嗚悲, 嗔怒 [기자수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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嗚悲, 嗔怒 [기자수첩]
  • 박근홍 기자
  • 승인 2023.04.21 10:3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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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오늘·시사ON·시사온= 박근홍 기자]

(왼쪽부터) 오비맥주 카스, 하이트진로 테라 이미지 ⓒ 각 사(社) 제공
(왼쪽부터) 오비(OB)맥주 카스, 하이트진로 테라 이미지 ⓒ 각 사(社) 제공

봄바람이 아직 싸늘하게 와 닿지만,
시원한 맥주 한 잔으로 퇴근 후 피로와 스트레스를 달랬다.
우리나라 맥주가 비록 맛있는 술은 아니라지만,
카스(Cass)와 테라(TERRA), 처음처럼과 참이슬에 섞어 카스처럼, 테슬라로 즐기니 진정 없는 것보다 낫더라.

물가는 가파르게 치솟고, 원리금 낼 돈도 변변찮아 고달픈 시대이지만,
소맥 즐길 수 있을 정도로 내 한 몸 버티고 있으니 의외의 재난만 없길 바랄 뿐,
손발을 씻고 가족, 친구들과 식탁에 옹기종기 둘러앉아
한 잔 술로 기분을 풀고 얼굴을 펴니, 그래도 아직 먹고 살만하구나 생각했다.

그러나 세상은 오비(嗚悲)이고, 인심은 진로(嗔怒)였다.
홈술족 공략하겠다며 카스 가격 동결하고, 테라 새 용량 추가하겠다더니,
손바닥 뒤집듯 똑같은 값에 용량 줄이고, 출시한 용량 다시 엎어 버렸다.

분분한 세상일을 어찌 모름지기 헤아릴 수 있겠냐마는
오비맥주와 하이트진로는 보지 못했는가.
관중과 포숙의 가난한 때 사귐과 같은, 마음이 가난한 이들과 술의 사귐을.
이러한 도리를 지금 주류 기업들은 마치 흙 버리듯 하는구나.

미리견과 아라사에서 부는 북서풍이 사나워 야박해진 정,
쓰라린 마음 안고 식당으로, 마트로, 편의점으로, 그래도 맥주를 찾으러 가지만,
착잡하고 착잡하고 착잡하다.
가격은 예전과 같거나 비싼데 술병과 캔은 공연히 여위어
소맥 한 잔 말기가 여간 어렵더라.
벚꽃 지고 조만간 무더운 여름날 될 텐데,
맥주의 시원함은 여전하더라도 목넘김은 씁쓸하겠구나.
막막하고 막막하고 막막하다.

止酒(지주)가 답일까.
카스를 그치면 마음에 기쁨이 없다.
테라를 그치면 저녁에 편히 잘 수 없고,
카스처럼, 테슬라를 그치면 아침에 일어나지 못한다.
하루하루 끊어보려고 하긴 했지만,
혈액 순환이 안 되고 작동하지 않으리.
먹고살기 힘든 시련의 계절, 마실 수밖에 없는 삶이니,
끊는 게 즐겁지 않다는 걸 알 뿐이고,
끊는 게 몸에 이롭다는 건 믿지 않았다. 마음에 이롭지 않으니.
하지만 비로소 嗚悲, 嗔怒를 끊는 게 좋다는 걸 오비, 진로가 알려주니
지금부터 한번 끊어볼까.

오호(嗚呼) 통재(痛哉)라.

밥값과 술값은 천정부지, 내 월급은 요지부동,
이것이 세상사 이치인 것이라.
통달한 사람은 진작 그 이치를 깨달아
더 이상 의심하지 않는다. 술 한 잔 마시기가 점점 더 힘들어진다는 것을.
문득 소맥 한 잔으로
저녁마다 고달픈 마음을 달래기나 할뿐.


우리나라 맥주 시장 1·2위 기업인 오비맥주, 하이트진로가 이달 초부터 일제히 캔맥주 묶음 상품 용량을 줄였다. 전자는 기존 375ml 제품을 370ml로 줄였으며, 후자는 400ml 제품을 없애고 365ml 제품을 내놨다. 가격은 동일한 수준이다. 용량은 줄이되, 값은 똑같이 판매하면서 사실상 가격 인상 효과를 누리는 셈이다. 실제로 이번 조치에 따라 양사 모두 용량 조정 대상 제품 100ml당 가격이 소폭 오른 것으로 계산된다. 이번 기자수첩은 중국 시인 두보, 도연명, 육유 등이 쓴 한시를 각색해 양사를 향한 소비자들의 비판 여론을 담아낸 글이다. 〈편집자주〉

담당업무 : 건설·부동산을 중심으로 산업계 전반을 담당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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