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부영, 해외동포문제 정부 나서라
스크롤 이동 상태바
이부영, 해외동포문제 정부 나서라
  • 차완용 기자
  • 승인 2010.04.06 10:1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독립운동 전초기지 연해주동포 우리가 보듬어야
‘영원한 비주류’로 불렸던 이부영(68) 전 열린우리당 의장이 우리 곁으로 돌아왔다. 정치가가 아닌 시민운동가 ‘이부영’으로 돌아온 것이다.

“싸움만 하는 정치가 싫었다”는 이부영 전 의장은 꼬장꼬장 했던 과거에 비해 많이 부드러워졌지만 카랑카랑했던 예전의 날카로움은 여전했다.

이 전 의장은 기자(동아일보)시절이나 국회의원 시절, 또 다른 별명이었던 ‘마당발’을 실천(?)이라도 하듯 여전히 분주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현재 그의 직함은 고려인문화센터건립추진 상임위원장. 그리고 또 다른 명함에는 동북아평화연대 공동대표라고 찍혀 있다.

이 의장은 “우리 현대사에 관심을 가진 사람이라면 해외동포 문제에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며 “해외동포들이 다 행복해서 해외에 나갔겠느냐”는 말로 해외동포에 정열을 쏟는 이유를 간접적으로 설명했다.
▲ 국회의원 이부영이 시민운동가로 돌아왔다. 이부영 전의원은 현재 동북아평화연대공동대표를 맡으며 재외동포들의 정착에 힘을 쏟고 있다. 이부영 대표는 해외동포문제에 정부가 나서라며 정부의 역할을 강조했다.          <권희정 기자>                                          © 시사오늘

그러면서 해외동포의 구구절절한 역사에 대해서도 박식함을 자랑(?)했다.

“해외동포들이 다 행복해서 해외에 나갔겠습니까. 나라가 망하고 식민지 치하가 됐을 때 독립운동을 하러 나갔거나, 일본의 수탈을 못 이겨 나갔거나 둘 중에 하나지요. 해외동포들의 과거를 보면 기막힌 사연이 더 많습니다. 지난 93년과 94년경 중앙아시아 여러 나라들이 소련연방에서 해체돼 독립을 했어요. 이 나라들은 모두 이슬람 국가였어요. 그런데 이들 국가에서 이슬람민족주의 근본주의가 일어나면서 첫 번째로 핍박 받은 게 우리 동포에요. 러시아의 앞잡이였다는 게 이유였죠.”

해외동포의 안타까운 사연을 얘기하며 그의 눈에는 어느샌 가 이슬이 맺혀 있었다.

이때 충격을 받아 “우리 민족과 동포들을 지키고 보듬어야겠다”는 마음을 가졌고, 이것이 계기가 돼 고려인과 관련한 여러 사업을 주도적으로 추진하게 됐다고 전했다.

고려인문화센터 건립에 참여하게 된 계기도 설명했다. 독립운동을 하면서 세웠던 최초의 임시정부가 연해주이고, 스탈린에 의해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돼 8.15 해방에도 고국으로 나오지 못한 이들의 안쓰러움 때문에 참여하게 됐다는 것이다.

특히 그는 이곳이 남북관계가 좋아지면 유럽과 중앙아시아를 공략하는 전진기지가 될 것이라며 상당한 의미를 부여했다.

“연해주에 우리의 자본과 기술이 들어가고 남북관계가 좋아지면 북한의 노동력에 러시아의 땅과 자원이 결합해 남북한과 러시아는 이상적인 파트너십을 결성할 수 있어요. 이런 가능성 때문에 동북아 평화연대는 더욱 매력적인 곳이지요.”

이 의장은 고려문화센터의 청사진도 밝혔다. 전 세계에 문화센터는 많이 있지만 ‘고려인문화센터’는 규모에서나 복합기능면에서도 다른 지역의 문화센터와는 다른 차원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고려인문화센터는 한글학교, 정보화센터, 외래 진료센터 등 다양한 공적기능을 갖춘 복합공간이에요. 이렇게 복합기능을 가진 문화센터는 연해주 고려인문화센터가 처음이에요. 특히 동북아시아의 전략적 요충지라 할 수 있는 연해주에 문화센터를 만든다는 것은 아주 큰 의미가 있는 것이지요.” 

이 의장은 고려인문화센터를 건립하면서 어려웠던 점도 솔직히 고백했다. 여타 해외동포 문화센터를 건립하는데 조금이라도 시행착오를 줄이라는 노파심에서다.

이 의장이 지적한 가장 문제는 역시 ‘예산’. 이 의장은 노무현 정부가 들어서면서 설득과 설득 끝에 25억원의 예산을 책정 받았지만 일부 공무원들은 왜 이런 귀찮은 일을 하느냐며 쏘아붙였다고 한다.

이후 MB정부가 들어서면서 예산 받기는 더 어려워졌다고 이 의장은 한탄했다. 게다가 공사를 맡았던 건설업체가 부도까지 나 고통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는 것.

다행히 일부 국회의원들이 이런 취지를 이해하고 도와줘 국회에서 10억원, 동북아평화연대에서 5억원, 러시아 현지 기업에서 5억원을 변통함으로서 고려인 문화센터는 지난해 10월 마침내 문을 열 수 있게 됐다며 이 의장은 그때의 벅찬 감격을 얘기했다.

그렇지만 이 의장은 아직 문화센터가 할 일이 많다고 말했다. 정부 예산이 끊기다 보니 실질적으로 해야 하는 고려인들의 농업정착, 영농기술지도, 생활협동조합 등이 아직 미흡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후원 사업을 통해 재원을 확보하고 개인이나 기업들에서도 지원을 받아 고려인문화센터가 실질적 기능을 할 수 있게 하겠다고 강조했다.

“아마 다른 곳에 고려인문화센터를 다시 지으라면 못할 거에요. 아니 제가 못하겠어요. 그런데 미래를 생각하면 연해주의 고려인 문제는 문제도 아니에요. 이를 통해 남북이 합쳐 먹고 살 수 있는 미래를 만드는 게 중요하죠. 지금 우리의 미래가 연해주를 비롯 시베리아 전역에 널려 있다해도 과언이 아니에요. 인식을 못해서 그렇지 돈을 벌 수 있고, 자원도 있고, 농사를 할 수 있는 땅도 이곳에 널려 있어요.”

이 의장은 고려인문화센터는 이런 점에서 남북한의 전초기지가 될 수 있다며 우리 정부 당국도 이런 사실을 인지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옛 말에 광에서 인심난다는 말이 있어요. 연해주 문제, 유라시아 고속철도 문제 등이 해결돼서 남북이 다 같이 잘 먹고 잘 살게 된다면 남북문제도 자연스럽게 풀릴 겁니다.”

정치 5단 이부영의 마지막 충고였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