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대연합의 승리⑤> 누가 문재인을 패장으로 만들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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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대연합의 승리⑤> 누가 문재인을 패장으로 만들었나
  • 윤진석 기자
  • 승인 2012.12.22 15: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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캠프 분위기로 본 결정적 실패 요인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윤진석 기자]

누가 민주통합당 문재인 후보를 패장으로 만들었나. 19일 선거 판세를 주도한 숨은 표는 5060세대였다. 꼰대라 폄하되던 이들은 야권에 괘씸죄를 적용하듯 대규모 진압작전에 나섰다.

경제와 안보 위기를 동시에 느낀 50대 경우는 투표율 90%에 육박했다. 대부분 민생을 강조한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를 찍었다. 이들 5060 세대의 화력은 곳곳에 미쳤다.

서울과 호남 외에 문 후보 손을 들어준 지역은 없었다. 사실상 서울도 실패한거나 다름없었으며, 민주통합당이 자기 편이라고 믿어왔던 수도권은 등을 들렸다. 최대 승부처는 PK(부산·경남)지역이었을지 몰라도 캐스팅보트를 쥔 건 강원도와 충청권이었다. 선거 때마다 소외돼왔던 강원도는 평창올림픽의 기운을 타고 보수우파의 힘이 무엇인지를 보여줬다. 야색이 짙었던 충북은 투표로서 속뜻을 내비쳤다.

이번 선거에서는 박근혜 후보가 '2002년 노무현'이었다. 16대 대선 투표 당일 "이회창 후보가 우세하다"는 언론 보도에 2030세대가 부랴부랴 투표장으로 운집했던 것처럼 이번에는 5060 세대가 투표 시간 막판에도 불구하고 앞 다퉈 몰려온 것.

이는 문 후보 측이 감히 예상치 못한 사단이었으며, 정치전문가 다수도 쉽사리 예견하지 못한 돌발변수였다. 이와 관련, 화색에서 패색으로 기울던 캠프 분위기를 따라 결정적 실패 요인 엿보기-(1), 정치전문가들이 본 패배 요인-(2)에 대해 들어봤다.<편집자 주>

ⓒ뉴시스.

(1) 캠프 분위기로 본 결정적 실패 요인

방송3사 출구조사 발표 직전. 서울 영등포구 중앙당사 문 후보 캠프 관계자들 사이로 낮은 탄식이 흘러나왔다. 70%가 넘어서는 높은 투표율에도 방송3사 출구 조사 결과 새누리당 박근혜 대선 후보가 앞선다는 설이 나돌았기 때문이었다. 몇몇의 얼굴 위로 ´이럴 리가 없는데….´라는 표정이 역력했다.

그전까지만 해도 문재인 후보가 오차범위이긴 하지만 앞서고 있다는 관측이 돌던 터였다. 우왕좌왕하던 중 모 방송의 출구조사는 문 후보가 우세하다는 소식이 날아왔다. '그럼 그렇지….' 당황했던 얼굴들은 급 반색됐다. 박 후보가 이기고 있다는 일각의 설들은 여당 쪽에서 흘린 잘못된 정보일거라는 추측이 설득력을 얻어갔다.

6시. 기자실 TV 볼륨을 높였다. 카운트다운이 시작되고 화면에 숫자 0이 잡힌 순간 기린 목을 하고서 군데군데 일어서려는 움직임이 일었다. "앉아요. 안 보여요!" 고함 사이로 방송3사 출구조사가 발표됐다. "박근혜 50.1%, 문재인 48.9%" 1.2%차로 박 후보가 이기는 것으로 나타났다.

곧이어 YTN 결과가 보도됐다. 출구조사가 아닌 예측조사로 박근혜 46.1~49.9%, 문재인 49.7~53.5%인 것으로 파악됐다. 문 후보가 작게는 1.6%P, 많게는 1.6%P 격차로 박 후보를 이긴다는 예상이었다. TV 화면 속 양 진영의 모습이 좌우로 담겼다. 환호와 실망감이 대비를 이뤘지만 초박빙 승부라는 점에서 초조함이 감돌기는 양쪽 모두 마찬가지였다.

기자들의 손가락 움직임이 빨라졌다. 출구조사 직후의 기사를 미리 준비하면서는 '기대감 고조'를 주된 테마로 잡았지만, 상황은 달라졌다. 지워진 글자 위로 '희비교차', '예측불허', '긴장 역력'.

민주당 내부에서는 "믿을 수 없다", "뚜껑은 열어봐야 안다"며 술렁였다. 심각한 분위기 속 YTN 예측조사에 희망을 거는 듯했다. 전반적으로 말을 아끼는 한편, 박광온 대변인은 브리핑을 갖고 "일희일비하지 않겠다. 이번 출구조사 발표는 5시까지의 결과이다. 6시 넘도록 줄을 서서 투표하려는 유권자들이 많다. 재외국인·부재자 투표 결과는 포함되지 않은 상황"이라며 역전 가능성에 무게를 뒀다.

최종 투표율이 75.8%를 기록한 것도 나름의 여유를 되찾는 계기가 됐다. 공보실 관계자는 "방송 3사 출구조사 기준, 지금의 투표율을 대입하면, 50만 표로 이길 거로 본다"며 자신감을 내비쳤다.

이렇게 되면 공표 금지 마지막 여론조사 결과는 바뀌지 않는다는 역대 대선 공식은 깨지게 된다. 이에 관계자는 "주말을 기점으로 골든 클로스가 나타났다"며 "전날 여론조사에서도 문 후보가 앞섰다"고 장담했다.

컵라면으로 저녁을 때우려는 기자들도 긴가민가했다. 이례적으로 높은 투표율과 함께 오전부터 감돌던 민주당내 밝은 분위기로 봐서는 승산이 있어 보였다. "안개국면이다", "새벽까지 가봐야 알 수 있는 거 아니냐.", "일찍 퇴근하긴 글렀다" 등 웃음 섞인 푸념이 쏟아졌다.

하지만 이변은 일어나지 않았다. 9시 넘어서면서 당락에 대한 확정적 윤곽이 드러났다. 일부 방송 앵커는 "박근혜 당선인"이라고 언급했다. 화면 속 박 후보 자택 앞은 잔칫집처럼 떠들썩한 반면, 문 후보 자택 앞은 썰렁했다.

샴페인을 일찍 터트렸다?

당초 일찌감치 승기를 잡을 거로 봤던 곳은 민주당이었다. 물론 박광온 대변인이 오전 브리핑 자리에서 "16, 17대 대선 때보다는 투표율이 높다. 하지만 저희들은 긴장하고 있다. 서울과 수도권 투표율이 평균을 훨씬 밑돌기 때문"이라고 우려하기는 했다.

그럼에도 캠프 관계자들은 들뜬 표정을 숨기지 못했다. 전날 우상호 공보단장 등 "어떻게든 투표율 70%는 넘어야 승산이 있다"고 목소리를 높여왔던 터였다. 때문에 선거 당일 높은 투표율을 기록하자 이를 막판 역전 드라마로 보는 시선이 많았다.

이날 점심을 지나 만난 캠프 내 노동위원회 인사도 "투표 행렬이 새벽부터 길게 늘어선 것을 보면서 승리를 예감했다"며 "지난 5년간 이명박 정권이 노동 혐오에 가까운 정책을 보였다. 이에 대한 심판이 나타날 것"이라고 내다봤다.

전국대학생위원회 팀원 역시 "저희는 주로 바깥에서 활동했다. 바닥 민심이 최근 들어 우리 쪽으로 돌아선 느낌이었다. 안녕한 21세기를 만들어가려면 과거의 잘못된 점은 개선돼야 한다. 하지만 박근혜 후보는 안녕하지 못한 20세기를 잊자고 한다. 이런 점이 부작용을 낳을 것으로 본다"고 전했다.

공감본부 정책지원팀 관계자도 "유신시대 후계자가 대통령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도도한 역사의 흐름에 문재인 후보가 올라탈 가능성이 높다. 이는 과거로 돌아가서는 안 된다는 국민 명령"이라고 단언했다.

메시지 팀에 있던 한 당직자도 "문 후보는 광화문 대통령이 될 것"이라며 "남대문 시장에서 옷을 사고 서민과 술 한 잔 기울이는 모습, 반값등록금, 의료비 100만원 지원 등 피부에 와 닿는 정책이 국민 마음을 움직이는 동력이 될 줄 믿는다"고 기대했다.

하지만, 이들의 핑크빛 전망은 무색해졌다. "KBS 개표 결과를 보자", "YTN을 틀어라" 등 2층 복도에 설치된 TV 채널 주도권을 놓고 술에 취한 지지자들끼리 싸움이 날 정도로 민주당 분위기는 험악해졌다.

당사 앞마당 천막 안에서 삼삼오오 모여앉아 전광판을 바라보던 이들의 말수도 적어져갔다. 노란색 점퍼를 입은 한 선거운동원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표정으로 투표 독려 깃발을 옆구리에 바짝 끼었다. 문 후보의 웃고 있는 얼굴이 그려진 천막 위로 전광판 속 '박근혜 시대'라는 글자는 선명함을 더해갔다.

“논공행상 논의부터…”

다음 날. 자체 평가 관련, 다들 언급하기를 꺼려하는 가운데, 한 캠프 관계자로부터 "아무도 질 거라고 예상치 못했다. 전날 낮부터 논공행상 논의부터 하고 있을 정도로…"라는 자성의 목소리를 들었다.

그는 "40대 후반부터 50대를 이루는 베이비부머 세대에 대한 공략에 실패했다"며 "이들은 가장 많은 인구수를 차지하고, 사회의 중추적인 역할을 하면서도 제일 불안한 세대다. 돈도 가장 많이 쓴다. 2030은 민생을 모르지만 이들 세대는 안다. 반값등록금을 얘기했으려면 이들에게 했어야 했다. 이런 특성에 대한 고려를 못한 게 사실"이라고 아쉬움을 드러냈다.

다른 관계자들 중에서는 "선거 망친 사람들을 굳이 따지자면 이해찬, 박지원, 한명숙 등 지도부의 전략적 오판이 컸다", "해마다 이 정도 나오겠지 하고 기대했던 서울과 수도권에 대한 안일한 판단이 문제였다", "선거에서는 투표 장소 가기 몇 시간 전이 중요한데 문 후보가 서울에서 마지막을 보내지 않고 부산에 있던 것이 변수가 됐다" 등의 평가를 내렸다.

결국 그들 스스로 문 후보를 패장으로 이끈 가운데, 아직도 일각에서는 "안철수 전 후보가 너무 늦게 도와줬다. 차라리 안 도와줬으면 이길 수 있었다", "통합진보당 이정희 전 후보가 박 당선인을 도와준 꼴이다"등 남 탓 논쟁이 한창이다.

한편, 무소속 안철수 전 후보는 투표를 끝낸 뒤 미국 샌프란시스코로 출국했다. 무소속 강지원 후보는 이번 선거에 대해 "썩은 선거판의 썩은 당선"이라고 일갈했다. (계속)

담당업무 : 정치부 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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