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헌 김영춘 엇갈린 정치행보…‘주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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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헌 김영춘 엇갈린 정치행보…‘주목’
  • 정세운 기자
  • 승인 2012.12.29 13:3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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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헌과 김영춘> 김덕룡 사람으로 출발, 이제는 ‘딴길’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정세운 기자]

이성헌 김영춘 전 의원의 ‘엇갈린 정치행보’가 세간의 관심을 끌고 있다.

두 사람의 정치입문 시기는 비슷할 뿐 아니라 거의 같은 길을 걸었다.

▲ 이성헌은 2007년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전을 앞두고 김덕룡과 다른길을 걸었다. ⓒ뉴시스
전남 영광 출신인 이성헌은 1984년 연세대 총학생회장 당시 학생회 주최의 광주항쟁 기념식에 김영삼을 연사로 초빙하기 위해 상도동을 방문했다. 하지만 김영삼은 참석이 어렵다고 통보했다.

김영삼은 이 자리에서 “내가 참석하면 전두환 정권은 그것을 빌미로 학생회 간부 전원을 구속시킬 것이다. 또, 국민들에게 정치인이 학생운동을 부채질 한다는 식으로 몰고 갈 수 있다”며 거절했다.

이때 이성헌은 김영삼에게 큰 감명을 받았다고 한다. 자신의 몸값을 높일 수 있는 ‘연사’자리를 마다하는 김영삼이 자신의 뇌리에 깊게 박혔다는 것.

그후 YS 비서실장인 김덕룡과 유대관계를 맺은 이성헌은 1985년 3월 상도동 비서진에 정식으로 합류했다.
이성헌은 이후 민추협 기관지 <민주통신>의 창설멤버이자 기획위원으로, 민주산악회보 <자유의 종> 편집위원으로 활동했다.

당시 <자유의종> 편집위원장을 맡았던 조선일보 출신의 서청원은 최근 <시사오늘>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회고했다.

“거의 혼자서 편집하고 기사도 쓰고 사진도 올리고 해서 탈고를 했다. 하지만 <자유의 종>을 발간할 수 없었다. 워낙 감시가 심해 인쇄해 줄 인쇄소를 찾는 게 쉽지 않았다. 내가 ‘못해먹겠다’고 하자, 이성헌이 탈고된 원고를 들고 나갔다. 며칠 후 어디서 인쇄를 했는지 모르지만 신문이 나왔다. 그 친구(이성헌) 정말 고생 많이 했다.”

김영춘은 1987년 1월 상도동 비서진에 합류했다.

부산출신으로 고려대 총학생회장을 지낸 김영춘은 1984년 12월 민정당사 농성사건 배후조종혐의로 구속됐다. 다음해 3월 집행유예로 풀려난 김영춘 앞에 나타난 사람은 이성헌. 이성헌은 김영춘을 김덕룡에게 소개했다.

김덕룡은 “당신의 생각을 모르는 게 아니다. 하지만 이상보다는 현실적인 것부터 단계적으로 실현시키는 게 중요하다”며 상도동 입문을 권유했다.

상도동에 입문한 김영춘은 이후 1994년 11월 민자당 지구당 조직책 선정 때 서울 성동병 지구당위원장으로 임명돼 최연소 여당 위원장의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젊은 정치인 한때, ‘김덕룡 사람’

이처럼 두 사람은 비슷한 시기에 상도동 비서진으로 들어가 동일한 정치행보를 보였다. 두 사람을 돌봐준 정치인은 김덕룡이다. 김덕룡은 문민정부 시절 사석에서 ‘가장 눈여겨보는 정치인이 누구냐’는 질문을 하면 망설임 없이 “이성헌 김영춘”이라고 대답할 정도였다.

이성헌 김영춘 두 사람은 1996년 15대 총선 때 서대문과 광진에서 신한국당 공천을 받아 출마했지만 원내에 진입하진 못했다.

둘은 2000년 16대 총선을 통해 나란히 원내에 진입했다. 당시 30대의 젊은 정치인이었던 이들은 ‘김덕룡 사람’으로 불렸다.

16대 국회 당시 필자는 김영춘과 만나 ‘휴가는 갔다 왔냐’고 묻자, 그는 “갔다 왔다. 김덕룡 이성헌과 함께 해수욕장을 갔다 왔다”고 답할 정도로 세 사람은 끈끈한 관계였다.

▲ 김영춘은 2002년 한나라당을 탈당, 이성헌과 다른길을 걸었다. ⓒ시사오늘 신원재
그러면서 김영춘은 당시 한나라당 체제를 힘들어했다. 필자에게 이런 얘기를 들려줬다.

“모든 공천권을 독점하던 YS도 이러지는 않았다. 비주류를 인정하지 않는 이회창과 주류세력들이 이대로는 절대로 정권을 잡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

김영춘 한나라 탈당하며 엇갈린 정치행보

괴로워하던 김영춘은 결국 17대 총선을 앞두고 한나라당을 버렸다.

김덕룡 이성헌 김영춘 등 같은 길을 걷던 세 사람의 엇갈린 정치행보가 시작된 시점이다.

한나라당을 버린 김영춘은 17대 국회에 당당히 입성했다. 반면 이성헌은 노무현 탄핵역풍으로 낙선했다. 둘은 원내와 원외인사로 갈렸다.

이성헌과 엇갈린 행보를 보이며 집권여당의 국회의원으로 승승장구할 것 같았던 김영춘에게도 시련이 왔다. 노무현의 인기가 추락하자 2007년 대선을 앞두고 열린우리당은 갈기갈기 찢겼다.

18대 총선 불출마를 선언한 김영춘은 열린우리당을 탈당해 ‘문국현 캠프’에 합류했다. 여러 문제만을 남기고 김영춘은 문국현과 갈라섰다.

이후 김영춘은 우여곡절을 겪으며 다시 민주당에 입당했다.

한나라당에 남아있던 원외인사 이성헌은 박근혜 대표시절, 김덕룡이 원내대표를 맡자 사무부총장을 맡으며 짝을 이뤘다. 이들은 한나라당이 각종 선거에서 열린우리당을 압도하며 승리하도록 큰 기여를 했다.

김덕룡 이성헌도 2007년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을 앞두고 갈라섰다. 김덕룡은 이명박을, 이성헌은 박근혜를 지지했다.

같은 길을 걸어왔던 세 사람이 뿔뿔이 흩어지는 순간이었다.

대선서 박근혜와 문재인으로 또다시 갈려

그리고 2012년 세 사람은 또다시 운명적인 길을 걸었다.
이성헌은 이번 대선에서 박근혜 후보 외곽조직인 국민희망포럼을 이끌며 ‘박근혜 대통령’을 만든 1등공신 역할을 했다.

반면, 김덕룡은 새누리당을 탈당해 문재인 지지를 선언했다. 지난 12월 10일 김덕룡이 문재인을 지지하는 자리에는 김영춘이 나와 있었다. 그날 필자의 눈에는 김덕룡과 김영춘이 함께 있는 모습이 들어왔는데 아직까지 잘 잊혀지지 않는다. 한편의 드라마를 보는 느낌이었다.

1980년 중반 상도동 비서로 들어와 한때 같은 길을 걸었던 이성헌과 김영춘.

이제 두 사람의 가는 길 앞에는 커다란 강이 놓여 있는 듯하다. 김영춘은 29일 <시사오늘>과의 통화에서 “(이성헌과)예전에는 워낙 친했지만 솔직히 지금은 그렇지는 못하다. 그래도 이성헌과 가끔 통화를 한다”고 답했다.

▲ 이성헌 김영춘 전 의원의 엇갈리 정치행보가 주목을 받고 있다. ⓒ뉴시스
 
 

담당업무 : 정치, 사회 전 분야를 다룹니다.
좌우명 : YS정신을 계승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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