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크롱, 윤석열 그리고 연금개혁 [金亨錫 시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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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크롱, 윤석열 그리고 연금개혁 [金亨錫 시론]
  • 김형석 논설위원
  • 승인 2023.03.26 13:4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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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크롱, ‘나라 붕괴된다’”
“우리는 아직 시동도 걸지 못해”
“후대 위해 반드시 개혁 이뤄야”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 김형석 논설위원)

프랑스 정부의 연금개혁에 대한 파업과 시위가 이어지는 가운데 파리 쓰레기 수거 노동자들도 파업에 동참하는 바람에 시내 길거리 쓰레기통에 쓰레기가 쌓여 있다. 사진은 지난주 파리 거리에 쌓인 쓰레기 더미 모습. ⓒ 시사오늘 

제목을 써놓고 보니 남의 나라 대통령 이름이 우리나라 대통령 앞에 놓였네! 우리 대통령에 대한 예의도 아니고 우리나라에 대한 예의도 아닌 것 같다. 그러나 연금개혁에 관해 얘기할 참에 힘든 일을 앞장서 밀어붙이는 마크롱에게 그런 예우 정도는 해줘도 되지 않을까 싶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지난주 대국민 담화를 통해 “연금개혁을 안 하면 나라가 붕괴된다”라며 절박함을 내보였다. 엄살만도 아닌 것이 프랑스에서 연금을 받는 은퇴자는 현재 1700만 명, 2030년에는 2000만 명에 달한다. 현재 재정 상태로는 국가 붕괴로 갈 수밖에 없다는 마크롱의 말이 과장이 아닌 셈이다.

그럼에도 불구, 국민들의 반발이 워낙 거세 외신을 타고 들어오는 마크롱의 연금개혁 추진 상황은 연일 험로를 타고 넘는 아슬아슬한 모습이다. 연금개혁에 공회전을 거듭하고 있는 우리로서는 마크롱의 결단과 그들의 연금개혁 결말에 관심이 가지 않을 수 없다.

마크롱의 연금개혁

마크롱은 지난 2017년 집권한 이후 지속적으로 연금개혁을 추진, 6년 만인 지난 20일(현지시간) 연금개혁 법안이 의회의 문턱을 넘어서면서 1차 관문을 통과시키는 데 성공했다. 연금개혁 법안을 의회 표결 없이 강행 처리한 엘리자베트 보른 총리에 대한 하원의 불신임안이 부결되면서 연금개혁 법안이 자동 통과된 것. 이에 따라 의회 절차는 마무리됐다.

마크롱 정부의 연금개혁은 △정년을 62세→64세로 늘리고 △연금 수령을 위한 기여 기간을 42년→43년으로 늘리는 것을 골자로 한다.

우리가 볼 때는 그리 대단치도 않은 개혁안이지만 프랑스 국민들로서는 그 정도도 대단한 ‘손실’로 여겨지는 듯하다. 반대가 보통 거센 게 아니다. 야당은 물론 시민들도 정부가 연금개혁을 포기할 때까지 저항하겠다며 연일 노조를 중심으로 파업을 지속하고 있다. 대중교통이 멈춰 섰고 총리 불신임안에 대한 투표가 진행되던 중에도 파리를 비롯한 곳곳에서 연금개혁 반대 시위가 잇따랐다. 하긴 국민의 70%가 연금개혁에 반대한다는 여론조사가 나왔을 정도니….

이 칼럼을 쓰고 있는데 파리에 사는 지인으로부터 카톡이 왔다. 파리의 쓰레기야 워낙 소문난 거지만 요즈음은 정도가 심하다고 한다.

“파리에 돌아오니 연금개혁에 반대하는 취지의 쓰레기 미수거가 지속되고 있어 정말 짜증 나네요. 이 나라에 미래가 있나 싶어요. 프랑스가 좀 질리네요.”

마크롱은 2019년에 한 번 연금개혁에 실패했었다. 마크롱이 현재 여소야대 상황에서 정치생명을 내걸다시피 하고 개혁에 나선 건, 더 이상 연금 증가에 따른 재정 압박을 견디기 어렵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1950년대 말 이후 태어난 베이비 붐 세대가 잇따라 연금수령자 대열에 합류하게 됐고, 평균수명이 늘어남에 따라 수령자는 더욱 늘어나고 있다. 연금 적자에 가속도가 붙는 건 우리도 비슷한 상황이다. ‘일찍 은퇴하고 노후를 즐기는 게 프랑스적 삶의 방식‘이란 건 한참 전의 얘기가 돼버렸다. 우리도 당분간은 그런 사치스러운 삶을 흉내 낼 처지가 못 된다.

프랑스 연금 재정적자의 원인이 특수연금인 것도 우리와 같다. 공무원 공기업 등 42개 직군 종사자의 수령액이 일반 근로자의 두 배 가까이 되는 데다가 인원도 400만 명에 가까워 큰 부담이 된다는 보도다. 이들 직군의 강성노조에 밀려 번번이 개혁에 실패했다. 우리 연금 개혁 작업에도 1차 걸림돌이 될 부분이다. 

그러나 마크롱으로선 이번 연금개혁에 실패하면 개혁에 반대하지 않는 나머지 30% 국민들로부터도 외면당해 남은 임기 내내 식물 대통령으로 갈 수밖에 없는 처지다. 그런 정치적 계산도 강하게 연금개혁을 밀어붙이는 동인(動因)이 됐음 직하다.

마크롱의 개혁 작업을 바라보는 각국의 시선은 저마다 다를 수밖에 없다. 일찌감치 개혁을 마친 나라들은 느긋한 자세로 지켜볼 테고 제때 개혁을 못 해 나라 전체가 빚더미에 올라앉은 나라들은 착잡한 심정으로 프랑스를 볼 것이며, 우리의 경우는 그들의 경험을 참고삼기 위해 학습의 장으로 삼게 될 것이다.

똑똑한 국민들, 발 빠른 정부

어느 나라나 예외 없이 연금 개혁에는 반발이 따랐다. 더 내고 덜 받는다는 데 반대하는 건 당연하다. 국가의 장래를 위해 설득과 결단으로 개혁을 이뤄내는 건 정부의 몫이다.

일본은 이미 2004년에 연금개혁을 이뤘다. 의회에서의 격렬한 몸싸움 끝에 어렵사리 성공했다. 영국은 일본보다 몇 년 뒤에 연금개혁을 이뤘고 그에 앞서 스웨덴 등이 일찌감치 미래세대를 위한 연금개혁을 마쳤다.

정치적 결단이 이뤄낸 성과이긴 하지만, 희생을 감수하겠다는 국민들의 동의가 있어 가능했던 나라들이다. 반면 여러 차례 개혁에 실패, 국제통화기금(IMF) 등으로부터 구제금융을 받으면서 결국 강제로 연금 개혁에 들어간 그리스 같은 나라들도 있다.

국민들의 수준이 매우 높은 한국의 경우, 어느 쪽으로 가게 될지는 순전히 정부 하기에 달렸다고 본다.

한국, 험난한 연금개혁의 길

우리나라는 지금처럼 가면 2057년에 국민연금 기금이 고갈될 예정이다. 30여 년 후에 기금이 바닥나며 당연히 그 이전에도 기금을 둘러싼 혼란이 계속된다는 얘기다. 벌써 일부 젊은이들 사이에서 “우리들은 연금을 받지 못할 텐데 이렇게 떼이는 건 억울한 것 아니냐”는 비관적인 얘기가 이런저런 ‘헛소문’과 함께 급속히 퍼진다는 한 젊은이의 전언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미래세대를 위해 노동·교육·연금 3개 부문의 개혁을 반드시 이루겠다고 밝혀왔다. 현재 노동개혁을 중점 추진 중이다. 발등에 떨어진 게 경제 문제이므로 노동개혁을 통해 경제 성장을 견인하겠다는 것이다. 여소야대 상황과 높지 않은 지지율 등을 감안할 때 정부가 노동개혁과 함께 교육과 연금개혁을 동시에 추진하는 건 무리일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대통령실이 “국민연금 개혁은 하루아침에 이뤄질 수 없다”며 “정부는 아직 국민연금 개혁 태스크포스조차 구성하지 않은 상황”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예상컨대 내년 총선에서 집권당인 국민의힘이 과반 의석을 확보, 의회에서의 뒷받침이 가능해 질 경우 연금개혁에 시동을 걸게 될 것 같기도 하다.

사실 연금개혁은 보통의 정치인이나 대통령에겐 내키지 않는 작업이다. 거센 반대가 뒤따를 뿐만 아니라 당장의 정치적 계산에 득 될 게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필요성은 인정하면서도 좀처럼 실현되지 못한 채 연기만 거듭하는 게 연금개혁이다.

마크롱은 학생 때 선생님이었던 25년 연상의 여인과의 결혼에 끝내 성공했다. 또 ‘악수 테러’로 유명했던 트럼프와 ‘악수 힘겨루기’를 하는 등 별나고도 당찬 젊은이다. 그게 ‘자유 프랑스’ 환경에서 결사적으로 개혁을 벌일 수 있는 그의 성향이다. 그에 비해서 ‘보통 사람’으로 분류될 수 있는 윤석열 대통령에게, 어찌 보면 프랑스보다도 더욱 험난할 수 있는 한국의 복잡한 연금 개혁을 주문하는 게 무리한 요구일지도 모른다. 그래도 역사 앞에 부끄럽지 않은 대통령으로 남으려면 해내야만 한다.

지하에서 자식들이 원망하는 소리 들을 텐가

장래의 연금 수혜자가 될 젊은 층과 어린이들은 정치력도 없고 목소리도 크지 않다. 그러니 갑의 위치에 있는 기성세대만을 위한 연금 고갈의 방향으로 흘러가기가 쉽다. 물론 연금 위기를 맞은 나라의 경우를 말하는 거다.

그래서 그런 나라들에서 개혁은 역사에 책임질 줄 아는 정치인이 희생을 무릅쓰고 해내야 한다. 이른바 스테이츠맨(statesman)으로 불리는 정치가들이다. 프랑스의 마크롱이 선두에 나섰고, 뒤이어 한국의 윤이 나서는 모습을 기대한다.

확인은 안 해봤지만 그리스 등지에서는 대책 없이 펑펑 쓰다 간 아버지 세대에 대한 원망의 소리가 나돌지 않을까도 싶다. 마크롱의 연금개혁에 관한 얘기를 나누던 자리에서 어떤 점잖은 노인이 던진 얘기.

“빈 연금 봉투를 받아 든 자식이 애비 원망하는 소리를 지하에서 듣고 싶지 않아요.”

김형석(金亨錫)은…

연합뉴스 지방1부, 사회부, 경제부, 주간부, 산업부, 전국부, 뉴미디어실 기자를 지냈다. 생활경제부장, 산업부장, 논설위원, 전략사업본부장 등을 역임했다. 

정년퇴직 후 경력으로 △2007년 말 창간한 신설 언론사 아주일보(현 아주경제)편집총괄 전무 △광고대행사 KGT 회장 △물류회사 물류혁명 수석고문 △시설안전공단 사외이사 △한국방송광고진흥공사(코바코) 사외이사 △ 중앙언론사 전·현직 경제분야 논설위원 모임 ‘시장경제포럼’ 창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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