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의실에서 만난 정치인 (23)>김현철 “세계화는 YS 정부의 국가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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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실에서 만난 정치인 (23)>김현철 “세계화는 YS 정부의 국가전략”
  • 윤명철 기자
  • 승인 2013.11.14 09:2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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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성 정당이 아닌 대안세력 요청돼…정치권 Big Bang 필연”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윤명철 기자)

2013년도 <북악정치포럼> 스물 세 번 째 주인공은 김현철 한양대 공공정책대학원 특임교수다. 강연은 11월 12일 '세계화와 국가경영'이라는 주제로 진행됐다.

김현철 교수는 바로 김영삼 전 대통령의 차남이다. 그는 문민정부 당시 실질적인 컨트롤 타워 역할을 했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김 교수는 우리 정치사에서 최초로 과학적인 여론조사 기법을 도입한 인물로도 유명하다. 그가 30여 년에 걸친 군부정권을 종식시킨 YS정부에서 중추적 역할을 했던 인물이기에 이날 강의실은 평소보다 많은 학생들이 자리 잡고 있었다.

▲ 김현철 한양대 교수는 "우리나라 정치는 이념으로 인해 서로의 진영논리에 빠져 답도 없는 대립을 이어가고 있다"고 말했다. ⓒ시사오늘

“개혁은 혁명보다 어려운 일…하나회 청산, 금융실명제 목숨 걸고 실시”

김현철 교수는 ‘세계화’라는 용어를 처음으로 채택한 문민정부의 세계화 전략에 대해 설명하며 강의를 시작했다. 그는 “세계화는 정책이 아닌 국가전략의 개념이다”고 단언했다.

김 교수는 문민정부의 최대 업적인 ‘하나회 청산’과 ‘금융실명제’ 실시 배경에 대해 자세히 설명했다. 그는 “문민정부처럼 공과가 뚜렷하게 대비되는 정부도 없다. 정권이 출범하자 곧바로 ‘하나회 청산’을 전격적으로 실시했다. 2개월 동안 별 40여 개를 떨어뜨렸다. 3당 합당이후에도 군인들이 득세하는 상황이었기에 뉴욕 타임스를 비롯한 국내언론들도 김영삼 정부가 들어서도 군부가 득세하고 타협할 것이라는 회의적인 이야기가 나돌았다. (그래서) 전격적으로 실시할 수밖에 없었다. 당시는 혁명적 상황이었다”고 밝혔다.
 
이어 김 교수는 ‘금융실명제’에 대해서도 “세계 어느 나라도 못한 일이었다. 일본은 아직도 못하고 있다”며 높이 평가했다. 그는 “이 제도가 정치권과 금융권 이해관계 때문에 절대 못하는 일이었다. 전두환, 노태우 정부도 추진했지만 퍼포먼스로 끝났다. 처음에는 각종 언론들이 ‘임기 5년 동안 금융실명제 하나만 실시돼도 대단한 일이다’고 까지 평가했다. 하지만 문민정부는 전격적으로 실시했다. 개혁은 혁명보다 더 어렵다. 정권을 갖고 있어도 목숨을 걸고 혁명적 차원에서 실시했다”며 당시를 회고했다.

김 교수는 문민정부 말기에 발생한 IMF체제에 대해 뼈아픈 반성의 목소리를 전했다. 그는 “97년 말에 뼈아픈 IMF 외환위기를 초래했다. 정부차원에서 관리 못했다. 앞으로 또 다시 이러한 쓰라린 경험을 해서는 안된다.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일 이다”고 자책했다.

김현철 교수는 ‘세계화는 시대정신’이라고 정의했다.

그는 "1994년 11월 17일 김영삼 대통령이 APEC회의 참가 차 간 호주 시드니에서 가진 조찬모임에서 선언을 했다. 순수 우리말로 ‘세계화’라는 단어를 사용해 우리 것으로 끌고 나가자는 강력한 의지였다“고 밝혔다. 문민정부는 당시 ”국정목표를 세계화에 두겠다고 선언했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이듬해 신년사를 통해 9195년을 ‘세계화 추진의 원년’으로 선언한 바 있다.

김 교수는 “1980년대는 경제사조상으로 매우 중요한 시점이었다. 80년대는 미국과 영국에서 출발된 新자유주의로 세계화가 가장 힘을 받던 시기였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 대목에서 우리가 1980년대에 민주정부가 부재했던 역사에 대해 큰 아쉬운 마음을 전했다.

그는 “우리나라가 80년대 민주정부가 수립되었다면 세계화의 많은 혜택을 받았을 것이다. (우리와 달리) 중국은 이때 등소평의 ‘흑묘 백묘론’으로 상징되는 획기적 개혁실시로 중국 발전의 원동력을 만들었다”고 지적했다.

▲ ⓒ시사오늘

“한국의 80년대, 잃어버린 10년”

김 교수는 1980년대야 말로 한국이 '잃어버린 10년'이라고 단언했다.

그는 “80년 서울의 봄 이후 곧바로 민주화가 이뤄졌으면 한국은 지금보다 더 부강한 선진국이 되어 있을 수도 있었다. 더 아쉬운 것은 1987년 민주세력의 분열로 민주화가 한 발 더 늦춰진 것이다. YS의 시드니 선언과 세계화 추진은 정책이라기보다 잃어버린 10년을 회복하기 위한 국가전략이었다”고 주장했다.

김현철 교수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독립한 국가들의 공통된 고민이자 중대 과제인 ‘정치와 경제 발전’ 병립 추진에 대해 '비동시성의 동시성‘이라고 진단했다.

그는 “이 용어는 독일의 철학자 에른스트 블로호가 만든 것이다. 1930년대 독일은 패전국이었다. 전쟁 배상도 해야하는 등 정치, 경제, 사회 문제 등 어려운 상황이었다. 중첩된 전 근대적 문제와 근대적 문제를 빨리 해결해야 했다. 현재 우리나라가 이 상황에 직면하고 있다. 해결해야 할 일이 너무 많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90년대 실시된 3당 합당을 ‘민주화 이익론’으로 해석했다.

그는 “6·29선언은 군부의 온건파와 민주세력의 온건파 간의 협약이었다. 하지만 1987년 체제를 잘 만들었는데 민주세력의 분열로 대선에서 이기지 못했다. 그래서 또 한 번의 대타협, 협약이 필요했다. 이것이 바로 3당 합당이다”고 역설했다.

김 교수는 다시 IMF 체제 당시 상황에 대해 아쉬운 감정을 표출했다.

그는 “문민정부는 시드니 선언 이후 OECD에 가입하는 등 세계화 코스를 밟았다. 전방위적으로 개혁을 시행해 나갔는데 안타깝게도 1995년부터 1997년까지 제도와 의식 개혁을 함께 이끌어나가지 못했다. 노동·금융관계 개혁법이 반드시 필요했다. 사회적 합의가 필요했지만 시간이 너무 짧았다. 야당과 시민사회 설득이 부족했다”고 설명했다.

▲ ⓒ시사오늘

이어 김 교수는 “결국 IMF가 권고한 내용이 바로 (문민정부가 하고자 한) 그 내용이었다. 문민정부가 하고 싶었던 일을 IMF에 의해 강제로 했다. 문민정부는 세계화를 국가 전략으로 삼았다. 그 시기와 방향은 맞았다. 다만 방법론적으로 사회적 합의를 이루지 못했다”며 아쉬워했다.

"한국은 레이건의 소통과 리더십이 필요한 시기"

김현철 교수는 21세기 최대 사건으로 ‘9·11 테러’와 ‘중국의 WTO 가입’을 꼽았다.

그는 “이 두 사건은 탈냉전 이후 미국이 나 홀로 패권국가가 아니었다는 사실을 상징적으로 알려줬다. 미·중 간 군사·경제·문화 분야까지 경쟁해야 하는 상황이 됐다. 이는 바로 1980년대에 중국이 일찌감치 개혁개방을 했기 때문이다”고 밝혔다.
 

김 교수는 또 미국의 레이건 대통령을 사례로 들며 ‘소통’의 중요성을 부각시켰다. 그는 “대통령은 전쟁과 평화를 다 만들 수 있다. 끊임없는 결단을 내려야 한다. 미디어와 야당은 책임이 없기에 비판만 한다. 대통령은 여론과 비판을 다 듣고 이 모든 것을 수렴해서 결단을 내려야 한다. 특히 시기를 반드시 놓치지 않아야 했는데 그것을 가장 잘 한 대통령이 레이건이었다”고 높이 평가했다.

김 교수는 여기서 중요한 메시지를 던져줬다. 그는 최근 박근혜 대통령의 불통논란을 의식한 듯  “그 당시에 요구되는 국민 눈 높이에 맞춰가는 리더십이 필요하다. 진정한 소통은 국가 권력에 의한 일방적인 소통이 아닌 쌍방향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일갈했다.

김 교수는 최근 정치인들의 예능 프로그램 출연에 대해서도 쓴소리를 던졌다.

그는 “정치인들이 예능프로그램에 나와 넥타이 메고 빼빼로 과자 먹고, 연예인처럼…, 정치인은 각자의 역할 맞게 과거 현재 미래를 꿰뚫어 볼 수 있는 혜안을 가져야 한다. 퍼포먼스나 말 잘한다고 소통이 되는 것이 아니다”고 꼬집었다

김 교수는 대안세력 출현을 예견하며 ‘새 정치’를 제시했다.

그는 “새 정치는 강성조직과 연성조직을 네트워크시키는 정치로 매우 중요하다. 진영논리와 1인 보스 정치는 더 이상 안 된다. 기성 정치권이 1인 지배구조로 진행되고, 정치실종, 정쟁으로 생각되다보니 국민들 중 기성 정당이 아닌 제3정당 원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 같다. 대안 세력이 어떤 세력이 될지는 잘 모르지만, 반드시 굉장히 폭발적으로 Big Bang이 발생할 것이다. 정치는 살아있는 생물이기에 두고 봐야 할 일이다”고 주장했다.

끝으로 김 교수는 현 정국에 대한 질문에 “토론 문화가 부재하다. 진영논리로 가기 때문에 건전한 비판에 대해서도 받아들이지를 않는다. 오죽하면, 현 정권에 대해 비판적 시각이나 쓴 소리를 하면 심지어 제게도 ‘종북 프레임’을 걸기도 한다. (웃으며) 나도 종북이 될 수 있구나 생각한다”며 강의를 끝맺었다.

담당업무 : 산업1부를 맡고 있습니다.
좌우명 : 人百己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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