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난 김대중(DJ)을 용서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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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난 김대중(DJ)을 용서할 수 없다”
  • 정세운 기자
  • 승인 2014.01.18 08:1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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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1995년 지방선거-下>지역주의 맞선 전사자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정세운 기자)

2014년은 제6회 전국동시지방선거가 열리는 해다. 6월4일로 예정된 이번 선거는 여야뿐 아니라 안철수 신당이 참전을 예고하며 그 어느 때보다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YS가 지방선거를 30년 만에 부활시켜 1995년 제1회 선거가 치러진 이래, 지방선거는 한국 지방자치제의 핵심으로 자리해 왔다. 또한 수많은 정치인들의 등용문으로, 이명박, 이인제, 손학규 등이 지방선거를 발판삼아 대권도전에 나서기도 했다.

수많은 인재들이 지역의 대표 자리를 걸고 펼쳐온 다섯 차례에 걸친 선거대전. <시사오늘>이 그 치열했던 역사의 현장, 지난 지방선거를 되짚어 봤다. 첫 번째로 34년 만에 부활된 1995년으로 들어가 봤다. <편집자 주>

▲ 1995년 실시된 지방선거는 지역주의로 얼룩졌다.ⓒ시사오늘

박찬종, 지역주의 못 넘고 무너져

서울시장 선거일을 하루 앞둔 1995년 6월 26일 밤 강변 역 부근.

민자당 정원식, 민주당 조순과 더불어 ‘빅3’로 분류되던 무소속 박찬종 서울시장 후보는 지지를 역설했다.

“천 백만 서울시민이 3김 씨의 포로가 돼서는 안 된다. 8년 동안 지역할거주의에 버텨온 나를 선택할 것인가. 버릴 것인가를 결정할 시기가 됐다.”

같은 날 부산역 광장에선 민주당 노무현 후보가 “지역등권론과 내각책임제는 부산 경남을 고립화시키려는 또 다른 망국적 지역주의”라는 논리를 펴며 한 표를 호소했다.

서울시장 후보로 출마했던 박찬종 후보는 본격 선거전 개시전날까지 공개된 여론조사에서 민자당 정원식 후보나 민주당 조순 후보를 압도했다.

부산에서 출마표를 던진 노무현 후보도 민자당 문정수 후보에 뒤지지 않는 훌륭한 ‘밑천’을 가지고 선거전에 뛰어 들었다.

하지만 이들은 지역감정이라는 엄연한 현실의 벽을 뛰어넘지 못했다.

서울에서 박 후보는 선거초반 조순 후보를 월등히 앞서 나갔다.

당선이 곧 눈앞에 다가온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선거중반 김대중(DJ) 아태재단 이사장이 지원유세에 나서면서 판도가 바뀌기 시작했다.

여기에 선거 막판 JP가 민주당 조순 후보를 지지하면서 전세가 완전히 역전됐다.

박 후보는 당시의 패인을 이렇게 분석했다.

“당시 JP가 민주당 후보 지지선언을 한다고 하더라도 판세에 큰 영향을 못줄 것이라고 생각했다. 서울에서 자민련의 영향력과 충청도 연고의 유권자들에 대한 장악력이 대단치 않은 것으로 판단했다.

결과를 놓고 볼 때 그것은 완전한 판단 착오였다. 내표 중 1%가 상대후보에게 가면 결과적으로 2%의 변동이 생긴다. 자민련의 민주당 지지선언은 최소 5~6%의 득표변동을 가져왔다. 특히 지역주의가 심화됐던 당시 선거 때 JP의 지지선언은 나에게 완전 치명상을 안겨줄 수 있는 것이었다.”

부산에서 노 후보도 당시 김영삼(YS) 대통령의 정치적 아성이었던 부산에서 민주당 깃발을 들고 선전하자 민자당도 긴장할 정도였다.

재미있는 점은 당시 선거에서 ‘노무현 돌풍’을 잠재운 사람은 YS가 아니라 DJ였다는 것이다.

DJ가 ‘지역등권론’을 앞세워 민주당 선거지원유세에 나서면서 부산은 ‘반DJ’정서로 바뀌기 시작했다.

그리고 YS의 잇따른 부산방문을 통해 노 후보의 바람은 꺼져갔다.

노 후보도 이를 돌리기 위해 DJ의 완전퇴진을 요구하기도 했으나 이미 사태를 돌리기엔 역부족이었다.

선거가 끝난 직후 노무현 후보는 시사주간지 <한겨레 21> 기고를 통해, 자신의 입장을 이렇게 밝혔다.

“지역대결 구도만이 판치는 정치현실 속에서 이번 선거에 나설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러던 차에 나는 당내 경선에 도전했고 계보정치의 벽을 뚫고 힘겹게 후보로 선출됐다.
 
지역감정이라는 정치현실을 냉정히 인정하고 선거결과에 관계없이 멋진 한판을 벌여보자는 것이 나의 의지였다. 이런 상황에서 ‘지역등권론’이 나왔다.

나는 김대중 이사장을 용납할 수 없었다. 역사의 수레바퀴를 거꾸로 돌리려는 반역사적 행위였다. 역사의 주인인 국민대중을 ‘졸’로 보고 수단으로 이용하려는 등권론, 정치의 진전을 가로막고 있는 지긋지긋한 지역대결구도를 다시 부활시키는 것이 바로 DJ의 지역등권론이다.”

▲ 박찬종과 노무현은 지역주의에 맞서 싸웠으나, DJ가 지역등권론을 들고 나오자 현실의 벽을 뛰어넘지 못하고 무너졌다.ⓒ시사오늘

염홍철 김덕영 강현욱, 지역주의에 모두 침몰

이뿐 아니라 대전에서 염홍철, 충북에서 김덕영, 호남에선 강현욱 후보가 지역분할구도에 끼여 막판 침몰했다.

민자당 염홍철 후보는 선거운동 초반 자민련 홍선기 후보를 앞질렀다.

그러나 JP가 ‘핫바지론’을 들고 나오면서 자민련의 녹색바람은 그야말로 대전을 시퍼렇게 물들였고, 염 후보는 그렇게 침몰해 갔다.

민자당 김덕영 후보는 선거기간 중반까지도 우세했다. 투표일 하루 전날까지도 앞서고 있을 정도였다.

그러나 자민련 주병덕 후보에게 무너졌다. 자민련의 녹색바람이 충남에서 대전을 거쳐, 충북까지 밀어닥친 것이다.

민자당 강현욱 후보도 선거 종반까지 우세를 유지했다.

그러나 DJ가 전주 등에서 지원유세를 하면서 판도가 바뀌기 시작했다. 결국 민주당 유종근 후보에게 패하고 말았다.

박찬종 후보를 비롯한 이들은 초반의 우세를 지키지 못하고 끝내 지역주의의 희생양이 되고 말았다.

지역주의의 벽을 넘지 못하고 패한 박찬종 후보는 패자의 변을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지역주의에 맞서 싸우다 장렬히 전사했다.”<1995년 지방선거편 끝>

구분

광역단체장

기초단체장

광역의원

부산

 

 

 

14

0

0

2

54

2

0

5

경남

 

 

 

10

0

0

11

58

3

0

33

광주

 

 

 

0

5

0

0

1

25

0

0

전남

 

 

 

0

22

0

2

4

66

0

5

전북

 

 

 

0

13

0

1

2

53

0

3

충남

 

 

 

0

0

15

0

5

3

52

1

대전

 

 

 

0

1

4

0

0

1

25

0

  <1995년 지방선거 당선자 수-지역주의 실체>
 

 

 

담당업무 : 정치, 사회 전 분야를 다룹니다.
좌우명 : YS정신을 계승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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