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자는 지역주의, 패자는 김영삼 정권”
“승자는 지역주의, 패자는 김영삼 정권”
  • 정세운 기자
  • 승인 2014.01.17 13:22
  • 댓글 1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①1995년 지방선거-上> 부활한 지역주의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정세운 기자)
2014년은 제6회 전국동시지방선거가 열리는 해다. 6월4일로 예정된 이번 선거는 여야뿐 아니라 안철수 신당이 참전을 예고하며 그 어느 때보다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YS가 지방선거를 30년 만에 부활시켜 1995년 제1회 선거가 치러진 이래, 지방선거는 한국 지방자치제의 핵심으로 자리해 왔다. 또한 수많은 정치인들의 등용문으로, 이명박, 이인제, 손학규 등이 지방선거를 발판삼아 대권도전에 나서기도 했다.

수많은 인재들이 지역의 대표 자리를 걸고 펼쳐온 다섯 차례에 걸친 선거대전. <시사오늘>이 그 치열했던 역사의 현장, 지난 지방선거를 되짚어 봤다. 첫 번째로 34년 만에 부활된 1995년으로 들어가 봤다. <편집자 주>

DJ 지역등권론, JP 핫바지론으로 무장

1995년 6월 13일 충남 아산의 한 유세장.
 
김종필(JP) 자민련 총재는 ‘핫바지론’을 들고 나왔다. 

“경상도 사람들은 충청도 사람들을 핫바지라고 한다. 아무렇게나 대접해도 소견도 없고, 오기도 없어 그런 거다. 2년 반 동안 우리를 괴롭힌 김영삼(YS) 정권을 혼내주는 게 우리의 선택이다.”

지방선거를 10여일 앞두고 시작된 JP의 핫바지론은 충청권을 그야말로 시퍼렇게 물들이며 지역감정의 끝을 향해 치닫기 시작했다.

1992년 대선에서 YS에게 패해 이미 정권은퇴를 선언한 대권 3수생이었던 김대중(DJ) 아태재단 이사장도 ‘지역등권론’으로 무장한 채 당당히 유세장에 모습을 드러냈다.
 
“나의 지역등권론은 모든 지역이 잘 살자는 뜻이다. 한 줌도 안 되는 특권층이 모든 권세를 독점하는 지역패권주의 구도를 깨야 한다.”
 
민주당은 지역등권론을 앞세워 DJ 정계은퇴 이후 갈 곳을 정하지 못하던 호남표를 훑어 나가기 시작했다.

호남과 충청의 대표적 정치인이었던 DJ와 JP가 지탄을 받으면서 지역주의에 기댈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당시 정치 상황이었다.

1995년은 YS가 집권한 지 3년째를 맞는 해였다. 1992년 대선에서 패한 DJ는 정계은퇴를 선언한 후 영국으로 외유를 떠났다.
 
정국구도는 민정-민주-공화당의 3당 합당으로 탄생한 ‘민자’라는 거대여당과 이기택이 이끄는 통합야당인 민주당 양당 체제였다.
그러나 거대여당에 분열이 일기 시작했다. 당시 집권세력이었던 민주계는 ‘부패세력 척결’이란 명목아래 김종필(JP) 대표최고위원, 김재순 박준규 의원 등을 내몰았다. 
 
이에 JP가 강력 반발하며 자유민주연합(자민련)을 만들어 1995년 지방선거에 뛰어들었다.
DJ도 정계복귀 타이밍이 늦어지자 초조해졌고 지방선거를 앞두고 귀국, 민주당 후보 지원연설을 하며 정치판에 다시 뛰어들었다.

▲ 34년 만에 부활된 1995년 지방선거는 극심한 지역주의로 치달았다. 결국 DJ와 JP의 한풀이 장으로 얼룩졌다. ⓒ시사오늘

이춘구 김덕룡, ‘맞불’…역부족

집권당인 민자당도 이를 가만히 둘 리 없었다.

충청은 이춘구 대표를 내세워, 호남은 김덕룡(DR) 사무총장을 앞세워 배수의 진을 쳤다.

이 대표는 충남 당진과 공주에서 가진 민자당 후보 지원유세에서 핫바지론을 정면에서 반박했다.

“나는 충청도 사람으로 그것도 아주 순수한 혈통이다. 할아버지, 할머니, 어머니도 모두 충청도 사람이고 집사람도 서산 사람이다. 애국 충절의 충청인들이 자기들의 노욕을 채우기 위해 이 나라 분열을 획책하는 사람들의 선동에 넘어가지 않으리라고 확신한다."

호남 출신인 DR도 “지역등권론은 야당 내부에서조차 분열주의라고 비판받고 있다. 영남을 분열시키고 충청도를 떼어 낸 뒤 호남이 단결하면 집권할 수 있다는 선동에 불과하다”고 비판했다.
하지만 이들이 DJ나 JP의 행보를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YS 세대교체론…뜨는 이인제

마침내 양김 씨를 막기 위해 YS가 ‘세대교체론’을 들고 나왔다.
YS는 미국의 시사주간지 <타임>과의 인터뷰에서 “차기 대통령은 반드시 세대교체된 인물이 등장할 것”이라고 강변했다.

YS의 ‘세대교체론’은 DJ와 JP를 겨냥한 것이었다. 하지만 한국 언론은 ‘YS가 이인제 경기도지사를 차기대권주자로 점찍었다’고 대서특필했고, 여론은 이상한 쪽으로 흘러갔다.

솔직히 핫바지론과 지역등권론은 지역감정을 등에 업고 자신의 세력을 확보하겠다는 양김 씨의 의도를 담고 있었다는 게 당시의 일반적인 평가였다.

때문에 이러한 과정을 거치면서 참신한 일꾼을 뽑고자 34년 만에 부활 된 지방선거는 양김(DJ, JP) 대 YS의 대결로 변질돼 갔다. 그리고 이것은 치유될 것 같았던 지역분할구도를 다시 되살려놓는 꼴이 됐다.

지방선거 통해 DJ와 JP의 부활

이처럼 34년 만에 부활된 지방선거는 정계은퇴 2년 반 만에 뛰어든 DJ와 김영삼 정부에서 용도폐기 된 JP의 부활을 알리는 서막이 됐다.

DJ는 호남과 서울 등에서 영향력을 재확인 한 순간이었다. 그는 특히 ‘지역등권론’을 통해 선거 초반 거의 더블스코어로 리드 당하던 서울시장 선거전의 판세를 순식간에 흔들어 놓는 파괴력을 보였다. JP는 ‘핫바지론’을 통해 전통여도로 분류되어 온 강원과 충청을 차지함으로써 보수 여권 층의 심장을 건드렸다.

실상 결과가 나왔을 때 민자당은 아연 실색할 수밖에 없었다.

광역단체장 선거에서 5개 시 도 중 최대 8개, 최소 6개의 광역단체장 당선을 목표로 하고 있었다. 결과는 5곳을 얻었을 뿐이다.

수도권에서 경기와 인천을 얻었지만, 부산과 경남북을 제외하면 전멸했다. 텃밭이라고 생각했던 대구에서조차 당선자를 내지 못했다.

민주당은 수도권과 호남지역에서 DJ의 유세덕분에 고전을 면치 못하던 선거전의 분위기를 일시에 반전시켰다.

선거 후 민주당 김태식 사무총장은 선거승리를 DJ 덕으로 돌렸다.

“민자당의 온갖 음해에 시달리면서도 당원으로서 의무를 저버리지 않은 DJ에게 감사한다.”

자민련은 충청권의 지역정서를 절묘하게 이용했다.

JP는 선거기간 동안 전국을 순회하며 자신이 용도 폐기된 데 대한 울분을 털어놨고, ‘핫바지’니 ‘멍청도’니 하는 말을 꺼내며 노골적으로 지역정서를 자극해 승리를 일궈냈다.

특히 DJ의 출현으로 지역등권론과 핫바지론이 정치권의 뜨거운 쟁점으로 부각되면서 선거전은 3김의 손아귀에 들어가게 됐다.

선거결과를 보면 과거 어느 때보다도 철저히 지역주의가 작용한 선거였다.

민자당은 부산경남, 민주당은 호남, 자민련은 충청, 무소속은 대구경북에서 광역단체뿐 아니라 광역의원, 기초단체장까지 거의 석권했다.

아무튼 1995년 실시된 ‘6.27 지방선거’는 기존의 영호남 분할구도에다 충청권과 대구경북 정서까지 일정한 세력으로 등장시키게 된다.

여기에 지역분할구도는 세포분열을 해 ‘남북 경기론’, ‘강원도의 영서 영동 대결’, ‘전남의 동서부 갈등’까지 나타나기에 이른다.

당시 선거에서 지역주의가 얼마나 기승을 부렸는가를 알아볼 수 있는 바로미터가 바로 AP통신이다.
AP통신은 당시 선거를 이렇게 분석했다.

“이번 선거의 승자는 지역주의고 패자는 김영삼 정권이다.” <계속>

 

담당업무 : 정치, 사회 전 분야를 다룹니다.
좌우명 : YS정신을 계승하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1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이해안돼요 2014-12-15 03:18:18
지방선거니까 지방의 이익을 중앙까지 대변할 지역 정당을 찍은 거지요.
그럼 뭐 무소속을 찍나요? 무소속을 찍는다는 건 곧 중앙의 정당 공천 시스템이 아닌
이름 알려진 지방의 유지들이 다 해먹는다는 걸 정말 몰라서 하는 소리인가요?
안철수의 기초단체무공천이랑 전 비슷한 말로 들리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