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광수 “변호사, 길 위로 나가야 한다”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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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수 “변호사, 길 위로 나가야 한다” [인터뷰]
  • 김자영 기자
  • 승인 2023.03.28 16:3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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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수 변호사
공익활동 연 1000시간 이상…법률 봉사활동 주력
“법률적 조력 못 받는 소외계층이 없어지게 하고파”
“사무실·법원에 머물기보다 ‘길 위의 변호사’ 돼야”
“검수완박, 시민 피해…절차 위법·판결 유효 말 안돼”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 김자영 기자]

이광수 변호사가 지난 26일 서울 마포구 사무실에서 가진 <시사오늘>과의 인터뷰에서 발언하고 있다.  ⓒ시사오늘 권희정 기자 

‘변호사’ 하면 책상 위에 산더미처럼 쌓인 서류 더미 속에 파묻혀 있거나 재판정에서 언변을 자랑하며 변론하는 사람을 상상하기 쉽다. 하지만 스스로 경찰 등 공공기관 현장 일선을 뛰어다니며 ‘길 위의 변호사’를 자처하는 변호사가 있다. 이광수 변호사가 그 주인공이다. 

이 변호사는 2015년 변호사 시험에 합격한 이래 매년 평균 1000시간 이상을 국민권익위원회, 국민인권위원회, 서울시청 등 공공기관에서 활동하며 봉사를 겸해왔다. 공익활동을 한 공로로 서울시장 표창, 대한변협우수변호사상, 2021년 대한국민 사회공익부문 대상, 경찰청장 감사장 등을 여러 차례 수상했다고 한다. <시사오늘>은 지난 26일 서울 마포구에 위치한 사무실에서 이광수 변호사를 만나 그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 경제학과 졸업 후 법조인의 길을 걷고자 결심한 계기가 있나.

“‘이 시대의 법과 질서, 정의를 위해서’다. 중학생 때부터 검사가 꿈이었다. 당시 주위에서 ‘돈이 없고 백이 없으면 사시를 공부해야 한다’는 말도 들었다. 모래시계의 강우석 검사와 같은 권력에 휘둘리지 않은 강직한 검사가 되고 싶었다. 그래서 경제학과 졸업 후 신림동 한 평 남짓한 고시원에 들어가서 법 공부를 시작했다. 지금은 검사가 아닌 변호사가 됐지만, 더 다양한 영역의 일을 할 수 있어서 좋은 것 같다.”

- 홀로 신림동에서 고시 생활할 때 어려움이 많았을 것 같다. 

“수년 동안 외부 사람들을 만나지 않고 신림동 고시원, 학원, 독서실에서만 생활했다. 법대를 졸업하지 않았기 때문에 처음 법 공부할 때 어려움이 많았다. 비용을 아끼기 위해 신림동 산 밑에 위치한 고시원에 살았는데, 겨울에는 물이 나오지 않아서 얼음물을 깨서 세수한 기억이 있다. 공부를 포기하고 싶을 때는 <다시 태어나도 이 길을>, <어머니, 아직 촛불을 끌 때는 아닙니다> 등 고시 합격 수기집을 보면서 마음을 다졌다.”

- 로스쿨 진학 동기는.

“사법시험 제1차 시험에 합격한 후 2차 시험에서 계속 낙방했다. 그렇다고 법조인의 꿈을 포기할 수 없었다. 로스쿨이 생기기 시작하던 때, 사법시험 2차 스터디를 같이하던 형의 권유로 진학하게 됐다.”

- 보통 어떤 사건을 다루나.

“민사, 형사, 행정, 헌법재판 등 다양한 분야의 사건을 하고 있다. 최근에는 기업설립, 주식양도, 경영권 다툼 문제 등 기업과 관련된 사건을 주로 하고 있다. 그러나 보통 변호사와 달리 송무 즉 재판 업무는 많이 하지 않고, 법률 봉사활동 및 공익활동에 주력하고 있다.”

이광수 변호사가 지난 26일 서울 마포구 사무실에서 가진 &lt;시사오늘&gt;과의 인터뷰에서&nbsp;“변호사로서의 철학은 ‘변호사는 사무실, 법원에만 머물면 안 되고 길거리에 나가야 한다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nbsp;&nbsp;ⓒ시사오늘 권희정 기자&nbsp;
이광수 변호사가 지난 26일 서울 마포구 사무실에서 가진 <시사오늘>과의 인터뷰에서 “변호사는 사무실, 법원에만 머물면 안 되고 길거리에 나가야 한다”는 철학을 말하고 있다. ⓒ시사오늘 권희정 기자

- 국가인권위, 국민권익위, 시청, 구청, 교육청, 경찰서 등 많은 공기관에서 커리어를 쌓았다. 이 분야에 집중하게 된 이유가 있나. 

“보통 변호사들은 주로 사무실과 법원에 있다. 하지만 나는 변호사로서의 철학이 있다. ‘변호사는 사무실, 법원에만 머물면 안 되고 길거리에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길 위의 변호사가 되기로 하고, 자발적으로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찾아 다니기 시작했다. 요즘 변호사가 많이 배출돼서 변호사 만나기가 비교적 쉬워졌지만, 아직까지 직접 사무실을 찾아가 상담하는 것을 부담스러워하는 시민들이 많다. 그런 사람들을 돕기 위해 2015년부터 인권위, 권익위, 시청, 구청, 서울 25개 경찰서 등에서 무료법률상담을 시작했다. 민원·인권 상담도 함께 맡고 있다. 중간에 관공서에서 법률상담 부서가 없어진 경우를 제외하고는 매일 하고 있다. 하루에 보통 3~5명의 민원인을 만난다. 여태까지 만난 사람만 몇만 명 될 거다.”

- ‘길 위의 변호사’가 되겠다는 건 어떤 마음가짐에서 나왔나. 

“변호사로서 철학이다. 사무실에만 있지 않고 거리로 나가겠다는 마음, 나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있으면 먼저 다가가겠다는 마음이다. 법률적인 조력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무료상담할 수 있는 자리가 있으면 어디라도 가겠다.”

- 변호사 생활 중 어려웠던 점은 없었나.

“재판은 생물이다. 어디로 갈지 모른다. 결과를 예측하기 힘들다. 100% 이길 수 있는 사건은 없다. 예상했던 결과와 정반대의 판결이 나오면 몇 주 동안 소위 멘붕에 빠진다. 변호사나 의뢰인이 공통으로 느끼는 것이지만, 판결 선고 기일이 정해지고 선고 당일까지의 긴장감과 초조함은 이루 말할 수 없다. 혼신을 다해 준비한, 꼭 무죄판결을 받거나 이기고 싶은 사건에서 결과가 좋지 않을 때 변호사로서 가장 힘든 것 같다.”

- 여가 시간이 있나. 

“취미로 마라톤을 하고 있다. 나의 한계에 도전하고 싶어서 풀코스 완주를 목표로 많은 준비를 했다. 각종 마라톤 대회에서 10km, 21km를 몇 번씩 뛰고, 매일 헬스클럽에서 러닝머신을 2시간씩 뛰었다. 2019년 서울국제마라톤대회 42.195km 풀코스에 출전했는데, 뛰는 당일 ‘Never give up. Never’이란 말을 되뇌었다. 작가이자 마라톤 풀코스 25회 완주자인 무라카미 하루키는 자신이 죽으면 묘비명에 ‘끝까지 걷지는 않았다’라고 쓸 것이라고 했다. 마라톤을 하다보면 심장이 터질듯한 고통에 포기하거나 걷고 싶은 충동이 생긴다. 그러나 끝까지 걷기만 할 수 없다. 완주를 가능하게 한 것은 ‘시작이 있으면 언젠가 끝이 있다’는 단 하나의 믿음 때문이었다. 완주하니 더 어려운 일이 닥치더라도 해낼 수 있는 자신감이 생기더라. 마라톤에서 인생을 배운다.”

- 변호사 생활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무엇인가. 

“대법원 국선변호인 사건을 맡아서 파기환송 판결을 받은 일, 그리고 형사 국선을 맡은 사건에서 치열한 법정 공방을 통해 무죄판결을 받은 일이 기억이 남는다. 장교인 피고인이 사선변호사가 맡은 군사재판 1심에서 유죄판결이 선고되자, 내가 항소심에서 국선변호인으로서 사건을 맡았다. 수사기록을 면밀히 검토하고 1심 판결 모순점을 지적하고 치열히 증인신문한 결과 무죄판결을 받았다. 그 의뢰인이 내게 ”1심의 사선변호사 보다 항소심의 국선변호사가 이렇게 열심히 재판을 해줄지 몰랐다. 평생 감사하며 살겠다“고 해준 말이 아직 마음속에 남아있다. 또한 우리 나라 헌정사 최초의 판사 탄핵 사건이었던 임성근 부장판사 탄핵재판에서, 피청구인 변호인단으로 참여해 국회의 무리한 탄핵 청구의 법리적인 부당성을 지적해 결국에는 각하판결을 받은 일도 잊을 수 없다.”

이광수 변호사가 지난 26일 서울 마포구 사무실에서 가진 <시사오늘>과의 인터뷰에서 최근 검수완박 입법 과정과 관련한 헌법재판소 판결이 정치적 판결이라고 말하고 있다.  ⓒ시사오늘 권희정 기자 

- 경찰서 근무 경력도 많다. 경찰관이 현장에서 겪는 어려움도 많이 알 것 같다. 

“맞다. 순경부터 치안총감까지 많은 경찰관을 만나서 여러 이야기를 들었다. 검경 수사권 조정 실무 문제나 경찰 내부 조직, 인사 문제 등 현장의 여러 애로 사항을 직접 봤다.”

- 최근 이른바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입법과 관련한 헌법재판소 판결로 논쟁이 뜨거웠다. 경찰 일선에선 해당 법안을 어떻게 받아들이나. 

“절차는 위법한데 법안은 유효하다는 자체가 말이 안 된다. 특히 헌재가 예정된 심판기일을 무리하게 당겨 심판한 것도 문제다. 곧 새 헌법재판관 2인이 지명될 예정인데 검수완박법을 강행한 민주당 및 전 정권 몫으로 임명된 재판관들이 서둘러 판결해 버렸다. 검수완박법 입법절차가 정당했다고 본 재판관 5명은 이른바 ‘회기 쪼개기’에 대해서도 필리버스터를 무력화시키는 판단을 내렸다.

일반 국민들로서는 과연 공정하고 상식적인 판단을 내렸는지 납득하기 어려울 것이다. 모순적이고 편향된 판결로 역사에 남을 거로 본다. 실제 경찰서 업무 사건 진행 속도가 늦어졌다. 피해는 국민이 받는 거다. 경찰도 수사권이 생겼다고 그렇게 좋아하지 않는다. 전에는 경찰에서 검찰에 사건을 송치하면 검사가 수사해서 기소했는데, 요즘은 경찰이 수사하고 검찰에 송치한 뒤, 보완수사가 필요하면 다시 경찰로 내려보낸다. 이 과정에서 사건번호도 바뀌는 등 시간이 늘어진다. 고소인 입장에선 느린 절차에 불만이 많아질 수밖에 없다.”

 

“가장 존경하는 정치인, 박민식 보훈처장과 김한길 국민통합위원장”
“문화에 국민 결속하는 힘 있어…K-문화 자본 통해 대통합 이뤄야”


- 윤석열 대선캠프에서 근무한 경력이 있더라. 어떤 일을 했나. 

“경선캠프에서는 당시 대통령 예비후보의 고발 사주 사건에 대해 법률적인 대응을 하는 팀에 있었고, 본선에서는 선대위 사법개혁위원회 간사로서 우리나라 사법 시스템의 문제점에 대한 해법을 강구하고 이를 공약으로 만드는 일을 했다.”

- 윤석열 대선캠프에 들어간 이유는 무엇인가.

“지금 우리나라가 겪고 있는 위기와 혼란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기존의 정치에 물들지 않은 강직하고 올곧은 사람이 대통령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당시 나는 그런 인물로 윤석열 검찰총장이 적격이라고 판단했다. 그래서 지지하게 됐고, 윤석열 국민캠프에서 일했다.”

- 존경하는 정치인이 있나.

“정치권 인사를 많이 알지는 못한다. 알고 있는 사람 중 박민식 국가보훈처장과 김한길 국민통합위원회 위원장을 존경한다. 박민식 처장은 외교관과 검사의 일을 모두 한 이례적 경력을 가지고 있다. 말 한마디 한마디에서 ’스마트한 사람이란 이런 사람을 일컫는구나’하고 느꼈다. 김한길 위원장은 연세도 많고 문체부 장관, 국회의원 등 고위직을 많이 역임했는데도 불구, 내 연락에 언제나 답변을 따뜻하게 돌려주더라. 소탈하고 마음이 따뜻한 분이라 느꼈다.”

-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서는 어떤 일을 했나.

“제20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국민통합위원회 사회문화분과에서 40일간 밤낮없이 일했다. 문화를 통한 국민통합 방안을 계획하고 실천 방안을 연구했다. 우리나라는 해방 이후 현재에 이르기까지 100년이 채 되지 않는 짧은 기간 동안 한국전쟁, 4·19혁명과 5·18민주화운동, IMF 외환위기, 코로나 팬데믹 등 많은 일 들을 경험해왔다. 그 과정에서 이념·지역·계층·세대·젠더·일자리 갈등 등 수많은 사회갈등이 발생했고 그 갈등의 골은 깊어져만 가고 있다. 다양한 사회갈등을 조절하고 국민통합을 이루기 위한 방안으로 문화를 제안하고 싶다. 

문화는 한 국가의 모든 국민을 결속시킬 힘이 있다. 문화는 생각이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소통하고 공감대를 형성하게 하고 궁극적으로는 국민통합의 토대를 제공한다. K팝·K드라마·K영화 등으로 대표되는 한국의 문화자본을 사회통합의 수단으로 삼아, 분열된 사회의 신뢰와 소통을 복원하고 궁극적으로 국민 대통합을 이뤄야 한다.”

- 앞으로의 계획 혹은 꿈은 무엇인가.

“대도무문(大道無門)이라는 말이 인생의 좌우명이다. 사람으로서 마땅히 지켜야 할 도리나 정도에는 거칠 것이 없다는 이야기다. 우리 사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부조리, 부정, 부패에 대해 목소리 내고 싶다. 공익을 위한 길이라면 거침없이 행보하겠다. 또한 모든 국민이 법 앞에 평등하고 법률의 조력을 받지 못하는 법률적인 소외계층이 없어지고 이 시대의 법과 질서, 정의가 살아있는 사회를 만드는 데 기여하고 싶다.”

담당업무 : 정치부 기자입니다.
좌우명 : 생각대신 행동으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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