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사익 ˝나는 늦게 핀 꽃, 소리는 엄마 탯줄처럼 나를 놓지 않았다˝
장사익 ˝나는 늦게 핀 꽃, 소리는 엄마 탯줄처럼 나를 놓지 않았다˝
  • 윤진석·권지예 기자
  • 승인 2013.07.29 15:34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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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꾼 장사익이 시대 대표 소리꾼이 들려주는 인생의 가을길에 만난 ´천직´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윤진석·권지예 기자)

공자는 마흔에 대해 정리하길, 불혹이라 했다. 그는 서른에 ‘자신’을 세운다면, 마흔에는 미혹되지 않고, 흔들림 없이 중심을 잡아야 한다고 봤다.

46살, 늦은 나이에 데뷔-1994년. 1집 <하늘로 가는 길>-해 이 시대 최고의 소리꾼이라는 찬사를 받게 된 장사익. 불혹이라는 뒤늦은 나이에 하늘이 준 업을 만났지만, 자신의 길을 찾아 정진, 또 정진했기에 지금처럼 한국은 물론이고 세계적으로 감동을 주는 소리꾼이 되지 않았나 싶다. 이 세상에 늦은 것은 없다. 다만 멀리 되돌아갈 뿐이고, 어디까지가 끝인지를 모를 뿐이다.

▲ 이 시대 대표 소리꾼 장사익.ⓒ시사오늘 권지예 기자.

차(茶)로 영혼과 소통하는 광대

소나기가 한창 쏟아지던 지난 6월 말. 인터뷰는 2층 거실에서 이뤄졌다. 거의 빈 공간이나 다름없는 넓적한 거실은 여백의 미가 살아있다. 이곳에서 발성 연습을 하고, 시를 짓고, 가락을 만들어내는 가 싶게 타악기가 보이고, 한쪽 벽을 다 터버린 커다란 유리창 너머로 하늘 아래 인왕산 자락이 보인다. 장사익 선생 말로는 부처님 얼굴과 닮았단다.

뜰아래를 내려다보면, 키가 다른 나무와 풀들이 제각각의 모양으로 옹기종기 살아간다. 사이사이 보이는 토끼풀과 반지꽃, 한 쪽에 자리 잡은 솟대, 넓은 울림통을 자랑할 것만 같은 묵직한 종, 벽에 매달려 미세한 바람 소리를 전해줄 풍경까지, 모두가 도심 속 시골 같은, 장사익 선생의 집을 이루는 요소다. 건물을 감싸는 자연과, FM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클래식은 호흡을 같이한다.

퍽이나 낮은 키의 찻상도 인상적이다. 책상다리를 하고 앉으면, 무릎 높이만큼 될까, 나무로 된 길고 넓은 찻상을 사이에 두고 서로 마주보고 얘기하다, 왼편으로 시선을 돌리면 자연풍경이 시야에 들어와 그 자체로 수묵화의 한 점이 된 기분이다.

“차들 드셔요. 그래야 소통이 돼요. 석 잔을 드셔야 돼. 강제로 들어야 돼.(웃음) 스님들은 이게 공부라고 했어요. 마시고 얘기하고, 또 따르고 마시고 얘기하고….”

따스한 물로 울퉁불퉁한 모양의 다기를 쉬이 헹군 뒤, 향이 좋은 녹차를 따라주며 장사익은 말했다.
가만 봐도 묘한 얼굴이다. 해맑기는 엄청 해맑은 미소인데, 그 사이로 굽이굽이 아리랑 고개 같은 주름살이 구름처럼 흘러갔다, 지워졌다 한다. 세상사를 다 꿰뚫은 나그네 같기도 하고, 이제 막 자라나는 아이의 천진난만함도 깃든, 선이 굵으면서도 가늘고, 어둠조차 해학과 웃음으로 승화시키는 우리네 하회탈을 연상케 한다.

“정성껏 노래를 불러야 해요 마치 오늘 꼭 죽을 것처럼 온 힘을 다 바쳐 그렇게 절실하게 부르면, 듣는 사람도 그 마음을 다 알고 그렇게 정성껏 들어줘요. 글도 마찬가지잖아요. 죽어있는 글인가, 살아있는 글인가를 볼 때, 그 기준이 뭐겠어. 내 영혼을 다 바쳐 사력을 다해 썼는가, 아닌가의 차이잖아.
내 노래도 그래요. 희로애락이 다 담겨져 있거든.

노래 하나에 울 수 있다는 게 얼마나 아름다운 일이야. 가슴의 응어리가 풀어지고 즐거움으로 승화될 수 있다면 그보다 큰 보람이 어디 있겠어. 종국에는 같이 하나가 되는 거예요. 그러려면 정성을 한 가득 담아야 해요. 노래하기 전에, 음향 어떤지 보고, 악단 움직임도 보고, 그 공간의 울림도 보고, 틈틈이 노래 연습하고, 그래야 좋은 에너지가 전파돼요.”

사전에 준비한 질문들을 염두에 둔 기자의 표정을 읽었는지, 장사익이 먼저 말문을 열었다. 잠깐 잠깐 질문지 바라볼 필요 없이, 순서가 무슨 상관인가, 그건 나무람이기도 했다. 눈을 마주치고, 서로에게 집중해 정성스레 대화하다 보면, 진짜배기가 나오고, 그걸로 족하지 않느냐는 반문이었다.

▲ 장사익.ⓒ시사오늘 권지예 기자.

참을 수 없는 ‘끼’와 ‘정성’으로 피어난 소리

“하루하루 삶은 굉장히 소중한 거예요. 오늘 하루 어떤 벽돌을 쌓을 것인가, 제 경우는 노래라는 집을 짓기 위해 하루하루 벽돌을 쌓은 거예요. 인생 살면서 얻어터지고 한 것도 결국은 음악으로 종결되는 과정이었던 거예요. 그러려면 나름 최선을 다해 살아야 해요. 또 목표가 있어야 해요.”

목표의 중요성. 장사익은 소리꾼으로 널리 알려졌지만, 장사익 식의 한국 흘림체라고 할 수 있는, 일명 ‘장사익체’를 개발한 이로도 유명하다. 그는 ‘목표’가 왜 필요한지를 언급하는 대목에서 자신이 어떻게 물 흘러가듯 자연스러운 한국 흘림체를 완성하게 됐는지를 예로 들어 설명했다.

“노래하는 틈틈이 신문지를 이렇게 펼쳐놓고, 화선지에다 연습을 했어요. 먹을 풀어가지고 어떤 때는 한 글자만 계속 쓰고 내버리고, 어느 때는 ‘어머니’만 쓰고 내버리는 등 처음에는 그저 맘 가는대로 붓 가는대로 낙서를 한 것에 불과했어요. 그러다보니, 어? 이거 재밌네? 어? 이 삐침 좋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흘림체를 터득하게 된 거지요. 마치 춤추는 듯, 회화적이고 재미난 게 쓰면 쓸수록 엄청 흥미로운 거예요.

그러다 생각이 미친 게, 제 식의 흘림체를 만들어나가자는 거였어요. 한문에는 사오천년간의 역사가 있잖아요? 세계적인 필체가 다 나왔잖아요? 우리나라도 한석봉체나 추사체 등 대가들의 필체가 있잖아요?

반면 한글의 경우는 역사로 따지면 사오백년 됐지만, 제대로 사용한지는 백년뿐이 안 되어서인지 한문만큼의 다양한 필체가 나온 것은 아니어서, 필체의 임자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닌 거예요. (사이) 한 글자 한 글자 계속 썼어요. 그렇게 십년을 쓰다 보니, 여기저기서 제 글씨체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어요.”

대표적으로 한글 옷을 디자인해 세계적으로 히트를 친 이상봉 디자이너를 들 수 있다. 그는 장사익의 안부 편지를 보다, 유연하게 흘러가는 물의 흘림과도 같은 서체를 발견, 이에 영감을 받고 그 이미지를 살려 한글 옷을 디자인했다. 당시 이상봉이 모티브를 얻은 한글은 장사익식의 흘림체와 화가 임옥상의 에너지 넘치는 글씨체였다. 서로 대조적인 이미지의 한글을 재료삼아 만든 한글 옷은 세계적으로 한글의 아름다움을 알리는 물꼬를 열었다.

장사익은 ‘목표’에 대한 얘기는 이솝우화인 <토끼와 거북이>의 예로 미쳤다. “<토끼와 거북이>에서 토끼가 지잖아요? 왜지느냐, 거북이가 100발자국이면, 토끼 얘는 두 세발자국이면 따라가요. 근데 토끼 생각은 뭐냐, 거북이만 이기면 돼요. 그런데 거북이는 토끼가 목표가 아닙니다. ‘꾸준히’…. 이게 목표예요. 그게 무서운 겁니다.

목표가 있는 거와 없는 것은 하늘과 땅 차이예요. ‘내가 저 산을 꼭 올라가야겠어.’, 이 마음으로 등산하는 사람과 친구 쫓아 등산하는 사람이 만드는 결과와 과정은 다를 수밖에 없어요. 목표를 갖고 올라간 사람은 중간 정도 올라갔을 때 ‘야, 내가 중간을 넘었어!’라고 말할 테지만, 목표 없이 올라간 사람은 다리가 아프다고 징징대지요.

정상에 올랐을 때도 목표를 가진 사람은 ‘야, 내가 목표를 달성했어!’라고 합니다. 하지만, 목표가 없이 올라온 이는 ‘아, 다신 안 와!’라고 푸념할 뿐이죠. 그러니까 우리가 이 세상에 나와서, 꽃 한 번은 피워야 되지 않겠어요? 세상사람 중 꽃피고 사는 사람이 몇이나 돼요…? 진정한 인생의 꽃은 자기 스스로 속에서 피어야 돼요.”

꽃으로 치면 장사익은 찔레꽃이다. 그의 대표곡인 <찔레꽃>의 한 소절, 한 소절이 장사익을 닮았다. 찔레꽃처럼 슬프고, 찔레꽃처럼 울고 찔레꽃처럼 사랑했다는 노래가사처럼, 자신을 찔레꽃으로 비유한 그는 아프게 울고, 스스로 꽃을 피워낸 경우다.

▲ 장사익.ⓒ시사오늘 권지예 기자.

장사익의 꽃 <찔레꽃>

- 대표곡인 찔레꽃 얘기를 안 할 수가 없는데요. 찔레꽃을 만들게 된 계기는.

“힘들고 어려울적인, 90년대 초인데…. 그 때 봄에 일찍 피는 꽃들은 다 져버려. 목련, 개나리, 진달래 등 다 져버려요. 그런 다음에 장미꽃이 피는데, 넝쿨장미 같은 게 아파트 밑에 펴있는데…. 당시 저는 땅바닥에 더 이상 내려갈 데가 없을 만큼 힘든 상황이었어요. 그때 아파트 밑으로 차를 타러 내려가는데, 빨간 장미가 아파트 옆에 있잖아요? 맨 날 예쁘다, 예쁘다 했는데, 어느 날 그 주변위로 꽃향기가 나는 거예요. 아, 이게 장미꽃 향기인가? 해서 장미꽃에 코를 갖다 댔는데, 그 향기가 안 나는 거예요.

어? 어디에서 나는 거지? 꽃향기를 따라 주변을 찾아보니…. 그동안 눈에 안 보였는데, 하얗고 소복한 찔레꽃이 피어있는 거예요. 찔레꽃이 잎사귀가 짙은 게 장미잎사귀와 비슷해요. 화려한 장미꽃 뒤로 숨어서 별 볼일 없이 돋보이지 못하고, 거기서 조용히 향기를 내고 있던 거예요. 그때 울어버렸어…. 세상이 마치 그렇잖아. 폼 잡고 있는 사람만 보이고, 진짜 아름다운 소시민들은 돋보이지가 않잖아요. 거기서 딱 내 모습이 오버랩이 되는 거예요.”

장사익은 당시를 회상하듯 <찔레꽃>을 부르기 시작했다.
(노래)하얀 꽃 찔레꽃 순박한 꽃 찔레꽃
찔레꽃 향기는 너무 슬퍼요
밤새 울었지 목 놓아 울었지
찔레꽃처럼 살았지
울었지 사랑했지

“그때 딱 노래인 듯 아닌 노래가 막 쏟아지는 거예요. 그 노래에 제 감정을 진심 어리게 표현했는데, 신비롭게도 듣는 사람들 또한 뭔가 슬프고 찡하다는 거예요. 이게 마음이 전달되는 거예요.”

이 노래를 들으면 이상하게도 우는 사람들이 많다. 장사익이 ‘찔레꽃 향기는 너무 슬퍼요’라고 읊조리면 객석에 앉아 귀 기울이던 사람들은 그 소리에 그만 코끝이 찡해지고 만다. 또 ‘그래서 울었지. 밤새워 울었지’라고 그 다음 가사를 구성지게 부르면 사람들은 뭔지 모를 설움이 밀려와 그만 참았던 눈물이 왈칵 쏟아져버리고 만다.

특히 점점 고조되는 클라이맥스가 압권이다. 그가 몸의 모든 기운을 흔들며 ‘..찔레꽃처럼 울었지... 당신은 찔레꽃’이라고 하면, 번개도 가를 듯이 내질러지는 고음에, 사람들은 그만 뒤통수를 맞은 듯 정신이 번쩍 든다고 한다.

한편으로는 자신을 대변해주는 것만 같은 그 가사를 들으며, 아, 찔레꽃이 바로 내 얘기네? 찔레꽃같이 밑바닥이었는데, 똑같이 말해주네? 내 얘기를 저이가 대신 불러주는구나 싶은 게 가슴 속 응어리져 맺힌 것을 비로소 풀어내는 듯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된다는 것이다. 아이러니하지만, 깊은 슬픔이 위안과 희망으로 승화된다는 얘기다.

“울고 싶을 때 울어야 돼요. 애기가 막 울 때, ‘너 울면 때린다’ 하면, 뚝 그치잖아요? 그럼 아이가 맺혀버려요. 영화 보다가 울고 싶은데 눈치 보느라 울지 못하면, 가슴이 답답하잖아요? 울 때는 그냥 신나게 다 울어야 해요. 그러면 시원해져요. 비가 온 뒤 세상이 깨끗해지는 것과 같은 이치예요. 노래도 그렇고, 응어리진 것들을 풀어버려야 해요. 한이 맺히면 안 돼요. <찔레꽃>도 그래요. 슬픈 노래인데, 종국에는 다 풀어버리는 거예요.”

장사익은 이 같은 마음의 변화를 “하얀 도화지”가 되는 과정으로 비유했다. “관객들이 처음에 콘서트 장에 들어설 때는 저마다 심난한 생각들이 한 가득이에요. 그러다 제 노래를 듣다가 울고, 두 번째는 웃고, 공연장을 나갈 때는 백지장 같이 하얀 도화지가 돼서 나가는 것을 볼 수 있어요. 속을 어지럽히던, 꽉 차있던 상념들이 노래를 통해 맺고 푸는 과정을 겪게 되고, 이 모두가 끝나면 개운해지는 거예요. 아! 사는 게 재밌어, 다시 살아야지! 용기를 얻고 에너지를 갖고 가는 겁니다. 그러면 거기서 다시 그림을 그리면 되는 거예요.”

이처럼 그는 사람들의 심금을 정신없이 끌고 잡아당기고 또 끌고 잡아당기고 하면서 감정의 기승전결을 완벽하게 이끄는 힘을 보여준다. “찔레꽃도 처음에는 되게 여려요. 그러다 끝에선 찔레꽃…!!!!!!!!" 천지가 개벽되듯, 우레가 터지듯, 밑에서부터 이끈 감정을 맨 마지막에 터트리는 힘, 지치고 찌든 오장육부를 맑은 물에 깨끗이 씻어낸 것처럼 개운하게 정화시키는 힘, 그게 장사익이 가진 목청의 힘이다.

일부는 진도 씻김굿과 닮았다고도 한다. 맺혔던 한을 씻어 내리는 치유의 힘이 장사익의 목소리에도 깃들어져 있다는 평가다. 이 같은 얘기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묻자, 장사익도 수긍하는 눈치다.

“우리 고유의 굿은 혼백을 달래는 역할을 해요. 넋을 위로하면서, 살아있는 사람들한테 더 재미있게 살아라, 그러면서 힘을 주는 거죠. 혼백이 지난 설움이라던가, 무거운 잡념을 가볍게 해줘야 하늘로 올라갈 수 있잖아요? 그 슬픔이 동네에 그대로 남고, 배회하면 안 되니까…. 그게 굿판이에요. 몸을 씻듯이 씻어주는 거죠.”

그런 점에서 그는 자신의 소리도 굿과 같은 면모가 있다고 했다. “가끔 장례식장 갈 일 있으면 유족의 부탁으로, 혹은 제가 자진해서 위로하려는 마음으로 영정사진 앞에서 노래를 부르게 될 때가 있어요. 엊그제도 <귀천>이란 노래와 <봄날은 간다>를 불렀는데 고인을 떠나보낸 가족 분들이 울고 난리도 아니었어요. <봄날은 간다>라는 노래가 즐거울 때 들으면 한없이 즐겁지만, 슬플 때 들으면 한없이 슬픈 노래예요. 엄마나 누이들이 좋아하는 노래예요. 님과 함께 약속했던, 화려한 봄날은 바람처럼 흘러가고, 강물처럼 흘러가고, 꽃처럼 흘러가고….”

▲ 장사익.ⓒ시사오늘 권지예 기자.

민족의 한(恨)이 어우러진 ‘흥’

- 소리의 힘은 어디에서 온 건지요.

“목소리에는 울림이 있어야 돼요. 부모님이 주신 것도 있고, 제 스스로 단련 한 것도 있고, 살아가면서 느낀 희노애락(喜怒哀樂)을 통해 얻어진 것들, 그리고 산과 들에서 얻은 것들까지…. 이런 모든 것이 하루아침에 뚝 딱 된 건 아니란 얘기지요. 가을에 열리는 감이라든지, 사과라든지, 이런 과일들만 봐도 바깥에서 비바람 다 맞고 우리에게 단맛을 주는 거잖아요? 저 역시 저와 같은 민초들과 어우러지면서 그 곁에서 듣고, 제 안의 심지를 키운 거예요. 정신을 바짝 나게 할 수 있는 소리, 유연할 때는 유연하고 폭포수 같을 땐 폭포수 같은 소리.”

40대 중반에 데뷔한 늦깎이 소리꾼이지만, 알고 보면 어린 시절부터 소리꾼으로 살아갈 운명을 지녔던 그는 어느덧 20여 년간 한 길만을 정진한 소리꾼으로 살아가고 있다.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평생의 천직을 얻게 된 계기로 거슬러 올라갔다.

장사익의 고향은 충남 홍성군 내 삼봉마을이다. 1949년 7남매 중 맏이로 태어난 그는 동네에서 장구 잘 치는 아버지를 쫓아다닌 덕분인지 일찌감치 ‘흥’을 알았다. 정서적으로 산과 들에서 노는 걸 좋아했고, 성격도 꽤 낙천적이었다.

“엄마, 아부지가 다 무학(無學)이신데, 한글은 다 아셨어요.(웃음) 두 분은 돼지 장사를 하셨는데, 저 어렸을 적부터 사람 심성은 이러이러해야 한다고 귀에 못이 박도록 강조하셨어요. (사이) 부모님은 하늘과 같죠. 정말 존경하고, 없으면 안 되고…. 한적한 시골에 있어서인지 서울이라는 동네가 어떤 동네인지 궁금하기도 했지만, 그저 전 자연스럽게 산 것 같아요. 홀로 지는 노을을 바라보기도 잘 했고, 근처에 비행장이 있었는데 맨 날 비행기가 뜨는 걸 보면서 나도 비행사가 되 볼까, 그런 생각도 하고…”

-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음악에 대한 관심도 많았을 것 같은데.

“음악은 안 했지만, 웅변을 잘하고 싶은 마음에 매일 뒷산에 올라가서 발성 연습을 했어요.”

초등학교 5학년 무렵 반장이었던 그에게, 하루는 선생님이 웅변을 하라고 시켰다. 매해 돌아오는 6.25나 8.15가 되면, 웅변대회가 열렸고, 선생님은 웅변을 하려면 목청이 더 좋아야 한다며 발성연습을 하라고 일렀던 것이다. 그때는 노래를 해야지, 이런 생각은 없었다고 한다. 그 때는 꿈이 컸던 사내아이로서 웅변 잘하는 국회의원이 되면 좋겠다는 바람을 어렴풋이나마 가졌던 시절이다.

“그게 계기가 돼서,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중학교 3학년 때까지 발성 연습을 했어요. 노래를 하려고 발성을 한 건 아니지만, 매일 산에서 뛰놀며 발성연습을 한 게 지금의 소리를 낼 수 있게 해준 거름이 된 거예요.”

학교는 상고(선린상고)를 나왔다. 이후 장사익은 다양한 직업을 거치게 된다. 맨 처음 인연은 보험회사였다. 웅변을 통해 발성 연습을 한 이후부터 다양한 노래를 따라 부르게 돼서인지, 가수가 되고픈 꿈은 고등학교 때부터 막연하게 품게 됐지만, 어떻게 되어야 하는지는 알지 못할 때였다. 하지만, 낙원동 가수 연습실에서 노래를 부르거나, 틈틈이 기타 등 악기를 배우거나, 국악을 배우고, 군 입대도 문화선전부대(1970년 광주 31사단)에 들어가는 등 가수에 대한 꿈을 놓지는 않았다.

“제 생활에서 음악에 대한 끈을 놓지 않고 있었어요. 엄마 탯줄을 잡고 있는 것처럼, 음악은 저와 함께 했어요.”

그러나 삶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첫 직장의 업을 노래로 시작하지 않아서인지, 무역회사, 가구회사, 독서실 운영, 카센터 일까지 십여 군데 거쳐 간 직장마다 실패의 연속이었다.

“직장생활을 25년간 했지만, 다 적응을 못했어요. 무능력해서 잘리고, 소외되고(웃음) 마지막 직장이 매제가 운영하는 카센터였는데, 기술이 있는 것도 아니니까, 거기서도 도저히 안 되는 거예요. 카센터 운영도 적자라서, 매제도 힘드니까 월급 줄 형편도 못 되고, 그래서 안 되겠다, 제 입이라도 하나 줄여야겠다 생각해서 나오게 됐지요. (사이) 뭔가 길이 아니었던 거예요. 제 몸에 맞게 옷이 딱 달라붙어야 되는데, 그게 안 됐던 거죠.

다행인 건, 그때 좌절은 했어도 크게 좌절하지 않았던 게 얼마나 고마운지 몰라요. 술도 못하고 담배도 못해서, 죽도로 힘든 순간에도 딴 짓은 안 했어요. 결국 지금은 이렇게 노래를 하게 됐고, 이 노래만큼은 19년 째 하고 있잖아요? 남들은 어릴 때 데뷔해서 가수가 됐지만, 중간에 그 업을 포기한 분들도 있잖아요? 그런데 저는 이리이리 돌아왔지만, 19년간이나 하고 있으니 얼마나 다행인가요. 그래서 전 지나온 길이 너무 고맙고 그래요. 다 거름이고, 토양이었다고 생각해요.”

▲ 장사익.ⓒ시사오늘 권지예 기자.

인생의 가을에 만난 천직, ‘노래’

- 본격적으로 음악을 해야겠다, 다짐했던 때는 언제인가요.

“불혹의 나이로 접어들면서 문득 그런 생각이 드는 거예요. 내가 인생을 잘 살고 있는 건가하고. 비로소 제대로 살아보고 싶었던 게지. 이것저것 여러 생각을 하다가 틈틈이 익혀왔던 태평소를 미친 듯이 죽기 살기로 불어보자 싶었어요. 내로라하는 국악단체를 쫓아다니며 93년까지 정말로 열심히 불었어요. 그러다, 94년 중반 무렵쯤부터인가? 갑자기 신들린 무당처럼 뭔가에 홀린 듯이 불쑥불쑥 노래가 막 튀어나오는 거예요.

터져 나오는 대로 노래를 불렀더니 주변에서 그러는 거야, 야, 너 세상에 나가라…. 그때가 마흔 중반이었어요. 그래서 제가 더 그런 생각을 하는 수도 있어요. 비록 늦은 나이긴 했지만 내 인생이 쉬이 정착 못하고 굽이굽이 풍파가 많았던 것도 다, 노래라는 집을 짓기 위해서가 아닌가….”

그가 가장 행복할 때는 그래서, 노래할 때다. “마흔 여섯에 이틀간 콘서트를 딱 하고, 첫 탄성이 오! 아이 엠 해피였어요. 행복이란 말이 그냥 나와요. 이게 행복이다, 이게 노래하는 게 행복이다….”

늦게 핀 꽃 장사익. 때문에 그는 다양한 꿈을 가진 젊은 친구들을 향해 조급해하지 말라고도 당부했다.

“진달래, 목련, 개나리 이런 꽃들은 봄에 피어나지만, 국화꽃, 구절초, 코스모스 이런 꽃들은 가을에 피어나지 않아요? 일찍 피는 꽃도 있으면 늦게 꽃피우는 것도 있는 거예요. 휠체어 타는 사람은 비행기나 KTX 타는 사람들이 구경하지 못하는 걸 구경할 수 있어요. 걸어가면 꽃이 보이고, 잎이 보여요. 빠른 물체를 탄 사람들은 그 꽃을 스쳐지나갈 뿐이지만, 휠체어 탄 사람은 그 길을 지나면서 그 꽃을 손으로 만지고, 느껴요. 제가 직접 봤어요.(웃음)

이렇게 늦게 가고 천천히 가야, 세상이 다 보이는 거예요. 그런데 우리는 너무 빨리 가려고만 하잖아요? 늦게 피어난 꽃이라고 서러워 것 없어요. 삶의 혜안이 있으려면 노래 속으로 흘러들어가야 해요. 천직을 만나는 것은 다 때가 있어요. 늦게 피어난 꽃이 향기도 오래 가요.”

그래서 그의 꿈은 죽을 때까지 노래를 하다 죽는 것이다.

▲ ⓒ시사오늘 권지예 기자.

- 예전만큼 소리가 나오지 않을 수도 있을 텐데요.

이 질문에 장사익은 커다란 사진첩 하나를 꺼내들었다. 신중히 책장을 넘기다, 한 할머니의 모습이 나오는 부분에서 손동작을 멈췄다.

“이 분이 춤추시는 외교사절단이신데, 연세가 91세예요. 작년 12월 19일 눈이 제일 많이 오던 날 추신 건데…. 얼굴 보세요. 검버섯만 봐도, 살날이 얼마 안 남으신 거죠. 전날 돌아가실 기색이셔서 모두를 집합시켰어요. 그분의 춤을 남겨 둬야 한다는 생각이었지요. 따님에 모시고 왔는데, 무대 위에서 딱 손을 놓으면서 1분간 췄어요. 그러다 비틀거리니까 따님이 다시 휠체어에 앉히고, 당신 딸이 대신 췄어요. 엄마 봐요, 이렇게…. 그러자 이분이 웃으셨어요. 잘 췄다고. 춤이 끝나고 나서 전원 기립박수를 쳤어요.”

그는 노래도 이와 마찬가지라고 했다. “저 늙은 놈이 노래를 저렇게 부르네? 그게 바로 와 닿는 거예요. 목이 안 나오면 안 나오는 대로 마지막 한 소절까지 혼을 다해 부르고, 그것을 듣는 것 역시 예술이고, 위안이자 치유예요.”

한국의 아름다운 시어들을 재료삼아 민요와 가요, 재즈와, 국악을 넘나드는 장사익, 사람들은 그의 노래를 두고, 뭐라 장르를 규정할 수 없다고 한다. 이에 어느 이는 영혼을 울리는 치료사, 한국토속 재즈싱어, 어느 이는 대안(代案)가수라고도 한다. 농민대중가수, 퓨전국악가수도 그를 따라붙는 수식어다. 그러나 장사익 노래는 그냥 ‘장사익표 노래’일 뿐이다. 조용필 노래가 조용필 노래고, 송창식 노래가 송창식 노래이듯.

그는 특히 악보 없이 원시적으로 작곡을 하고, 박자 없이 호흡의 장단에 맞춰 노래를 잇는 것으로 유명하다.

“엄마가 아기에게 들려주는 자장가를 악보 보고 배우나요? 자장..자장..우리 아가..세대에 이어서 구전으로 전해져오는 거잖아요? 악보라는 것은 우리가 그 음을 잊어버리지 않게 하기 위해 기록해두는 것이지, 꼭 악보가 먼저 나올 필요는 없다는 거예요.”

때문에 그는 먼저, 자연스레 입 밖으로 내어지는 음을 읊조리며 여기에는 이런 운율에 이런 고조장단을 했으면 좋겠다, 또 저기에는 대금, 요기에는 트럼펫이 들어갔으면 좋겠다고 여기며 불러지는 음을 토대로 상상으로 악기를 연주해서는 이를 녹음하고 후에 정식악보로 기록해둠을 취하고 있다.

장사익은 또한 박자에 맞춰 노래를 하는 것이 아닌 호흡으로 박자를 만들어가는 이다. 그가 박자 없이 노래를 하게 된 연유는 재즈드럼 연주자인 김대환 선생의 영향 때문이다.

김 선생은 그가 노래 좀 한다는 이야기를 전해 듣고서 하루는 “자네, 산토끼를 박자 맞히지 말고 한 번 불러보게”라고 그를 불러 앉히며 시켰다고 한다. 그런데 박자 없이 “산토끼..산토끼..”를 부르려는데 어찌나 힘이 들던지 자꾸만 머릿속으로 알아서 먼저 박자를 세게 되는 것이었다. 그때 보다 못한 김대환 선생이 “자네 지금 속으로는 박자를 세고 있잖아”라고 말하며 정곡을 찔렀다.

“어떻게 박자 없이 노래를 할 수 있는 걸까...순간 머리가 띵했어요. 그런데 잠시 뒤, 무릎을 탁 치게 된 거예요. 그래, 호흡이 끝날 때까지 한 번 해보자.”

이후 장사익은 호흡을 이용해 노래를 불렀다. 그런다고 해서 ‘아버지 가방에 들어가신다’ 처럼 무슨 말인지 모르게 부르는 것이 아니었다. 호흡으로 부르되 ‘아버지가 방에 들어가신다.’처럼 정확한 의미와 감정법이 전달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었다. 그랬더니 참 신기하게도 그가 표현하고 싶은 만큼 호흡으로 박자를 엮으며 노래할 수가 있게 된 것이었다. 그렇게 해서 나온 노래가 <찔레꽃>, <국밥집에서>, <귀천>, <아버지>, <봄비>, <섬>, <하늘 가는 길>, <꽃구경>, <길> 등이다.

▲ 장사익.ⓒ시사오늘 권지예 기자.

- 1집 <하늘가는 길>이후 7집 <역驛>까지 내셨는데요, 그간의 테마 변천에 대해 언급한다면.

“저는 조금 무거운 노래를 많이 해요. <기침>, <허허바다>, <꽃구경> 등 전부다 어두운 노래들 입니다. 기침이라는 건 살면서 담배 퍽퍽 피면서 한숨 쉬잖아요? 옛날에 봐도 아부지들이 힘들고 그럴 때 담배 물고 푸하면서, 한숨 쉬는데 이것이 하나의 기침이다, 살아가는데 기침이다, 콜록콜록….

예를 들어 고향이 그리워 향수병 든 할아버지들이 폐렴 걸려가지고 돌아가시기 전에 기침하잖아요? 저 기침 언제 끝나나,, 그런 마음으로 저는 노래를 해요. 그것 또한 죽음과 삶을 나타내지요.
정호승 시의 <허허바다>를 노래로 만든 것도 ‘살아도 사는 것이었고, 죽어도 죽은 것이었고
우리는 저 바다에 떠있는 조그만 겨자씨 같은 존재다….’ 이처럼 존재의 의미 같은 것을 얘기했어요.

6집 <꽃구경>도 죽음과 연관 됐지요. 옛날 고려장에 대한 얘기가 그 안에 있어요. 나이든 엄마를 고려장 하는, 먹고살 수 없으니까 고려장 치는…. 일본에서도 그런 풍습이 있었대요.
사람들이 다 노래라는 건 즐거움만 생각하잖아요? 그게 아니라 무거운 주제들 얘기하면서 역설적으로 살고 있는 시간들을 좀 벗어버리고 깜깜한 밤에 불빛만 봐도 희망을 느낄 수 있게 하는 거라고 봐요.”

6집 <꽃구경>이후 오랜 침묵 끝에 내놓은 7집 <역(驛)>(2012년)은 우리네 ‘인생’을 노래한 앨범이다. 장사익을 7집에 대해 말하기에 앞서 노래 한 소절을 불렀다.  (노래) 잎사귀 하나가 가지를 놓는다, 한세월 버티다보면 뿌리내려 덩달아 뿌리내려 나무 될 줄 알았다, 기적이 운다, 기적이 운다, 꿈속까지 찾아와 서성댄다

“우리인생 그렇잖아요. 기차 타는 사람들 보면, 막 휘몰아 가잖아요. 서울에 뿌리 내린 사람들은 정착해 있지만, 뿌리를 내리지 못한 사람들은 다시 기차역으로 가지요. 역 전 앞 보면, 노숙자들도 많이 있는데, 그들도 마음만 먹으면 고향에 갈 수 있지만 가지 못하고…. 노래를 곱씹으면 곱씹을수록 아, 우리 인생이 이렇게 힘들구나, 사는게 이렇게 힘들구나, 그런 의미가 있지요.”

-다음 앨범인 8집 테마는 따로 염두에 둔 게 있나요?

“구상 선생의 <꽃자리>란 시가 있어요. ‘반갑고 고맙고 기쁘다, 네가 앉은 자리가 꽃자리니라’…. 너무 아름답지요?(웃음) 요즘 돌아보면 징징 대는 이들이 많아요. 사실, 저도 몸이 많이 안 좋기도 해서 힘들 때도 있지요. 소변도 잘 안 나오는 등 배설하기도 힘들 때가 있어요. 몸이 약해져가는 거지요. 맨 날 감기 들어 빌빌거리기도 하고, 이럴수록 몸 전체 하나하나가 얼마나 소중한지 깨닫게 돼요.

그런데 또 얼마 안 가면 잊어버리잖아요? 예를 들어, 건강하다는 것 자체가 얼마나 고마운 일인지를 까먹는 거예요. 그래서 반갑고 고맙고 기쁘다처럼, 감사할 일이 많다는 걸 노래하고 싶어요.
우리가 뱃속에 있을 적에, 직접 밥을 안 먹어도 숨을 안 쉬어도 생각을 안 해도, 엄마가 다해주잖아요? 탯줄을 통해 좋은 음식 가려서 주시고, 애기 잘 되라고 기도하시고.”

(노래) 아주 작은 생명 하나, 꽃처럼 생겨난, 엄마 사랑 듬뿍 받고 꿈결 속에 노닐다가,
(노래) 반갑다 소중한 내 아가야, 반가워요, 반가워요, 만나서 반가워요…. 징검다리 밟고서 굽이굽이 인생길을 이렇게 노래하는, 고맙다 고마워 소중한 내 친구들, 고마워요 고마워요 정말로 고마워요

“태어나서 좋은 인연 때문에 노래를 하고 기쁘잖아요? 고맙잖아요?(웃음)”

화제를 돌렸다. 현재 ‘장사익표 노래’는 외국에서도 특별한 노래로 사랑받으며 귀한 대접을 받고 있다. 그만의 구성진 음색과 독특한 창법으로 인해, 오래전에는 ‘하늘로의 여행-장사익소리판 꽃구경-이란 테마로 열렸던 뉴욕월드뮤직공연 역시 성황리에 끝나며 관객들의 뜨거운 찬사를 얻어낸 바 있다.

▲ 장사익.ⓒ시사오늘 권지예 기자.

‘詩’로 엮어진 광대와 세계와의 소통

- 해외 공연도 많이 다니셨는데, 반응은 어떤가요.

“베토벤 음악을 들었을 때, 이렇다 할 설명도 없고, 가사가 없어도 전 세계인들이 그 감동을 느낄 수 있는 것과 같아요. 제가 슬픈 노래를 하잖아요? 해외 관객들에게도, 어? 이 노래가 좀 슬픈 거 같네? 그러면서 소통을 하는 거예요. 다른 거 없어요. 백짓장처럼 음악을 받아들이면 소통이 돼요.”

선생의 노래에 반한 외국인들은 한번은 꼭 그의 노랫말을 찾아보게 되는데 그럴 때마다 가사가 시처럼 너무 아름답다고 말하며 감탄하게 된다고 한다. 사실, 시가 맞다. 그는 대부분 자신이 직접 가사를 쓰는 대신에, 우리의 아름다운 말과 정신이 담긴 시들 -예를 들면 천상병의 <귀천>, 정호승의 <허허바다>, 서정주의 <황혼길>, 김형영의 <꽃구경> 등-을 발견해 그것으로 노래를 창작하기 때문이다. 물론 그가 지은 시들도 여럿 있다. 대표적으로는 앞서 언급된 주옥같은 노래로 일컬어지는 <찔레꽃>이 있다.

“시라는 것이 노래 아닌가요. 함축된 삶의 노래…. 때로는 제가 짓고, 때로는 우리나라 좋은 시어를 빌리는 거예요. 예를 들자면 이래요 제가 울긋불긋 단풍 든 가을 산을 참 좋아해요. 그래서 산을 생각하면 나는 빨간 산부터 떠오르는 거예요. 근데 마침 어떤 시인이 내 마음과 꼭 같게 푸른 산을 노래하는 대신, 빨간 산을 노래하고 있는 거예요. 어..? 내 마음 그대로네..? 그럼 그 시가 곧 내 시가 되는 거예요.

어설프게 작사하는 것 보다, 우리만의 정서가 고스란히 묻어난 시어들이 대중음악 속에 녹아있으면 정말 멋있고 아름다운 일이잖아요. 가사도 아름답고 곡이 아름다우면, 몇백 년이 지나도 그 노래는 가면 갈수록 영롱하게 빛이 나잖아요.”

그러면서 차 한 잔을 더 권유하며 창 너머의 풍광으로 시선을 향한다.

“저 나무들을 봐요. 어떤 아이들은 햇빛을 제때 못보고도 봄이 오나 눈이 오나 그 자리에서 죽을 때까지 평생을 살아요. 옆에 생채기를 내는 것들이 있어도 묵묵히 살아요. 그게 자연이에요. 그런데 우리들은 어때요? 여름을 겨울처럼 살고, 겨울을 여름처럼 살려고 아등바등해. 철없다, 철없다 하죠? 그게 다 철을 철대로 살지 못하고 훌쩍 뛰어넘어서 그런 거에요. 봄은 봄대로, 가을은 가을대로 살고 싶어요.”

문득 그만의 노래 만드는 법은 무엇인지도 궁금했다. “계속 흥얼흥얼거리다 보면 나와요. 시 같은 건 운율이 있잖아요? 한 예로 박목월 시인의 <나그네>라는 시가 있다면, 기타 치면서 이렇게도 불러보고, 저렇게도 불러보고…. ‘구름에 달 가듯이’이라는 구절도 수십 번 반복하고, 때로는 백 번, 천 번 해 보고…. 아름다운 시를 보고서 수십 번 보고, 읽고, 느끼고 이렇게 하고 있으면, 와 이게 일 년이 될지 한 달이 될지 몰라요. 허허허. 어느 때는 <찔레꽃>처럼 즉흥으로 바로 나오기도 하고, 어느 건 1년, 또 어느 건 3년까지…(웃음)”

그의 작법 역시 장사익을 닮았다. 다소 더딜지라도, 시나브로 꽃 한 송이 피어날 때를 기다리며, 연습 또 연습을 하는 것이다. “저는 작곡이라고 하지 않고 엮음이라고 해요. 엮음…. 굴비를 엮듯이, 그동안 경험했고, 불러오고, 익혀온 노래의 편린들, 그 조각들을 찬찬히 어루만지다보면, 저희들까지 엮어져요. 물 흘러가듯 자연스럽게.(웃음)”

 

담당업무 : 정치부 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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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지현 2013-08-19 23:40:08
좋은 기사 잘 읽었습니다.
보통의 인터뷰 기사에 비해서 장문이었지만 수려한 문장에 한줄한줄 즐겁게 읽었습니다.
또한 장사익씨에 대해서 보다 깊이 있게 알게되어 좋았습니다.
앞으로도 좋은 기사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