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대해진 영향력, 불신은 최고조…대안은? [믿지 못할 여론조사]
스크롤 이동 상태바
비대해진 영향력, 불신은 최고조…대안은? [믿지 못할 여론조사]
  • 김자영 기자
  • 승인 2023.05.01 11:3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88개로 늘어난 여론조사기관…신뢰성은 담보 못해
‘떴다방식’ 부실·영세기관 문제 여전…품질 저하 우려
여론조사를 ‘정쟁 도구’로 활용하는 정치권 지적도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 김자영 기자]

여론조사는 순기능만 발휘된다면 민심을 전달해 정치인과 유권자 간 소통을 돕는 도구가 된다. 하지만 정확도를 담보하지 못하는 결과로 ‘불신론’도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상황이다. ⓒ 시사오늘 (그래픽 = 김유종 기자)

여론조사 홍수의 시대다. 한 주에도 10개 이상의 여론조사 결과가 나온다. 특히 선거철에는 지지율 등락을 수시로 보도하는 경마 중계식 기사가 쏟아진다. 

여론조사는 민심을 가장 빠르게 파악할 수 있는 수단이다. 선거 판세는 물론 정부와 각 정당에 대한 지지도도 가늠할 수 있다. 순기능만 발휘된다면 정치인과 유권자 간 소통을 돕는 도구가 된다. 

하지만 여론조사를 불신하는 목소리가 나오는 게 여전한 현실이다. 여론조사기관이 내놓는 데이터와 실제 결과가 다른 경우가 종종 발생한 데다, 정치권이 정파적 이해관계에 따라 결과를 취사선택하며 불신이 더 키워지기도 한다. 

 

‘여론조사 무덤’ 된 2016년 총선…실제 결과와 조사치 큰 차이 보여
이준석, 20대 대선 “6~8%p 차 승리” 말했지만 결과는 0.73% 접전


선거 관련 여론조사는 1987년 대선을 기점으로 대중화됐다. 대통령 직선제에 이어 지방자치제가 도입되며 수요가 커졌기 때문이다. 자연히 여론조사기관도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1980년대 10여 개에 불과했던 기관은 4월 24일 중앙선거관리위원회 등록 기준 88개까지 늘어났다. 프랑스나 일본이 10~20곳에 그치는 것과 비교하면 많은 수치다.

그러나 수적 팽창과는 별개로, 여론조사에 대한 신뢰도는 낮아졌다. 중요 선거 때마다 조사치와 실제 결과가 다르게 나타나면서다. 대표적인 사례가 19대·20대 총선이다. 19대 총선은 이명박 정부 5년 차에 치러졌다. 당시 여론조사기관과 전문가들은 박빙의 승부를 점쳤다. 투표율이 높을 경우 민주통합당이 우세할 거란 의견도 있었지만, 결과는 새누리의 압승이었다. 민주통합당은 127석에 그쳤고, 여당인 새누리당이 152석을 차지했다.

20대 총선에선 다수 여론조사기관이 ‘새누리당 과반 의석’을 예측했다. 170~180석 확보를 말하는 곳도 있었다. 결과적으로 새누리당이 122석에 그치는 이변이 일어났다. 민주당은 123석으로 원내 1당에 올라섰다. 당시 여론조사를 두고 엉터리라는 혹평이 이어졌다. 

20대 대선을 앞두고 진행된 여론조사 결과는 기관마다 들쭉날쭉한 양상을 보여 지켜보는 이들을 더욱 혼란스럽게 했다.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는 대선 사전투표 2일 차인 지난해 3월 5일 연합뉴스TV와 진행한 인터뷰에서 “블랙아웃 들어가기 전에 ARS 기준으로 (윤석열 후보와 이재명 후보가) 6~8% 차이 나는 조사 결과들이 나왔다. 실제로는 그보다 결과치가 벌어지지 않을까 기대한다”고 말했다. 결과는 0.73% 차 승리였다. 

한국갤럽은 2023년 3월 9일 투표 마감 직후 그림과 같은 예측치 제시했으나, 이후 조사 하루전 결과(3월 8일)는 선거기간 내 흐름과 판이하다고 판단해 공식적으로 제시하지 않는다고 공지했다. 현재 공식홈페이지엔 3월 7일에 실시된 조사결과만 나와있는 상태다. ⓒ 시사오늘 박지연 기자
20대 대선을 앞두고 진행된 여론조사 결과는 실제 선거 결과와 차이를 보였다. 한편, 한국갤럽은 2023년 3월 9일 위 그래픽 사진과 같은 예측치를 제시했으나, 투표 마감 이후 조사 하루전 결과(3월 8일)는 선거기간 내 흐름과 판이하다고 판단해 공식적으로 제시하지 않는다고 공지했다. 현재 공식홈페이지엔 3월 7일에 실시된 조사결과만 나와있는 상태다. ⓒ 시사오늘 박지연 기자

대선 종료 후 여론조사기관이 본 투표 직전 이틀간(2022년 3월 7~8일) 실시한 조사 결과를 내놨는데, <한국갤럽>은 윤석열 46%, 이재명 40% (격차 6%p), <리서치뷰>는 윤석열 52.1%, 이재명 44.5% (격차 7.6%p), 리얼미터는 윤석열과 이재명 후보에 대해 각각 50.2% vs 46.5% (7일), 50.2% vs 47.1% (8일)의 득표율을 예측했다. 실제 결과와 3.1~7.6% 차이가 나타났다. 

정세운 시사평론가는 지난 26일 <시사오늘>과의 대화에서 “20대 총선부터 각종 선거를 보면 여론조사 지표가 실제 결과와 다르게 나타남으로써 유권자 혼돈을 가중했다. 예측과 결과가 다르니 예측이 아닌 결과를 못 믿는 사태까지 왔다. 오죽하면 21세기에 부정선거 의혹이 끊이지 않고 나오겠느냐”라며 “대선 직전 지지율 우상향을 그리던 윤석열 당시 후보가 0.73% 차이로 이기는 결과가 나왔다. 이를 두고 ‘5일 사이에 민심이 변한 것’이라고 설명하기에는 오차가 크다”고 전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여론조사기관에 대한 관리 감독 방안을 마련해 규제를 강화해야 한다는 의견과 정파적집단을 포함한 정치권 내 자체 자정이 필요하단 목소리가 나온다. 

 

김현철 前여연부소장 “여조기관, 시간=돈…오염도 체크 어려워”
김행 “선거 때 급조된 기관, 전수 조사해 법적 책임 물어야”


‘여론조사의 무덤’으로 불릴 만큼 예측이 크게 빗나간 20대 총선을 기점으로 여론조사 불신론, 무용론이 극에 달하게 됐다. 정치권은 부정확한 선거 여론조사 폐해를 막기 위한 노력을 보여왔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는 지적이다.

<관훈저널> 2016년 여름호에 실린 ‘20대 총선 여론조사 현황과 개선방안’에 따르면 여론조사를 실시한 186개 업체 중 선거일 전 6개월 이후 등록된 기관이 96개 사에 달했다. 당시 사업자 등록 외에 별도의 규제가 없었기 때문에 선거를 앞두고 급하게 설립된 ‘떴다방식’ 업체가 과반이었던 것. 전문성 없는 조사기관 난립은 부정확한 여론조사 정보를 제공해 유권자의 혼란을 초래했다. 

2017년부터 선거여론조사기관 등록제가 시행되며 일정 요건을 갖춘 기관만 조사 결과를 발표할 수 있게 됐다. 이로써 난립 문제가 일정 부분 해소됐지만, 등록 요건 허들이 낮기에 부실·영세 기관 문제는 여전한 것으로 전해졌다. 

한국조사연구학회가 지난해 12월 중앙선관위 용역연구과제로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같은 해 9월 30일 기준 여조위에 등록된 기관 중 분석전문인력 수가 1명인 업체는 52곳으로 전체 57.1%를 차지했다. 2명인 업체는 15.4%, 3명 이상인 업체는 27.5%에 그쳤다. 등록기관 중 분석전문인력수 평균이 2.37명으로 전문성을 제대로 갖추지 못한 기관이 태반인 것이다. 

이 학회는 “부실·영세 기관이 존재하는 상황은 조사 품질 하락과 선거 여론조사 결과에 대한 신뢰성 저하, 이로 인한 사회적 갈등을 야기하고 있는 실정”이라고 지적했다. 문제 해결을 위해선 ‘등록요건 강화’, ‘등록취소 요건 확대’, ‘등록기관 의무교육 이수’ 등을 통해 현행 규제를 강화해야 한다고 봤다.

이명박 정부에서 여의도연구원 부소장을 지낸 바 있는 김영삼 전 대통령 차남 김현철 동국대 석좌교수는 25일 <시사오늘>과 통화에서 “과거엔 여론조사에 민심을 정확하게 반영하기 위해 충분한 시간을 갖고 대면조사와 전화조사 등 여러 조사방식을 차용해 가며 세심하게 진행했다. 여러 기관에서 조사된 결과를 두고 나눠 비교해 보기도 하며 신뢰성 있는 데이터를 가져왔다. 하지만 지금 진행되는 다수의 여론조사에선 시간이 곧 돈이다. 이틀에서 나흘 사이에 속전속결로 이뤄지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주말에 조사하느냐 주중에 하느냐 등 조사 시점이나, 방법에 따라 결과가 다르게 나타날 수 있는데, 현실적으로 그러한 오염도를 체크하기 어렵다”고 전했다.

김행 전 국민의힘 비대위원은 24일 <시사오늘>과의 통화에서 “다수 기관이 ARS로 전화를 돌려 비교적 쉽게 얻은 결과를 발표한다. 질문지 작성부터 결과 분석 사이에 조사를 오염시킬 수 있는 부분을 알고 컨트롤할 수 있는 실력 있는 기관들이 필요하다”며 “선거 때 급조됐다 끝난 후 없어지는 떴다방식 기관은 전수 조사해 법적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비대해진 여론조사 영향력…“객관적 참고 수준에 그쳐야”
“정치권, 정파적 이해관계 따라 취사선택 불신 조장 위험”


ⓒ 시사오늘 (그래픽 = 김유종 기자)
여론조사기관 관계자들은 정치권이 정파적 이해관계에 따라 본인이 속한 진영에 불리한 여론조사 결과를 부정하는 등 취사선택하는 행동이 불신을 더 키운다고 지적한다. ⓒ 시사오늘 (그래픽 = 김유종 기자)

반면 여론조사에 과도한 의미를 부여하는 정치문화에 문제를 제기하는 목소리도 들린다. 여론조사의 영향력이 비대해지고, 되레 여론이 호도된다는 우려다. 

김 전 비대위원은 “여론조사가 여론을 확인하는 데서 그친다면 괜찮다. 하지만 여론조사 결과가 여론을 되려 호도해, 왜곡된 여론을 만들고, 이것이 언론이나 1인 유튜브 매체 등 미디어에 퍼져 대한민국 정치 지형에 악영향을 미치는 경우가 생기는 것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 예로 더불어민주당 김의겸 의원이 제기한 청담동 술자리 의혹을 들었다. 김 전 위원은 “가짜뉴스임에도 불구하고 이야기가 퍼지고, 술자리 의혹을 ‘믿냐, 믿지 않냐’를 묻는 여론조사까지 등장했다. 의혹을 ‘믿는다’는 응답이 30%가 넘는 결과도 나왔다”며 “여론과 여론조사, 가짜뉴스 전파가 서로 영향을 미치는 악순환의 구조를 해결할 철저한 기준 마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어떤 사건에 대한 ‘사실 확인’을 거치기보다 여론조사로 ‘믿느냐, 믿지 않느냐’ 조사하는 상황은 ‘여론조사 만능주의’로 이어질 위험이 있다. 

김현철 교수는 “여론조사 만능 시대가 된 것 같다. 조사 결과는 객관적인 입장에서 참고만 하는 것이지. 선거 관련 공천 등 중요한 결정에까지 활용되는 것은 우려할 지점이다. 여론조사가 정부의 정책 기조를 흔드는 데까지 가면 위험하다”고 짚었다. 

여론조사기관 관계자들은 정치권이 정파적 이해관계에 따라 본인이 속한 진영에 불리한 여론조사 결과를 부정하는 등 취사선택하는 행동이 불신을 더 키운다고 지적한다. 

익명을 요구한 한 여론조사기관 관계자는 25일 통화에서 “요즘 공개되는 여론조사 결과들은 여조위에 의해 규제받고 있다. 글로벌 기준으로 보면 엄격한 수준이다. 다만 정치권이 여론조사를 정쟁을 위한 공격과 방어의 도구로 사용하는 것이 불신을 조장한다. 정치권이 여론을 부정하는 모습은 민심을 부정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그 자체가 바람직하지 않은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 관계자는 “조사 결과를 이용해 상대를 공격하거나 자신의 방어 도구로 쓰려는 태도를 없애는 것이 불신 해소의 첫걸음”이라고 말했다. 

안일원 <리서치뷰> 대표는 21일 <시사오늘>과의 통화에서 “특정 진영에 불리한 데이터가 나오면 여론조사 신뢰도를 지적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렇다고 해서 폄하하거나 오해를 증폭시키는 것은 바람직한 태도는 아니다. 동일한 기관 혹은 동일한 기간에 이뤄진 여론조사 결과의 추세가 비슷하게 나타날 때 그 추세와 경향을 받아들이면 된다”고 전했다. 

안 대표는 여론조사기관 신뢰도 평가를 시장에 맡겨야 한다고 주장했다. “미국·유럽의 주요 여론조사기관은 공표 기간이 없거나 한국보다 짧아서, 이들이 조사한 예측치와 개표 결과를 비교·분석하는 게 가능하다. 소비자들이 조사가 민심을 제대로 짚었는지 데이터의 타당성·신뢰성을 평가할 수 있게 되면, 터무니없는 수치를 제시하는 기관은 도태되고, 정확도 높은 기관은 살아남으며 자연스레 구분이 가능해질 것”이라는 게 안 대표의 설명이다. 

* 본 기사에 인용된 여론조사의 자세한 조사개요와 결과는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http://www.nesdc.go.kr)를 참조하면 된다.

담당업무 : 정치부 기자입니다.
좌우명 : 생각대신 행동으로 하자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