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증권맨의 죽음①>´묻지마 실적 압박´, 어디서 왔나?
<어느 증권맨의 죽음①>´묻지마 실적 압박´, 어디서 왔나?
  • 윤진석 기자
  • 승인 2013.05.14 01:0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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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의 이윤 극대화·성과급 제도의 비극
경영 악화일로 기업·영업맨 사지로 몰아
금융사고 빈번·고객민원 높아지는 이유
승자독식·무한경쟁이 낳은 부작용의 끝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윤진석 기자)

금융권이 을씨년스럽다. 실적 압박을 견디지 못한 일부 직원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무한 경쟁주의, 성과급제가 낳은 비극이라는 게 다수의 분석이다. 역으로 보면, 경영 악화일로를 걷는 기업들이 직원들에게 매서운 채찍질을 가했다가 '죽음'이라는 화를 자처했다는 지적도 있다.

지난해 모 지점장을 투신자살로 내몬 한국스탠다드차타드(SC)은행의 실적만 봐도 썩 좋지 못하다. 2012년 3분기 당기순이익은 408억 원으로 전년 동기(1133억 원)대비 63.9% 감소했다. 누적 순이익 역시 1633억 원으로 전년 동기(3625억 원)대비 54.1%나 줄어든 것으로 전해졌다.

올 2월 한 과장급 직원의 목을 매게 한 동부증권 또한 실적악화 행(行)을 걷는 것은 매한가지다. 동부증권은 재작년 3월 기준 결산법인 증권사 가운데 가장 큰 영업이익 감소율을 나타냈다. 영업이익으로 치면 83억 5900만 원으로 지난해 (430억 2600만 원)보다 80.6%의 감소율을 기록했다.

업계에 따르면 동부증권은 지난해 가을부터 실적을 올리기 위해 강력한 드라이브를 걸었다. 이는 동부증권만 해당하는 것이 아닌 동부금융네트워크 전반에 걸친 실적 압박으로 보여진다.

ⓒ뉴시스.

올 4월에는 동부금융네트워크 인턴사원이 29세라는 젊은 나이를 뒤로하고 청춘이라는 값진 생을 포기했다. 사 측에서는 말이 인턴사원이라는 명칭을 썼을 뿐이지, 어디까지나 개인사업자일 뿐이라 실적 압박 같은 것은 없었다고 일축하지만, 눈가리고 아웅일 뿐이라는 게 대체적인 시선이다.

금융권 직원의 자살은 비단 은행과 증권사에만 일어난 건 아니다. 지난해 4월 A생명사를 다니던 설계사는 고층건물 위에서 투신자살했다. 회사 영업 방침에 의해 원금보장형 상품을 팔았지만, 주가 급락으로 원금 손실 사례가 터지자, 보험가입자들의 손실을 메우고자 빚을 낸 게 화근이 됐다. 일각에서는 회사가 실적에 눈이 어두워 해당 직원들에게 부실 상품을 판매하도록 종용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봤다.

금융권의 막무가내식 실적압박은 고스란히 고객의 피해로 이어진다는 비판도 상당하다. 특히 보험사 경우는 소비자에게 손실을 초래하는 등의 금융사고가 빈번하다. 업계별로 사고 건수가 가장 많은 곳은 생명보험사로 알려졌다.

최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해 생보사의 사고 건수 및 금액은 각각 27건, 29억 6300만 원으로 손해보험사(11건·5억 7500만 원)보다 훨씬 많은 금융사고 비중을 차지했다. 작년 금감원에 접수된 보험 민원도 4만 8천 31건에 이른다. 설계사가 실적 압박에 따른 불법 계약, 불완전 판매를 하는 것 역시 주요 원인이 됐다.

한 외국계 손보사를 근무한 바 있는 A(남·36)씨는 "팀장이 실적 압박을 가해 오면, 업무 시간 내내 쫓기듯 일을 하게 된다. 어느 때는 보험규정의 고지 중 중요한 대목을 일부러 누락시키거나 조만간 해약시킬 계약을 만들기도 한다. 어떤 설계사 경우 가짜 서명을 위조하는 때도 있다"고 말했다.

전북지역에서 근무하는 모 설계사는 그나마 보험사는 은행과 증권사보다는 낫다고 전했다. 보험사는 개인사업자이다 보니, 회사의 실적 압박보다는 본인의 자율적 업무 역량에 따라 수당의 많고 적음이 결정된다. 하지만 은행이나 증권사는 근로소득자로서 기본급과 할당 실적에 따라 인센티브가 주어지기 때문에 관리자의 압박이 심하다는 얘기였다.

이는 Y 은행(인천지점) 직원의 설명과도 일맥상통했다. B(여·30대)씨에 따르면 은행은 각종 프로모션이나 캠페인이 끊이지 않고 있다. 청약저축, 신용카드, 스마트 뱅킹, 신상품 등등. 본부는 지점별 실적을 관리하고 이를 매일 게시한다. 한 지점의 실적이 하위이면, 본부장은 각 지점의 지점장을 괴롭히고, 지점장은 다시 직원을 쪼아댈 수밖에 없는 거다.

은행은 신상품이 나올 때 과도한 목표를 주고 닦달의 강도가 심해진다. 한 예로 재형저축을 판매한다치면, 지점별로 목표가 내려오고, 지점장은 직원 수로 나눠 할당량을 분배한다. 이후 해당 직원이 목표달성을 하지 못하면 지인을 끌어들이거나 사비를 털어 채우는 방식이다.

펀드나 방카 영업 역시 고객들에게 판매해서 목표를 맞추기 어려울 때에는 사비로 맞추기도 한다는 것. 어떤 경우는 퇴근하고자 지인을 끌어들이기도 한다. "한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신용카드를 목표치에 못 채우자 지점장이 ‘이거 다 하기 전까지는 퇴근하면 안 된다’고 했다. 하는 수  없이 지인에게 부탁해 개수를 채웠다."

직원들이 할당량을 맞추려는 데에는 개인별 실적에 따라 급여 차이도 크고, 승진에도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저희 은행은 KPI점수대로 직원의 순위를 매긴다. KPI는 일종의 지점의 순익, 영업실적을 기준으로 한 점수 체계다. 이 순위에 따라 직원들의 성과급도 달라진다. 성과급은 일 년에 두 번 S,A,B,D 등급으로 나눠서 지급된다. S 성과를 받으면 기본급의 150%, A 성과는 120%등이 지급된다."

자연스레 직원들 간 경쟁심이 생길 수밖에 없는 구조다. 앞서 언급한 SC 은행의 실적 압박도 상당했다고 전해진다. 외부 영업을 담당하는 RM은 자신이 관리하는 기업 중 일부의 대출이 상환되면, 해당 금액만큼 대출을 성사시켜야 한다. 즉, 20억의 대출이 상환되면 다른 곳에서 20억을 메워야 한다.

최장기 파업 사태를 가져온 후선발령제도 또한 따가운 눈총을 받은 바 있다. 관리자급을 대상으로 실적이 저조하면 보직을 빼고 후선 발령을 내리는 제도인데, 이를 전 직원으로 확대하려다 노조 측과 첨예한 갈등을 빚기도 했다.

증권사 직원의 실적 스트레스도 만만치 않다. 모 증권사를 다니는 영업사원(남·40)은 갈수록 고민이 많아지고 있다.
증시 활황일 때는 거래량이 급증해 손익분기점을 채우기가 쉬웠고, 그만큼 인센티브도 많이 가져갈 수 있었다. 그런데 증시 불황이 거듭되면서 목표치를 채우기도 어렵게 됐다. 평균 100~150만 원을 오가는 기본급으로는 생활하기조차 빠듯한 형편이다.

더군다나 실적을 올리지 못하니 여간 눈치 보이는 게 아니다. 당장 위에서 누르는 압력은 진땀을 빼게 한다. 동부증권만 해도 세전 월급의 1.2배에 해당하는 성과를 5개월 연속으로 거두지 못하면 부진직원으로 낙인찍힌다. 이는 일선에서 일하는 영업맨의 사기를 떨어뜨리는 결과를 가져온다. 과장급도 눈에 보이는 연봉 삭감으로 실적 압박을 체감한다. 손익분기점(BEF)의 65% 미만자는 연봉의 25%를 삭감당하는 것이다.

결국, 거꾸로 거슬러 올라가면 글로벌 경기 악화와 내수 침체, 이에 따른 금융권 불황과 생존게임이 '묻지마, 실적 압박’을 초래했다는 관측이다. 영업사원을 사지로 내몰았다는 데 한몫했다는 견해다.

이 가운데 신자유주의가 불러들인 대기업의 승자독식 시스템이 부작용의 끝을 보여준다는 쓴소리도 적지 않다. 기업의 이윤을 극대화하려다 보니, 영업사원의 인권과 행복은 땅에 떨어진 것이다. 달리 보면 사 측과 직원 간 불공정 거래에 해당한다. 비약하자면 금융권 노사 간에도 경제민주화의 바람이 불 수 있을지 지켜볼 일이다.
 

담당업무 : 정치부 기자입니다.
좌우명 : 꿈은 자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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