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상임금 확대, 얻는 것과 잃는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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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상임금 확대, 얻는 것과 잃는 것은?
  • 박시형 기자
  • 승인 2013.12.20 17: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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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박시형 기자)

▲ 대법원은 지난 18일 통상임금에 정기 상여금을 포함한다는 판결을 내렸다. ⓒ뉴시스

대법원이 최근 통상임금의 정의를 다시 썼다. 노동자들은 당연한 것을 이제서야 받게 됐다고 말하는 반면 기업은 인건비가 대폭 늘어날 전망이라 울상이다.

대법원은 18일 '정기상여금이 통상임금에 해당한다'고 전원합의체 판결을 내렸다. 지금까지는 관행에 따라 상여금을 기본급 외 수당으로 임금 산출에서 제외해왔다.

민주노총 ˝비정상을 정상으로 돌리는 전환점˝

임금체계는 회사마다 다르지만 많은 업체들이 기본급과 각종 근로수당, 상여금으로 항목을 나눠 지급한다. 각 항목은 또다시 세부적으로 나눠지는데 상여금의 경우 크게 기본급의 몇%를 지급한다고 지정한 정기 상여금과 회사의 수익에 따라 달라지는 성과 상여금으로 나뉜다.

대법원은 이 정기 상여금이 기본급과 같은 임금에 해당한다고 판단하고 이를 통상임금에 포함하겠다고 판결했다. 이 판결이 지니는 중요한 의미는 통상임금이 각종 수당과 퇴직금 등 직원들의 소득과 직결된다는 것이다.

가령 일급 8만 원을 받는 근로자가 하루 평균 2시간씩 연장근로를 한다고 가정해보자. 또 정기 상여금 600%를 매달 나눠받는다고 한다면 이 사람이 받게되는 세전 월급은 330만 원이다.

하지만 정기 상여금이 통상임금에 반영되면 일급이 8만 원이 아닌 12만 원이 된다. 연장근로 수당도 시간당 1만5000원 에서 2만2500원 으로 인상된다. 당연히 월급도 인상돼 세전 363만 원을 받게 된다.

이뿐만 아니라 통상임금으로 계산되는 퇴직금이나 유급휴가 임금, 연월차수당 등 비정기적 급여도 모두 인상될 수밖에 없다.

▲ 민주노총은 통상임금의 확대는 정상으로 돌리는 전환점이라 주장했다. ⓒ뉴시스

민주노총은 이번 판결에 대해 "비정상을 정상으로 돌리는 중요한 전환점이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민주노총은 통상임금 관련 논평에서 "사용자들은 임금수준을 낮추기 위해 통상임금 범위를 계속 낮춰왔고 노동자들은 낮은 기본임금을 보추아기 위해 초과노동을 강요당해 왔다"고 주장했다.

민주노총은 이어 "통상임금 문제를 바로 잡는 것이 경제민주화를 위한 중요한 기제"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신의칙(信義則, 신의 성실의 원칙)을 통해 지난 3년 간의 통상임금 소급분을 주관적으로 판단할 수 있게 했다고 법원을 비판했다. 다시 말해 소송을 제기하면 받아낼 수 있는데 소급적용을 제한해 기업에게 유리하도록 판결했다는 것이다.

 대기업, 대대적인 임금체계 개편 할 듯
중소기업, 임금 양극화 심화로 큰 피해 입을 것

통상임금은 1988년 노동부가 '고정적이고 일률적으로 지급하는 임금'으로 범위를 지정한 이후 한번도 상여금을 포함하지 않았다.

대기업들은 이를 악용해 기본급 인상에 인색하게 구는 대신 각종 명목의 수당과 상여금 지급을 인상하는 꼼수로 직원들의 임금을 맞춰줬다.

업계에 따르면 현대중공업은 700%, SK그룹 일부 제조업 계열사들은 850%의 상여금을 지급하고 있다. LG전자는 연봉을 20회로 나눠 월급을 주고 남은 8회를 설과 추석, 격월 상여금으로 지급했다.

현대·기아차는 대법원 판결로 인해 그룹 추산 13조2000억 원을 추가로 부담해야할 처지에 놓이게 됐다. 현대·기아차는 750%의 정기 상여금을 지급하고 있었다.

반면 삼성그룹은 매년 연말 실적에 따라 성과급을 차등 지급하고 있어 통상임금의 고리를 피해갔다. 삼성은 올 초 생산성격려금(PI)을 목표 인센티브(TAI)로 바꾸고 성과급 지급 체계를 4단계로 세분화 했다. 고정적인 상여금이 아니기 때문에 통상임금으로 보기 어렵다.

이 때문에 대기업들은 삼성그룹의 성과급 모델을 토대로 임금구조를 대대적으로 개선 할 듯 하다. 한 노무사는 주요 대기업이 이번 판결로 임금체계를 단순화하는 개편 작업에 나설 것이라고 전망하기도 했다.

▲ 현대·기아차는 통상임금 확대로 추산 13조2,000억 원을 추가로 부담해야 한다. ⓒ뉴시스

중소기업 역시 적잖은 금액을 추가 부담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중소기업중앙회는 이번 판결이 대·중소기업 근로자 간 임금 양극화를 심화시킬 수 있다고 지적했다.

중소기업중앙회에 따르면 중소기업은 매년 3조4426억 원을 추가로 부담해야 한다. 하지만 불황이 장기화 되는 상황에서 영세한 사업장들은 추가 비용을 부담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인건비 상승의 대책을 묻는 조사에서 응답 업체의 43%가 '별다른 대책이 없다'고 답했다. 대부분의 중소 제조업체들은 연장근로를 갖추거나 예전부터 시행하고 있어 15% 이상의 인건비 추가 부담이 불가피하다. 

한 중소기업 최고경영자(CEO)는 "대기업을 제외한 중소기업들에게는 정부가 기업의 부담을 축소시킬 수 있는 방법을 제공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 정기 상여금 비중이 상대적으로 큰 대기업 정규직 근로자에 통상임금 확대 혜택이 집중되면서 양극화를 심화시키고 지금보다 더 심각한 우수인재 쏠림현상이 나타날 수도 있다.

한편, 전국경제인연합회 산하 한국경제연구원은 지난 18일 브리핑에서 "노동비용 급증, 근로자 간 임금 양극화 심화, 노동시장의 혼란 가중 등으로 그나마 미약한 경기회복세 마저 둔화될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연구원은 "이번 판결을 계기로 임금체계 개편에 대한 본격적인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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