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증권맨의 죽음②>친구·친척 돈, 대출까지… ´실적 압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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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증권맨의 죽음②>친구·친척 돈, 대출까지… ´실적 압박´
  • 권지예 기자
  • 승인 2013.05.14 10: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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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업계 종사자의 연이은 ´자살´                               윗선의 ´실적 압박´…무게에 못 이긴 극단적 선택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권지예 기자)

한국스탠다드차타드(SC)은행 지점장이 자택에서 투신자살했다. <아시아경제> 2012.6.20

25일 오전 5시 45분께 부산 동구의 모 은행본점 건물 1층 주차장 바닥에서 이 은행에서 근무하는 이모(42) 차장이 숨져 있는 것을 인근 상가 주인 문모(60)씨가 발견, 경찰에 신고했다. <연합뉴스> 2012.7.25

동부증권 분당지점에서 근무하던 과장급 직원이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경향신문> 2013.2.20

금융업계 종사자의 자살 소식이 이어지고 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특히 직원 사이의 극심한 경쟁과 실적 압박은 그들을 궁지로 내모는 가장 큰 요인으로 자리잡았다.

지난해 6월 극단적 선택을 한 SC은행 서울 모 지점장 조모(49)씨는 실적 스트레스를 이기지 못하고 투신했다. 당시 SC은행은 전 직원을 대상으로 성과향상프로그램을 도입해 노사 갈등이 발생한 상태였다.

사 측의 실적 압박에 시달리던 직원은 결국 상품 판매 혹은 투자를 무리하게 추진하다가 쌓여가는 빚더미에 견디지 못하고 극단적 선택을 하게 된 것이었다.

최근 동부증권 분당지점에서 근무하던 ㅇ과장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보도는 2011년 9월 이후 1년 6개월 만에 다시 일어난 '동부증권맨의 자살'이라 더욱 충격이었다. ㅇ과장은 회사에서 '부진 직원'으로 분류돼 있었고 당시 동부증권은 실적을 올리기 위한 드라이브를 걸고 있는 상태였다. 실적 압박이 심해지며 직원 개인 계좌를 돌려 수수료 실적을 만들라고 요구하는 지점장도 있다고 했다.

▲ 대한민국 금융맨이 '실적'에 울고 있다. ⓒ뉴시스

증권사 직원의 이야기

'손익분기점' 넘지 못하면 불이익…

무리하게 돈 빌려 빚으로…자살까지 이어져

증권사 영업사원은 손익분기점(BEP)이라는 실적 목표치를 부여받는다. 현재 증권사에서 차장급으로 재직 중인 13년차 증권맨 A씨는 이를 '직원이 달성해야하는 최소치'라고 설명했다.

그는 "손익분기점의 기본 베이스는 인건비고 급여"라면서 "증권사는 공장이 아니다. 고객이 오면 수익을 얻어주는 구조로 인건비가 가장 많다고 봐야한다. 제조업은 공장도 땅도 있지만 증권사는 사람의 생각과 판단으로 투자수입이 얻어지는 거라 가장 기초는 인건비가 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A씨는 "인건비 안에는 급여가 있고 성과급이 있다"면서 "이걸 녹여서 매달 자기의 BEP(손익분기점)를 계산할 수 있다"고 했다.

그의 말에 따르면 손익분기점이란 자신이 받는 급여에서 약 3배에서 5배 정도의 금액이다. 회사의 업무와 광고, 마케팅 등을 포함해 운영을 위해서 영업사원은 자신의 급여에 3~5배 정도의 수익을 내야한다는 말이었다.

또한 A씨는 손익분기점 액수에 대해 "회사마다 직급마다 다르다"고 말했다.

<경향신문>에 따르면 '동부증권의 경우 과장급은 매달 1100만 원이 손익분기점'이다. 주식거래 수수료가 거래금액의 0.45%으로 계산했을 때 한 달에 거래되는 금액은 약 24억원이 돼야 한다는 것이다.

만약 할당된 목표치를 넘지 못한다면?

"일단 인사평가가 안 좋아진다"고 A씨는 말한다. 통상 3분기나 4분기 연속 실적이 좋지 않으면 불이익을 받을 가능성은 더욱 높아진다고도 했다.

실적 부진으로 인해 직원이 받을 수 있는 불이익으로는 정리해고부터 원치 않는 발령, 상사의 압박도 있다. 여기서 실적이 부진한 직원은 계속되는 윗선의 '실적 압박'으로 인해 벌어놓은 돈부터 친척 돈, 친구 돈, 대출까지 쓰게 된다. 이렇게 직원은 무리하게 되고 극단적인 생각까지 하게 된다고 A씨는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동부증권에서 자살한 그 친구도 이런 것에 다 시달린 거다"라고 답답한 마음을 드러냈다.

A씨 주위에도 자살은 아니더라도 증권시장이 좋지 않을 때 퇴사한 사람들이 꽤 있다고 했다. 부채를 감당하지 못해서 회사를 떠난 사람부터 자신에게 할당된 퇴직금으로 빚을 갚기 위해 퇴사한 이도 있었다.

A씨는 "이쪽에서 일하니 정보가 빠르다"면서 "내 가까이 있던 사람이 갑자기 사무실에서 뛰쳐나가 죽은 적은 없지만, 어느 회사 누가 목을 맸다더라라는 얘기는 많이 들었다"고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실적으로 직원에게 부담주는 방식 또한 다양했다. 면담을 통해 압박하는 상사도 있는 반면, 메신저나 전화로 이야기하는 상사도 있었다. 영화나 드라마에서처럼 '내 방으로 와'라는 일도 발생했다.

A씨 역시 이런 방식으로 계속되는 실적 압박에 회사를 그만둬야겠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고 했다. 그는 "차장이라는 자리까지 올라가면서 그만두면 좋겠다는 생각, 누구나 많이 할 거다"라면서 그럼에도 그만두지 못하는 현실을 설명했다.

"지금보다 더 나은 환경에서 더 많은 수익을 낼 수 있는 대안이 많지 않다. 그래서 밖에서 다른 일을 찾고 하는 것보다는 지금까지 해왔던 일을 더 잘 할 수 있게 고민하는 일이 더 낫다는 생각으로 이 일을 하고 있다."

'실적'이라는 짐을 짊어지고 있는 그가 멈추지 못하는 이유는 '현실'이라는 벽 때문이었다.

이러한 금융업계의 상황을 두고 전국사무금융노동조합연맹의 성낙조 대변인은 "외부에서 인식하는 것보다 금융업 종사자의 실제 노동 강도는 훨씬 심각하다"면서 "금융업계에서 성과를 우선시하는 문화가 직원 간의 과다한 경쟁을 부추기고 있다"고 현 상황을 짚었다.

그러면서 그는 "금융업계가 공공성보다 이윤창출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과당 경쟁이 발생하고 노동 강도가 악화하는 것이므로 공공성 회복이 중요한 과제"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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