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 대통령이 익혀야 할 ‘그 연설문’ [金亨錫 시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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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대통령이 익혀야 할 ‘그 연설문’ [金亨錫 시론]
  • 김형석 논설위원
  • 승인 2023.03.19 15:2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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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대통령 연설, 평가 엇갈려”
“간결한 건 평가받을 만”
“진정성. 愛民 정신 담아야”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 김형석 논설위원)

ⓒ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1일 서울 중구 유관순 기념관에서 열린 제104주년 3.1절 기념식에서 기념사를 하고 있는 모습. ⓒ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의 연설에 대해 호불호가 많이 엇갈린단다. 조선일보가 지지난 주말에 별도 섹션으로 다뤘을 정도니, 화젯거리가 되긴 한 모양이다. 짧고 메시지가 뚜렷하다고 호평받은 반면 감동과 울림이 없다는 혹평도 받는다고 한다.

대통령을 비롯한 국가 지도자들의 연설은 국정 운영 방향을 제시해 준다는 점 외에도 연설문 스타일이 여기저기에 큰 영향을 미치는 점 때문에 많은 주목을 받는다. 미국 중·고교에서는 학생들에게 (자신이) 대통령 취임했을 때를 가정하고 취임 연설을 써보라는 문제를 가끔 내준다고 한다. 역대 대통령의 명연설이 국가 전체에 미친 영향을 감안해 세워진 전통일 거다.

대통령 연설이 더 짧아야 하는 이유

명연설의 공통점은 간결함 속에 강렬한 메시지가 담겼다는 점이다. 무려 2000여 년 전 고대 로마의 천재 정치가 줄리어스 시저부터 프로이센의 비스마르크, 영국의 처칠 수상, 미국의 링컨, 케네디 대통령 등이 모두 그랬다.

“Venni Vidi Vinsi (왔노라 보았노라 이겼노라)” 기원전 47년에 시저가 폰토스 왕국과의 전투에서 이긴 후 원로원에 보낸 편지의 전문이다. 루비콘 강을 건너며 부하 장병들 앞에서 내뱉은 “주사위는 던져졌다”라는 한마디와 함께 촌철살인(寸鐵殺人)의 명문으로 후대의 정치가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미국인들이 케네디 연설만큼 좋아한다는 1933년의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 취임사는 이랬다. “우리가 오직 두려워해야 할 것은 두려움 그 자체다”

대공황 중에 대통령이 돼 내놓은 연설이다. 실업률이 20%를 넘고, 산업 생산은 50% 이상 줄어 나라에 우울함이 넘치던 시대였다. 경제 위기를 맞고 있는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참고할 만하겠다.

‘피와 땀’만을 요구했던 비스마르크나 처칠의 연설은 요즘 시대에 맞지 않는다고 쳐도 1961년에 행해진 케네디의 이 연설은 지금의 우리 국민에게도 유효할 것 같다.

“국가가 당신을 위해 무엇을 해줄지 묻지 말고 당신이 국가를 무엇을 할 수 있을지 물어주십시오- ask not what your country can do for you - ask what you can do for your country.”

미국민들이 가장 좋아한다는 케네디의 취임사. 끝에서 두 번째 문장의 이 17개 단어는 대통령이 국민들에게 공공의 이익을 위해 개인의 희생을 과감하게 요구했다는 점에서 큰 주목을 받았다. 그 연설에 대해 케네디의 정적 등이 이러쿵저러쿵 말들이 많았겠으나 연설에 감동한 수많은 젊은이가 군에 자원입대하거나 평화봉사단에 들어가는 등으로 케네디의 진심이 통했음을 증명해 줬다. 그래서 이를 두고 “20세기 통틀어 가장 큰 영감을 주는 17개의 단어”라는 찬사가 계속 따라붙는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도 진심을 담아 ‘21세기 통틀어 가장 큰 영감을 줄’ 명연설을 하면 어떨까? 글쎄… 내내 속 썩여오던 지지율 걱정만큼은 그만해도 될 듯싶다.

그런 짧은 명연설 중에서도 후세까지 전해 내려오는 내용은 단 몇 마디에 불과하다. 요즘 시대엔 더욱더 짧아야만 한다. 읽을거리, 들을 거리가 홍수처럼 밀려오기 때문이다.

텔레비전 보랴, 유튜브 보랴, 수시로 카톡 방에서 대화하랴, 광고 전단지까지 보랴, 그래서 신문 볼 시간도 없다지 않은가. 아무리 대통령 연설이라지만 그 긴 연설을 어떻게 끝까지 경청하겠는가. 요즘 시대의 긴 연설이나 긴 글은, 말하는 사람이나 쓰는 사람의 자기만족일 뿐이다(이 칼럼도 좀 길지 않나 싶네!). 결혼식 주례사도 5분 이내, 3분 이내로 짧아지는 추세다.

그 점에서는 윤 대통령의 짧은 연설에는 일단 점수를 줄 만하다.

세계 으뜸의 애민(愛民) 연설

윤석열 대통령은 케네디 연설문도 좋아하고 회의 중에 괴테의 글귀도 가끔 얘기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서두르지 않고, 그러나 쉬지 않고”. 그게 참모진과의 대화에는 필요할지 몰라도 국민에게 얼마나 다가갈 수 있는 말일까. 3대 개혁을 제대로 추진하겠다고 설명하는 과정에서 나온 말이라지만 그런 말이 ‘자랑스럽게’ 발표되는 것 자체가 많은 국민들에겐 거부감을 주기 십상이다. 그보다는 ‘국민 사랑’ 진심이 가득 담긴 언어가 더 필요하다.

1863년 게티즈버그에서 2분 동안 행해진 링컨의 272개 단어의 연설은 이후 민주주의의 전범을 보여주는, 링컨의 국민 사랑을 함축한 연설로 전해진다. “인민의, 인민에 의한, 인민을 위한…”

짧고 임팩트도 있지만 그보다 국민 사랑의 진정성이 느껴지는 내용이어서 더욱 평가받는다. 실제로 링컨은 전날 하루 내내 고심을 거듭한 끝에 이 2분짜리 연설문을 써 내려갔다고 한다. 국민 사랑만을 담은 내용으로….

노예를 해방하고, 국민을 진심으로 사랑했던 위대한 대통령 링컨. 우리나라에는 그런 큰 인물이 없었을까? 미국보다 훨씬 역사가 긴 한반도인데, 그런 위대한 인물이 하나쯤 있지 않았을까.

분명히 있었다. 링컨 연설문에 앞서 세계 최고의 애민 연설문이 바로 우리나라에서 나왔다. 대통령보다 훨씬 큰 권력을 가졌던 왕, 그래서 링컨 대통령보다 국민을 크게 의식하지 않아도 되는 막강한 권력을 쥐었던 왕이 국민을 너무 사랑하는 내용의 연설문을 내놨었다.

지금부터 577년 전인 1446년 세종대왕이 훈민정음 반포와 함께 내놓은 훈민정음해례본. 백성 사랑의 진심을 가득 담아 내놓은 그 연설문은 세계에서 유례없는 애민(愛民) 연설문으로 꼽힐 만하다.

최만리를 비롯, 대신들의 반대가 거셌고 당뇨 종기 안질에도 시달렸지만 그 모든 걸 백성 사랑으로 이겨내고 집현전 학자들과 함께 세계에서 가장 우수한 문자, 한글을 창제해냈다.

윤 대통령이 링컨이나 케네디보다도 국민을 사랑하는 그 깊은 마음을 배우고 더욱더 익혀야 할 내용이다.

“우리나라 말이 중국과 달라 문자로는 서로 통하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 백성들이 할 말이 있어도 자신의 뜻을 펼치지 못한다. 내 이를 가엾게 여겨 새로 스물여덟 자를 만들었다. 백성 모두가 쉽게 익혀 날로 쓰기 편하도록!” 

김형석(金亨錫)은…

연합뉴스 지방1부, 사회부, 경제부, 주간부, 산업부, 전국부, 뉴미디어실 기자를 지냈다. 생활경제부장, 산업부장, 논설위원, 전략사업본부장 등을 역임했다. 

정년퇴직 후 경력으로 △2007년 말 창간한 신설 언론사 아주일보(현 아주경제)편집총괄 전무 △광고대행사 KGT 회장 △물류회사 물류혁명 수석고문 △시설안전공단 사외이사 △한국방송광고진흥공사(코바코) 사외이사 △ 중앙언론사 전·현직 경제분야 논설위원 모임 ‘시장경제포럼’ 창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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