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정치 50년 史>김영삼, 민주화 이외의 어떤 제안도 거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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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정치 50년 史>김영삼, 민주화 이외의 어떤 제안도 거절
  • 노병구 자유기고가
  • 승인 2013.01.18 13:0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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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김영삼의 23일 단식투쟁-3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노병구 자유기고가)

목숨 건 김영삼의 23일간의 단식

1983년 5월18일 불법 감금중의 김영삼 총재가 무기한 단식에 들어갔다.
2차연금으로 창살 없는 감옥살이의 고통은 변함없이 계속됐다.

전두환 정권의 탄압은 극에 달해 민주화 운동도 질식 상태가 되어 뜻있는 민주 인사들도 기진맥진해질 무렵이었다. 1982년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김대중이 정치를 않겠다는 각서를 전두환에게 제출하고 미국으로 떠났다는 보도가 나왔다.

김영삼은 광주항쟁 3주년을 앞두고 독재자에 대한 강력한 저항의 필요성을 생각하던 중, 마하트마 간디의 저서를 읽다가 죽음을 각오한 단식을 결행하기에 이른다. 그는 전두환에게 5개항의 조건을 내걸고 무기한 단신투쟁에 들어갔다.

김영삼 회고록 2권 231 페이지에서 보면, 단식을 결행하기 전 성경 신약성서 ‘마태복음’의 말씀에 크게 감명 받았다고 쓰고 있다.

“사람이 온 세상을 얻는다 해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슨 소용이 있는가, 사람의 목숨을 무엇과 바꾸겠느냐?”

그리고 ‘요한복음’의 말씀도 단식을 결행하는데 계시가 됐다고 서술하고 있다.

“누구든지 자기 목숨을 아끼는 사람은 잃을 것이며, 이 세상에서 자기 목숨을 버리는 사람은 목숨을 보존하여 영원히 살게 될 것이다.”

나는 아침밥을 먹고 약국 문을 열기 위해 아파트를 나서려는데 광명경찰서 정보과 형사 네 명이 아파트 현관 앞에 지키고 있다가 나를 붙들고 “오늘부터 노 위원장님을 댁에서 나가지 않도록 하라는 서장님의 지시를 받고 왔습니다, 댁에 들어 가셔서 책이나 읽으시고 계셔야 되겠습니다”고 말했다. 

그때 온 형사들은 민주화가 될 때까지 무슨 일만 생기면 나를 연금하려고 몰려와서 미운 정 고운 정 다 들어서 오랫동안 친하게 지냈다. 

“무슨 이유로 영장도 없이 경찰서장이 무고한 시민을 불법감금 지시를 한단 말이냐? 이유는 말을 해야 하지 않느냐?”
“저희들은 모릅니다. 다만 위원장님을 댁에 잘 모시고 있으라는 지시만 받고 왔습니다.”

참으로 웃지 못 할 웃기는 일이다.
“죄송합니다. 직업이 경찰관이고 우리도 처자식들 하고 먹고 살려고 하다 보니 어쩔 수 없이 서장님의 명령을 따를 수밖에 없지 않습니까?”

또 중앙에서 무슨 일이 생겼구나 하고 도로 집으로 들어가 이민우 회장 댁에 전화를 걸었다.
“회장님 저 노병구 입니다. 무슨 일이 생겼습니까? 아침부터 정보과 형사 네 명이 와서 경찰서장의 명령으로 저를 연금한다고 합니다."

“김영삼 총재가 오늘 상도동 자택에서‘국민에게 드리는 글’을 발표하고 무기한 단식에 들어갔는데 산악회 간부들을 모두 연금조치 하고 있어서 여기저기서 보고를 받고 있으니 집에 있으면서도 서로 긴밀한 연락들을 하도록 해요.”

그래서 김영삼의 단식 사실을 내가 형사들에게 알리고 그런 일로 시민을 괴롭히는 경찰의 부당성을 지적했지만 그들은 절벽이었다.

우리는 서로 연락을 취하며 연금 상태에서라도 김영삼과 동조해 단식을 하기로 한 인사들도 있었다. 그때 가택에서 연금 당한채로 단식에 참가한 사람이 58명이라고 했다.

전두환의 이 야만적인 탄압을 우리나라의 신문과 방송은 한자도 보도하지 못했다. 미국 일본 등 세계 언론이 대서특필하고 나서자, 며칠이 지나서야 ‘최근의 정세흐름’이니 ‘재야인사의 식사 사건’이니 하면서 보도를 하게 돼 이를 보고 듣는 국민들은 더욱 궁금히 여기게 됐다. 연금상태에서도 민주산악회 회원들은 전화로 가까운 사람들에게 김영삼의 단식 사실을 알렸다. 또한 각자 자기 주머니를 털어 김 총재의 단식사실을 등사해 암암리에 돌려 구전으로 국민들 사이에 널리 퍼지게 되었다.  

김영삼의 단식에 즈음한 5개항의 요구

“민주화 투쟁은 생명을 건 투쟁이어야 하며 생명을 건 투쟁만이 민주화를 쟁취할 수 있다. 나의 생명을 바쳐 이 나라 민주화에 다소라도 도움이 될 수 있다면, 이것이 국민에 대한 최후의 봉사라고 생각한다.

1. 민주화 투쟁을 하다 구속된 인사 전원 석방.
2. 모든 정치인, 시민의 정치활동 보장.
3. 공민권 제한자에 대한 복권조치.
4. 언론자유의 보장.
5. 민주헌법으로 개정 기타 독재적 법률 원상회복.

이상과 같이 당면 과제를 밝히면서, 나는 하나님께 기도하는 마음으로 국민 여러분께 이 글을 드리는 바입니다. 국민 여러분은 좌절 보다는 희망을, 체념보다는 용기를 가지고 이 난국을 극복해줄 것을 믿고 또 바라면서 나의 글을 마치고자 합니다."                  

아무리 보도통제를 하고 연금을 해도 단식소식이 걷잡을 수 없이 퍼져 나가자 전두환 정권은 당황하기 시작했다.

드디어 단식 1주일 만인 5월25일 김영삼을 서울대학병원에 이송해 강제입원을 시키고 나서야 나와 여러 동지들의 연금을 풀고 경찰은 철수했다.

강제입원을 시키고 강제로 식사를 시키려고 별 수단을 다 동원해도 본인의 거부로 뜻을 이루지 못하자 의사들을 시켜 영양주사를 놓으려고 했다. 이 또한 본인이 거부하니 어쩔 도리가 없었다.

급기야는 민정당 사무총장이던 권익현을 시켜 김영삼에게 세계 어디든지 나가서 편안하게 사시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하면서, 김 총재께서 외국으로 나가신다면 그곳에서 살 집은 물론 사시는데 전혀 지장이 없을 만큼의 돈도 넉넉하게 보내 드리겠다는 유혹까지 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김영삼은 민주화 이외의 어떤 제안도 거부한다면서 단호히 거절했다.

민주국민협의회(가칭)의 결성과 시국선언

이민우와 민주산악회 회원 그리고 재야의 101명이 시국선언문을 발표하고 민주국민협의회를 결성했다.
민주국민협의회는 대변인 김덕룡을 통해 신민당 및 재야 정치인 101명의 서명을 받아 (전직 국회의원 32명 포함) 채택한 선언문을 발표했다.

① 김영삼이 제시한 5개항의 민주화 요구를 전폭 지지하고 
② 민주화의 확대 추진을 위해 이 땅의 민주세력 및 양심 세력과 함께 범국민 민주화 추진 단체를 결성키로 하고
③ 김영삼의 단식 중단을 호소하는 등 5개항의 결의문을 채택했다.
101명의 서명자 명단은 본인이 쓴 <만세를 위하여 새벽을 열다> P.416에 게재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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