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J 심판하자˝…민주당 ´참패´, 자민련 ´몰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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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J 심판하자˝…민주당 ´참패´, 자민련 ´몰락´
  • 홍세미 기자
  • 승인 2014.03.05 09:5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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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③2002년 지방선거-上>정권심판론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홍세미 기자)

2014년은 제6회 전국동시지방선거가 열리는 해다. 6월4일로 예정된 이번 선거는 민주당과 안철수 신당 합당으로 참전을 예고하며 그 어느 때보다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YS가 지방선거를 30년 만에 부활시켜 1995년 제1회 선거가 치러진 이래, 지방선거는 한국 지방자치제의 핵심으로 자리해 왔다. 또한 수많은 정치인들의 등용문으로, 이명박, 이인제, 손학규 등이 지방선거를 발판삼아 대권도전에 나서기도 했다.

수많은 인재들이 지역의 대표 자리를 걸고 펼쳐온 다섯 차례에 걸친 선거대전. <시사오늘>이 그 치열했던 역사의 현장, 지난 지방선거를 되짚어 봤다. 세 번째 동시지방선거가 열렸던 2002년으로 들어가 봤다. <편집자 주>

2002년 5월 어느날. 김대중(DJ) 전 대통령은 초조한 기색이 역력했다. 한 달여 앞으로 다가온 지방선거 때문이었다.

1998년 치러진 지방선거에서는 완승을 거뒀지만, 4년만에 전세가 역전됐다. 세 아들과 측근의 비리가 터지면서 기존 정치권에 대한 불신이 팽배해지기 시작했다.

이회창이 이끄는 한나라당은 '정권심판론'을 들고 나오면서 DJ를 압박했다. 이회창은 지방선거 승리를 발판으로 여세를 몰아 그 해 치러지는 12월 대선에서 승리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2002년엔 한·일 월드컵으로 대한민국은 축제분위기였다. 정치권이나 지방선거에 대한 관심은 4강 신화까지 기록했던 월드컵에게 뺏기기 충분했다.

레임덕에 시달리고 있던 DJ는 월드컵 4강으로 한가닥 희망을 가질 수 있었다. 월드컵 흥행에 묻혀 '정권심판론'이 먹혀들지 않을 수 있다는 기대감을 가졌다.

2000년 4월 제16대 국회의원선거 결과를 보면, 민주당은 서울에서 28석, 한나라당은 17석을 얻었다. 당선자 수를 보면 민주당이 승리를 이끌었다. 하지만 1년 후 치러진 2001년 4월 26일 재보선에서 은평구청장을 3년 만에 한나라당에게 내줘야 했다. 또 같은 해 10월 25일 실시된 서울 구로 을과 동대문 을 재보선에도 민주당은 ‘완패’했다.

이처럼 DJ는 지방선거가 있기 전 재보선에서 이상기류를 실감했다. 때문에 월드컵 4강에 기대 위기를 탈출하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일례로 선수들을 직접 찾아가 '병역특혜'를 전하기도 했다. 그 장면이 TV에 고스란히 노출되기도 했다.

하지만 DJ의 희망은 바람으로 그치고 말았다.

결과만을 놓고 보면, 2002년 6월 13일 치러진 제3회 지방선거는 한마디로 한나라당 ‘압승’, 민주당 ‘참패’, 자유민주연합 ‘몰락’이었다.

▲ 2002년 지방선거에서 DJ는 '정권심판론'을 피할 수 없었고 JP가 이끌던 자민련은 몰락하는 결과가 발생했다 ⓒ 시사오늘

서울대 vs 고려대 싸움으로 번진 한나라당 서울시장 경선

이같은 분위기는 한나라당 경선에서 고스란히 드러났다. 승리를 감지한 한나라당 중진 의원들은 서울시장 출사표를 던졌다. 당시 서청원 의원과 홍사덕 의원, 이명박 전 의원 등이 나섰다.

반면 민주당은 우왕좌왕했다. 당시 서울시장이었던 고건 시장은 당선가능성이 없다고 판단, 출마를 포기하는 상황이 연출됐다.

3파전 양상으로 치닫던 한나라당 서울시장 경선에서 서청원이 당권 도전 쪽으로 돌아서자, 이명박과 홍사덕 2파전으로 바뀌었다. 

둘의 대결이 더욱 흥미를 끈건 그동안의 절치부심 때문이었다. 두 사람의 출마를 놓고, 언론들은 “칼을 갈고 돌아왔다”고 표현했다.

홍사덕은 1995년 민주당 서울시장 경선에서, 조순, 조세형 후보에 밀려 3위에 그쳤다. 이명박도 그 해 민자당 경선에서 정원식 후보에게 패했다.

특히 이명박은 1998년 한나라당으로 서울시장 경선에 참여했지만, 제14대 총선 관련으로 선거법 위반에 걸려 벌금형을 받아 서울시장의 꿈을 포기해야 했다. 두 사람은 '한’이 있었다.

공교롭게도 이 둘은 서울대(홍사덕)와 고려대(이명박)인 ‘학벌 싸움’으로 번졌다.

이명박을 지지하는 것으로 알려진 홍준표·김기배 의원과 김중위·유준상 위원장 등은 고려대 출신이다. 반면 홍 의원을 지지한다고 알려진 김덕룡·최병렬 의원과 진영·김성식 위원장은 서울대 출신이다.

이런 까닭에 한나라당에선 ‘서울대와 고려대의 힘겨루기’라며 홍사덕과 이명박의 싸움을 빗댔다. 게다가 이명박은 한나라당 내에서 ‘고려대 출신 담합설’에 시달렸다.

이명박은 이에 대해 “내 얘기에 공감하는 위원장들이 많은 건 사실이지만, 거기엔 고려대 출신도 있고 서울대 출신도 있다”며 “위원장들은 지역구민의 정서를 반영하는 것이니 (위원장들이) 저를 좋게 평가한다는 건 그만큼 서울시민들이 호감을 갖고 있다는 뜻”이라고 언급했다.

홍사덕은 이명박보다 여론조사 등 대중적 인기가 더 높았다. 때문에 경선을 치르기 전, 자신감에 찼다. 홍사덕은 경선을 치르기 전,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이명박 전 의원이 총재 주변에 공을 많이 들이고 대의원들까지 접촉했다는 소리를 듣고 걱정을 많이 했지만, 막상 지구당위원장들을 만나보니 나에 대한 반응이 좋더라. 한나라당 대의원들이 당선 가능성을 최우선으로 고려해서 서울시장 후보를 선택할 것이다. 나는 3김 씨들이 대한민국을 찢어놓을 때 무소속의 길을 걸어온 청렴하고 공정하게 살아온 정치인이다. 이런 것들은 서울시민에게도 높이 평가받을 것이다.”

한편 이명박은 ‘경제시장’ 전략을 전면에 내세웠다. 경영마인드를 강조하며 ‘경제시장’만이 서울을 경영할 수 있다는 논리를 펼쳤다. 그러면서도 이명박은 경선 상대인 홍사덕에 대해 ‘좋은 상대’라고 평가했다. 이명박이 한 매체와 인터뷰한 얘기를 들어보자.

“홍 의원보다 내가 더 유리할 듯싶다. 인기보다도 관록과 비전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인기가 치솟던 박찬종과 달변의 정원식이 연륜을 앞세운 조순을 이기지 못했다는 사실을 주목해야 한다.”

하지만 치열했던 두 의원의 신경전은 경선으로 이어지지 않았다. 홍사덕은 경선을 준비하던 도중 ‘불공정 경선’이라며 '보이콧'해 버렸다.

홍사덕이 불출마를 선언하기 전, 한나라당에선 당시 박근혜 부총재 탈당, 강삼재 부총재의 부총재직 사퇴, 김덕룡 의원의 탈당 시사 등 ‘총체적 난국’이었다. 당시 홍사덕이 한 얘기를 들어보자.

“일반 서민들을 상대로 한 조사에서는 내가 6대4로 앞서는데, 당 대의원을 상대로 한 조사에서는 거꾸로 4대6으로 지는 것으로 나온다. 이것은 이유없는 `마술'이 아니며, 깊이 생각해 폭넓은 결심을 하겠다.”

홍사덕은 한나라당에서 이뤄지는 경선을 '돈경선'이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이명박은 “홍 의원이 문제 삼는 시점은 대의원 명부가 확정되지 않은 상황이었고 홍 의원도 똑같이 지구당 개편대회에 다녔다”고 반박했다.

결국 2002년 3월 9일, 홍사덕은 서울시장 경선에 후보등록을 하지 않았고 4월 4일 열렸던 한나라당 경선에선 이명박 전 의원이 추대를 받아 서울시장 후보로 나섰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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