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명회의 ‘초심’이 필요한 이유 [황선용의 In & Ou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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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명회의 ‘초심’이 필요한 이유 [황선용의 In & Out]
  • 황선용 APEC 기후센터 경영지원실장
  • 승인 2023.04.20 11:5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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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명하고 정직하게 인정할 수 있는 용기 가져야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황선용 APEC 기후센터 경영지원실장)

조선 성종 재임 18년 11월14일 칠삭둥이 한명회가 졸(卒)하였다는 기사가 조선왕조실록에 실려 있다. 한명회는 세조를 왕위에 올린 장자방으로서, 예종과 성종을 왕위에 올린 元臣(원로대신)으로서, 경덕궁을 지키던 궁지기에서 영의정에 오른 전무후무한 인물이다. 그런 그가 임종을 앞둔 어느 날 성종이 신하를 한명회에게 보내 병문안을 대리케 했으며 아울러 원하는 것을 알아오라는 지시를 내렸다. 이에 한명회는 관복을 갖춰 입고 정좌를 하고 다음과 같은 말로서 소원을 대신했다고 한다. 

“始勤終怠 人之常情, 原愼終如始(시근종태 인지상정, 원신종여시)”

뜻을 풀이하면 이렇다. “처음에 부지런하고 나중에 게으른 것이 사람의 성정이니, 원컨대 나중에 삼가기를 처음과 같이 하소서”즉, 처음에는 부지런하고 일을 잘하다가 타성에 젖게 되면 게을러지고 처음의 부지런함과 총기가 없어지는 게 사람의 본성이니 임금께서는 절대로 처음의 마음을 잃지 말고 종사를 돌보라는 의미다. 이것을 두고 ‘한명회의 초심’이라고 부른다. 한명회의 사람 됨됨이와 역사적 평가를 떠나서 이러한 말이 지금도 회자되는 것은 초심이 갖는 중량감과 무거움 때문일 것이다.

나도 그렇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어느 순간 변해버린 자신을 발견할 때 쯤이면 대중이나 상대방, 또는 직장 동료들에게 초심으로 돌아가야겠다는 식의 말을 관용어처럼 하게 된다. 초심이라는 말을 내뱉는다는 것은 지금 하는 일이 뭔가 잘못됐다는 뜻이기도 하다. 과연 초심으로 돌아가는 것이 옳은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이런 마음을 먹는다는 것 자체가 이미 타성에 젖었다는 것을 의미하는 만큼 지금 하는 일에 처음 발을 내디뎠을 때의 마음을 되새기는 것일 것이다.

초심을 잃지 말아야 하는 사람들 중에서도 진짜 초심을 잃어서는 안 되는 분들이 있다. 바로 정치인과 공직자들이다. 정치인과 공직에 종사하는 이들이 갖는 직무의 무게는 그 값어치를 셈해 매길 수 없을 정도여서다. 이제 총선이 1년여 앞으로 다가왔다. 우리는 3년 전, 21대 국회의원을 선출하는 투표를 하면서 후보자들, 또는 당선자들에게 걸었던 기대가 한 두 가지씩은 있었을 것이다.

총선을 1년 앞둔 이 시점에 과연 그들이 초심을 잃지 않고 유권자, 국민들을 위해 열심히 일을 했는지에 대한 판단을 내릴 준비를 할 시점이 시작됐다고 본다. 흔히들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는 말을 한다. 그런데 왜 초심의 마음은 변하는 것일까. 문제는 주변의 환경 여건이 스스로를 변하게 하고, 스스로 그것에 안주해 버리는 일들이 대체적으로 일반화됐기 때문이다.

권력에 가까이 있는 국회의원이나, 정책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고위공무원들이 만약 그 일과 관련돼 검은 유혹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다면 초심을 잃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본인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청렴해지려는 공직자들을 가만 놔두지 않는 주변 환경의 변화와 접근은 이러한 의지를 무너뜨리게 하기에 충분한 요소가 된다.

지금 대한민국에서 요구하는 공직자의 청렴성은 과거 양반님들이 고서(古書)를 읽으면서 얘기하던 식의 청렴은 아닐 것이다. 뒷돈 받고 누군가에게 특혜를 주는 일을 하지 말아야 하는 것은 기본이고 그것에 덧붙여 투명함과 솔직함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 최근의 청렴에 대한 트렌드일 것이다.

인공지능이 사람을 대체하는 시대에 살고, 모든 것이 원터치로 이뤄지는 지금 오히려 국민들이 요구하는 공직자들에 대한 요구는 더욱 구체적이고 세밀해지고 있다. 사회가 발전할수록 높은 위치에 있는 분들에 대한 청렴이행 요구는 더욱 거세지고 있는 것이다.

나도 공직에 있지만, 스스로 공직에서 일하고 있는 분들이라면 이것 하나쯤은 생각하면서 일을 해야 할 것이다. ‘잘못은 할 수 있지만, 창피한 일을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개선과 은폐의 중간에 서 있는 공직자의 위치라면 과감하게 솔직해질 수 있는 의지를 갖고 국민들에게 소비자에게 투명하고 정직하게 인정할 수 있는 용기. 한 번쯤은 호기로라도 부려볼 만한 도전이라고 생각한다.

 

※ 외부 필진의 기고는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서울과기대 토목공학과를 졸업하고 국방대학원 안보정책학과 석사과정을 수료했다. 이북오도청 (이북오도위원회) 동화연구소 연구원과 상명대학교 산학협력단 초빙연구원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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