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민주화 1년⑤>경제민주화 1년, 영세 상인들의 시각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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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민주화 1년⑤>경제민주화 1년, 영세 상인들의 시각은?
  • 박시형 기자
  • 승인 2013.12.29 07:3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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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 이명박 전 대통령에 이어 2대째 불통
말만 하지 말고 직접 실행에 옮길 줄 알아야 ´지적´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박시형 기자)

23일 오후 4시, 저녁 찬거리를 준비하러 나온 인파들로 망원시장은 시끌벅적했다. 족발집 사장님은 맛 한번 보고 가라고 소리치고, 그 옆 호떡집은 불이라도 난 듯 호떡을 뒤집고 있었다. 엄마 손 잡고 장 보러 온 아이들은 떡볶이 가게 앞에서 벗어날 줄 모른다. 과일가게 아저씨는 설탕 같은 귤이 들어왔다고 귀를 홀렸다. 밝은 표정들. 시장은 바닥만 치는 경기 불황의 불안감을 피해간 듯 보였다. 

▲ 망원시장 ⓒ시사오늘

<시사오늘>은 망원시장 상인들을 만나 박근혜정부의 경제민주화에 대해 물었다. 정작 취재가 시작되자 웃음 띤 상인들의 뒤편에 숨겨진 그늘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안녕들 하시냐는 질문에 '안녕하지 못하다'는 대답만 돌아왔다. 일부 상인들은 대체 뭘 하는 짓인지 모르겠다고 정부와 국회를 강하게 비판하기도 했다.

´경제민주화´해도 어렵기는 매한가지

망원시장 초입에서 어물전을 운영하는 김낙편(57) 씨는 경제민주화가 뭐라고 생각하냐는 기자의 질문에 "경제를 살린다는 거 아니냐?"고 대답했다. 하지만 박 대통령의 경제를 살리려는 의지가 부족해 보인다고 꼬집었다. 그는 박 대통령이 강하게 밀어붙일 땐 밀어붙이고, 주관대로 소신껏 밀고 나가야 하는데 흐릿하단다. 그의 말처럼 현재의 안개 낀 경기와 박 대통령의 흐릿한 의지가 꼭 맞아떨어진다.

김 씨는 이어 5~6년 전보다 시장에 오가는 손님이 5분의 1은 줄어들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서민들이 살기가 더 힘들어진다"며 "재미가 없어져. 장사하는 것도 썩…"이라고 말을 줄였다.

경제민주화에 대한 구체적인 생각도 들을 수 있었다. 30년째 한 자리에서 방앗간을 운영해온 고종순(50) 씨는 "대기업이 가진 것을 빼앗자는 게 아니라 자율적으로 경쟁하면서 중소기업도 클 수 있게끔 제도를 갖추자는 것"이라 주장했다. 그는 "대기업이 기득권을 쥐고 놓지 않다 보니 대다수 열악한 상인들이 많이 힘들어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고 씨는 망원시장과 홈플러스의 관계를 예로 들었다.

망원시장은 반경 1.5km 이내에 대형할인점이 3곳이나 입점했다. 직선거리 300m의 기업형 슈퍼마켓(SSM) 홈플러스 익스프레스 망원점과 670m에 위치한 홈플러스 합정점, 1.5km 떨어진 홈플러스 월드컵점.

상인들은 홈플러스 합정점이 들어서기 전 비상대책위원회를 구성하고 천막농성을 벌이며 거세게 반발했다. 시장도 다섯 번이나 문을 닫았다. 상인들의 생존권을 위한 노력은 박근혜 대통령의 경제민주화 바람에 지난 2월에야 상생협약으로 이어졌다.
 
홈플러스 합정점은 1차 식품 중 오징어, 국거리용 쇠고기, 순대, 떡볶이, 총각무 등 불과 16개 품목만 판매를 제한하기로 했다. 고 씨는 "오는 31일에 홈플러스 익스프레스 망원점이 영업종료하지만 약속을 어길지 몰라 상인들이 이날 매장 앞에 모여 마지막 영업을 지켜보기로 했다"고 전했다.

그는 정부의 경제민주화가 삐걱대는 이유에 대해 "귀족 출신이라 그런지 다양한 목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는 탓이 크다"고 지적했다. 이명박 정부에서 끊임없이 이어졌던 불통 논란이 박근혜정부에서도 여전하다는 것이다. 그는 "그렇게 불안할 정도면 왜 대통령을 했냐?"며 강하게 비판했다.

▲ 망원시장 상인들은 주변을 둘러싼 대형유통업체 때문에 지난해 시장 문을 닫고 생존권 사수를 위한 투쟁을 하기도 했다. ⓒ뉴시스

정부의 정책이 오히려 서민경제 어렵게 해

과일가게를 운영하는 조현숙(52) 씨와 그의 남편은 "국회 해산을 바란다"는 다소 강경한 발언을 했다. 그들은 말뿐인 경제민주화라며 직접 행동으로 보여줄 수 없을 것 같으면 차라리 자리에서 물러나라고 소리 높였다. 안철수 의원의 방문 소식에도 왜 왔냐고 기자에게 반문하며 "괜히 정치한다 해서 무슨 꼴을 당하는지 모르겠다. 교수면 교수답게 있었으면 좋겠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조 씨는 특히 "지금까지의 우리나라는 너무 좋은 나라였지만, 30년 뒤에는 망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의 말에 따르면 정부는 한때 정책이라며 귀농, 귀촌 인구에 지원금이라는 형태로 감당할 수 없는 돈을 빌려줬다. 하지만 대부분이 실패하면서 '재기의 꿈'은 다시 꾸기 힘들어졌다. 부채가 없던 대형 부농과 기업만 공백기를 노려 성공가도를 달리고 있다. 그는 이대로 30년만 지나면 양극화가 극에 달해 보릿고개가 다시 온다고 주장했다. 경제민주화는 이미 망했다는 분위기다.

조 씨는 "나도 자식이 있지만 우리 후손들 큰일났어"라며 안타까워했다.

8년 동안 시장에서 요구르트를 배달해 온 정덕희(58) 씨는 "우리가 바라고 있는 건 서민 중심의 경제사회"라고 말했다. 대형마트에서 판매하는 물건 가격이 시장상인들의 매수가격과 비슷한 수준이라 이윤을 붙이면 경쟁 자체가 불가능해 경제민주화는 없다는 의견이다.

정 씨는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우리나라의 유통구조가 개선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박정희 시절을 떠올리며 "그땐 '허가제'라 유사 업종에 대해 어느 정도 거리제한이 있었다. 같이 잘 먹고 잘살자는 건데 지금은 '신고제'로 바뀌면서 잘못된 것 같다"고 말했다.

말뿐인 경제민주화에 시장 반응은 '냉랭'

앞서 이날 오후 3시, 안철수 의원과 송호창 의원은 망원시장을 방문해 '올해 안에 국회가 꼭 처리해야 할 경제민주화와 민생살리기를 위한 입법과제 촉구 간담회'를 가졌다.

▲ 안철수 의원이 민생을 듣기 위해 망원시장을 방문했지만 정작 상인들은 달갑지 않은 듯했다. ⓒ시사오늘

안 의원은 간담회에서 "경제민주화는 시대의 흐름이었다"며 "그 여부는 지금까지 면면히 이어져 오고 있다"고 말했다. 안 의원은 50년 만에 이뤄낸 성과가 총량적 성장만 추구한 탓에 대기업, 제조업, 수출 위주의 잘못된 방향으로 흘러왔다고 평가했다. 그는 "(임시국회가)9일밖에 안 남았지만 다시 한 번 제대로 민생법안에 대해 강조하고 목소리 높여야 할 시점"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안 의원의 시장 방문은 호응을 그다지 얻지 못했다. 안 의원이 도착했다는 안내방송에도 상인들은 듣는 둥 마는 둥 가게를 떠나지 않았다. 심지어 몇몇 상인들은 안 의원과 송 의원의 방문이 달갑지 않은 듯했다. 시장이 정치를 불신하는 모습을 그대로 방증한 듯 간담회에 참석한 상인들도 한 자릿수에 불과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경제민주화를 주창한 지 1년이 되어간다. 그 사이 정부와 국회는 상생이라는 이름을 걸고 여러 제도를 마련했다. 하지만 여전히 경제민주화의 개념을 속 시원히 말하는 사람은 없다. 공약을 상정한 김종인 전 경제수석은 한 인터뷰에서 "경제민주화는 더 이상 얘기 안 하려 한다. 이제 관심도 없다"고 발언했다.

영세 상인들은 점점 살기가 힘들어진다고 한다. 시장에서 만난 슈퍼마켓 직원은 "여기 시장 오는 사람 중 대형마트 안 가본 사람 한 명도 없다. 인근에 대형마트가 들어서면 우리 같이 영세한 가게는 그냥 문 닫으란 소리다"라며 한숨을 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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