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북·중·러’ 차례다 [金亨錫 시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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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북·중·러’ 차례다 [金亨錫 시론]
  • 김형석 논설위원
  • 승인 2023.05.13 10:4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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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일 관계 정상화 물꼬는 터”
“국력 바탕에 尹 개인 역량도 한몫”
“북·중·러 관계 개선엔 거꾸로 부담”
“굴종 자세 끌어올리는 데 주력해야”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 김형석 논설위원)

윤석열 대통령과 1박2일 일정으로 한국을 찾은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지난 5월 7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한일 정상 확대 회담에서 악수하고 있다. ⓒ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과 1박2일 일정으로 한국을 찾은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지난 5월 7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한일 정상 확대 회담에서 악수하고 있다. ⓒ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이 미국에 이어 일본과의 정상회담을 마쳤다. 미흡한 점이 없지야 않지만, 양국과의 정상외교는 일단 성공적으로 평가할 만하다. 

꼬일 대로 꼬였던 일본과의 관계는 지난 3월 윤 대통령의 방일을 계기로 풀리기 시작했다. 이어 지난주 기시다 일본 총리의 답방으로 관계 개선의 물꼬가 트이게 됐다. 시작이 반이라고 하니, 윤 대통령의 말대로 양국 간 관계가 ’가장 좋은 상태’로 발전하기를 바란다. 우리와의 대표적 우방인 미국과는 윤 대통령의 의회 연설과 백악관 국빈 만찬을 통해 우호를 더욱 공고히 하는 분위기가 조성된 것으로 확인됐다.

우방과의 관계가 개선된 것을 당연시하기보다, 새삼스레 성공적이라고 평가하는 건 그동안 이들 국가와의 관계가 워낙 껄끄러웠기 때문이다. 이제 북한, 중국, 러시아 등과의 쉽지 않은 과제를 풀어나가야 할 차례가 됐다. 

일, 미와의 정상회담을 성공으로 평가하는 이유

선진국으로 발돋움한 대한민국의 국력이 미국, 일본과의 관계 개선에 바탕이 됐다고 보는 게 옳겠다. 거기에 윤 대통령의 ‘개인기’도 한몫했다. 그의 적극적이고 열린 자세를 평가한다. 친일 외교, 굴종 외교 등의 비난과 함께 후쿠시마 오염수, 독도 논란 등의 리스크를 안고 일본에 먼저 손을 벌려 일본의 화답을 끌어냈다. 이웃 나라이기 때문에 빚어지기 쉬운 이런저런 갈등으로 얼룩진 지난 몇 년간의 대일 관계는 이번 두 차례의 정상회담에 따라 일단 화해를 위한 문턱을 넘어섰다. 

국가 간의 관계에서도 중요한 건 어느 쪽이 먼저 손을 내밀어 화해의 이니셔티브를 쥐느냐 하는 점이다. 그 점에서 한일관계 개선은 당분간 한국의 리드로 진전될 것으로 전망된다. 대일 관계를 국내 정치에 이용하기 위해 지속해 졸렬하게 대처한 전 정권과 비교되는 지점이다. 전 정권과 비교하는 일이 바람직하지는 않지만, 워낙 답답하게 대일 관계를 꾸려와서 비교하지 않으려야 않을 수가 없다.  

미국과의 관계 개선도 비슷한 양상으로 진행되고 있다. 일각의 주한미군 철수 요구, 무역 분쟁, 투자 형평성 등 분야에서 갈등이 있어왔다. 거기에 북한, 중국과 끊임없이 알력을 빚어온 미국에 비해 우리가 어정쩡한 자세를 취해 미국 측을 섭섭하게 만들기도 했다. 미국이 ‘한국이 과연 온전한 우방일까?’라는 의심도 하게 만들었고, 그 결과 작은 틈새들이 생겨났다. 트럼프와 김정은 간의 짝짜꿍 쇼, 트럼프의 공공연한 한국 무시 언행, 전례 없는 미국 내 일부의 반한(反韓) 여론 조성 등 바람직하지 못 한 상황이 이어져 온 것이다. 

그런데 윤 정권 들어서 작은 변화가 일기 시작했다. 국가 간 문제에서 흔히 ‘별것 아닌, 사소한 사건’이 변환의 계기를 만들 듯, 한미관계도 몇몇 ‘작은 일’이 우호를 돈독히 하는 촉매제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꾸준히 역량을 쌓아온 전문 외교 인력들의 노력과 윤 대통령의 의회 연설, ‘백악관 공연’ 등이 다행스럽게도 그런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그러나 일본 및 미국과의 관계 개선이 북·중·러 등 지리적 인접국과의 관계에 걸림돌이 될 것 또한 외면할 수 없는 현실이다. 그래서 지금 시점에서는 북방 외교의 중요성이 강조되고 그 해법에 관심이 쏠리게 되는 것이다. 

대중(對中) 외교가 굴종의 본보기였다   

일부에서 대일 외교를 두고 굴종 외교 운운하는 건 전혀 이치에 맞지 않는다. 우리 5000년 역사 내내 지속돼 온 중국의 그 수많은 침탈 사례와 6·25 때의 중공군 참전, 1·4 후퇴의 쓰라린 기억 등은 굳이 소환할 필요도 없다. 한 나라의 정상이 자국을 찾았는데 그를 혼밥하도록 홀대한 그 무례함 만으로도 우선 중국의 대한(對韓) 시각의 실체는 확인된다. 

한국뿐만이 아니다. 대만을 비롯해 주변국에 대한 중국의 태도는 한 세기 전쯤의 대국(大國) 의식에서 한 치도 탈피하지 못하고 있는 형국이다. 자본주의를 접목하며 세계 시장에서 영향력 막강한 제조 강국으로 등극하자 더욱 기세등등해지고 있다. 한 마디로 지금 중국에는 미국을 빼고는 거의 ‘눈에 보이는 나라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초강대국 미국의 자세와 여러모로 비교되는 이른바 G2 국가 중국의 본모습이다. 그래서 많은 나라들이 지구촌 최강국이면서도 최소한의 예의는 잃지 않는 미국에 많이 기울고 있는 것이다.  

중국으로서는 이래저래 미국이 매우 불편할 수밖에 없고 그런 미국과 한국이 근래 들어 눈에 띄게 ‘친해지고’ 있으니, 우리를 고운 눈길로 볼 리가 없다. 그러니 우리로서는 대중 관계에서 다시 전처럼 굴종 외교의 길로 들어가든지, 힘들더라도 당당한 자세로 대하든지 택일해야 할 엄중한 상황이 된 것이다. 안보 문제든, 경제 문제든 어정쩡한 태도는 더 이상 중국과의 관계에서 통하지 않게 됐다. 
 
그래도 외교 분야에서는 반드시 일도양단식의 해법만 적용되는 게 아니라니, 윤 정부의 외교력에 일단 기대를 걸어본다. 정부의 외교 전문가, 경제 전문가들이 잘 알아서 하겠지만 필자 견해로는 힘들더라도 당분간 대중 무역적자를 감수할 각오는 돼 있어야 한다.

<연합뉴스>와 <연합뉴스TV>가 여론조사업체 메트릭스에 공동 의뢰해 지난 6∼7일 전국 성인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대통령 취임 1주년 여론조사' 결과, 각 분야의 평가 중에서 경제 분야에 대한 긍정 평가가 32%로 가장 낮았다고 한다.

경제 분야 의존도 때문에 중국의 압력을 견디기 힘들고 저자세 중국 외교의 유혹에 빠지기 쉽지만 그래도 국가적인 결기 면에서는 당당함을 잃지 않아야 한다고 본다. 국가의 결기 면에서야 젤렌스키의 우크라이나를 따라갈 수야 있겠나 마는 우리가 그래도 필사즉생(必死卽生)의 이순신 후손이 아닌가.  

중국과의 관계 설정이 북한이나 러시아와의 관계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점을 감안, 당분간은 유럽 국가 등과의 접촉부터 꾀해가며 상황 변화를 지켜보는 것도 한 방법이겠다.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윤석열

군 출신답지 않은 우유부단함을 빗대 시중에서 흔히 ‘물태우’라고 조롱하기도 했지만, 그는 과감하게 북방 외교의 길을 터놓은 대통령이다. 노태우 정권 때인 1990년에 러시아와 수교했고 이어 1992년 중국과 수교했다. 6·25 전란 때 우리의 적국이었으며 이후에도 줄곧 적대적 관계를 벗어나지 못했던 국가들이다. 

노태우 정권의 북방 정책 ‘노하우’는 기록으로는 남아있을지 모르지만, 정부와 민간 부문의 인적 자산은 이후 별로 승계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쿠데타 정권의 연장선에 있던 정권이라고는 하지만 필요하면 그때의 전문 인력들도 찾아내 활용해야 할 시점이 됐다.  

김영삼(YS)과 윤석열은 닮은 점이 참 많다. 집권 세력과의 ‘혈투’ 끝에 대통령 후보가 된 점이나, 뚝심 있게 개혁 정책을 밀어붙인(혹은 밀어붙이고 있는) 점, 심지어 다소 거만해 보이는 걸음걸이까지도 비슷하다. 

닮지 말아야 할 것까지 닮은 것도 있다. 자신감 넘치는 이들에게서 흔히 볼 수 있는 잦은 말실수다. 일본에 대해 ‘버르장머리를 고쳐놓겠다’고 했던 YS나 미국 현지에서 ‘XX’ 등의 말실수로 구설에 올랐던 윤 대통령이나 모두 대통령 언어엔 익숙하지 못했다. 대통령의 숙고하지 않은, 거친 말은 외교 분야에서 치명적인 약점이 되고 결국 국가적 손해로 돌아온다.

윤 대통령은 지금부터라도 습관화한 과거의 ‘검사 언어’를 버려야 마땅하다. 특히 북방 정책에 관한 언급에서, 윤 대통령의 ‘입’은 참모들을 많이 조마조마하게 할 것 같다. 최근에도 윤 대통령은 러시아와 관련해 굳이 안 해도 될 말을 해 외교 부문에서 감점받았다. 

김대중은 어쨌든 북한과의 관계 개선으로 노벨 평화상까지 받은 대통령이다. 남북 관계가 다시 악화된 건 냉정하게 말해 북에 퍼줬던 김대중 정권의 책임이라기보다는 받아 간 돈으로 핵을 개발하는 ‘사기 행각’을 벌인 북한 측과 그를 철저하게 감시하고 관리하지 못 한 이후 정권의 책임으로 봐야 한다. 

사람이 쉽게 변하지 않는다는데, 북한의 김 씨 왕조도 쉽사리 변하지를 않는 것 같다. 거기에 놀아나는 한국의 어설픈 평화주의자와 무뇌증 사회주의자들도 ‘김대중 성과’를 무너뜨리는 데 한몫하는 장본인들이다. 어쨌든 윤 대통령은 대북 정책에서 김대중 정권 때의 유경험자들로부터의 조언도 마다하지 말아야 한다. 

중국의 시진핑, 러시아의 푸틴 등 장기 집권 중인 북방 지도자들과 상대하는 일은 결코 만만찮을 것이고 유럽이 먼저냐, 중국이 먼저냐 하는 문제는 일본에서 열리는 G7 회의 분위기 등 주변 상황도 참고해야 할 것이다. 

정부 내 외교 전문가들이 판단할 일이지만 외교 전문가뿐만 아니라 해외 현지 상황에 밝은 기업들의 조언도 활용하는 것도 필수적이다. 구소련, 중국 등과의 공식 수교 전에 항상 우리 기업들이 먼저 현지에 진출했었고 정부는 특히 공산권 국가들과의 수교 이전에 기업들의 현지 정보를 많이 활용해 온 점을 기억해야 한다. 대한항공은 수교 전에 모스크바에 취항했었다. 

북방 정책의 성과는 국내의 얽히고설킨 많은 문제들의 동시 해법도 될 수 있다.

* 본 기사에 인용된 여론조사의 자세한 조사개요와 결과는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http://www.nesdc.go.kr)를 참조하면 됩니다.

김형석(金亨錫)은…

연합뉴스 지방1부, 사회부, 경제부, 주간부, 산업부, 전국부, 뉴미디어실 기자를 지냈다. 생활경제부장, 산업부장, 논설위원, 전략사업본부장 등을 역임했다. 

정년퇴직 후 경력으로 △2007년 말 창간한 신설 언론사 아주일보(현 아주경제)편집총괄 전무 △광고대행사 KGT 회장 △물류회사 물류혁명 수석고문 △시설안전공단 사외이사 △한국방송광고진흥공사(코바코) 사외이사 △ 중앙언론사 전·현직 경제분야 논설위원 모임 ‘시장경제포럼’ 창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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