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과 북 2인자의 엇갈린 운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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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과 북 2인자의 엇갈린 운명
  • 윤명철 기자
  • 승인 2013.12.12 15: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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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JP "무슨 일이 있어도 어긋나지 않게 산다"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윤명철 기자)

▲ 영원한 2인자 김종필 전 총리의 환한 미소ⓒ뉴시스

김종필(JP) 전 총리가 지난 10일 국회에 모습을 드러냈다. 지난 MB정권이후 5년 만의 국회 나들이다. 이날 국회 헌정기념관에선 JP의 아호를 딴 '운정회(雲庭會)' 창립총회가 개최됐다. 포스트 JP를 노리는 충청권 정치인들은 총결집했다. 일부 정치인들이 JP의 휠체어를 누가 밀 것인가?에 대한 신경전도 벌렸다는 후문도 들린다.

만년 2인자로서 지난 40여 년간 대한민국 정치판을 뒤흔들었던 노 정객의 환한 웃는 모습을 보며 JP의 정치력에 다시 한번 감탄하게 된다. JP는 지난 2008년 뇌졸중으로 쓰러진 바 있다. 이날도 아직도 몸이 다 회복되지 않은 듯 그는 휠체어에 앉은 채 행사장에 입장했다.

하지만 노 정객은 연단에서만큼은 40여분에 걸쳐 연설하며 건재함을 알렸다. JP는 맹자의 '무항산 무항심'(無恒産 無恒心`생활이 안정되지 않으면 바른 마음을 견지할 수 없다)을 들며 "박 전 대통령은 부존자원이 하나도 없는 가난한 나라가 살아가는 방법은 좋은 제품을 만들어 해외에 파는 것으로 생각했다. 민주주의와 자유도 그것을 지탱할 수 있는 경제력이 없으면 있을 수 없다”며 고(故) 박정희 전 대통령과 근대화 과정을 직접 자랑스레 소개했다.

이날 운정회 행사는 5·16의 주역이자 설계자인 JP의 산업화 공로를 기리는 모임이다. 운정회는 김 전 총리의 발언과 행적을 정리한 저서 발간, 출생지인 충남 부여에 기념관 건립 등을 추진 중이다. 이를 위해 이한동 전 국무총리가 회장을, 새누리당 정우택·이완구·성완종 의원과 정진석 국회 사무총장 등이 부회장을 각각 맡았다. 이 전 총리를 제외하곤 모두 포스트 JP를 노리는 인사들이다.

이날 창립총회에는 김 전 총리를 비롯해 강창희 국회의장과 김수환, 박희태 전 국회의장, 이한동, 정운찬 전 국무총리, 새누리당 정우택 최고위원, 정몽준, 이인제, 이완구, 서청원, 성완종, 김을동 의원, 심대평 지방자치발전위원회 위원장, 정진석 국회사무총장 등 충청권 정치인들이 대거 참석했다. JP의 40여 년 정치역정 속에서 인연을 맺어왔던 각계 인사 400여명이 넘게 참여했다.

이날 참석한 인사들은 이구동성으로 JP 칭송에 목소리를 높였다. 운정회 회장을 맡은 이한동 전 국무총리는 "그는 정치, 경제, 사회, 안보, 외교, 문화의 현대사를 만든 분이시고 굽이치는 역사의 현장을 목격한 증인입니다. 반세기 전 5.16군사혁명을 기획 주도했다"고 칭송했다.

유신시절 정적으로 반대편에 서있던 김수한 전 의장은 "헌정 60년 격동의 한국정치가 극단으로 치우치지 않은 데는 버팀목, 안전판이 되어온 김 전 총리의 역할이 있었다는 걸 잊어서는 안 된다. 막한 길을 뚫어냈던 운정의 정치력을 새삼 보게 된다"고 밝혔다.

운정회 고은정 이사도 창립 발기문에서 “김 전 총리는 1961년 고 박정희 대통령을 지도자로 추대하고 구국 충정으로 5·16 혁명을 주도해 최빈국 대한민국을 세계속의 선진대국으로 도약시키는데 초석을 놓았다. 2차례의 국무총리와 9선의 국회의원, 민주공화당 등 4개 정당의 총재와 대표를 역임한 우리 현대사의 주역이며 산 증인”이라고 소개했다.

JP는 최근 고향 부여에서 묫자리를 둘러보고 비석 글씨를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한국 정치의 최대 풍운아 JP는 “지난날 역경에 대해 소이부답(笑而不答: 대답 없이 웃기만 하다)한 채 여생을 보내고 있다”고 소감을 밝혔다. 2013년 12월에 만난 대한민국의 2인자는 행복해 보인다.

▲ 비참한 최후를 맞이한 북한의 2인자 장성택 ⓒ뉴시스

장성택, 자기 무덤을 판 2인자의 길을 걷다

반면 북한의 2인자의 말로는 처참하다. 북한 중앙통신은 지난 9일 김정은의 고모부 장성택의 숙청을 공식 발표했다. 일각에선 처형설도 전해진다. 장성택이 누구인가? 김일성의 사위이자 김정일의 처남이다. 특히 그는 김정일 사후, 김씨 왕조의 안정적인 3대 세습을 위한 김정은의 후견인이었다. 하지만 현재 그는 생사여부도 알 수 없는 상황이다.

더욱 충격적인 사실은 조선중앙TV가 장성택 부위원장이 군복을 입은 인민 보안원 두 명에게 체포돼 끌려 나가는 사진을 전격 공개한 것이다.북한이 고위 인사를 숙청하면서 현장에서 체포하는 장면을 공개한 것은 이례적이다.

북한의 후견국가인 중국도 장성택 실각에 초미의 관심을 보이고 있다. 중국의 주요 언론들은 장성택 실각을 지난 10일 1면 주요뉴스로 전하며 '성공한 매제, 실패한 고모부', ‘섭정왕의 몰락’ 등으로 표현했다. 

홍콩의 한 언론은 "최근 20년 동안 권력을 공고히 해온 장성택은 실질적인 북한의 2인자로 여겨져 왔다. 유일지도체제를 반대했다는 죄목에서 볼 수 있듯 장성택은 김정은과 이견이 많았으며 김정은의 지시를 따르지 않았던 게 이번 실각의 진정한 원인으로 분석 된다"고 분석했다. 결국 장성택은 2인자의 숙명을 깨닫지 못하고 역사 속에서 사라졌다.

역사 속 2인자는 항상 불안한 위치였다. 최고 권력자의 감시와 의심의 눈을 피할 수 없는 숙명적 자리다. 한나라 한신과 중국의 유소기는 자신이 만든 1인자에 의해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다. 앞서 소개한 JP도 고 박정희 대통령의 견제에 시달리곤 했다.

하지만 JP는 자신의 표현대로 상선여수(물과 같이 순리에 따라 산다), 종용유상(무슨 일이 있어도 어긋나지 않게 산다), 조반역리 (뒤바꾸는 것은 세상이치를 거역하는 것) 와 같은 삶을 살았다. 여기서 남과 북의 2인자의 운명은 결정됐다.


 

담당업무 : 산업1부를 맡고 있습니다.
좌우명 : 人百己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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