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기와 춤출 수 있는 스테판 에셀의 회고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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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기와 춤출 수 있는 스테판 에셀의 회고록
  • 강정욱 기자
  • 승인 2013.04.24 16:5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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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강정욱 기자)

구순의 나이에 <분노하라>라는 책 한 권으로 세상의 온갖 불의에 용감히 맞섰던 스테판 에셀이 <세기와 춤추다>라는 조용한 자서전으로 그를 다시 기억하게 한다.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은 ‘진정한 세계시민’으로 산다는 것과 향후 ‘세계가 지향해야 할 바’에 대한 인문적 성찰의 기회를 얻게 될 것이라는 어느 서평처럼 정치, 외교, 문화, 지성사를 증언하는 다큐멘터리를 경험 할 수 있다.

<세기와 춤추다>는 에셀이 80세 전후에 지인들의 우정 어린 압력에 못 이겨 집필한 회고록이다. 1917년 독일 베를린에서 태어난 그는 양차 세계대전과 식민지 국가들의 연이은 독립, 끝없는 분쟁, 인종 갈등, 냉전 등 어느 시대보다 치열하고 놀라운 사건들을 경험했다.

20세기를 최전선에서 온몸으로 살아낸 경험은, 누구보다 이야깃거리가 많은 훌륭한 시대의 증인이며 다방면에서 펼쳐온 활동상은 유럽의 정치외교사와 어우러져 단순한 회고록을 넘어 20세기 현대사의 한 흐름을 잡아주는 탁월한 실제 역사를 완성했다.

에셀은 “언제나 글쓰기보다는 행동을, 향수와 추억보다는 미래를 선호했다”고 밝힌 바, 무한한 낙관주의자로서 “바랄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은 모두 실현된다고 확신”하는 인물이었다.

▲ <세기와 춤추다> 스테판 에셀, 2013년 4월 ⓒ돌베게

또한 유년 시절부터 “삶은 창조적 자유가 증대되는 길을 열어줄 때만이, 현실을 넘어 다원적 영향을 미치는 것을 목표로 삼을 때만 비로소 온전한 의미를 지닌다”는 확신과 함께한 자유인이었다.

청년기에는 레지스탕스의 일원으로 활약하던 중 체포되어 부헨발트 수용소에 수감되었으며, 세 곳의 수용소를 거친 끝에 사망자와 이름을 바꾸는 탈출계획이 성공해 기적처럼 살아남았다.

이후 에셀은 “전쟁에서 벗어나며 내가 느낀 갈증은 결코 해소되지 않았다. 마치 내가 미처 그쪽에 이르기도 전에 시간이 내 안으로 밀려들어오는 것처럼, 나는 살아난 후 50년을 매일매일 강렬하게 살았다”고 말했다.

장년기의 그는 “내 새로운 탄생을, 결정적인 밤을 이겨낸 내 승리를 유익하게 활용해야 한다는 이 욕구는 유년 시절부터 내가 갖추고 있던 준비들을 더욱 단단히 다져주었을 뿐”이라고 말한다.

1946년 외무부 시험에 합격해 외교관 생활을 시작한 에셀은 이후 1948년 유엔 세계인권선언문 작성에 참여하고 샤를 드골, 피에르 망데스 프랑스, 조르주 퐁피두, 지스카스 테스탱, 프랑수아 미테랑, 피에르 모루아, 미셸 로카르 등 당대 최고 권력자들 밑에서 국제사회 관련 일을 맡아 다양한 활동을 펼쳐나간다.

계속해서 그는 행동하는 유럽의 지성으로서 알제리 전쟁기간에는 알제리의 독립을 위해 투쟁하는 한편, 불법이민자 문제 등 사회적 약자를 위해 헌신하기도 했다.

스테판 에셀이라는 큰 인물이 우리에게 남긴 것은 진정한 자유, 참여, 연대, 드높은 이상에 대한 헌신이다. 잠든 시대를 일깨운 호소는 이 시대를 함께 살아가는 세계시민들에게 보내는 아름다운 초대가 될 수 있다.

참된 자유와 젊음, 지성과 겸손, 진심 어린 앙가주망과 노블리스 오블리제로 일관한 용기 있는 삶의 아름다운 표본이었던 스테판 에셀의 회고록은 그래서 각별한 의미를 지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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