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쇄신파와 안철수 현상④> 김부겸, ˝끈질긴 도전 보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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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쇄신파와 안철수 현상④> 김부겸, ˝끈질긴 도전 보여야˝
  • 윤진석 기자
  • 승인 2012.11.25 12:3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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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장파가 찻잔 속 태풍에 그치지 않으려면…˝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윤진석 기자]

대선정국을 맞아 정치개혁이 큰 화두로 자리 잡았다. 지난 대선 키워드가 ‘경제’였다면, 이번 대선은 안철수 현상으로 대변되는 새 정치이다. 정치권은 안철수 지지율을 통해 국민 갈증이 어느 정도 수위인지를 체감했다. 대선주자들은 安의 지지율이 1년 넘게 유지되자 발등에 떨어진 불을 끄듯 정치개혁을 위한 해법마련에 분주했다. 18대 대선레이스는 그렇게 흘러왔다.

그런데 따지고 보면 정치개혁 요구는 늘 있어왔다. 정치권 안에서는 그간 혁신을 부르짖었던 소장파들이 늘 있어왔던 것. 하지만, 정치개혁을 바라는 국민 기대는 높아진 반면, 오늘날의 소장파는 어딘지 풀이 죽은 모습이다. 일각에서는 쇠락의 길을 걷고 있다고 지적하기도 한다.

대체 이 같은 이유는 무엇일까. 소장파는 제 길을 잘 갈 수 있을까. 어떻게 해야만 소장파들의 목소리에 힘이 실릴 수 있을까. 이와 관련, <시사오늘>은 지난날의 대표 소장파였던 민주통합당 김부겸 전 의원을 통해 소장파의 한계와 희망을 가늠해봤다. 김 전 의원과의 인터뷰는 지난 20일 그가 공동선대위원장으로 있는 영등포당사 문재인 대선후보 캠프에서 진행됐다. <편집자 주>

ⓒ시사오늘 권지예 기자.
김부겸 전 의원은 1999년 한나라당 소속 의원이던 시절 30·40대 신진개혁정치인그룹인 ‘미래를 위한 청년연대’를 주도했다. 소장파 최전방에 서서 정치개혁을 외치던 시절이었다. 하지만 앞에 놓인 벽은 높았고 난관에 봉착했다. 소장파들이라면 여야 막론하고 한번쯤 겪는 ‘쓴 맛’이다. 김 전 의원은 벽을 넘지 못하고 문을 박차고 나온 경우다. 먼저, 소장파 핵심그룹으로서 어떤 한계를 느꼈는지 들어봤다. 

“새로운 목소리가 기존 질서에 충격을 주거나 혹은 바꿀 정도가 되려면 사람도 있어야 하고 국민이 믿고 따를만한 시대정신도 있어야 한다. 그런데 큰 정당 내 소장파들은 여러 면에서 지원을 받지 못했다. 때문에 찻잔 속 태풍으로 그치고 말았다. 저를 비롯한 김성식 김영춘 등이 한나라당내에서 실패한 케이스라면 김문수 이재오 같은 분들은 성공한 케이스다.”

김 전 의원은 뿌리가 민주당이다. 1997년 통합민주당 시절 조순 서울시장 후보가 신한국당 이회창 대선 후보와 손을 잡고 ‘조순 총리, 이회창 대통령’이라는 합의를 도출해내지 않았다면 한나라당에 합류할 일은 없었을 거다.

- 궁극적으로 한나라당 내에서는 개혁이 왜 힘들었는지.

“한나라당 주류 세력들과는 마찰이 있을 수밖에 없었다. 가슴에 품었던 꿈과 당이 표방하는 정강정책 및 정체성 사이에서 괴리감이 생겼다. 좋은 뜻을 갖더라도 그 당의 본질을 바꿀만한 힘은 없었다. 특히 제 경우는 자꾸 부딪쳤다. 대북송금 특별검사 반대, 국가보안법 개정 내지 폐지 주장, 미국이 하려고 했던 MD(다국적미사일방어체제) 참여 반대 등 사사건건 당 내 주류 생각과 부딪쳤다. 그러면서 점차 시달렸고 정치적 왕따가 됐다. 결국 못 견딘 거다.”

- 그래도 미래연대 대표로 최고위원 경선에 출마하는 등 신진개혁인사로 주목받은 때도 있었다. 
     
“거기까지는 그랬다. (사이) 갈등이 첨예하게 된 건 2002년 대선을 겪고 난 뒤다. 당시 한나라당 소장파들은 왜 패배했는지 국민은 어떤 걸 요구하는지 거듭 문제제기했고, 이때부터 자꾸 어긋나기 시작했다. 저희의 주장은 근본적인 수술을 통해서 한나라당을 바꾸자는 거였다 반면, 당내 주류 세력은 노무현 정부가 성공하지 못할 거라는 관측에만 집착했다. 결국 노무현 탄핵 역풍을 자초한 격이었다.”

"YS, 개혁정신 점차 약(弱)"

순간 민주세력인 김영삼 전 대통령(YS)계와 손을 잡는데 공고히 했다면, 주류인 민정당계를 상대하는데 수월하지 않았을까하는 아쉬움이 들었다. 이에 대해 묻자 김 전 의원은 목소리에 좀 더 힘을 줬다. 뭔가 노선이 다름을 강조하는 듯했다.

“YS는 자기 세력이 있었으니까 버틸 수 있었다.(노태우 세력과 김종필 세력과의) 맞장싸움에서 이길 수 있었다. 권력의지도 워낙 강했기 때문에 통일민주당에서 그쪽으로 가서도 대통령이 됐다. 이후 하나회를 척결했고, 금융실명제 같은 일부 중요한 개혁과제를 이룬 것은 인정한다. 하지만 지역주의 갈등은 해결하지 못했고 개혁정신도 약해져갔다. 민주주의 브랜드를 가지고 닭 모가지를 비틀 정도로 강렬한 선구자적인 면모를 보였어야했는데 그러지 못했다.”

2003년 김 전 의원은 이우재 이부영, 안영근, 김영춘 등과 함께 한나라당을 탈당하기에 이른다. 이후 독수리 5형제라 불렸던 이들은 '지역주의 타파 국민통합연대'를 결성한 데 이어 열린우리당 창당에 기여, ‘개혁’과 ‘전국정당’이라는 결정적 명분을 줬다.

ⓒ시사오늘 권지예 기자.
- 당시 소장파로서 열린우리당 시절을 평가한다면. 

“열린우리당을 주도한 386세력은 너무 쉽게 커버렸다. 자기 실력을 갖추기 전에 ‘대통령 탄핵’ 역풍을 계기로 정치적 대박을 맞았다. 총선에서 150석이 넘는 당선을 할 정도로 자기성찰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부족한 상황에서 덩치가 너무 커진 거다.

결국 그것이 독이 된 꼴이 됐다. 내부에서 중심을 잡지 못하고 스스로 좌충우돌하다가 좌초됐다. 서서히 성장했다면 주류로 자리 잡을 수 있었을 텐데…열정은 있었지만 결국 현실에 타협해버렸다. 사람들은 현실에서 문제가 있으면 그 문제를 제기하고 변화시키려고 한다. 그런 점에서 현실에 대한 치밀한 이해와 고민이 부족했다고 본다.

또한 정당성 확보 등 다양한 노력들을 병행해야 했는데 시대정신만 믿고 교만한 측면도 있었다. (사이) 제 경우는 그 당시 사립학교법 개정, 국가보안법 폐지, 과거사 관련법 정비 등을 여야 간 합의를 도출해내기 위해 고군분투했지만, 결과적으로 실패했다는 점이 안타까움으로 남는다.”

열린우리당 초반 독수리 5형제가 보여줄 활약에 기대를 거는 이들이 많았다. 하지만 이 안에서조차 독수리5형제는 비주류로 전락했다는 지적이 많다. 대체 열린우리당 개혁에 실패한 이유는 무엇일까. 

“왜 활발하지 못했냐. 독수리5형제가 날개 짓을 못하고 왜 서서히 소멸해갔냐. 그런 이야기인데 당사자로서 이건 답변하기 어렵다.”

- 한나라당에서는 강경파, 민주당에서는 온건파로 불렸다.

“그게 바로 우리 한국정치가 처한 모습이다. 한나라당에 있을 때는 그 사람들이 보기에 저는 제일 왼쪽에 있었다. 그런데 여기 오니까 오히려 오른쪽에 있다고 본다. (사이) 제 경우는 당내를 예로 들면, 저와 생각이 다른 분들은 잘 못 봤다. 그때그때 정치적 지향점이 다른 분들도 있지만…그렇다고 제 생각을 고쳐야 될 만큼 우리당과 떨어져 있다거나 이런 생각은 해본 적이 없다.”

김 전 의원의 성향은 중도개혁이다. 정치권에서는 중도 성향의 온건파가 점차 부각될 거라고 전망한다. 김 전 의원도 이에 동의하는 눈치였다.
“국민이 볼 때 중도노선과 온건이 왜 귀하고 왜 필요한지를 점점 아는 것 같다.”

 - 여야 떠나서 소장파가 제 역할을 하려면.

“용기 있게 자신들만의 목소리를 낼 줄 알아야 한다. 기존 질서에 순응 하는 목소리를 내면 안 된다. 자신들이 잘할 수 있는 분야에서 짠맛의 소리를 내고 조직 내 긴장감을 줘야 한다. 때로는 집단적으로 문제제기가 가능하도록 치열하게 공부도 해야 한다. 겸손과 소통을 통해 국민과의 대화 채널을 만들고 나름의 과제도 던져야 한다.

물론 여건상 개혁 세력들이 성장할 수 있는 풍토가 마련되지 못한 것도 사실이다. 신진세력이 성장하려면 이들의 끈질긴 도전을 내치지 않고 보호해주는 분위기 마련도 중요하다. 하지만, 그때까지 누군가는 계속 도전해야 한다. 기존 질서에 안주하지 않고 계속 국민에게 새로운 목소리를 내서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 오늘은 A가 실패하고 내일은 B가 실패하겠지만 BB쯤 가면 국민으로부터 열렬한 지지를 받는 이가 나올 거고 그분의 그림으로 세상을 조금씩 바꿔나갈 거로 본다. (사이) 어찌 보면 안철수 후보에게 강한 지지를 보내는 것도 그런 기대 때문일 거로 본다.”

ⓒ시사오늘 권지예 기자.
- 소장파들이 주류로서 성공하려면.

“하루아침에 지도자가 되는 건 아니다. 정치가 간단한 게 아니라는 걸 국민은 본능적으로 안다. 이 때문에 학생 또는 청년 때부터 치열한 훈련을 거쳐 정치지도자로 성장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정당 내 만들어야 한다. 유럽은 이런 과정을 통해 40대 지도자를 배출한다. 영국의 토니블레어 전 총리나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 등을 보면, 이들 모두 정당 안에서 20년 이상 치열한 검증 과정을 거친 경우다. 안타깝지만 현재 우리 정치권은 이런 시스템을 갖추고 있지 못하다.”

김 전 의원은 세대교체를 주장해왔다. 어느 정도 지나야 세대교체가 가능한지 물었다.

“정치권 세대교체가 되려면 당에 시스템을 만들고 투자하게 되더라도 시간이 걸린다. 국회의원 세 번 기간인 12년 정도 걸릴 거로 본다.”

- 40대 기수론으로 주목받은바 있다. 40대 기수론은 여전히 유효한지.

“이건 유효 무효의 얘기할 게 아니다. 문제는 40대 지도자들이 커온 징표가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물론 잠재력은 충분히 있다. 굳이 따지자면 안철수 후보도 막 40대 졸업하신 분 아닌가. (사이) 40대 기수론라고 한다면 기존질서에 편입되지 않고 자기들만의 목소리와 행동을 통해 그만큼 국민을 설득하는 노력이 있어야한다. 사실 50대인 우리나이쯤 되면 기존 질서와 타협하고 싶은 관성이 생긴다. 그렇다고 자연수명으로서의 40대에 방점을 찍는 건 아니라고 본다. 새로운 가치와 비전을 던지는 40대. 그런 게 중요하지 않을까.”

- 대표 소장파인 남경필 의원, 원희룡 전 의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그분들은 다음의 보물들, 다음의 진주들이다. 당도 그분들한테 역할을 요구할 거라고 본다. 자신들의 칼에 스스로 베인다는 표현처럼 본인들 스스로 근본적으로 문제점을 파헤치고 날카롭게 하는 등 나름으로 준비하고 있을 거로 본다. 어차피 한국의 보수정당이 없을 수는 없지 않나. 노블레스 오불리주가 가능한 합리적인 보수를 국민은 기다린다고 본다.”

- 그간 정치 개혁을 외쳐왔던 김 전 의원이 얻은 답은 무엇인지.

“치열한 문제인식 끝에 내린 답은 정말로 개혁을 하려고 한다면, 겸손하고 끈기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정치인은 마지막까지 국민을 위해 복무하는 것이 존재이유다. 자기 인생을 거는 용기가 필요하다. 국민은 정치인이 꾸준하게 소통하고 결합하려는 노력을 보이지 않으면 믿지 않는다.
저는 국회의원을 세 번 했다. 세 번이나 국민이 손을 들어줬다면 제가 받은 만큼 보답하고 떠나야 한다고 본다. 그런 점에서 우리 당을 전국정당으로 만들고, 지역주의를 해소하는데 일조하는 게 제 사명이자 역할이 아닐까 싶다. 지역정당에 갇혀있으면 쉽게 정치하려는 사람들이 생겨나고 만다. 이런 문제점들에 맞서 정면으로 부딪치고 돌파하든 쓰러지든 공동체 힘으로 극복해나갈 거다.”

김 전 의원은 민주당내 얼마 안 되는 TK(대구경북)지역 출신이다. 지난 411 총선 때부터 대구 수성갑에 출마,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의 아성에 도전했다. 민주당이 호남당이라는 지역적 한계를 극복하고 전국정당이 되려면 전통적인 여당 텃밭에 도전하는 걸 겁먹지 말아야 한다는 것, 그리고 경기 군포에서 3선 의원이나 한 만큼 기득권을 내려놓고 척박한 곳으로 알아서 갈 줄 알아야 한다는 게 그의 사명인 듯했다. 박근혜 후보와 대적한 첫 도전. 결과는 낙선으로 끝났다. 하지만, 분명한 성과는 있었다.

“여당 텃밭 도전을 통해 40%의 득표를 이룬 점은 일종의 계기를 마련한 거로 본다. 앞으로도 계속 노력할 거다. 제가 이사를 안 가고 이 지역에 계속 있는 것도 진심을 다해 신뢰를 얻기 위함이다.”

ⓒ시사오늘 권지예 기자.
- 국민이 바라는 정치개혁은 무엇이라고 보는지.

“국민이 바라는 개혁은 기득권을 내려놓는 것이다. 그러려면 정치권부터 기득권을 내려놔야 한다. 우리나라는 정치진입장벽이 너무 높다. 중앙당에서 공천권을 쥐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경우는 당에 공천권 없이 상향식 예비선거로 후보자를 정한다.”

- 최우선 정치개혁 과제로 꼽고 있는 것은.

“제 정치인생의 기본적인 화두는 상생이다. 상생을 하는데 가장 큰 걸림돌은 지역정당 구조라는 점이다. 아직도 영남은 새누리당, 호남은 민주당 일색이다. 이처럼 지역정당이 워낙 견고하니까 다들 자기 지역만 움켜쥐고 있다. 지금 상태는 면허증 발급을 독점하는 것과 같다. 현재 우리나라 경우는 국회의원이 되려면 영남은 새누리당, 호남은 민주당에 들어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국민은 이런 모습이 싫은 거다. 음습하고 잘못된 관행들이다. 결국 최대 화두는 지역주의 괴물이랑 싸워 이기는 것이다. 한 정당이 30년 간을 독점적으로 지배하게 되면 지역민 중에서도 반감이 생기기 마련이다. 이걸 깨야 한다. 정치권에서 지역 내 독점권을 내려놔야 한다.”

"DJ 대신 명분 선택한 ‘통추’ 자부심 커”

김 전 의원의 ‘지역주의 넘어서기’ 행보는 오래전부터 형성된 줄기였다. 맥락을 이해하려면 국민통합추진위(통추) 결성 당시로 거슬러 올라가야 된다.

“돌이켜보면 16~17년 전 얘기다. DJ(김대중) 정계 복귀 후 민주당은 새정치국민회의의 분당사태를 맞았다. 선택의 기로에 섰지만, 또다시 지역당을 할 수는 없었다. 전국적인 야당을 건설해야만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었다. 이런 생각 끝에 1995년 김원기 노무현 제정구 등과 통추를 결성해 지역주의 극복을 위한 텃밭 마련에 노력했다. 당시 제가 막내였다.(웃음) 통추는 현실 기득권에 안주하지 않은 싱싱한 도전세력의 모임이었다는 점에서 지금도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시사오늘 권지예 기자.
대화는 자연스레 故 제정구 전 의원과의 인연으로 넘어갔다. 김 전 의원에게 제정구란 존재는 삶의 나침반인 듯했다. 민주당 시절 분당의 강요 속에서도 당 잔류를 선택하고 통추를 결성한 것도 제정구 전 의원의 영향이 컸다고 했다.  

- 중대사를 결정할 때 故 제정구 전 의원이 해준 말을 떠올린다고 하던데 어떤 얘기였는지.

“민주당이 분당할 당시 새정치국민회의를 만든 DJ를 따라가면 국회의원으로 길이 보장됐다. 특히 수도권은 DJ 따라가지 않으면 국회의원이 되기가 어려웠다. 이 때문에 고민하고 있는데, 제정구 선배가 ‘약삭빠르게 DJ를 따라가는 것은 명분을 저버리는 거 아니냐’고 했다.

초선으로 있다가 죽으나 재선 삼선 하고 죽으나 국회의원 한 것은 마찬가지라는 거다. 초선을 하더라도 의미 있는 초선을 하고 장렬히 전사하자는 얘기였다. 40세가 넘으면 현실을 찾아 실리를 찾기도 해야 하지만, 그 전에는 명분을 따라가자고 제정구 선배는 말했다. 물론 명분을 택했다고 해도 그 결과가 다 옳은 것은 아니다. 적어도 약삭빠른 행동은 하지 말라는 거다.”

“김성식과 정치쇄신 심층 고민”

김 전 의원은 50대다. 이제는 명분보다 실리를 보는지 궁금했다.

“(앞서) 제가 그렇게 일갈했지만, 부인할 도리가 없다. 이제는 이상을 가지고 세상 문제를 풀어가려하기보다는 현실에 주어진 과제를 어떻게 하면 풀어낼 것인가가 더 큰 고민이다. 우리 모두에게 이익이 되는 게 뭘까 이런 고민으로 바뀐 듯하다. 이러다보니 시야 면에서 보면, 좀 좁아진 게 아닌가싶다. (사이) 그런 고백을 할 수 있겠다.”

다시 현안 얘기로 돌아왔다. 최근 정치쇄신이 화두로 떠오르면서 김부겸 김성식 전 의원이 주목받는 분위기다. 김 전 의원은 문재인 캠프 공동선대위원장을 맡았다. 안철수 캠프 선대본부장인 김성식 전 의원과는 얼마 전까지 6인회 활동을 같이 했다.

“6인회를 한 건 정치쇄신이라든가 사회현상이라든가 이런 부분에 대해 심층적으로 공부해보자, 그런 취지에서 김성식 전 의원과 일주일마다 만나서 공부해왔다. 그러다 김성식 전 의원은 무소속이니까 안 후보를 돕게 된 것 같다. 김 전 의원와 안 후보는 부산고등학교 후배간인 걸로 안다. (사이) 그간 우리는 기존질서에 안주하지 말자, 기득권을 내려놓자고 지속적으로 문제제기했다. 이번 대선에서 정치쇄신이 거듭 화두로 떠오른 건 나름 보람된 일이다.”

- 문재인-안철수 단일화 중단 이후 이해찬 당대표가 사퇴했다. 지도부 사퇴는 당내 쇄신파의 줄기찬 요구이기도 했다. 

“이번 지도부 사퇴는 (쇄신파와의) 당권 다툼과는 거리가 멀다. 쇄신파가 지도부 사퇴를 요구했지만, 그간 문 후보는 지도부 사퇴를 막아왔다. 그럼에도 이번에 이해찬 대표 등 당 지도부가 사퇴한 건 그야말로 희생을 한 거로 보면 된다. 단일화만큼 귀중한 것은 없는데 스스로 걸림돌이 된다고 느끼니까 단일화 재협상 물꼬를 트기 위해 희생양이 된 거다. 이로써 민주당발 기득권을 내려놓기 위한 구체적인 움직임은 시작됐다.”

- 안철수 후보는 계파 이기주의 때문에 지난 총선이 실패했다고 말했다.

“그 전에 정치지형에 대한 인식을 정확하게 짚을 필요가 있다. 보수와 진보는 51:49라는 팽팽한 긴장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이처럼 보수가 위다. 그런데도 현 정권에 대한 불만이 많으니까 우리가 이길 것이다? 천만의 말씀이다. 당시에도 저는 절대로 쉽지 않은 선거라고 주장해 왔다. 더욱이 박 후보가 쇄신하는 사이 우리는 정치쇄신을 놓친 측면이 있었다. 국민에게 뭔가 어필할 수 있는 답안을 도출해내지 못했다. 중간에 몇몇 후보 관련, 공천 문제가 터졌을 때도 제대로 답할 수 있는 적절한 타이밍을 잡지 못했다. 선거 실패 원인이 계파 패권주의 때문은 아니란 얘기다.”

- 민주통합당에 대한 국민 불신도 상당하다. 그럼에도 민주당이 갖는 ‘의미’를 찾는다면.

“민주당이 만족할만한 성과를 못 낸 건 사실이다. 기득권 질서를 깨버리지 못한 채 일부 기득권 질서에 안주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그래서 민주당이 이렇게 혼이 나는 거다. 여당이나 이명박 정권이 하는 걸 보면 국민은 당연히 정권교체 할 준비가 되어 있다. 또 당연히 돼야 한다. 그런데도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하고 있다는 것은…결국 부끄러운 일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민주당이라는 정당이 갖는 중요성은 크다. 정치적 의지를 가지고 세상을 바꾸고 제도를 개혁하는 건 한 개인이 아닌 정당이 하는 일이다. (사이) 안철수 후보 측이 새로운 정치를 내거는 건 좋다. 하지만 그걸 제도화하는 유일한 방법은 정당이라는 점에서 안 후보 측이 이 지점을 분명히 인지했으면 좋겠다.”

담당업무 : 정치부 기자입니다.
좌우명 : 꿈은 자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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