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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정치 50년 史>23일 단식후, YS "나의 투쟁은 시작을 알렸을 뿐"
(17)김영삼의 23일 단식투쟁-4
2013년 01월 19일 10:24:42 노병구 자유기고가 sisaon@sisaon.co.kr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노병구 자유기고가)

“나를 시체로 만들어 해외로 부치면 된다”

그 후에도 전두환은 권익현을 보내 끈질기게 해외로 나갈 것을 권유하며 유혹했다.
“고통 받는 국민을 두고 외국에 나갈 생각은 꿈에도 없다. 김대중을 내보내고 이제 나만 내보내면 너희들이 영원히 정권을 잡을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지, 절대 안 된다.”

이렇게 말하고, “나를 해외로 내보낼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라고 김영삼이 말했을 때 권익현은 반색을 하며 “무엇이냐?”고 되물었다

김영삼은 “나를 시체로 만들어 해외로 부치면 된다” 고 말하자 아연 실색하고 돌아갔다.
단식 10여 일이 넘어가면서 우리들은 김영삼의 생존을 걱정하게 되었고 부친께서도 직접 단식중단을 권했고, 국내 뿐 아니라 해외에 있는 많은 동포들까지 단식중단을 호소하고 나왔지만 김영삼의 민주화에 대한 열망과 의지를 꺾을 수가 없었다.

정치와는 거리가 먼 종교 지도자요, 사상가로 국민의 신망을 높이 사고 있던 함석헌 선생과 홍남순 등 재야원로들도 동조단식에 들어가며 전두환에게 조속히 김영삼의 민주화 요구를 받아들이라고 압박했다.
그때 김영삼은 ‘미국에 있는 동지들에게’라는 메시지를 보냈다.

“나는 지금 외로운 투쟁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나와 내 주변은 현 정권으로부터 단식중단을 위한 조직적인 박해를 받고 있습니다. 이곳은 단식을 할 자유조차 없습니다.”

김영삼 스스로 푼 연금 해제

단식 12일 만에 전두환은 권익현을 김영삼에게 보내 “오늘부터 해외든 국내든 어디든지 김 총재 마음대로 여행할 수 있습니다. 이제부터 상도동 자택은 물론 이곳 병원에 배치된 경찰 병력을 모두 철수합니다. 그리고 부분적으로나마 건강이 회복되시면 직접 만나 뵙고 대화를 하겠다”고 한다고 알려 왔다.

그러나 김영삼은 “나 한사람의 연금이나 풀려고 단식 투쟁을 한 것이 아니다. 나의 민주화 요구가 관철되지 않는 한 이 싸움은 중단할 수 없다”고 선언하고 단식을 계속했다.
그때까지 김대중을 비롯한 수많은 민주인사와 재야정치인 종교지도자 야당 정치인 중 누구도 전두환 정권의 힘 앞에서는 멈춰 설 수밖에 없었다.

오직 한 사람 김영삼만이 혼자서 골리앗 전두환을 향해 다윗의 지혜로 싸운 것이다.
김영삼은 자신의 연금 해제 후에도 이 나라의 완전한 민주화가 이룩될 때까지 단식은 멈출 수 없다고 선언하는 바람에 큰 걱정이었다.

단식 중단

이민우를 비롯한 우리 모두는 이러다가 목숨이 위태로우니 “살아서 같이 민주화 투쟁을 하자”고 호소하기에 이르렀고 해외 동포와 심지어 학생들까지 나서서 단식 중단을 권고하고 나섰다.

김수환 추기경도 직접 병원을 찾아와 김영삼의 손을 잡고 “살아서 민주화를 이룩하자”고 권고하며 간절한 기도를 올
리며 단식중단을 요청했다.

서울대 병원에서도 담당 의료진이 단식 20일이 넘어 더 이상 계속하면 생명이 위태로우니 이제 중단 하라고 강권하다시피 하게 되었다.

드디어 단식 23일을 마치고 1983년 6월9일 오전 9시30분경 병원에서 내·외신 기자들과 회견을 갖고 '단식을 중단한다'고 선언했다. 김덕룡 비서실장이 준비된 성명 ‘단식을 마치면서’를 대신 읽었다.
민주와 비민주의 갈림길이 된 김영삼의 단식의 변인 회견문을 여기 옮긴다.

<단식을 마치면서>

친애하는 국민 여러분!
나는 오늘 비통한 심정으로 나의 단식 투쟁의 중단을 발표하는 바입니다.

나의 단식을 중단케 하려는 음모가 나를 둘러싸고 있습니다. 나의 20여일에 걸친 단식 기간 중 국민 여러분이 보내준 뜨거운 성원과 나의 민주화 요구에 대한 열렬한 지지, 그리고 나의 건강과 나의 생명을 염려해 주신 그 눈물겨운 애정에 깊이 감사드립니다. 그러한 격려와 애정은 나로 하여금 외로운 단식 투쟁의 고통을 견딜 수 있게 해 주었고, 또한 나의 생명을 독재권력으로부터 지켜주었으며 나아가 이 땅의 민주화에 대한 확신과 더불어 민주 국민과의 깊은 연대감을 뼛속 깊이 확인할 수 있게 해 주었습니다.

국민 여러분!
나는 부끄럽게 살기 위하여 단식을 중단하는 것이 아닙니다. 앉아서 죽기 보다는 서서 싸우다가 죽기를 위하여 단식을 중단하는 것입니다. 현 정권이 나의 단식을 중단케 하기 위하여 갖은 수단과 방법을 동원 하는 것은 그들이 인도적이어서가 아니라, 나와 튼튼하게 연대하고 있는 민주국민의 결사적인 민주항쟁을 두려워하기 때문입니다.

‘한마리의 곰의 죽음’을 대서특필 하면서도 한 나라 야당 지도자의 오랜 연금과 단식 투쟁사실이 단 한줄도 보도되지 않는 언론 상황 속에서 입과 입, 손과 손, 마음과 마음으로 전달된 단식 사실의 전파와 더불어, 민주국민의 뜨거운 열정과 연대를 그들이 두려워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입니다.

국민 여러분!
나는 이미 죽음을 각오하고 결심했던 몸으로, 죽음을 선택할 수 있는 용기와 신념으로 민주화 투쟁의 과정에서 그 고통과 고난의 맨 앞에 설 것이며, 그 어떤 희생이라도 감수할 것입니다. 나는 광주사태에서 희생된 영령과 조국의 제단에 자신을 던진 현충(顯忠)의 넋, 그리고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청년, 학생들의 투쟁과 고난을 생각하면서, 그 고난의 맨 앞의 일부를 나 자신이 떠맡기 위하여 민주투쟁의 최일선에 설 것을 국민 앞에 엄숙히 서약하는 바입니다.

나의 투쟁은 이제 시작을 알렸을 뿐

민주화를 위하여 내가 먼저 가야할 곳이 감옥이라면, 나는 기꺼이 감옥으로 달려갈 것입니다 감옥은 민주주의를 위하여 개인이 거쳐야 할 과정일지도 모릅니다. 나는 민주주의를 열망하는 국민의 단 0.1% 만이라도 감옥에 갈 결심을 한다면 민주주의는 우리의 것이 될 것이라고 믿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감옥에 갇히게 되었다가 십자가에서 죽어 가장 무력한 것으로 보였지만, 부활하여 사랑과 정의의 빛으로 세상 권세와 불의를 이기셨습니다.

나는 또한 우리 모두가 자신이 처한 처지를 훌훌 벗어 던지고 민주화 투쟁 대열에 사심 없이 합류하여 조직적인 연대 투쟁을 전개 한다면, 독재의 암흑은 마침내 걷히고 민주주의는 이룩될 수 있다고 확신합니다.
우리나라와 우리국민의 부활은 바로 민주주의 실현을 통해서만 비로소 가능한 것이며, 민주주의 없이는 우리 모두는 죽은 것과 다름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정의의 편에 계시며, 또한 우리와 함께 하실 것이라고 나는 믿습니다. 우리는 승리할 것입니다.
나의 투쟁은 끝난 것이 아니라, 이제 겨우 시작을 알렸을 뿐입니다. 나는 그 언젠가 국민과 더불어 “민주주의 만세”를 목이 터지라 부르고 싶습니다.
그것을 위하여 나는 나에게 주어진 고난의 길을 갈 것입니다.』  

1983년 6월 9일   김 영 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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