 쏟아냈다. 골드만삭스는 금리 동결론을 꺼내기도 했다.

이유가 있는 낙관론임은 분명해 보인다. 그러나 오늘날 글로벌 경제는 마치 전쟁터와 같고, 최악의 시나리오와 예기치 않은 변수들을 모두 감안해 대비하는 국방적 사고로 일련의 상황들에 대응할 필요가 있다. SVB가 파산한 건 계란을 한 바구니에 담았기 때문이었다. 국제금융센터는 "연준이 정책금리를 큰폭으로 올린 가운데 은행 보유 채권자산에서 대규모 손실이 발생했다"며 "2021년 테크기업 호황 당시 급증한 예금으로 미국 국채와 정부보증채권에 대부분 투자(총 자산의 약 60%)했던 SVB는 투자자산 중 일부인 210억 달러를 매각했고, 이로 인해 올해 1분기 18억 달러의 세후 손실을 실현했다"고 분석했다. 여기에 고금리 여파로 실리콘밸리 입주기업들의 자금 사정이 악화되면서 대규모 예금 인출이 발생해 SVB의 보유 현금이 부족하게 된 것이다.

윤석열 정부는 국내 금융권과 SVB의 자산부채 구조가 다르다고 하지만 계란이 한 바구니에 담겼다는 큰 그림은 유사하다. 우리나라 시장 구성원들은 문재인 전(前)정권 아래 저금리 기조 속 주택시장 호황 당시 급증한 유동성을 부동산에 대부분 투자했다. 이후 물가와 금리가 큰폭으로 올라간 가운데 주택시장 침체가 본격화되면서 리스크가 확대되는 중이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2022년 9월 말 기준 부동산금융 익스포저는 명목GDP(국내총생산)의 125.9% 수준인 2696조6000억 원으로 집계됐다. 명목GDP 대비 부동산금융 익스포저 규모는 2018년 처음으로 100%대에 진입한 뒤 지속적으로 늘어 4년여 만에 약 25%p 증가했다. 경제 성장 속도보다 부동산 자금 유입 흐름이 더 빨랐고, 그만큼 집값이 급격한 조정을 받을 경우 금융사 건전성·유동성도 급격히 악화될 수 있는 실정인 셈이다.

특히 눈여겨볼 대목은 이 과정에서 부동산금융 익스포저 중 가계여신 비중이 4%p 가량 감소했고, 그 자리를 기업여신과 금융투자상품이 메꿨다는 것이다. 집값 폭등으로 돈 놓고 돈 먹기가 가능해진 부동산 시장에 너 나 할 것 없이 뛰어든 결과다.

대표적인 게 부동산 PF(프로젝트 파이낸싱)대출이다. 금융권 부동산 PF 대출 잔액은 2020년 90조 원에서 지난해 9월 말 기준 125조 원으로 약 40% 증가했다. 보험·증권·상호금융·저축은행 등 비(非)은행권 대출잔액이 전체의 70% 이상을 차지했다. 돈이 되기 때문이었다. 금감원 자료를 살펴보면 국내 증권사들의 채무보증 수수료 수익은 2017년 약 8000억 원에서 2021년 약 2조2000억 원으로 확대됐다. 5대 증권사의 IB부문 수익 대비 부동산 PF 관련 수익 비중은 2021년 모두 50%를 넘겼다. 키움증권, 삼성증권은 80%대에 이른다. 메리츠증권, 한국투자증권 등은 전체 매출(순영업수익)에서 부동산 PF 관련 수익이 차지하는 비중이 30% 이상이다. 보험업계도 비슷한 행보를 보였다. 국내 보험업체들의 부동산 PF 대출잔액은 2017년 약 22조 원에서 2022년 9월 말 기준 약 44조 원으로 2배 가량 확대됐다. 저금리 환경과 IFRS17(신국제회계기준) 전환으로 떨어진 투자운용수익률을 방어하고자 PF 대출채권을 늘린 탓이다. 그만큼 금융권의 부동산 PF 대출 리스크가 심화됐고, 주택시장 침체로 받을 충격도 커진 것이다.

이를 두고 금융당국과 각 금융사들은 건전성에 이상이 없다고 호언장담한다. 전체 운용자산이나 대출채권에서 부동산 PF 대출 잔액이 차지하는 비중이 낮다는 이유에서다. 문제는 우리나라에서 부동산 시장 침체는 곧 내수 경기 침체를 의미하는 것이고, 작금의 부동산 시장 침체는 미국의 금리 인상, 국제 원자재 가격 급등 등 대외적 변수에 기인하고 있다는 것이다.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주택시장 경착륙으로 인한 익스포저 손실은 보험·증권사들의 수익성 악화로 이어질 여지가 상당하다. 그럼에도 여기까진 그들의 장담처럼 그들의 건전성이 타격을 입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한미 금리차 확대, 내수 경기 침체에 따른 외국인 투자자와 개미 투자자들의 이탈, 국내 채권 시장·증시 하락 등이 겹치면 어떻게 될까. 증권사들의 수익 감소가 불가피하고, 국공채 보유 비중이 높은 보험사들은 부진의 늪에 빠질 것이다. 최악은 이와 동시에 중견·중소건설사가 1~2곳이 부도를 선언하거나, 규모가 적잖은 PF 현장 몇몇이 문을 닫는 시나리오다.

SVB 파산 사태는 어느 누구도 예상치 못했던 일이다. 그 잘난 미국 연준이나 월가조차도 말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에겐 반면교사의 기회가 생긴 셈이다. 최악의 시나리오를 가정해 부동산 시장발(發) 보험·증권사 리스크를 대비해야 할 것이다.

담당업무 : 건설·부동산을 중심으로 산업계 전반을 담당합니다
좌우명 : 隨緣無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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