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人間世 [기자수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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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 人間世 [기자수첩]
  • 박근홍 기자
  • 승인 2023.06.07 11:1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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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오늘·시사ON·시사온= 박근홍 기자]

부동산 시장이 흔들리고 있다. 전임 문재인 정부의 패착, 코로나19 팬데믹 후폭풍, 미국발(發) 금리 인상,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따른 원자재 가격 급등, 글로벌 경기 둔화 흐름으로 인한 소비 위축 등 다양한 악재들이 얽히고설키면서 우리나라 부동산 시장에 융복합적 하방압력을 행사하고 있어서다. 거래는 지난해 하반기부터 뚝 끊겼고, 미분양 물량은 지방을 중심으로 쌓이고 있다. 금융 부담이 급격히 커진 탓에 잔금을 치르지 못해 입주를 미루는 사례가 확대됐고, 집값 고점 당시 횡행한 갭투자가 전국을 전세사기·깡통전세 리스크에 빠뜨렸다. 매매가는 떨어지는데 분양가는 오르고 있고, 살 사람들은 돈이 없는데 팔고 싶은 이들은 호가를 유지하고 있다.

시장 구성원들은 혼란스럽다. 해석이 분분해서다. 모두가 현재 심각한 위기란 걸 인지하고 있으나 혹자들은 이젠 바닥을 쳤다고 주장하고, 혹자들은 더 큰 위기가 온다고 전망한다. 양측 다 저마다 신뢰할 만한 통계와 근거들을 앞세워 이 같은 논리를 펼치고 있다. 하지만 어느 쪽도 확신은 주지 못한다. 그들이 속한 이익집단을 위해 내놓는 이기적 관측에 불과함을 시장은 알고 있다. 그럼에도 구성원들은 자신들이 듣고 싶고, 읽고 싶은 정보들만 취사 습득한다. 집값이 반등하길 바라는 사람들은 부동산 자본이 거느린 언론사들의 기사를 읽고, 어깨·무릎이 아닌 발목을 노리며 판이 뒤집히길 바라는 사람들은 금융 투자 자본의 영향권에 있는 매체들의 보도를 찾는다. 그럴수록 혼란은 더욱 커진다.

윤석열 현 정부 역시 이율배반적인 시그널을 시장에 보내며 구성원들의 혼란을 가중시키고 있다.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역전세로 인한 혼란이 있어선 안 된다는 문제 인식 아래 전세금 반환 보증 관련 대출에서 어려움을 겪는 사람을 위해 제한적으로 대출 규제를 완화하는 방안을 검토할 것"이라고 말했다. 관련 업계에선 조만간 금융당국이 전세보증금반환대출에 대한 DSR 규제를 예외적으로 완화할 것이라는 예상이 주를 이룬다. 깡통전세 리스크를 해소해야 한다는 명분으로 갭투자자들에게 퇴로를 제공해 주는 셈이다. 정부여당만의 아이디어는 아닌 것 같다. 제1야당인 더불어민주당 내부에서도 10개월 앞으로 다가온 22대 총선에서 중도층을 공략하기 위해 DSR 등 부동산 규제를 완화하는 방향성을 제시해야 한다는 말이 나오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정치권과 각 이익집단의 이 같은 행보는 비록 혼란을 키울지언정 잘못됐다고 보긴 어렵다. '부동산이 무너지면 경제 전반이 위태롭다'는 확실한 전제가 깔려있기 때문이다.

분단의 비극으로 사실상 섬나라인, 미국의 1개 주 크기도 되지 않는 조그마한 나라에서 내수 시장을 단기간 내 성장시키는 데에 부동산만큼 효과적인 수단은 없다. 부동산은 우리나라 내수의 모든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60~1990년대 국가경제발전 계획 자체가 수출 제조-내수 부동산 체계를 바탕으로 추진됐고, IMF 후폭풍과 금융위기 영향이 맞물린 2000~2010년대 들어서도 우리나라는 부동산 시장을 기반으로 한 경제 회복 정책을 펼쳤다. 박근혜 정권의 빚 내서 집 사라, 문재인 정권의 전세가로 매매가 떠받치기, 윤석열 정권의 부동산 규제 완화 등은 겉만 좌우로 방향성이 갈릴 뿐, 속은 같은 궤도다. 이 과정에서 자산가들의 돈 놓고 돈 먹기로 부동산 불패 신화는 굳건해졌고, 우상향을 신봉하는 국민들도 콩고물을 얻었다. 이젠 부동산이 흔들리면 가계와 기업이 타격을 입고, 금융에 충격이 전이돼 국가경제 전반에 균열이 가는 상태에 이르렀다.

어쩌면 이젠 정치·자본권력이 인정할 시기가 된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이 나라에서 풍족하게 살아가려면 서울·수도권에 집을 사야만 하지만, 당신이 평범한 집에서 태어나고 자라 평범한 월급쟁이로 일하고 있다면 그건 아마도 불가능할 것이다. 올해 하반기부터 부동산 시장 침체가 본격 심화될 전망이나, 전쟁이 터지지 않는 한 서울·수도권 집값이 급락할 가능성은 낮다. 부동산이 무너지면 경제 전반이 위태롭기 때문에 정치인들은 표를 지키기 위해 부동산을 띄울 것이며, 자본가들은 황금알을 낳는 거위를 지킬 것이다. 실제로 현 정권은 1기 신도시 정비사업을 추진 중에 있고, 국내외 부동산 투자로 손해를 본 금융권은 작금의 침체기를 추가 투자자 모집 기회로 활용하고 있다.

지금 정치세력과 자본세력은 '부동산이 무너지면 경제 전반이 위태롭다'는 전제를 시장 구성원들에게 보내는 메시지에 제대로 담지 않고 있다. 이 위기 속에서도 각자 자신들의 이익을 꾀하기 위해 각 구성원들이 듣기 좋은 말로 메시지를 포장하기에 급급할 뿐이다. 이는 사람들을 이용하는 일종의 모략에 가깝다. 모략이 지나치면 그 사회는 광기에 휩싸인다. 우리나라는 일찌감치 부동산 광란에 빠진 상황인데, 이 같은 모략에 그 기운은 점점 더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광기의 흐름은 소시민들에겐 거역할 수 없는, 노력과 도전만으론 도저히 거스를 수 없는 급류가 됐다. 그 흐름을 따라가지 못한 수많은 국민들이 스스로를 패배주의로 몰아 넣고 있으며, 최근에는 목숨을 내려놓는 가슴 아픈 일까지 자주 목격된다. 

"언제나 평등하지 않은 세상을 꿈꾸는 당신에게 바칩니다." 서울 서초구 반포동에 들어서는 한 고급 주상복합 단지 시행사가 사용한 홍보 문구다. 어떤 이들과는 달리, 솔직하다는 측면에서 나쁘지 않다. 어지러운 부동산 인간세(人間世)다.

담당업무 : 건설·부동산을 중심으로 산업계 전반을 담당합니다
좌우명 : 隨緣無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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