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청원과 김무성은 경쟁 관계 아닌 '협력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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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청원과 김무성은 경쟁 관계 아닌 '협력자'
  • 윤진석 기자
  • 승인 2013.11.04 14:1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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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S 후예에서 朴에 뿌리내린 선후배 간 조화 '주목'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윤진석 기자)

새누리당 서청원 의원과 김무성 의원은 공통점이 여럿 있다. 정치 뿌리가 같은 이들은 상도동계 선후배 사이로 YS(김영삼)를 최측근에서 보좌했다.

기자 출신의 서 의원은 1981년 민주한국당 소속으로 11대 국회에 입성한 이후 YS 밑에서 민주산악회 자유의 종 편집위원장, 민주화추진협의회 언론자유특별위원회 위원장 등을 맡았다. 또 통일민주당 대변인부터 김영삼 총재비서실장 등을 거쳐 문민정부 때는 정무제1장관, 신한국당 원내총무 등을 역임했다.

김 의원은 1985년 상도동에 입문한 후 민추협 특별위원회 부위원장, 통일민주당 13대 선거대책본부에서 활약했다. 1990년 3당 합당 때는 야당 총재였던 YS를 따라 민자당 신한국당 등을 거쳤으며 YS정부 때는 40대의 젊은 나이에 민정수석비서관과 내무부 차관을 지냈다. 이후 1996년 15대 총선을 통해 첫 국회의원 배지를 달았다.

▲ 새누리당 서청원(좌)·김무성(우) 의원.ⓒ뉴시스.

서 의원이 지난해 민산 되짚기 인터뷰에서 YS를 두고 "누가 뭐래도 YS는 훌륭한 정치 지도자"이라고 회고했다면, 김 의원은 <월간조선>과의 인터뷰에서 "가장 닮고 싶은 정치인은 김영삼 대통령"이라고 자신했다.

이들 모두 YS 후예로 시작해 박근혜 대통령의 동지로 정착했다. 서 의원과 박 대통령의 인연은 199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해 4월 박 대통령은 오랜 칩거를 끝내고 15대 국회에 입성하면서 정치를 시작했다. 이때 박 대통령을 대구달성군 후보로 공천한 이가 바로 서 의원이다. 그는 당시 한나라당(현 새누리당) 사무총장이었다.

YS·朴 정부 출범 공신

서 의원이 본격적으로 원조 친박을 표방한 때는 2007년부터다. 이에 대한 비화는 다음과 같다.

"2007년 4월에 제가 박근혜 지지를 선언했습니다. 그때 제가 '박근혜에게 빚 갚으러 왔다.'라면서 지지 선언을 했습니다. '2002년 대선 때 이회창 후보가 패배하고 당이 어려웠는데 그 시기에 박근혜가 대표를 맡아 총선에서 121석을 건지며 한나라당을 살렸다. 그래서 전직 대표로서 박근혜에게 빚이 있다.' 그런 얘기였습니다."(서청원/시사오늘 민산되짚기 21화 인터뷰 중)

이후 두 정치인은 끈끈한 의리를 지켜왔다. 박 대통령이 당내 대선후보 경선에서 이명박 후보에게 패한 뒤 MB정권이 들어서던 2008년은 친박계의 수난시대나 다름없었다. 친박 공천학살 논란이 한창일 당시 서 의원은 친박연대를 결성, 박 대통령에 대한 변함없는 충성심을 보였다. 평소 "의리"를 강조한 박 대통령 또한 서 의원을 10월 재보선 화성 갑에 공천함으로써 그에 대한 신뢰를 대내외적으로 공표했다.

김 의원 역시 17대 대선에 앞서 열린 한나라당 대선 후보 경선에서 다수의 상도동계 행보와 궤를 달리하면서까지 박근혜 후보를 지원했다. 이후 김 의원은 이명박 정권 당시 세종시 문제로 박 대통령과의 사이가 틀어진 기간을 제외하면 돌아온 친박계의 핵심으로 불리고 있다.

서 의원과 김 의원은 수장이 나선 대선 때마다 킹메이커 역할을 했다는 점에서도 닮아있다. 문민정부 출범 때가 그랬고, 박근혜 대통령 만들기에 있어 두 사람이 보여준 활약은 컸다는 게 대체적인 평가다. 특히 18대 대선 기간 선거 전면에 나서지 못했던 서 의원은 물밑에서 보수와 진보, 민주와 반민주 대결을 아우르는 마당발 기질을 십분 발휘, 산토끼였던 이들까지 지지자로 끌어들였다.

김 의원 경우는 당이 대선 분위기를 주도하지 못할 당시 구원투수로 등장해 선대본부장을 맡아 이른바 집토끼를 사수하는 보수 대연합을 주도해나갔다.

앞서 19대 총선에서도 김 의원은 공천탈락으로 심기가 불편한 상황이었지만, 백의종군을 선언하며 분열된 보수를 재집결시키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그 덕분에 야당이 기대했던 MB 심판론은 물 건너갔고, 총선 결과는 새누리당의 승리로 돌아갔다. 이는 곧 우파정권 재창출의 발판을 마련하는 계기로 이어졌다.

재보궐로 국회 복귀, 상생 이룰까

두 의원 다 올해 재보궐 선거를 통해 국회에 재등장했다. 4월 재보궐 선거에서 김 의원은 부산 영도에 나가 무혈입성에 성공했다.

10월 재보선에서는 서 의원이 화성 갑에 출마해 61.7%라는 높은 득표율을 얻으며 화려한 복귀를 알렸다. 박근혜 정부 출범의 공신인 만큼 입지가 넓어진 상황이라 해도 정치권 밖에 있으면 운신의 폭이 줄어들고 현안 문제를 해결하는 데 한계가 따를 수밖에 없다. 박근혜 정부의 국정안정 마련 및 차기 정권 준비에 기여하고자 하는 공동의 목표가 있는 두 사람으로서는 올해 재보선 입성이 꼭 필요한 디딤돌이었을 거라는 관측이다.

외부에서는 서 의원을 두고 김기춘 비서실장, 남재준 국정원장과 함께 현 정부를 보좌하는 권력의 삼두마차 중 한 명으로, 김 의원에 대해서는 잠재적 차기 대선후보로 바라보고 있다. 서 의원이 장차 당내 역학 구도 및 정치지형 변화에 어떤 영향을 몰고 올지를 주시하는 한편 차기 당권 등 당의 주도권을 놓고 서 의원과 김 의원의 경쟁 관계에 초점을 맞추는 시각들도 많다.

그런 면에서 김 의원은 당내 장악할 리더십은 있는데, 박근혜 대통령의 신뢰가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반면 서 의원은 박 대통령의 신뢰는 있는데, 선거법 위반 등의 오점이 있어 당의 전면에 나서기에는 한계가 따를 수밖에 없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이 가운데 정치적 태생에서부터 종착지가 같다는 점에서 이 둘을 상생 관계로 바라봐야 한다는 의견도 적지 않다. 김석준 서울대 초빙교수는 한 종편에서 "서청원 의원과 김무성 의원은 관계가 좋다. 김 의원이 대권의 목적 면에서 서 의원은 정권의 후견인 역할로서 이 둘은 조화를 잘 이룰 수도 있다"라고 내다봤다.

박상헌 공간미디어연구소 소장도 최근 뉴스에서 "언론에서 과도하게 경쟁을 부추기고 있다. 김영삼 대통령 밑에 있던 둘은 정치적 아버지가 같다"라며 "김무성 의원이 꿈꾸는 지점은 5년 뒤다. 서청원 의원이 대통령 나올 일은 없다. 때문에 이 둘이 당권을 놓고 치열한 경쟁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황태순 위즈덤센터 수석연구위원 <시사오늘>과의 통화에서 "박근혜 대통령을 보좌할 서청원 의원이 현 권력의 핵심이라면 잠재적 대선 후보군인 김무성 의원은 미래권력의 핵심이다. 이 둘은 권력의 선후 관계이지, 결코 경쟁적 관계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담당업무 : 정치부 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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