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의실에서 만난 정치인(11)>노병구 ˝18년 장기 집권자와 5년 민주 대통령을 비교할 수 있나˝
스크롤 이동 상태바
<강의실에서 만난 정치인(11)>노병구 ˝18년 장기 집권자와 5년 민주 대통령을 비교할 수 있나˝
  • 윤종희 기자
  • 승인 2013.05.23 11:5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아버지 유지를 받들겠다는 말을 해서는 안 돼˝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윤종희 기자)

<시사오늘>은 정치 현실을 짚어보는 동시에 개혁 방안을 모색하는 차원에서 국민대 정치대학원 '북악정치포럼' 초청 정치인들의 강연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북악정치포럼은 정치인 초청 특강 및 토론 프로그램입니다. 2013년도 '북악정치포럼' 열한번째 초청 연사는 노병구(81) 전 민주동지회 회장으로 강연은 21일 국민대에서 진행됐습니다.<편집자 주>

▲ 노병구 전 민주동지회 회장은 '지도자는 자신이 아니면 안 된다'고 생각하는 오만과 이를 부추기는 아첨꾼을 조심해야 한다고 말했다. ⓒ시사오늘 박시형 기자

노병구 전 회장은 김영삼(YS) 전 대통령이 중심에 있는 상도동계의 핵심으로 얼마 전까지도 수시로 YS의 상도동 자택을 드나들며 대화를 나눈 인물이다. YS의 최측근이라고 해도 별 무리가 없는 노 전 회장은 YS를 대통령으로 만드는데 일등 공신 역할을 한 민주산악회 조직위원회 위원장, 연수원 원장 등을 역임하기도 했다. 또 통일민주당 전당대회 부의장을 맡은 바 있다. YS의 정치 인생을 누구보다 잘 아는 그는 '김영삼과 박정희'라는 책을 내기도 했다. 이런 노 전 회장의 강연 제목은 '나의 정치 50년사를 통해 본 민주주의'였다.

노 전 회장은 국민대 설립자인 해공 신익희 선생에 대한 얘기로 말문을 열었다. 1956년 3대 대선 당시 민주당 신익희 후보가 한강 백사장에서 '못 살겠다 갈아보자'라며 청중들에게 호소할 때 자신도 그 자리에 있었다고 말하며 학생들의 관심을 끌었다. 이어 현승일 전 국민대 총장과 막역한 사이라고 밝힌 그는 "현 전 총장이 강연 때문에 걱정하고 있는 내게 '그동안 겪은 얘기를 있는 그대로 전하면 된다'며 격려해줬다"고도 말했다.

노 전 회장은 이날 "모든 건 질서가 있어야 한다. 하나님이 세상을 만들 때 질서 있게 만드셨다"라는 말로 합법적 절차를 밟지 않은 과거 독재 정권에 대해 날을 세웠다.

그는 우선 이승만 전 대통령에 대해 "굉장한 분"이라며 "이 전 대통령은 독립운동을 한 것은 물론, 미국에서 공부한 만큼 미국 상황을 정확히 파악해 이를 활용할 줄 알았다. 특히 이 전  대통령에 의해 우리는 단군 이래 처음으로 헌법을 가지게 됐다"고 높이 평가했다.

하지만 그는 "이 전 대통령이 중간에 이기붕과 박마리아의 아첨에 흔들렸고 3선 개헌을 했다"고 개탄했다. 그러면서 YS로부터 직접 들은 일화를 전했다.

"당시 3선 개헌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반대했는데 그 때 나이가 26~27였던 김영삼 의원이 이기붕과 함께 경무대에 들어가서 응접실에 앉아 있었다. 마침내 이 전 대통령이 나타났고 김영삼 의원은 벌떡 일어나서 '각하 3선 개헌을 하지 마십시오. 3선 개헌을 하게 되면 나라가 아주 어려워집니다. 3선 개헌을 안 하면 각하는 명실상부한 국부(國父)가 될 수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 전 대통령은 노기 띤 얼굴로 문을 열고 나갔다. 이기붕은 김영삼에게 '아니 김 의원, 그런 말을 왜 각하께 하느냐'고 화를 냈다."

노 전 회장은 이승만 전 대통령과 미국 조지 워싱턴 전 대통령을 비교하기도 했다.

"조지 워싱턴 대통령은 취임하자 곧바로 자신을 반대했던 해밀턴과 제퍼슨을 각각 국무장관과 재무장관에 임명하고 대통령 직무를 수행했다. 워싱턴 대통령은 많은 사람들이 3선을 권유하고 심지어 추대했지만 '4년씩 두 번 했으면 됐지 세 번 대통령을 하는 건 인간의 능력을 넘는 것이다. 한 사람이 그런 식으로 정권을 잡으면 나라가 제대로 굴러갈 수 없다 . 나는 물러나야 한다'며 사양했다. 미국의 선진 정치 문화를 가져온 사람이 조지 워싱턴이다. 만약 이승만 대통령도 워싱턴 전 대통령처럼 했다면 우리 나라 정치사에 그토록 많은 희생과 갈등을 낳은 정변들이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첫 단추를 잘못 끼워 질서가 문란해졌고 5·16 쿠데타, 6·3 사태, 부마 민주항쟁, 12·12 쿠데타, 5·18광주민주항쟁 등이 발생했다."

노 전 회장은 박정희 전 대통령과 관련해선 "5·16이 없었다면 우리가 가난을 면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는데 나는 우리 민족이 우매한 민족이 아니기에 오히려 더욱 발전했을 것"이라고 역설했다.

그는 이와 관련, 5·16 직전에 있었던 1960년 7·29 총선에 대해 얘기했다.

"내가 그 때 선거운동을 직접 했는데 유권자들이 수천 명 수만 명 모였다. 그럼에도 질서정연하게 진행됐다. 그 때 선거는 법적이나 도덕적으로 선진국 못지 않은 선거였다. 선거를 잘하는 민족은 수준 높은 민족인데 나는 우리 민족이 훌륭한 선거를 치렀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 그 때 미국도 우리 민주 정치 수준을 보고 놀랐을 것이다. 그런데 느닷없이 5·16이 일어났다."

노 전 회장은 이어 5·16 직후에 있었던 화폐개혁의 실패를 언급하며 박정희 전 대통령의 '오만'을 지적했다.

▲ ⓒ시사오늘 박시형 기자

"군부가 정부를 접수한 후 민주당의 무능을 부각시켰다. 그러면서 자신들이 경제를 살리겠다고 했다. 그러나 돈이 없었다. 그래서 화폐개혁을 실시한다. 혹여 민주당 세력들이 돈을 숨겨둔 게 있으면 그걸 찾아내 경제발전에 사용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숨겨둔 돈은 나오지 않았다. 결국 감춰둔 돈은 안 나왔고 오히려 군사정권 2년 동안 경제는 망가졌다. 이렇게 되니 군사정권은 쿠데타 직후 약속했던 '2년 내에 다시 군으로 돌아가겠다'는 약속을 지킬 수 없었다. 화폐개혁에 실패한 마당에 다시 군으로 돌아가면 그 책임론에 휩싸일 것이고 자칫하면 반란을 일으켰다는 죄목으로 사형까지 당할 수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박정희의 공화당이 만들어지게 된 것이다. 그렇게 5대 대통령 선거를 치렀는데 군사정부는 이기기 위해 별 짓을 다했다. 그 당시 면장과 경찰들이 다 군인으로 채워졌다. 그렇게 했지만 고작 15만표 차이로 박정희가 윤보선을 이긴다. 나는 사실상 윤보선이 이긴 선거라고 본다. 박정희는 비정상으로 출발해서 비정상으로 끝났다."

그는 박정희 정권의 최대 치적을 경제발전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을 향해 "군사정권은 민주당이 만든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이름만 바꾸어 자신들이 만든 것이라며 새로 시작하다보니 시간적으로 민주당이 하려던 것보다 오히려 4~5년이나 늦게 시작됐다"고 말했다.

그는 이날 학생들에게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지기도 했다.

"요즘 역대 대통령에 대한 여론조사를 한다. 그런데 18년 동안 독재로 집권한 사람과 5년 간 합법적 절차에 의해 집권한 사람들을 함께 비교하는 게 합당한가. 민주적 절차에 따라 5년 간 집권한 대통령에 대해선 폄하하고 18년 간 독재한 대통령은 높이 추앙하는 게 옳은 것인가. 나는 여러분들의 견해를 듣고 싶다."

노 전 회장은 그러면서 YS가 집권 후 실시한 청와대 비밀 금고 철거, 안가 철거, 금융실명제 실시, 공직자 재산 공개, 하나회 척결 등을 거론하면서 "지도자에 대한 평가는 객관적이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YS 집권기에 발생한 IMF 사태에 대해 "박정희 정권에서 싹이 시작된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노 전 회장은 박정희 전 대통령의 딸인 박근혜 대통령을 향해 "이제는 민주화 시대이다. 이런 시대에 비민주화 시대의 아버지 유지를 받들겠다는 말을 할 필요가 없다. 겸손하면서도 당당한 대통령이 돼주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담당업무 : 大記者
좌우명 :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