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복원, ‘악마화’ 중단이 먼저다 [주간필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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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복원, ‘악마화’ 중단이 먼저다 [주간필담]
  • 정진호 기자
  • 승인 2023.05.13 20:23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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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와의 대화는 반발만 살 뿐…타협의 정치 문화 만들려면 상대 ‘악마화’해선 안 돼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 정진호 기자]

정치 복원을 원한다면 정치적 혐오 정서부터 없애야 한다. ⓒ시사오늘 김유종
정치 복원을 원한다면 정치적 혐오 정서부터 없애야 한다. ⓒ시사오늘 김유종

유진산은 중도통합론자였다. 그는 정치의 본질이 “정적과의 대화, 조정, 타협”이라고 생각했다. “서로 경쟁하되 협력할 것이 있다면 협력해야 한다”고 믿었다. 실천도 했다. 야당 핵심 인사였지만 여당과의 타협에 거리낌이 없었다.

하지만 그를 ‘타협의 정치인’으로 추억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대화 파트너가 박정희 정권이었기 때문이다. 당시 야당에게 군사독재정권은 ‘절대악’이었다. 교섭 대상이 아니었다. 많은 사람들이 유진산을 ‘사쿠라’라는 멸칭으로 기억하는 이유다.

이 사례가 주는 교훈은 명확하다. 대화와 타협도 ‘상대’가 중요하다는 거다. 상대가 악(惡)이면 대화도 굴종(屈從)이 된다. 타협도 야합(野合)이 된다. 투쟁의 대상과는 할 말이 없다. 쓰러뜨려야 할 경쟁자에게 양보란 있을 수 없다.

최근 정치권에선 ‘정치 복원’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거세다. 여야 할 것 없이 정치 복원을 말한다. 정우택 국회부의장은 “정치가 정상적으로 원상복귀 됐으면 좋겠다”면서 “정치라는 것이 서로 대화도 하고 소통도 해서 막힌 건 뚫고 해야 하는 것인데, 모든 것을 힘으로 하려거나 대화를 안 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도 “정치를 다시 복원해야 한다”며 “상대를 죽이려는 게 아니라 존중하고 대화하고 협치해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 2일 만난 여야 원내사령탑도 약속이나 한 듯 ‘정치 복원’을 최우선 과제로 언급했다.

옳은 주장이다. 해야 할 일이기도 하다. 그러나 선결과제가 있다. 서로를 악마(惡魔)라는 프레임에서 해방시키는 일이다. 지금 민주당 지지자들에게 윤석열 정부는 ‘검찰독재정권’이다. 국민의힘 지지자들에게 문재인 정부는 ‘공산주의정권’이다. 상대를 군사독재정권만큼이나 미워한다.

이런 상황에선 만남도 무의미하다. 검찰독재정권과 뭘 타협할 수 있을까. 공산주의정권과의 대화에서 뭘 얻을 수 있을까. 여기서 대화와 타협을 외치는 사람은 ‘제2의 유진산’이 되는 구조다. 민주주의가 찾아왔는데도, 여전히 통합론자는 ‘사쿠라’가 된다. 겉은 민주당, 속은 국민의힘이란 뜻의 은어인 ‘수박’이라는 표현은 이런 현실을 집약해 보여준다.

정치 복원의 시작은 ‘대화’가 아니다. ‘타협’이 아니다. 상대가 ‘소멸의 대상’이 아니라 정치적 파트너라는 걸 인정하는 게 먼저다. 서로가 ‘사기꾼’이, ‘독재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지지자들에게 인식시키는 게 출발점이다. 민주당도 국민의힘도 ‘타도’해야 할 군사독재정권이 아니라 ‘협력’해야 할 대상이라는 걸 알려야 한다.

진정으로 ‘정치 복원’을 원한다면 지금 당장 지지자들 앞으로 나서라. 상대 진영이 그저 생각이 다른, 대화와 설득의 대상임을 설파하라. 그 과정이 없다면, 정치 복원은 불가능하다. 혐오의 땅에선 절대 타협이라는 꽃이 피지 않는 법이니 말이다.

담당업무 : 국회 및 국민의힘 출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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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자환 2023-05-14 00:49:45
이런게 진짜 좋은 기사지. 청와대 출입이 되는 초특급 기자라서 그런지 10년만에 제대로 된 기사를 다 보내 진짜 기자는 이런 기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