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 죽어나는데 “규제 완화” 외친 윤석열 대통령·기업인 [기자수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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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 죽어나는데 “규제 완화” 외친 윤석열 대통령·기업인 [기자수첩]
  • 박근홍 기자
  • 승인 2023.05.24 11:1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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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오늘·시사ON·시사온= 박근홍 기자]

"중소기업들은 규제 혁신이 꼭 성공하길 기대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강조한 것처럼 기업과 정부가 원팀이 돼야 한다. 더 빠른 속도로 규제를 해결해 달라."

"반시장적 경제 정책을 시장 중심 민간주도, 기업주도 경제 정책으로 전환하기 위해 지난 1년간 최선을 다했다. 끊임없이 혁신하고 도전하고 성취할 수 있도록 정부가 제도적 여건을 잘 마련하겠다."

지난 23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잔디마당에서 열린 중소기업인대회에서 김기문 중소기업중앙회장과 윤석열 대통령이 각각 개회사, 격려사를 통해 주고받은 대화다. 해당 행사에는 정부 관계자와 중소기업인, 청년 벤처기업인을 비롯해 삼성, SK, 현대자동차, LG, 롯데, 한화, GS, 신세계 등 10대 재벌 대기업 총수 등 500여 명이 참석해 치맥(치킨·맥주)을 즐기며 소통했다. 이 자리에서 김 회장은 중기중앙회가 전날 공개한 중소기업인 설문조사 자료를 내세워 '중대재해처벌법 완화', '주 최대 69시간제 도입' 등 노동개혁을 촉구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에 윤 대통령이 '제도적 여건 마련'을 약속하며 화답한 것이다.

그러나 윤 대통령과 기업인들이 외친 '규제 완화' 구호는 현실과 상당히 큰 괴리가 있다. 이들이 치맥을 먹으며 웃고 떠들기 전날인 지난 22일 서울 강남구의 한 아파트 재건축 현장에선 25세 청년 노동자가 7m 아래로 추락해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같은 날 오전에는 한화 건설부문(구 한화건설)이 시공하는 세종-안성 고속국도 공사현장, DS건설이 시공하는 울산 울주군 국도이설 공사현장에서 각각 63세, 55세 하청 노동자가 토사에 끼고, 쓰러지는 나무에 머리를 맞아 목숨을 잃었다.

지난 19일엔 서울 여의도 한강변에서 LG디스플레이에서 팀장으로 일하던 40대 노동자가 숨진 채 발견됐다. 경찰은 그가 극단적 선택을 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유족과 동료들은 그가 생전에 과중한 업무 압박, 반복되는 야근 등으로 스트레스를 받아왔다고 증언한 것으로 전해진다. LG디스플레이는 직원 출입 기록을 확인한 결과 그가 사망 당일 새벽 3시에 출입한 사실이 있다고 밝혔다. 이에 앞선 지난 3월에는 동원그룹 계열사인 동원로엑스의 경기 이천 물류센터에서 29세 청년 사무직 노동자가 지게차를 몰다가 내리막길에서 넘어져 지게차에 깔려 목숨을 잃는 사고가 발생했다. 그는 지게차를 운전해선 안 되는 직무를 수행하고 있었고, 해당 지게차는 경사로에서 운행돼선 안 되는 제품이었다.

누군가의 아들과 누군가의 아버지가, 꿈 많고 꽃다운 시절에, 가장의 책임을 짊어진 시기에, 취약한 근로여건과 중대재해로 인해 안타깝게 세상을 떠난 것이다.

규제 완화를 통해 기업의 숨통을 틔게 함으로써 장기화 조짐을 보이고 있는 글로벌 경기 둔화 흐름을 돌파하고자 하는 윤석열 정부의 의지, 친기업 기조를 앞세워 차기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지지층을 결집하려는 윤석열 정권의 전략은 충분히 납득할 수 있는 이성적 판단이다. 고물가와 고금리로 경영환경이 급격히 악화된 상황에서 조금이나마 생산성을 제고하고자 하는 기업인들의 규제 완화 촉구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합리적 요청이다.

다만, 그 이성적 판단과 합리적 요청은 매일 같이 죽어 나가고, 갈려 나가는 국민들의 처지가 전혀 반영되지 않았기에, 국민 대다수 입장에선 '반사회적 정책'으로 받아들여질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기업이 끊임없이 혁신하고 도전하고 성취할 수 있는 제도적 여건뿐만 아니라, 국민이 안전하게 일하고 휴식을 취하고 행복을 추구할 수 있는 제도적 여건을 마련하는 데에도 윤석열 정부가 관심을 갖길 바란다.

ⓒ 제공=대통령실(위), pixabay(아래)
ⓒ 제공=대통령실(위), pixabay(아래)

 

 

담당업무 : 건설·부동산을 중심으로 산업계 전반을 담당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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