꼿가치 피어 매혹케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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꼿가치 피어 매혹케 하라
  • 정세운
  • 승인 2008.12.02 13: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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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신문에 포르노 광고가 실렸다고?”
<꼿가치 피어 매혹케 하라>는 근대에 발간된 신문광고를 통해 그 시대의 풍경을 독자들에게 전달하는 책이다. 

이 책의 저자 김태수는 일제강점기에 살던 사람들의 삶을 그 시대의 광고를 통해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다.
신문지면의 부속품으로 치부되던 신문광고를 파헤쳐 근대인들이 욕망하던 것, 그리고 그들에게 강요됐던 것들을 글로 옮겨 놓았다는 점이 이채롭다.

'입신의 기초이며, 출세의 자본'이라는 영어는 100년 전이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고, 전쟁의 컨셉을 활용한 '캬라멜도 싸우고 있다'는 대중의 심리를 읽는 광고인의 재치가 느껴진다. '나의 조선 이름은 촌티가 나서', '<가정화합의 벗> 삭구를 아시나요'는 각각 창씨개명과 산아제한을 알리는 광고로 대중에게 정치적 의도를 쉽게 알리기 위해 신문광고가 이용되었음을 보여준다.

‘섬나라 정치가 들어온 탓인지’ 음란해진 사회분위기를 걱정하는 가운데도 신문 1면에는 기생들의 근하신년 광고가 들어선다. 그 한 모퉁이에는 ‘밤의 쾌락을 맛볼랴는’ 이들에게 권하는 이상야릇한 포르노그래피 책 광고가 자리를 잡았다.

외국어 특히 영어는 ‘입신의 기초, 출세의 자본’으로 통용되었고 그때 이미 세계화, 스피드 시대를 견인했다. 신문광고로 본 한반도 근대의 풍경이다.

광고는 마치 기다리기라도 했다는 듯 단발령, 창씨개명, 아관파천, 태평양전쟁과 같은 근대사의 굵직굵직한 사건들에 가려져 보이지 않던 근대의 일상을 거침없이 쏟아낸다.

신문광고는 민족주의를 상업적으로 이용하기도 했다. 대표적으로 손기정의 베를린 올림픽 우승을 전후해 등장한 각종 광고들이다. 신문 전면에 마라톤 영웅 ‘손기정·남승룡 양군 만세’를 외치며 제품을 광고했고, 제약회사 평화당 주식회사는 자사의 ‘백보환’이 마라톤 우승의 원천이라고 광고하기도 했다.

업체들은 툭하면 반일의식이 투철했던 황손 ‘이강 전하가 손수 쓰시던’이란 카피를 들이댔다. 동아소주는 ‘백열적 대호평으로 일취월진, 국산 원료의 이용과 외래품의 구축함을 일대 사명으로’ 삼는다고 주장했다.

‘동양목’은 근사한 붓글씨로 ‘우리 손으로 맨든 2천만 민족 옷감’을 광고했다. 친일파 박흥식조차 ‘화신의 성패는 민족적 명예소관’이라며 조선인의 자존심을 건드리는 광고를 내 화신백화점을 많이 애용해줄 것을 당부했다.

이 책 <꼿가치 피어 매혹케 하라>는 근대에 대한 우리의 환상과 절망에 일정 정도 거리를 두고 신문광고 그 자체가 보여주는 시대의 풍경에 주목한다.
광고가 포착해낸 혹은 광고가 이끌고 간 근대의 순간들을 접한 저자가 광고를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것, 그것이 독자에 대한 최선의 배려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광고는 그 자체로 우울하고 서글프고 참혹한 시대상과 함께 근대인들에게 필요했던 것, 근대인들이 욕망했던 것, 근대인들을 유혹했던 것, 근대인들에게 강요됐던 것을 골고루 보여주고’ 있었다는 저자의 말이 아니더라도 이 책은 이 땅 한반도 근대의 한 부분을 메우기에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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