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대생 청부살인,학생이 나섰다①>무기징역 판결에 감옥 대신 병원 택한 사모님
<여대생 청부살인,학생이 나섰다①>무기징역 판결에 감옥 대신 병원 택한 사모님
  • 박시형 기자
  • 승인 2013.06.15 16: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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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박시형 기자)

6월 3일 이화여대 학생들이 자발적인 모금을 통해 2002년 공기총으로 살해된 하지혜 씨의 사건을 잊지 않겠노라고 일간지의 1면에 광고를 게재했다. 이들은 “대한민국에서 더는 ‘유전무죄 무전유죄’가 용납되지 않기를 바란다”며 “모두가 법 앞에서 평등하게 심판받는 그날까지, 이화가 지켜보겠다”고 밝혔다.

이들은 가해자가 법원에 제출한 허위 진단서와 형 집행 정지에 대한 진실을 요구하고 있다. 가해자는 2004년 무기징역선고에도 불구 대기업의 사모님이라는 지위를 이용해 2007년부터 교도소와 병원 특실을 오가며 호의호식하고 있었다. 이 사실이 방송사의 탐사 프로그램을 통해 알려지자 검찰은 물론이고 정치권은 이제서야 바로 잡겠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 <시사매거진 2580>에서 취재한 윤길자씨의 병원생활 모습 (자료=MBC <시사매거진 2580> 방송 캡처)

2004년 2월 5일 서울고법 형사3부(부장판사 신영철)는 2002년 3월 이화여대 법대에 재학 중이던 하지혜(당시 22세) 양을 청부 살해한 혐의로 구속 기소된 윤길자 씨와 윤 씨의 지시를 실행에 옮긴 조카 윤모 씨, 그의 친구 김모 씨에 대해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윤길자 씨는 범행을 전면 부인하고 있으나 하지혜 양을 직접 살해한 두 피고인의 진술이 일관되고 사례금의 흐름이나 통화명세 등을 보면 유죄가 인정된다"면서 "자신의 딸을 지키기 위해 다른 사람은 죽어도 좋다는 생각은 비난받아 마땅하다"고 지적했다.

조카 윤 씨와 김 씨에 대해서는 "돈에 눈이 멀어 범행을 저질러놓고 뉘우치기는커녕 진실을 감추려 한다"면서 "살해 지시를 받은 뒤 실제 살해하기까지 5개월이란 시간이 있어 범행을 충분히 예방할 수 있었는데도 결국 살인을 저질렀다"며 중형 선고 이유를 설명했다.

재판부는 "10년 전이라면 이같은 전대미문의 사건을 저지른 사람에게 사형을 선고했겠지만 사형에 대한 사회적 우려가 큰데다 피고인의 인권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점 등을 감안해 무기징역을 선고한다"고 덧붙였다.

 하 양의 납치, 그리고 6발의 납탄
윤길자 씨는 사위인 김모 씨와 이종사촌 하지혜 양이 불륜 관계임을 의심하고 조카 윤 씨와 현직 경찰관 등 20여 명을 고용해 미행을 시켰으나 만난 사실을 입증하지 못하자 윤씨와 친구 김 씨에게 1억 7,500만 원을 주고 살인을 청부했다.

2002년 3월 6일 오전 5시 30분 경 아파트 출입구에 설치된 CCTV에 검은 그림자 두 개가 재빨리 움직이는 모습이 확인됐다. 이들은 수영장으로 향하던 하지혜 씨를 뒤쫓고 있었다. 하필 비가 내리고 있는데다 인적이 드문 시간이라 하 씨가 납친 된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은 이 CCTV의 화면뿐이었다.

하 양의 아버지 하모 씨는 오후가 늦도록 딸이 돌아오지 않자 경찰에 실종신고를 했다. 하 양이 발견된 곳은 경기도 검단산 중턱의 등산로. 실종신고를 한 지 열흘 만에 싸늘한 주검이 되어 아버지 곁으로 돌아왔다.

2002년 3월 18일 부검을 맡은 국과수 김유훈 집도의는 "머리와 눈, 귀 등에 공기총 납탄 6발이 관통한 흔적이 나타났고, 머리 등에서 납탄 2발과 납탄 파편 등을 발견했다"며"직접적인 사인은 공기 총탄에 의한 두경부 총상"이라 밝혔다.

경찰은 하지혜 양의 입과 눈, 손발을 접착테이프로 묶고 근거리에서 얼굴을 향해 공기총을 쏴 살해한 것으로 미뤄 청부살인업자에 의한 계획적인 살인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당시 언론들은 하 씨와 연관된 법조계 인물들을 들어 치정에 의한 살인일 것이라 추측기사를 앞다퉈 내보내고 있었다. 하 양이 평소 습관처럼 기록하던 노트에서 이종사촌 김모 씨의 소개로 다른 남자를 만난 일이 발견됐기 때문이다. 아이러니하게 사건의 실마리도 하 씨의 노트에 기록된 윤길자 씨와의 관계에서 찾아냈다.

▲ 하지혜 양이 기록한 노트 중 일부 (자료=SBS <그것이 알고싶다> 방송 캡처)

 하 양의 자존심, 사모님의 자존심
하 양은 2000년 말부터 말없이 끊어버리는 전화와 자신을 미행하는 듯한 낌새에 많이 불안해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이종사촌 김모씨는 자신의 장모가 하 양에게 미행을 붙여 그녀와 가족들의 행적에 대해 매우 자세히 알고 있음을 알렸고 그제서야 하 양과 김모 씨의 관계에 대해 오해를 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격분한 하 양의 아버지 하모 씨는 윤길자 씨를 찾아가 김모 씨와 삼자대면을 했으나 김 씨는 끝내 대답을 회피하며 그 자리를 모면하려는 모습만 보였다. 하 양 가족은 윤길자 씨를 명예훼손과 모욕죄로 법원에 고소해 승소했고 이후 접근금지 가처분신청까지 받아들여졌다.

일부에서는 한 번도 꺾인 적이 없는 대기업의 사모님이 법원에서 연신 패소하자 하씨 일가에 복수하기 위해 청부살인을 저질렀다는 추측도 하고 있다. 이를 증명이라도 하듯 조카 윤 씨와 친구 김 씨는 하모 씨에게 무역업을 준비 중이라며 접근해 살해 기회를 엿봤으나 결국 무위로 돌아가고 말았다.
 
윤길자 씨는 2002년 3월 20일 윤 씨를 베트남으로 출국시켰고 공범인 김 씨도 4월 5일 홍콩으로 출국했다. 경찰은 2001년 6월과 9월 윤길자 씨의 계좌에서 총 2억 원이 출금된 점과 같은 해 10월 별다른 수입이 없던 김 씨의 계좌에서 5천만 원이 출금된 것을 확인하고 이들이 범행과 관련이 있음을 알아챘다. 2002년 8월 윤길자 씨가 '체포 및 감금 교사' 혐의로 먼저 체포되고 2003년 3월 김씨와 윤씨가 중국 공안에 체포되면서 이들의 범행은 만천하에 드러났다.

윤길자 씨는 윤 씨와 김 씨에게 죄를 다 덮어쓰는 조건으로 무려 50억 원을 제시하기도 했다. 하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고 2004년 법원이 감형 없는 무기징역을 판결하자 윤길자  씨는 다시 이들에게 '좋은 게 좋은 것'이라며 회유를 권했다. 이들이 재판관 앞에서 진술을 번복만 하면 위증을 했던 것으로 판명돼 윤길자 씨는 재판을 다시 받은 후 무죄로 풀려날 수 있다는 계산이었다.

2008년 7월 윤 씨와 김 씨는 다시 피고인석에 올라 자신들이 위증했다며 “고민하는 고모를 위해 하지혜 씨를 납치해 위협하려다가 총기오발 사고로 사망하게 됐다”고 주장했다. 헌데 재판부가 “피고인들이 다른 목적을 위해 스스로에게 불리한 진술을 하고 있다”고 판단해 이들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피고의 무죄 선고에 항소는 더이상 할 수가 없게 됐고 윤길자 씨의 계산 역시 크게 어긋나면서 무죄방면의 길은 사라졌다. 하지혜 씨와 그녀의 가족이 받은 억울함도 조금이나마 풀어지는 듯 보였다.

사모님의 합법적 탈주
2013년 4월 21일 충격적인 사실이 드러났다. <시사매거진 2580 - 의문의 형 집행정지>에서 윤길자 씨가 교도소에 없다는 것이 알려졌기 때문이다. 방송에 따르면 윤 씨는 건강상의 문제로 수차례 교도소를 빠져나와 하루 200만 원이 넘는 대형종합병원 VIP실에서 보낸 것으로 확인됐다.

주치의가 작성한 진단서에는 유방암, 중증도 우울증, 파킨슨 증후군, 당뇨병 등 12개의 각종 병명이 기록됐다. 누가 봐도 심각한 중증의 환자지만 면면을 들여다보면 사실이 부풀려졌거나 허위로 기록된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유방암은 1기에 발견돼 수술로 완치됐고, 중증도 우울증 역시 윤 씨를 진료한 의사 소견서에는 뚜렷한 정황이 보이지 않는다고 기록됐지만 주치의는 심각하다 작성했다.

<시사매거진 2580>은 잠복취재를 통해 윤 씨가 앓고 있다는 파킨슨 증후군이 거짓임을 밝혀냈다. 의사의 회진 시간에는 간병인 없이 생활할 수 없는 것처럼 행세하다가 회진 후에는 혼자서도 멀쩡히 돌아다니는 모습이 카메라에 포착됐다.

윤 씨는 심지어 병원에 입원한 동안 외출을 하기도 했다. 외출 사유를 가사나 개인적인 일이라 밝힌 것도 상당수다. 2007년 7월 5일 첫 형 집행정지 이후 윤 씨는 계속 건강상의 문제를 제기하며 입원과 퇴원을 수차례, 6년이라는 시간을 교도소 밖에서 보냈고 병원에서는 38회에 걸쳐 외박 및 외출을 일삼았다.

윤길자 씨는 '형 집행정지 제도'를 악용해 병원을 전전하며 교도소로 돌아가지 않았다. 이 같은 일이 가능 할 수 있었던 것은 세브란스 병원의 주치의였던 박모 의사를 매수해 받아낸 허위진단서가 법원에 제출돼 생사의 기로에 서 있는 것처럼 꾸며졌기 때문이다.

윤길자 씨를 치료했던 세브란스 병원 측은 올해 초가 되어서야 내부 심사를 통해 잘못된 결정으로 판단하고 윤씨를 병원에서 내보냈던 것으로 알려진다.

형 집행정지는 공평한가?

형 집행정지 제도는 형사소송법에 따라 '인도적인 차원에서 볼 때 수형자에게 형의 집행을 계속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보여지는 일정한 사유가 있을 때' 검사의 권한으로 형의 집행을 정지할 수 있다.

사유를 살펴보면 △건강을 심각하게 해치거나, 생명을 보호할 수 없을 때, △연령 70세 이상인 때, △임신 6개월 이상 출산 후 60일 미만일 때, △직계 존비속을 보호할 다른 친족이 없을 때, △기타 중대한 사유일 때로 제한된다.

지난 2009년 11월 18일 대검찰청은 의료 및 법률 전문가 등 외부인사가 참여하는 '형집행정지심사위원회'를 신설해 재소자 간의 형평성 논란을 해소하고 투명성을 높이겠다고 발표한 바 있다.

하지만 여전히 김승연 한화그룹 전 회장,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 천신일 세중나모 회장,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장 등과 같은 고위 범법 인사들에게는 관대하게 적용된다. 윤길자 씨 역시 부산·경남 지역 재벌기업의 사모님으로 세간은 지역의 판검사들과 유착이 있었던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 서울 서초구 대법원 본관 앞. 이들이 말하는 자유, 평등, 정의가 과연 살아있기는 한건지 의심이 든다. ⓒ뉴시스

허점투성이 형 집행정지, 개선 필요해

하모 씨는 윤길자 씨에 대해 올해 제보를 받고 검찰에 고발 및 수사를 의뢰했다. 그럼에도 윤 씨는 세브란스 병원을 떠나 두 차례 병원을 옮겨 다니며 형 집행정지를 연장했다. 검찰은 방송사의 취재가 시작되어서야 5월 21일 형 집행정지를 취소하고 윤 씨를 재수감했다.

윤 씨에게 허위 진단서를 작성해 준 박모 교수도 세브란스 병원에서 윤리위원회에 회부될 것으로 보인다. 연세대 의대는 6월 10일 "현재 박 교수의 과잉처방 등을 조사하기 위해 윤리위원회를 구성 중"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아직 윤리위원회가 시작된 게 아니기 때문에 조사결과가 언제 나올지도 불투명한 상황"이라며 박 교수의 징계에 대해서는 말을 아꼈다.

정치권도 '형 집행정지'의 근본적인 문제 해결을 위해 개정 법안을 발표하는 등 문제 해결에 조금씩 나서고 있는 모습이다.

이목희 민주당 의원은 6월 9일 '형사소송법 일부 개정 법률안'을 대표 발의하고 형 집행정지제도를 올바른 방향으로 개선하기 위해 마련했다고 밝혔다. 이 의원은 "'사모님 사건'과 같은 사례가 끊임없이 발생하는 원인은 현행법에서 형집행정지에 관한 허가를 소속 검사장에게만 부여하고 있기 때문”이라며 "각 지방 검찰청 소속으로 설치 운영되고 있는 형집행정지 심의위원회는 실효성과 투명성에 의문이 있다"고 비판했다.

'사모님 방지법'이라 불리는 이 법안의 골자는 현재 각 지방검찰청에서 운영 중인 심의위원회를 법무부 소속으로 승격하고 객관성과 투명성 전문성을 높이겠다는 방침이다. 이 법안이 하루속히 시행돼 윤길자 씨 사건 같은 부조리한 사례가 재발하지 않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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