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 ˝반값 등록금은 교육이 아닌 복지˝
이건, ˝반값 등록금은 교육이 아닌 복지˝
  • 박시형 기자·홍세미 기자
  • 승인 2013.12.15 0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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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시립대 총장 ˝실질적인 부분 고려하면서 정치적 이슈로 사용하지 말아야˝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박시형 기자·홍세미 기자)

10월의 마지막 날, 어슷하게 누워있는 해가 단풍을 따듯하게 휘감았다. 곧 개교 100주년을 맞는 서울시립대 교정은 가을의 붉은 빛으로 가득 차 있었다. 오랜만의 학교 방문에 마치 다시 학생으로 돌아간 기분에 인터뷰라기보다 소중한 은사님을 뵈러 간다는 착각이 들었다.

이 총장을 만난 곳은 대학본부 7층. 처음 만났지만 그의 얼굴에 앉은 자상한 웃음 때문인지 조근조근 낮은 음성 때문인지 긴장은 어느새 사라지고 편안한 인터뷰가 시작됐다.

▲ ⓒ시사오늘

이건 서울시립대 총장은 서울대 수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하버드대학에서 사회학 박사를 취득한 특이한 이력을 지니고 있다. 1995년 동국대 사회학과에서 교수 생활을 시작해 2001년 서울시립대 도시사회학과로 자리를 옮겼다. 서울시립대 총장엔 2011년 5월 취임했다.

취임 6개월 뒤, 새로 취임한 박원순 서울시장의 전폭적인 지지에 반값등록금이 시행됐다. 처음부터 시립대의 등록금은 일반 대학교 등록금의 반값 수준이었지만 2012년부터는 연간 238만 원으로 4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 재학생 장학금 수혜율이 2012년 57.9%인 점을 감안하면 고등학교의 연간등록금 180만 원보다 더 저렴할 수 있다. 그 덕분인지 서울시립대의 최근 2년 간 입학경쟁률은 일반전형 기준 2012학년도 6.81:1, 2013학년도는 7.41:1이나 됐다.

  반값등록금 전면 시행은 불가능, 복지로 접근해야

 - 서울시립대는 반값등록금으로 갑자기 유명해진 거 같은데 어떤가요

"반값등록금이 서울시립대의 인지도 상승에 제일 큰 영향을 미친 것은 사실입니다. 다만, 원래 순위권에 있었는데 몰랐던 걸 '아 여기 있구나'하고 알게 해 줬다는 거예요. 학교는 오래됐음에도 불구하고 크지 않고 졸업생도 많지 않다 보니까. 일상적으로 우리가 알고 있는 대학들의 순위는 10년 동안 안 바뀝니다. 언론사들이 아무리 떠들어도 우리 사회에서 매기는 순위가 있잖아요."

- 반값등록금을 최초로 시행하셨는데 장·단점이 있을 것 같습니다.

“이게 장단점을 얘기하기가 곤란한 부분이에요. 우리 학교는 시에서 지원해 주기로 한 거니까 반값등록금 하기 수월하죠. 그렇지 않으면 재정운영을 할 수 없어서 시작도 못 합니다. 하나도 안 내면 제일 좋은 거겠지만 그렇게 할 수 없어요.” 

▲ ⓒ시사오늘

- 최소한 학생들에게는 도움이 됐을 것 같은데요.

“직접 수혜 대상인 학생은 좋을지 몰라도 서울 시민의 세금 또는 시민의 세금으로 운영하는 이상 그 근거가 상당히 명확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왜 세금으로 운영하는 것인지 그 의미를 찾는 작업들이 있어야겠죠. 우리 학교는 반값을 시행하기 이전에도 이미 반값이었으니까 세금으로 지원해 줬다는 것은 반값등록금의 의미를 찾으라는 좀 더 직접적인 요구가 담겨있다고 생각합니다.”

반값등록금은 이명박 정부 시절부터 대물림되는 공약이다. 예산 부족과 의지가 없어 이름만 내건 공약으로 치닫고 있었다. 그러던 중 박원순 서울시장이 취임 2주 만에 서울시립대에 반값등록금을 실시하겠다고 발표했다.

- 반값등록금이 갑자기 시행되다시피 했는데 시행착오는 없었나요

"큰 문제는 없었어요. 시의 예산 편성 지침으로 하는 일반회계와 학교의 예산편성 지침으로 하는 기성회계 두 가지로 나뉘거든요. 둘의 시스템이 조금 다른데 형평성을 최대한 줄여서 예산편성을 했었기 때문에 큰 문제는 없었어요. 다만 학교 기성회계가 예전보다 줄어들었으니까 다음 예산편성 때 고려해야 했지요."

- 반값등록금 전면 시행도 큰 무리는 없겠군요.

“그건 아니에요. 사립대는 못 해요. 국가에서 지원받고 모자란 부분은 적립금 꺼내쓰자 말하는데 학교는 기업처럼 적립금 쌓아두고 이익을 취하려는 게 아니거든요. 건물을 짓겠다든지, 사업을 벌이려면 자금은 준비해둬야죠. 예를 들면 우리 학교에서 추진하고 싶은 기술지주회사 설립이나 창업 보육 같은 사업은 기본 자본금이 필요하거든요. 기술지주회사 같은 경우는 최소한 100억 원은 있어야지 설립하거나 운영할 수 있어요. 이런 거는 적절한 투자 기간이 필요하잖아요. 하다못해 건물을 지으려 해도 조금씩 모아서 최소한의 자금이 마련되면 시작합니다. 보통 설계비에 전체 비용의 10% 가량이 들어요. 그건 마련해 놓고 해야죠.”

- 학교가 이미 수천억 원대의 적립금을 조성하고도 쌓아만 가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생각되는데요.

"아주 쉬운 걸로 기숙사 시설을 개선한다거나, 학교 식당을 현대식으로 바꾸는 것, 쉽게 할 수 있으면 좋겠죠. 돈 없으면 못 한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마치 적립금이 누군가의 소유인양 얘기하는 건 횡포예요. 더군다나 21세기 들어서는 대학교육이 혁신화와 IT, 온라인 등으로 인해 예전과 많이 달라지고 있습니다. 칠판만 있으면 되는 시절을 벗어나 모든 교실에 컴퓨터와 빔프로젝터가 연결돼서 사용하고 있어요. 그게 다 돈이에요."

전국의 사립대학교 적립금 총액은 이미 11조 원을 넘어섰다. 수도권의 유명 대학들은 대부분 1,000억 원이 넘는 규모의 적립금을 쌓아두고 있다. 특히 이화여대는 7,587억 원을 적립해 두고 있고, 홍익대 6,276억 원, 연세대 4,792억 원 등으로 나타났다. 올해 적립금이 50억 원 이상 증가한 학교는 총 23개 대학이다.

 - 학교 운영에 비용이 그렇게 많이 들어가나요

“현대 대학교육은 돈이 더 많이 들어가요. 한 교수당 학생 수가 30~40명이나 됩니다. 대학에 진학하는 학생들은 늘어나는데 교수 숫자가 고교 교사 숫자를 넘을 수는 없으니 교수 1인당 학생 숫자가 많아질 수밖에 없어요. 이런 상황에 양질의 교육이 가능할까요? 빔 안 쓰고 칠판만 놓고 가르칠 수 있습니다. 글로벌 사회에서 후진국들과 일한다면 경쟁이 되겠지만 미국이나 영국, 싱가포르의 업체와 일한다면 경쟁이 안 되잖아요. 그래서 첨단 기자재들에 익숙해지는 방향으로 교육하거든요. 많은 비용이 들어갑니다. 그런데 반값등록금 실시해서 싸게 하라, 누구나 공부할 수 있게 하라, 하는 것은 교육이 아니라 복지죠."

▲ ⓒ시사오늘

- 반값등록금이 복지라는 말은 쉽게 와 닿지 않습니다.

“반값등록금 지금 당장 하라면 할 수도 있습니다. 예산 쪼개서 받을 만한 학생에게 '당신은 돈 없지만 능력 있으니까 다니시오' 가능한 거잖아요. 그런데 지금 그렇게 하면 난 왜 안 되냐며 객관적 근거를 대라 그래요. 객관적 잣대를 대기 시작하면 모든 게 형식논리로 가게 되면서 어려워지죠. 그럼 형식 요건만 맞춰서 갖고 오는 사람이 받게 되는 겁니다. 제도로선 불충분하거든요. 그래서 반값등록금의 실시는 교육제도라기보다 보건복지부 예산을 사용해야 하는 복지제도라고 봐요. 교육부의 예산은 좀 더 교육적 투자가 필요한 곳으로 가야 하겠죠.“

-반값등록금의 대안은 없는 건가요

“사실은 장학금 1유형이라는 게 있어요. 소득 3분위 이하까지는 받는… 한국장학재단 홈페이지에 들어가면 자세한 정보를 알 수 있습니다. 성적이 아주 나쁘지만 않으면 장학금을 전액 받을 수 있어요. 다 세금으로 운영되는 거예요. 어려운 사람이 공부할 기회는 다른 방법도 있다는 거예요. 그렇지만 이런 장학제도가 있는 상황에서 등록금을 낮추라고 하는 것은 어떻게 보면 국민들 입장에서는 학생에 대한 2중 혜택이라고 볼 수 있어요.”

2009년 설립된 한국 장학재단은 국가장학금 I,II 유형을 통해 지난해만도 109만2,000명의 대학생에게 등록금 감면 혜택을 제공했다. 전체 대학생이 204만 명인데 반 이상이 장학금을 받은 것이다. 수혜 금액도 차등 지급되긴 했지만 1인당 평균 98만 원의 장학금을 지원받았다. 이 외에도 국가 근로 장학금, 국가 우수장학금, 희망사다리 장학금 등 여러 장학금 제도가 시행되고 있었다.  

모두에게 혜택을 돌려줘도 되나 생각해 봐야

- 반값등록금이 계속 논란이 되는 이유는 뭘까요

“자꾸 정치적으로 이슈가 돼요. 정치는 '누구나 대학에 갈 수 있다' 주장하는 쪽으로 계속 가고 있어요. 그래서 정치인들이 조금 더 실질적인 부분들에 대해 고려를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인제는 더이상 이런 부분을 정치적인 것으로 활용·사용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거죠.

종합해보면 반값등록금은 지금 현재로선 국공립대는 하려면 할 수도 있지만, 사립대는 불가능한 것이고요, 모든 사람에게 혜택을 주는 것도 그다지 좋은 방법은 아닐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 유럽의 대학들은 등록금이 무료인 대학도 많은 걸로 알고 있습니다.

“유럽과 자주 비교하는데 그쪽은 국가가 운영하는 대학이 많거든요. 그렇지만 영국은 국가가 운영하는 데서 벗어난 지 꽤 됐어요. 외국인들에게는 특별히 많은 금액을 등록금으로 책정합니다. 프랑스나 독일 같은데도 이제 사립학교들이 만들어지기 시작했고. 국가가 교육을 담당하는 나라들에도 좋은 점과 나쁜 점은 있습니다.”

- 국가가 운영할 땐 모두에게 혜택이 돌아가는 것 아닌가요

“국가가 등록금의 몇%나 담당할 수 있을지 생각해 보세요. 모든 학생에게 혜택을 주기는 어려울 거예요. 그럼 세금을 더 걷어야죠. 그 나라들은 실제로도 많이 걷고 있고요. 우리나라처럼 지출 없이 가져가겠다고만 하는 것은 어폐가 있는 부분이에요.”

독일의 니더작센 주 의회는 지난 10일 대학 등록금 폐지안을 가결했다. 학기당 73만 원 가량하던 비용조차 국가에서 지급하겠다는 것. 물론 대학진학률이 20~30%에 불과하지만 의회의 과감한 결정이 우리 국회와 사뭇 비교된다.

- 그렇다면 사회환원 과정을 끌어들여 반값등록금 만들 수도 있지 않을까요

"그러려면 사회복지 시스템이 층화되고 잘 반영돼서 소위 공공성이라는 것을 확보해야 합니다. 주변에서 나쁜 일로 돈 벌었다 욕하면 누가 기여행위를 하겠어요. 그러니까 있는 사람들이 환원할 수 있게끔 창구를 여는 데 모두가 노력해야 합니다. 이건희 회장이 삼성이라는 회사를 통해 사회에 기여할 수도 있지만 개인적으로도 기여하는 바가 존재하는 것을 직접 느낄 수 있도록 사회가 만들어줘야 해요. ”

청년 실업문제, 스펙 쌓기만이 능사는 아니다

분위기를 바꿔서 사회적인 문제로 대두한 지 오래 됐지만 해결책은 여전히 없는 청년실업 문제에 관해 얘기를 던져봤다. 통계청은 지난 11월의 15세에서 29세까지의 청년층 실업률이 7.5%라고 발표했다. 전년대비 0.8%p 상승해 청년실업 문제가 심각해지고 있음을 보여줬다.

▲ ⓒ시사오늘

- 이렇게 힘들게 들어온 대학, 등록금도 비싼데 학생들은 스펙 쌓기에 혈안입니다.

"등록금은 왕창 냈으면서 수업시간에 수업 안 듣고 학원 가서 스펙 쌓고… 바보짓이죠. 우리 학교는 조금 내니까 됐다고 하지만 진짜 비싼 사립대학에서는 말도 안 되는 일이에요. 대기업을 비롯한 인사담당자 만나보면 스펙의 시대는 지났다고 해요. 학생들은 '스펙은 기본이다'라고 하는 반면 기업에서는 '보지 않는다'고 얘기도 합니다. 글쎄요. 나라면 절대로 스펙을 보고 사람을 안 쓸 거 같아요. 스펙은 별로 중요하지 않아요."

취업을 앞둔 대학생들 사이에서는 최근 5대 스펙(학벌, 학점, 토익, 어학연수, 자격증)을 뛰어넘어 8대 스펙(봉사활동, 인턴, 수상경력이 추가)이 준비해야 할 요건으로 인식되고 있다.

-그렇다고 남들 다 준비하는 스펙에서 손 놓을 수만은 없는 것 아닌가요

"그렇다고 밖에서 스펙 다 쌓아오는 건 바보짓이죠. 그건 사람들이 알아주지도 않아요. 채용 인터뷰에서 '너 왜 토익점수가 이것밖에 안 돼' 물어보면 '저는 토익 대신 이런 걸 했습니다'라고 할 수 있는 자신감을 가져야 해요. 이건 문제를 탐구하는 능력을 통해 생깁니다. 사실 그 정도 수준이 되면 토익 시험도 잘 봐요. 스스로 할 줄 알게 되는 사람으로 만들어내게 되는 거거든요. 그게 사회에서 필요한 사람이에요."

- 그럼 학생들이 취업을 위해서는 뭘 해야 하나요

"언젠가부터 기업들이 경력자 위주로 뽑기 시작했어요. 검증된 사람들을 채용하려고 하는 거거든요. 이런 상황인데도 대학 졸업생들이 중소기업에 안 가는지 모르겠어요. 중소기업 가서 경력 쌓고 옮겨가면 되잖아요. 시작부터 다들 대기업만 가려니 대기업이 미어터지죠. 경쟁률 1:100. 공무원 시험도 마찬가지입니다. 중소기업에서 커리어 쌓고 거기서 자기 특기 만들어서 가야죠."

- 최근에는 고졸 인력 채용 등 채용 제도에도 많은 변화가 이어지고 있죠.

"그런 방향으로 가야 합니다. 또 그게 정상적인 사회고요. 고등학교, 중학교만 나오면 못난입니까? 아니잖아요. 지금까지 공부를 많이 한 것은 훌륭한 일이지만 그것이 사람을 훌륭하게 만드는 건 아니거든요. 학력 때문이 아니라 그 사람이 하는 일 때문에 평가받는 그런 모습으로 자꾸 바뀌어 가야 하겠죠. 그런데 아직은 그런 것들이 본격적으로 도입되지 않고 있습니다."

이명박 정권은 기업들에 고졸 채용 인원을 늘릴 것을 요구했다. 마이스터 고등학교나 산업 특성화 고등학교가 주목받기 시작한 것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정권이 바뀌자 고졸 채용 규모는 크게 감소하는 추세다. 지난해 가장 많은 고졸자를 뽑은 은행권은 올해 419명에 그쳤고, 채용 직종도 판매 관리사나 영업 관리직 등에 집중되고 있다. 295개 공공기관의 내년 고졸 인력 채용규모도 579명이나 감소한 1,933명 수준이다.

- 여전히 사회 분위기나 통념상 대학 진학에 대한 선택의 여지는 없는 듯합니다.

"실질적으로 우리 사회는 지위를 중시하는 사회입니다. 학벌도 지위거든요. 내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도 주변에선 그렇게 생각하죠. 그래서 그 지위를 자꾸 쫓아가려고 해요. 능력이 안 될 수도 있고, 취향이 아닐 수도 있고, 여건이 안 될 수 있는데도 대학에 안 가면 못난 놈 취급받아요. 가야만 합니다. 그런데 제대로 소화해내지 못하거나 적응하지 못해 문제가 발생하기도 하죠."

-어떤 문제가 발생하나요

"아주 쉽게 생각합시다. 고등학교만 가도 됐을 사람이 사회적 분위기에 4년제 대학을 갔다고 한다면 4년 동안 안 해도 되는 걸 했어요. 예전이라면 입사했을 수준의 직장인데 수준이 높아졌기 때문에 못 가요. 그러면 자기 자리를 조정하는 데 또 몇 년이 걸리죠. 남자라면 대체로 군대까지 포함해 10년의 Job Market의 비효율성이 발생합니다. 취업난도 그래서 오는 거거든요. 예전 같으면 적당히 층화돼 있던 학력이 대학에 몰려 있는 거예요. 그러다 보니 중소기업에 안 가는 거고 제조업에서는 인력이 필요하다고 얘기합니다, 노동시장의 비효율성을 우리나라의 대학 진학률이 근본적으로 창출해 내고 있어요."

▲ ⓒ시사오늘

대학에서는 대학생만이 할 수 있는 일을 하라

-대학에 오는 목적이 취업이 아니라면 뭐가 있을까요?

"경영학을 예로 들어 볼게요. 친구들 중에 경영학 졸업자 있죠? 그 사람들 지금 경영하고 있나요? 적어도 15년 이상 그 자리에 붙어 있으면 경영이라는 것을 좀 하는 자리로 올라갈지 모르죠. 그쯤 되면 아마 경영학에서 가르친 것의 반쯤은 바뀌어 있을 겁니다. 그럼 뭐 하려고 배웠죠? 질문을 바꿔 볼게요. 인수분해 평생 한 번도 해 본 적 없으시죠? 그걸 왜 배웠죠? 그럼 배우지 말아야 할까요? '우리는 그것을 통해 무엇을 배웠는가', '지금까지 우리는 시험을 통해 검증받았는데 그것이 과연 맞는 것인가'하는 식으로 다시 질문할 수 있어요."

- 대학에 온 목적이 단순히 취업 때문이라고 생각한 청년들에게는 뼈 아픈 말인 듯합니다.

"사실 대학은 스스로 클 수 있도록 많은 실패를 경험하게 하는 곳입니다. 고민이 없으면 성장할 수 없어요. ‘수학의 정석’ 생각해보세요. 예제 딱 암기하고 대입해서 문제 풀면 고통이 하나도 없죠. 그런데 예제 무시하고 나 혼자 풀어보겠다면 그때부턴 고통이 시작됩니다. 그 고통이 있을 때와 없을 때의 차이는 매우 커요. 대학은 바로 그걸 거치게 해주는 과정입니다. 적어도 닥친 문제에 대해 탐구해서 나름대로의 솔루션을 만들 수 있게 되면 어디 갖다놔도 ‘쟤는 뭔가를 내놓는 애야’하고 평가받습니다. 취업 때는 그걸 보여주면 되는 거예요."

- 대학이 가지고 있는 본질적인 의미를 찾으라는 말씀이시군요.

“대학은 대학이 아니면 할 수 없는 것을 만들어내는 곳이에요. 내가 아니면 할 수 없는 것을 찾아가는 과정이거든요. 그건 아무도 해 줄 수 없어요. 그래서 대학에서는 잘 못해도 괜찮아요. 한국 사회에서는 대학만이 유일하게 그것을 허락해주고 있어요.”

- 학생들은 스스로 정한 방향이 맞는지 늘 불안해할 텐데요.

"그래서 교수가 지도해주는 거죠. 교수들은 지식을 생산해내는 체험을 중심으로 했기 때문에 실패의 과정들이 많이 있어요. 잘못한 것을 계속 깨달으면서 배워가는, 그래서 체득하는 과정을 겪었습니다. 그래서 실패에 대해 컨트롤할 줄 알고 어떻게 가야 할지에 대한 방법을 알려줄 수 있습니다."

- 교수직으로 계실 때 계속해서 체험하라고 말씀하신 것도 이 때문인가요

'현장에 가 봐야 '무엇을 할까', '어떤 것을 준비해야 하나'하고 알게 되는 거예요. 내가 배우는 것과 살아갈 곳의 연관성을 스스로 찾아야 되는 거죠. 그리고 현장방문 다음으로 학생들에게 강조했던 말이 '너 그거 왜 하니' 입니다. 의미가 있기 위한 근거를 찾으라는 거죠. 두 가지가 굉장히 중요합니다. 직접 하고 이것을 왜 해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을 계속해서 던져야 합니다. 그래서 그렇게 시킨 거고요”

이 총장이 교수직에 있을 때 수업을 들은 학생의 말에 따르면 이 총장은 늘 학생들에게 경험에 대해 강조하면서 학교 밖으로 나가 체험하길 권했다.

- 경험하는 것이 공부를 하는 것보다 의미가 있나요

“우리는 배웠다고 하는 것이 책 속에 있는 지식을 배운 것인지 그 지식이 창출되는 과정의 번뇌를 배운 것인지 아니면, 그 지식을 재창출해 내는 과정을 통해 나의 사고를 키우는 것인지 헷갈리죠. 체험을 통해 한 걸음만 더 물어보면 바로 문제 있는 걸 알 수 있는데 더 안 물어봅니다. 그 상태에서 그냥 믿고 가요. 사실은 의심해봐야 할 것을 믿고 있는 거예요.”

-학생들의 반응은 어떤가요

“질문을 던질 줄 알게 됐고 그 속에서 스스로 컸어요. 아주 쉽게 얘기하면 남들과 달라졌다는 겁니다. 창의성이란 것은 똑같은 책 똑같이 읽어서 똑같은 질문에 똑같이 답하면 안 나와요. 현장에서 나름대로 경험하고 고민하고 겪어보면서 답을 찾아야지 나옵니다. 이걸 잘하면 취업도 잘 되고.”

이 총장의 교육관과 경험에 대한 중요성을 듣고 있자니 교수 시절 가르쳤다는 도시인문학이라는 학문이 문득 궁금해졌다. 도시인문학은 어느 대학에서도 연구하지 않은 서울시립대만의 특별한 학문이다.

공간 속에 이야기가 많아지면 가치도 다양해질 것

 -도시인문학은 어떤 학문인가요

"도시인문학은 아직 꽃피지 않은 이제 시동을 걸기 시작하는 그런 분야예요. 예를 들면 '커피숍에 유난히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데 이유가 뭘까' 질문을 던지면 경영학적으로 봤을 때는 '어떤 입지를 가졌는가, 그곳이 어떤 경영학 테크닉을 가지고 있는가'를 볼 수 있겠지만 인문학적 혹은 인류학적으로 봤을 때 '왜 사람들은 그곳에 가는가'를 찾아볼 수 있을 거예요."

▲ ⓒ시사오늘

- 일반적인 인문학과 큰 차이는 없어 보입니다.

"도시인문학이 서울에서 일어나는 현상의 숨은 이야기들을 발굴한다면 서울시는 이야기를 담은 공간으로 변할 거예요. 제주도 올레길을 생각해보면 이전에는 그냥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길일 뿐이었어요. 그런데 올레라고 이름 붙이고 이야기를 부여함으로써 의미들이 생겨나기 시작했잖아요. 그런 것처럼 문화를 만들어가는 겁니다."


- 이야기가 의미는 부여하겠지만 과연 큰 차이를 보일까요

"우리가 사는 공간에 많은 의미가 담긴다는 것은 내가 살아가는 곳에 가치를 발견할 것들이 많아지고 풍부해진다는 거예요. 우리가 사회에 기여할 여러 가지 것들에 이런 의미들이 많아야 다양한 가치들이 존재하면서 소모적 갈등을 해결하겠죠.

예를 들면 이런 거예요. 모든 사람이 빨간색만 원하면 빨간색 값이 올라가고 거기에 가치를 부여합니다. 그런데 빨간색 파란색 각종 색깔에 대한 선호도들이 다 다르면 그렇게 싸울 필요가 없잖아요. 이런 걸 공간마다 부여함으로써 사람들은 다양한 삶의 가치를 추구할 수 있게 됩니다."

- 도시인문학은 실용학문이라기보다 순수학문인 것 같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도시인문학은 중요한 학문 역량이라고 생각합니다. ‘서울’이라는 도시가 여러 이야기로 인해 문화적으로 풍부해지고 거기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다양한 가치를 향유할 수 있게끔 합니다. 상업적으로 얘기하자면 문화상품화 할 수 있다는 거죠. 경제적인 부가가치를 창출해내는 데 큰 역할을 하게 될 겁니다."

이 총장은 이 도시인문학을 계속 강화하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서울시립대가 위치한 전농동을 예로 들며 역사와 맛집 등의 정보를 엮어 스토리 텔링을 더해 학문적인 연구를 한다면 재미있지 않겠냐고 말했다.

-정말 낭만적인 이야기 같습니다.

"낭만적이죠. 그 낭만이 인간들에는 필요합니다. 그게 없으면 경제적 동물이 돼 버리죠. 우리가 이야기를 찾아가는 작업을 함으로써 다양한 가치를 풍부하게 느낄 수 있고 소모적 갈등을 빚지 않는 사회를 만들 수 있을 겁니다."

공공의료 사업에 서울시립대 의대 개설이 도움을 줄 수 있다

▲ ⓒ시사오늘

서울시립대는 2018년이 되면 개교 100주년을 맞게 된다. 이 총장은 이때를 기점으로 변화를 꾀하려 3개 기본 목표와 5개 전략사업으로 이뤄진 중장기발전계획을 세웠다. 주력 사업은 멀티캠퍼스와 의대 설립이다.

- 서울시립대가 뉴욕주립대를 표방한 멀티캠퍼스를 준비한다고 들었습니다.

"멀티캠퍼스는 서울시립대학이 생산한 지식을 서비스하는 차원의 사업입니다. 뉴욕주립대처럼 여러 지역에 흩어져 있음으로써 서울 시민들에게 기여할 수 있는 부분이 생길 거예요, 하지만 서울시의 협조가 많이 필요합니다. 여력이 있는 부지나 장소가 필요하고 서울시립대도 인력들이 더 확보돼야 하죠. 또 지역마다 특성을 잘 파악하고 필요한 부분들을 보내야 해서 장기 프로젝트라고 볼 수 있죠."

- 장기프로젝트에 의대 설립도 포함된 걸로 알고 있는데요.

"우리 학교가 준비하는 의대의 명확한 방향은 공공의료시스템을 서울시에 창출하고 그 의료인력들을 우리가 만들어간다는 겁니다. 우리 같은 좋은 교육기관이 배출한 의사가 적어도 10년 간 공공의료기관에 기여함으로써 한국 공공의료기관의 토대를 만들어주면 본격적으로 국가 차원의 공공의료 사업들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공공의료 의사에 대한 신뢰가 회복될 것이고 그것이 우리가 추구하는 방향입니다."

- 지금은 공공의료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나요

"사실 없는 건 아니에요. 시립병원도 많은데 질이 나쁘다고 사람들이 평가하고 있죠. 실제 평가가 아니라 그냥 그렇게 생각하고 있어요."

- 서울대병원이 국립병원으로서 공공의료 부분을 감당해야 한다는 인식도 있습니다.

"서울대 보고 엘리트의료기관 하지 말고 공공의료 활동하라 하기는 어려워요. 거기 들어가서 공부하는 의사들은 아주 엘리트고 가장 뛰어난 집단인데 세계 첨단 의료기술과 경쟁하지 말고 공공의료 사업에 뛰어들거라 하면 그건 인적 자원의 낭비이기도 하죠."

- 그렇다면 서울시립대는 그럴 만한 자격이 있나요?

"반드시 서울시립대에서 의사를, 의과대학을 가져야 하는 이유가 있냐고 물어보는 경우가 더러 있습니다. 공공의료가 한국에 필요 없다면 안 해도 되죠. 그렇지만 만약 필요하다면 서울시립대 말고 더 좋은 대학이 있을까요? 공공의료기관에 투입될 양질의 의사를 만들어낼 수 있는 기관은 사실상 서울시립대가 최적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 이미 존재하는 국공립 의대에 공공의료 사업 참여를 유도할 수도 있지 않을까요

"국공립학교들이 해 주는 것이 적절하겠죠. 하지만 지금까지의 국공립대학들은 사실상 서울대처럼 엘리트 스쿨이라 공공의료에 신경을 쓰지 않았습니다. 그 전통을 하루아침에 바꿀 수는 없습니다. 지금은 공공의료가 필요해졌으니까 거기는 그렇게 가도록 하고 공공의료 쪽의 인력은 우리 같은 학교들이 공급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신뢰 회복이 한국 사회의 미래상

이 총장이 머릿속에 그리고 있는 최종적인 꿈은 뭘까? 여느 대학 총장처럼 규모를 늘린다거나 연구성과를 올리겠다는 등의 상투적인 대답이 나올 거 같지 않았다. 그리고 그 기대는 그대로 실현됐다.

- 서울시립대를 어떻게 만들고 싶다는 계획이 있으실 듯합니다.

"저는 서울시립대를 굉장히 역동적인 학교로 만들었으면 좋겠어요. 역동적이라는 것은 모든 구성원이 뭔가 만들어가고 있다는 느낌을 항상 받을 수 있다는 걸 의미합니다. 우리가 한국사회를 만들어가면서 목표를 형성해가는 학교가 됐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제가 그런 학교를 만드는데 작은 역할을 할 수 있는 총장이 되면 더 좋겠고." 

▲ ⓒ시사오늘

- 그럼 총장으로서가 아니라 개인적으로 시립대가 나아갔으면 하는 방향도 있으신가요

"이 학교를 거치는 학생들은 갈등이 생길 때마다 모여서 논의하고 양보하면서 서로에게 이익이 될 수 있는 결론을 만들어내는 모습으로 바뀌었으면 하는 생각을 해요. 그래서 미래의 한국사회에 소위 합의와 협의를 끌어내는 사람으로 많이 배출돼서 전체를 이끌어가는 사람이 됐으면 합니다. 그런 사람은 또 나 자신보다는 전체를 생각하잖아요.”

- 그런 사람이 되기 위해서도 역시 경험이 필요하겠죠

"경험을 해 봐야지 앞으로도 할 수 있죠. 그리고 지도자가 되려면 겪어봐야 하고요. 봉사활동 하는 이유도 나와 다른 사람들을 이해하기 위한 과정이거든요. 밖에서 볼 땐 불쌍하다고 여겼지만 직접 접해보면 더러운 면도 있고 치졸한 면 등등 정말 별걸 다 볼 수 있어요. 그런 걸 겪으면서 그 사람들을 이해하기 시작하고 사람에 대한 이해의 폭이 넓어집니다." 

- 결국은 인간에 대한 이해가 목표인가요

"그게 우리 한국의 미래상이라고 생각합니다. 한국은 경제는 크게 성장했을지 모르지만 사회는 살기 불편하잖아요. 서로 믿지 못하고 있죠. '저 사람은 무엇을 염두에 두고 얘길 하는가'식으로. 서로가 별다른 뜻이 없이 뭐든 함께 이뤄가는 게 쉽게 돼야 하는데 요즘은 잘 안 그렇죠. 저는 한국사회가 지금 더 많은 복지, 무상복지를 추구하기보다 서로가 신뢰할 수 있는 기반들을 찾아가는 캠페인을 펼쳐나가야 하는 시점에 와 있다고 생각해요. 물론 제대로 하기는 굉장히 어려운 부분입니다. 신뢰가 없으면 어떤 제도도 원활하게 운용되기가 굉장히 어려워요."

- 신뢰가 물론 가장 중요하지만 특별히 중요하게 생각하게 된 계기가 있으신 듯한데요.

"얼마 전에 그리스의 대학에 갔었어요. 그리스는 학비는 물론 기숙사비까지 다 무료랍니다. 책값도 준대요. 그런데 학생들이 시위하고 있더군요. 시위의 이유가 얼마 전 삭감된 책값 지원금을 달라는 겁니다. 국가는 지금 디폴트다 뭐다 하고 있는데… 좀 황당했어요. 이러면 더 이상 희망이 없죠. 한국사회도 2~30년 동안 불신 쪽으로 진행됐지만 경제성장을 통해서 해결해 왔어요. 더는 안 됩니다. 혜택을 줄 수 없어요. 그리스, 스페인, 아르헨티나처럼 될 겁니다.

그 사회에서 가장 앞서 가는 사람들이 개인의 조그마한 이익에 매달리면 누가 국가를 생각하고 누가 사회를 생각해요? 거기에 사회의 책무나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없죠. 그때 잘 가르치고 연구 많이 하는 것도 물론 중요하지만 함께 뭔가를 만들어가면서 갈등을 해소하려는 노력이 굉장히 중요하구나 깨달았어요. 다른 총장님들하고 얘기해 보면 모두 같은 고민이 시작되고 있습니다."

담당업무 : 시중은행 및 금융지주, 카드사를 담당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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