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정치 50년 史>YS 당선 후 광명시에 '손학규 공천'…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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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정치 50년 史>YS 당선 후 광명시에 '손학규 공천'…왜?
  • 노병구 자유기고가
  • 승인 2013.08.02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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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손학규 공천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

광명시 보궐선거의 개혁공천

1993년 2월25일 여의도 국회의사당 광장에서 대망의 제14대 대통령 취임식이 열리던 날, 나도 김영삼의 대통령 취임식에 참석했다.
암담하던 시절 감히 꿈도 꾸지 못했던 기적을 눈앞에 보면서 나는 만감이 서려 눈시울을 적시며 김영삼의 취임사를 경청하며 하나님께 감사했다.

그 며칠 후 윤항열 의원의 급서로 공석이 된 광명시 국회의원 보궐선거 문제가 불거져 나왔다. 이번 선거에는 지난 제13대 국회의원 선거에 통일민주당 공천으로 입후보도 했고 통일민주당 광명시 지구당 위원장과 민주산악회 광명시 지부장을 역임하면서 오랫동안 지역기반을 쌓았고 민주산악회 조직위원장을 거처 연수원장을 역임하며 지난 대통령 선거 때는 전국에 있는 간부연수에 심혈을 쏟아 맡은바 소임을 다한 노병구 연수원장이 당연히 민자당의 공천을 받을 것이라고 예측하고 있었다. 주위에서는 “노병구에게 기회가 왔다”고 많은 사람들이 부러워했다. 또 광명시 내에서도 “보나마나 당연히 노병구가 공천이 될 것”이라고 아무도 경쟁을 하려는 사람이 없었다.

최형우 회장을 비롯한 모든 간부들도 이번에는 노 원장을 공천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아무런 이견이 없었고 한번은 국회에 일이 있어 들렀더니 당시 국회의장인 황낙주 의장이 나를 보고 쫓아오면서 반갑게 맞이하며 최형우 회장으로부터 말을 들었다고 하면서 꼭 당선되어 국회에 들어와서 함께 일하자고 진심어린 축하의 말을 건넸다.

그런데 공천 발표 날짜가 다가오면서 이상한 소문과 함께 최형우 회장이 나를 대하는 태도가 왠지 부자연스럽게 느껴졌다. 어느 날 아침 일찍 구기동 최형우 회장댁을 방문했다.
나는 최 회장에게 “요즈음 떠도는 소문이 사실이냐”고 물었다.

최 회장은 분명한 대답을 회피하면서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나는 “회장님 이래도 되는 겁니까. 문민정부가 이제 막 출발하는 마당에 지금껏 고생하며 함께 달려온 사람을 밀어내고 누구를 공천한단 말입니까. 내가 무엇을 잘못했는지 공천을 못주는 분명한 이유를 말씀해 주십시오. 적어도 민주산악회 최 회장님께서 저의 공천은 책임을 지셔야 합니다.”

그랬더니 최 회장은 “내가 왜, 책임을 져야합니까. 공천을 내 마음대로 하는 거요. 왜 나한테 그래요?”하면서 나중에는 육두문자까지 써가며 모른다고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였다.

“그럼 회장이 모르면 누가 아는 겁니까? 이 문제는 회장님께서 대통령각하께 전후 사정을 사실대로 말씀드려줘야 하는 것 아닙니까? 나도 일생을 바쳤습니다. 이제 공천을 주면 당선이 확실한데 이렇게 하면 안 됩니다. 나는 갑니다.”

공천 과정은 상식을 벗어난 방향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그 소식이 퍼져 나가자 당연히 연수원장이 공천될 줄 알았던 산악회 회원들이 말도 안 되는 민주산악회의 해체과정을 떠 올리며 두  번째 배신감을 느끼며 시작부터 무언가 잘못 돌아가고 있다고 오히려 앞날을 두려워하기 시작했다.

당시 실력자로 지목되던 최형우, 김덕룡, 서석재, 황명수 등이 나를 위로하며 우리가 바라던 김영삼 상임고문이 대통령이 되었고 집권을 했으니 가까웠던 우리가 참고 대통령을 편하게 해드리는 것도 좋지 않겠느냐고 하면서 국영기업체에 자리를 마련하겠다고 회유했다.

며칠 후 서강대학교의 교수로 있던 손학규가 공천자로 발표되었다.

나는 곧바로 한국마사회 업무이사로 발령을 받았다.

참으로 상식 밖의 결정에 나와 같이 오랫동안 민주산악회를 하며 동고동락한 동지들이 울분을 토했지만 달리 어떻게 할 길이 없었다.

그냥두면 그 조직은 와해되고 모두 산산조각이 나게 생겼다.

나는 그때 내 집 한 칸도 없이 겨우 11평짜리 주공아파트를 월세로 살고 있을 때인데 공천을 받은 손학규가 찾아와서 “넓은 마음으로 이해하시고 밀어주시면 민주산악회 선배님들과 함께 성심을 다해서 열심히 일 하겠습니다”하고 머리를 조아렸다.

나와 아내는 아프고 쓰리지만 그의 인사를 받은 후 민주산악회 광명시지부 간부들을 금산빌딩 사무실로 불러 그간의 노고를 치하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나의 부덕의 소치로 상식 밖의 결정이 나서 여러분에게 실망을 안겨드려 죄송합니다. 그러나 이미 주사위는 던져졌고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가의 결정을 강요받고 있습니다. 우리는 참으로 오랫동안 이 나라의 민주화를 위해 만난을 무릅쓰고 손잡고 싸워온 전우입니다.”

“우리가 바라던 군정은 손을 들어 항복을 했고 우리가 지도자로 받들던 김영삼 상임고문은 대통령이 되어 우리가 목 메이게도 바라던 민주주의가 싹트기 시작하였습니다.”

“어이없는 민주산악회의 해체, 상식 밖의 공천, 이런 것들이 우리를 계속 슬프게 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국민과 우리 모두의 소망이었던 민주주의를 포기할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우리는 생사를 초월해 민주주의를 쟁취한다는 큰 뜻으로 뭉친 동지들입니다. 우리는 어렵게 민주화의 문턱까지 와서 지금 생각 밖의 시련을 만났습니다.”

“사랑하는 동지여러분. 그동안 더 어려운 일들을 수없이 겪으면서 여기까지 왔습니다. 나는 여러분 앞에 죄인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여기서 좌절할 수는 없습니다. 그럴수록 우리가 바라던 민주주의 국가를 건설하는데 힘을 합쳐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사랑하는 동지여러분, 죄송합니다. 저는 한국마사회 업무이사로 발령을 받았습니다. 불만이지만 소임을 다하려고 생각합니다. 나는 어디에 가 있던지 동지 여러분을 잊지 못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민주산악회는 간판을 내렸지만 우리의 의리는 변할 수가 없고 우리의 단결은 더욱 공고히 다져나아가야 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제가 맡아 왔던 지부장의 직책을 수석 부지부장으로 수고해 오신 심상구 에게 수고해달라고 말씀을 드리고 이후 심상구 부지부장을 중심으로, 만족하기는 어렵겠지만 이번에 공천을 받은 손학규 씨를 꼭 당선시키는데 힘을 합쳐 주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가정에 늘 행운이 함께 하시기를 빕니다. 감사합니다.”

그렇게 나는 오랫동안 맡아왔던 민주산악회 광명시 지부장 직에서 물러났다.
민주산악회 회원들은 억울하고 분한 생각을 삭이면서 열심히 선거운동을 해 손학규 후보 당선을 위해 크게 기여했다.

광명시의 공천 역시 김영삼의 진정한 민주정치를 이 땅에 확고하게 뿌리박고자 하는 애국적 충정에서 자신의 손발부터 정리하고 국민이 바라는 개혁을 위해 새 바람을 일으키려는 처사였다고 나는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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