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완구, '포스트 JP'를 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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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완구, '포스트 JP'를 노린다.
  • 윤명철 기자
  • 승인 2013.11.03 02:0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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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주목할 정치인 (20)> “누구나 갈 수 없는 길을 걸어왔기에…”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윤명철 기자)

▲ 충청권 맹주를 노리는 이완구 의원ⓒ뉴시스

새누리당 이완구 의원은 엘리트 행정 관료 출신 정치인이다. 지난 4월 부여·청양 재선거에서 당선된 3선 의원이다. 이번 10월 30일 화성갑 재선거에서 서청원 의원이 당선되자 새누리당 당권 경쟁이 본격화될 전망이다. 이완구 의원은 요즘 대세 김무성 의원을 비롯해 6선의 이인제 의원과 더불어 새누리당의 유력한 당권주자로 주목받고 있다. 포스트 JP를 노리는 이완구 의원은 2014년을 기다린다.

15대 총선, 충남에서 홀로 살아남다.

이완구 의원은 1950년 충남 청양에서 출생했다. 대전의 명문 대전중을 거쳐 서울의 사립 명문 양정고를 졸업했다. 박근혜 정권에서 새로운 인재풀로 성장한 성균관대 행정학과 재학 중 제15회 행정고시에 합격했다. 엘리트 행정공무원이었던 이 의원은 화제를 몰고 다녔다. 그는 1981년 30대 초반의 젊은 나이에 당시 최연소로 충남 홍성경찰서장에 임명돼 주목받았다. 이어 최연소 경무관으로 승진돼 40대 나이에 충북경찰청장과 충남경찰청장으로 영전한다.

이완구는 정치인으로 변신해도 주목을 받았다. YS와 결별한 JP의 자민련 돌풍이 몰아치던 제15대 총선에서 신한국당 소속으로는 충남에서 홀로 살아남았다. 초선의원임에도 불구하고 신한국당 대표 비서실장과 원내부총무로 활약했다. 하지만 이 의원은 당적을 옮긴다. 1997년 대선에서 DJP연합으로 정권이 교체됐다. 이듬해 그는 공동정권의 대주주인 JP의 자민련으로 갈아탔다. 2000년 제16대 총선에서 자민련 소속으로 재선에 성공한다.

이 의원은 자민련에서도 능력을 인정받았다. 그는 제1사무부총장과 대변인, 원내총무 등을 역임했다. 자민련의 대주주들은 그를 인정했다. 故 박태준 총재는 그에게 '철두철미하다'는 평가를 줬다. 원조 충청권 맹주 김종필 명예총재는 '번개가 치면 먹구름이 낄지, 천둥이 칠지를 아는 사람'이라고 호평했다고 전해진다.

앞만 보고 달려가던 이완구 의원에게 정치적 시련기가 찾아온다. 정치인 이완구는 2002년 대선 직전 한나라당으로 돌아온다. 2번 당적을 바꾼 그는 철새 정치인으로 비난받았다. 17대 총선을 앞두고 이 의원은 일명 ‘이적료’ 파문에 휩싸인다. 결국 그는 제17대 총선에 불출마하고 미국으로 떠났다.

1년여의 시간을 보낸 이 의원에게 다시 기회가 찾아왔다. 박근혜 당시 대표가 맹활약했던 2006년 5월 제4회 지방선거에서 한나라당 소속으로 출마해 충남도지사에 당선됐다. 이완군 충남지사는 '한국의 중심, 강한 충남'이란 캐치플레이즈를 내걸고 기업 및 외자 유치를 통한 지역경제 활성화에 나서 행정능력을 인정받는다.

하지만 2009년이 되자 정치인 이완구에게 중요한 선택이 기다리고 있었다. 박근혜 대통령과 뜻을 같이한다. 2009년 12월 4일  이명박 정부의 세종시 수정안에 반대하며 지사직을 미련 없이 사퇴했다. 당시 그는 "세종시 원안 추진을 당부한 충남도민의 소망을 지켜내지 못한 정치적 책임을 지겠다"는 사퇴의 변을 밝혔다. 당시 박근혜 의원이 세종시 원안을 고수하던 차에 이완구 당시 충남지사의 사퇴는 친박계에는 인상적인 모습을 남긴 것으로 전해졌다. 

▲ 세종시 원안고수를 촉구하며 충남도지사를 사퇴한 이완구 ⓒ뉴시스

이런 인연 탓인지 지난 대선에서 그는 중용된다. 이 의원은 지난해 대선에서 새누리당 충남도당 공동 선대 위원장을 맡았다. 이 의원은 충청권 유세에서 "박근혜 후보는 수도권 2000만 표가 날아가는데도 500만 표 밖에 안 되는 충청인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정치적 생명을 걸고 세종시 약속을 지켰다. 이젠 충청도 사람이 박 후보에게 진 빚을 갚아야 한다"며 지지를 호소했다. 마침내 박근혜 후보는 대선의 캐스팅 보트을 쥔 충청권에서 여유있는 승리를 거둬 대권을 잡는다.

2013년이 되자 이완구 의원은 원내 진입에 목표를 뒀다. 그는 40년 가까운 공직생활로 풍부한 행정능력과 정치적 경륜을 갖췄다. 드디어 2013년 4월 24일 부여·청양 국회의원 재선거에 출마해 당선됐다.

지난 4월 재보선은 유력한 차기 당권 경쟁자인 김무성 의원과 야권의 가장 유력한 차기 대선주자인 안철수 의원이 당선된 화제의 선거였다. 당연히 이완구 의원도 주목받았다. ‘영원한 2인자’ JP 이후 뚜렷한 정치거목을 갖지 못한 충청권의 대표적 정치인으로 급부상했다. 선진통일당의 대표를 거친 ‘피닉제’ 이인제 의원과 충북지사를 지낸 정우택 의원과의 경쟁은 불가피한 상황이다.

이완구 “아무나 갈 수 없는 길을 열고자 한다.”

박근혜 정부 출범이후 충청권 정치인들이 주목을 받는다. 특히 지난 10월 30일 재보선으로 여당의 큰 어른인 서청원 의원이 국회에 돌아왔다. 충남 천안이 고향이다. 서청원은 원조 친박이다. 또한 현역 YS계 정치인 중 가장 원로다. 당권 경쟁자로 손꼽히는 김무성 의원, 6선의 이인제 의원과 같은 상도동계이지만 ‘급수’가 다르다. 이완구 의원과는 같은 충청권이다.

올해는 충청도 정치인에게 새로운 과제가 주어졌다. 충청권 국회의원 의석 증설이다. 올 들어 충청권 인구가 호남권을 추월했다. 안전행정부 통계에 따르면 9월 말 현재 충청권 인구는 526만 여명으로 호남권(525만 여명)보다 1만2000여명 더 많다. 충청권은 매달 3000명씩 인구가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이제는 충청권이 캐스팅 보트 역할이 아닌 영남과 더불어 정치지형의 양대축이 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문제는 국회의원 수다. 인구에 비해 의석수가 부족하다는 지역 여론이 들끓는다. 인구 수나 유권자 규모에서 호남을 추월했다. 하지만 국회의원 의석 수는 호남 30석(광주 8, 전남 11, 전북 11)이다. 충청이 25석(대전 6, 세종 1, 충남 10, 충북 8)으로 5석 적다. 충청권은 세(勢) 확장을 원한다. 지난날 3김은 이런 정치적 욕구를 충족시켰다.

이완구 의원을 정치에 입문시킨 YS는 일찍이 정치에 대해 '세(勢)'라고 정의했다. YS는 정치는 동지들과 함께 세(勢)를 유지하는 것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이다. 이완구 의원은 평소 “누구나 갈 수 없는 길을 걸어왔기에 아무나 갈 수 없는 길을 엽니다”는 말을 자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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