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빙 선거, 득표수 동률이면 당선인은 누구? [정진호의 친절한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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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빙 선거, 득표수 동률이면 당선인은 누구? [정진호의 친절한뉴스]
  • 정진호 기자
  • 승인 2023.05.15 22:4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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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은 국회에서 결정…총선·지선은 연장자가 당선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 정진호 기자]

대통령 선거에서 동률이 나오면 국회에서 다수표를 얻은 자가 당선인이 된다. ⓒ연합뉴스
대통령 선거에서 동률이 나오면 국회에서 다수표를 얻은 자가 당선인이 된다. ⓒ연합뉴스

지난해 3월 10일 0시 32분. 제20대 대통령선거 중간 개표 결과,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와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의 득표율이 48.29%로 동률을 이뤘습니다. 그 순간. 함께 개표를 지켜보던 지인이 농담처럼 말했습니다.

“이러다가 득표수 동률 나오는 거 아니야?”

아주 낮은 가능성이지만, 불가능한 얘기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면서 동시에 궁금증도 생겼습니다. ‘대통령선거에서 득표수가 동률이면 어떻게 되는 거지?’

실제로 우리 공직선거법에는 대통령선거에서 득표수가 동률일 경우 당선인을 결정하는 방법이 나와 있습니다. 공직선거법 제187조 제2항은 ‘최고득표자가 2인 이상인 때에는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통지에 의하여 국회는 재적의원 과반수가 출석한 공개회의에서 다수표를 얻은 자를 당선인으로 결정한다’고 규정합니다.

그러니까 득표수가 동률인 경우 국회의원들이 표결로써 당선인을 정한다는 거죠. 대통령선거에 들어가는 시간과 비용을 고려하면 현실적으로 재투표는 어려우니, ‘국민의 대표’들인 국회의원들이 투표로 대통령을 뽑는 건 합리적인 대안으로 보입니다. 미국 역시 대통령 후보들이 같은 수의 선거인단을 획득하면 연방하원 의원들로 하여금 최종 당선인을 결정하도록 하고 있죠.

문제는 국회의원선거·지방선거입니다. 국민을 대리할 수 있는 기관이 존재하지 않는 상태에서 치러지는 이 선거는 대통령선거와 같은 방식으로 당선인을 정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바로 여기서 ‘논란의 규정’이 등장하는데요. 공직선거법 제188조 제1항과 제190조 제1항, 제191조 제1항에는 공통적으로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최고득표자가 2인 이상인 때에는 연장자를 당선인으로 결정한다.’ 국회의원선거와 지방선거에서 후보자 간 득표수 동률이 나오면, 나이가 많은 사람이 당선된다는 겁니다.

이런 황당한 규정이 만들어진 이유는 제정 당시의 시대적 배경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우리 선거법에 연장자 우대 조항이 명시된 건 무려 73년 전의 일이기 때문입니다. 1950년 4월 12일 시행된 ‘국회의원선거법’ 제76조에는 ‘득표수가 동일한 의원후보자가 2인 이상 있을 때에는 연장자를 당선인으로 결정한다’는 내용이 포함됐는데요. 유교적 가치관이 팽배했던 시대 상황상, 제정 당시에는 별다른 반발이 없었던 것으로 전해집니다.

그렇다면 실제로 이 조항이 적용된 사례가 있을까요. 대통령선거와 국회의원선거에서는 아직 전례가 없습니다. 그러나 지방선거에서는 무려 11번이나 ‘나이’로 승패가 나뉜 사례가 있었습니다. 당장 지난해 지방선거 전라남도 나주시 기초의원 마선거구(혁신도시 빛가람동)에서도 더불어민주당 김강정(60)·김명선(44) 후보가 나란히 1476표를 얻어 동률을 이루는 일이 발생했죠. 물론 당선자는 나이가 더 많은 김강정 후보였고요.

다만 이 규정의 생명력이 그리 길 것 같지는 않습니다. 사회적으로 ‘연장자 우선’ 조문을 ‘연령차별’로 인식하는 분위기가 강해졌기 때문입니다. 헌법재판소와 국가인권위원회 등도 연장자 우선 조항에 대해 제동을 거는 듯한 판정을 연달아 내놓고 있습니다. 더불어민주당 송재호 의원은 지난해 11월 연장자 우선 조항을 폐기하고 결선투표와 추첨으로 당선인을 결정하도록 하는 공직선거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하기도 했습니다.

실제로 대다수 해외 선진국들 역시 추첨이나 보궐선거로 당선인을 결정합니다. 영국, 독일, 스페인, 스웨덴, 스위스, 일본 등은 추첨제를 택하고 있고, 캐나다는 보궐선거로 당선인을 뽑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도 1950년 법 제정 당시와는 ‘공정’에 대한 시각이 많이 달라진 만큼, 연장자 우선 조항 자리에 추첨이나 보궐선거 등의 대안이 들어설 가능성이 높다는 게 대체적인 시각입니다.

담당업무 : 국회 및 국민의힘 출입합니다.
좌우명 : 인생 짧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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